[80%와 88만원]우석훈, 짱돌과 바리케이트의 조건

- 우석훈 강연 요지

88만원 세대의 착취구조를 하나의 '현상'으로 파악한다면 홍세화 씨는 이 현상이 '이 지경'이 되기까지의 '원인'에 방점을 두었다. 반면 우석훈 씨는 '이 지경'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 것인지 '미래'에 방점을 찍었다. '88만원 세대'는 한마디로 세대간 불균형 문제를 다룬 책이라면, 『왜 80이 20에 지배당하는가?』는 계층간 불균형 문제를 다룬다. 때문에 두 책은 함께 논의가 되어야 한다. 이 점에서 두 책을 출판한 출판사가 공동으로 기획한 이번 강연의 취지에 공감한다.

우석훈 씨는 짱돌과 바리케이트라는 결과에 주목하기보다는, 그것이 필요한 조건에 대해서 주의할 것을 요청하였다. 던질 때 던지더라도 어떤 것이 '효과적'인지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저항'을 떠나 '내전상황'이나 '폭동'이라는 극단적인 결과를 향해 우리는 달려가고 있으며, 이것을 해결하는 당사자는 20대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강연의 요지는 12월 1일 서교동 태복빌딩에서 있었던 강연(예스24 등 주최)과 지난 11월 16일 문지문화원에서 있었던 강연(알라딘 등 주최)의 메모를 합쳐서 기록한다는 점을 밝혀둔다.

 

다음은 강연 요지

<우석훈 씨(오른쪽)는 세대 간 불평등과 착취구조가 임계점을 넘은 상황이기 때문에 폭동이나 내전 등의 극단적인 상황이 올 수도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20대를 대안시리즈의 '첫 타겟'으로 잡기까지

 

학위받고 12년차, 올해 지나면 13년차가 된다. 40이 되면 은퇴하겠다고 20세 때 친구들에게 공약했는데,

내년이 40이다. 이를 정리하려 10권 정도의 책을 구상하고 있는데, 현재 하고 있는 작업은 4권으로 구성된 한국 경제의 대안시리즈, 이른바 ‘기승전결’ 시리즈이다.

책을 보면 알겠지만 1~3권까지는 모두 ‘죽는 내용’이다. 그야말로 처참한 책인데, 내 식대로 표현하면 ‘좀비 영화’ 식이다. 좀비 영화 보면 모두 죽지 않는가. 드라큐라 영화는 드라큐라를 죽이지만, 좀비 영화는 다 죽는다. 공포는 헤피엔딩이 없다.

1권은 20대의 90~95%에 관한 이야기인데, 어디선가 죽는 이야기를 담았다.

2권은 1권에서 살아남은 5%에 관한 이야기인데, 이 역시 여기서 죽게 된다.

3권은 1,2권의 인물들을 죽게 만든 게임의 고안자이자 권력자인 40대의 이야기를 담았는데, 그들 역시 이 지점에서 죽을 것이다. 

20대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20대를 많이 만났고 많이 이해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20대가 싫었다.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분석하면서 애정이 생겼고, 왜 그렇게 됐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국회의원, PD를 대상으로 20대에 대해서 물어보니까 “다른 거 이야기하자”고 넘어가려 하더라.

좌파 쪽 사람들은 “불만스럽다”는 반응이다. (20대에 대해서)

386이 만든 세계를 20대가 다 무너뜨렸다는 것이다.

우파 역시 20대에 대해서 한결같다. “싸가지가 없다”는 것이다.

결국 20대는 좌파에게서든 우파에게서든 다 싫어하는 존재가 됐다.

20대한테 물어봐다. 다 싫다고 하더라. 20대는 특이하게 서로가 서로의 증오대상이기도 하다. 경쟁구도를 이렇게 만들어 왔는데, 당연한 귀결 아닌가.

10대한테 물어보니까 “모른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대한민국에서 20대에 대한 고민을 가장 많이 하는 집단은 ‘장사꾼’ 소위 마케팅 담당자들이다.

제일기획은 20대를 ‘껌값’으로 판단한다.

삼성은 20대는 생각이 없는데, 애들이 결국 소비자가 될 테니까 삼성을 좋아하게 만든다.

CF 촬영하는 여배우를 보면 이런 흐름을 알 수 있는데, 주로 40대 초반이나 30대 후반이다. 가수 역시 3~40대 아니면 10대이다. 20대는 상당히 특수한 조건이 된 것이다.  

솔직히 이 책 처음 시작할 때는 20대가 관심대상이 아니었다.

“10대들이 행복하면 세상이 행복하다”가 원제였고, 10대가 주제였다.

이 주제에 맞추다 보면 나머지도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10대, 20대 정리하다 보니 눈물이 나더라.

그래서 20대를 잡았다.


<우석훈 씨는 자신과 같은 세대인 386 세대에 대한 증오감을 숨기지 않았다. 그들이 애를 낳고 기득권이 되면서 배신을 했다는 것이다. 개개인으로 보면 그렇지 않지만, 집단으로 볼 때 386은 위선적인 집단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누군가 '삥당'을 친 것이 틀림없다

88만원 세대는 경제적 모델이 담겨 있는데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아버지(T1)와 아들(T2)이 살고 있다고 했을 때, 자산의 흐름을 나타내 보면 20+80(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으로 정리할 수 있다. 즉 20에 대해서는 아버지에게 증여를 받은 것이고, 80에 대해서는 스스로 개척한 것이다. 이것이 2대의 모델이라면 3대의 모델로 세분화 해보자. 아버지(T1)와 나(T2)와 나의 아들(T3)는 20+60+20으로 나눌 수 있다. 즉 아버지에게 20을 증여받아서 80을 개척한 것 중에서 아들에게 20을 증여해 주었다는 말이다. 이렇게 20의 단위로 세분화해 보면 세상의 흐름을 알 수 있다. 결국 세상의 흐름을 자산의 흐름으로 유추하는 것이 경제학의 관점이다.

이것을 자연환경으로 치환해서 생각해볼 수 있다. 어쨌든 ‘현재’라는 것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지분이 각각 포함된 개념이다. 그런데 과거로부터 20을 받았는데 미래에게 20을 주지 않는 현상이 생기고 있다.

20이라는 일정한 자산이 분배되는 형태를 기본 분배라고 한다면 뒤로 갈수록 30, 40, 50 하는 식으로 늘어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발전적인 분배의 형태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상황을 가만히 관찰해 보니까 기본적으로 분배해야 할 20 중 어느 정도, 또는 상당 부분이 사라진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것은 분명히 누군가 ‘삥땅’을 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날 20대의 노동강도가 떨어졌다고 볼 수 없다. 이것은 누가 보든가 ‘착취’라고 해야 옳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안정적 교환’을 이야기하면서 만족스럽게 주고 받은 상태를 ‘just'라고 했다. 그런데 현재는 ’unjust'라고 할 수 있다. (우석훈은 <시사IN> 3호 커버스토리에 기고한 글에서 새뮤얼슨의 '세대 간 중첩 모델'과 균형성장론자인 솔론의 '세대 간 형평성', 그리고 존 내시의 '내시 균형' 의 틀을 적용시켰다고 밝힌 바 있다.) 

원래 인간은 20을 받으면 40을 주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갑자기 어떤 놈이 40을 받아쳐먹고 10밖에 안 준다고 생각해 보자.

이것이 불균형이다. 세대 간 불균형이 바로 이것이다.

누가 삥땅을 쳤나. 나는 386 이전 세대라고 생각한다.
나는 386이 밉다. 미운 정도가 아니라 증오하다시피 한다. 자기들은 과외도 안하고, 그 사람들 스스로가 사회에 들어가면 좋아질 것이라고 떠벌이고 다녔다.

하지만 애를 낳고 나더니 달라지더라.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 의식을 갖고 있다. 하나하나는 그렇지 않지만 집단적으로 보면 분명히 위선이다.
 
 

뺏기면 뺏겼다고 얘기해야 안 뺏아간다

한국사회는 한마디로 ‘lock-in' 갇혀 있는 상태이다.

이것은 황우석 사태로 이야기해볼 수 있는데, 당시 MBC PD수첩에 황우석 편 방영을 반대한 비율이 98%였고, 찬성한 비율이 2%였다.

이 구도를 깨기 위해서는 ‘창조적 파괴’라는 장치가 가동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이 쉽지 않다.

"QWERTY"라는 말이 있다.

QWERTY 자판(쿼티 자판)은 영어 타자기나 컴퓨터 자판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자판 배열이다. 자판의 왼쪽 상단의 여섯 글자를 따서 이름 붙여졌다. 이전의 자판은 주로 알파벳 순서로 배열되었는데 자판을 타자기로 칠때 인접한 키를 연달아 치게 되면 자주 엉키는 문제가 발생했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 바로 QWERTY 자판이다. 때문에 속도면에서 본다면 오히려 느리게 만들었다고 볼 수도 있다. 현대의 워드프로세서 체제에서는 필요가 없지만 관습의 저항으로 고치지 못했다.

그래서 문제는 과연 어떻게 ‘창조적 파괴’(앙팡 테리블 : enfant terrible)를 맞을 거냐 하는 것이다.

20대의 권리장전 한 열 몇 개는 만들어 보았지만, 여러분한테서 나와야 할 거라고 생각해 과감히 생략했다. 그 이상 이야기하면 답을 주는 것이므로 지웠다. 성형수술/우울증/사회부적응 친구들 나중에 다 뺐다. 구도만 들어도 충분히 슬프기 때문이다. 슬픈걸 다 빼고 났더니 다 무섭다고 하더라.

19세기 영국 이야기.인간이 살면서 그 나라 부자들이 20세에 결혼하지 않은 게 영국이 처음이다.

인도에 가서 돈을 벌어오든지 공을 세웠는데, 지금의 20대는 공을 세울 기회가 없다. 영국 당시 35세 결혼이 유행이었는데, 영국 사회에 벌어졌던 일하고 지금이 비슷하다. 영국은 그 이후 큰 전쟁 2번에 대영제국의 명예가 무너졌다. 19세기 영국 시, 소설을 많이 읽기를 권하고 싶다. 19세기 중후반, 20세기 후반까지 포스트모던이 유행하여 전세계의 양극화가 심해졌다. 배고픈 것과 배고프지 않은 것의 원형이 바로 19세기 영국에 있었다.
뺏기면 뺏겼다고 얘기해야 안 뺏아간다. 지금 20대가 뭐가 필요한가. 다른 나라로 20대가 힘든 게 거의 없다. 자본주의 이런 사례 없고, 1~2년 안에 이런 게 풀려야 한다고 본다.

외부의 적이 있다면 서로 친해지겠지만, 지금 20대는 한명씩 끌려가서 죽는 구조이다. 카프카의 ‘성’이 바로 그런 구조다. 대학 축제도 마케팅으로 넘어갔다. 20대 세대주로 독립이 안 돼 있다. 독립세대에 대한 지원을 유럽에서 다 돼 있다. 요구를 해야 하는 거다. 지금까지 그런 요구가 한 번도 없었다. 안 요구하면 원래 없어지는 거다. 헌법적 권리가 침해받고 있는데, 지금 상황이 사실 헌법에 안 맞는 거다.


<우석훈 씨(왼쪽)는 88만원 세대가 자신들이 빼앗긴 권익을 강력하게 주장해야 그것을 되찾을 수 있다고 역설했다. 요구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게 세상의 이치라는 것이다. 88만원 세대인 한 독자와 밝은 표정으로 사진을 한방 찍다> 


 

다음은 방청객과의 문답

허정윤 학생(인천 삼산고등학교)= 1. 언니와 함께 88만원 세대라는 책을 보았는데, 본인이 자신이 88만원 세대라는 것을 인지 못해서 답답하다. 이런 언니에게 뭐라고 이야기를 해줘야 하겠나?

2. lock-in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서 대안을 낸다면

 

- 1. 88만원 세대의 이름을 짓는 데 여러 과정이 걸렸다.

먼저 승자 독식의 시대를 제안했을 때 많은 사람이 이렇게 충고했다. “그거 당사자들이 들으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할 우려가 있다.” 그래서 바꿨다. 베틀로얄이라는 말은 희랍시대 왕 앞에서 목숨을 걸고 싸워서 이긴 놈, 즉 살아남은 놈만 영광을 보았다. 하지만 당사자들 대부분이 이 영화를 보지 않았다.

막장세대, 끝장세대라는 말도 있었다. 즉 10대는 막장세대, 20대는 끝장세대이다. 하지만 이것은 너무 정성적인 규정이었다. 자기가 평균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인식을 과학적 인식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것은 자신이 선택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뭐가 다르겠는가. 선민의식은 허위일 수밖에 없는데, 이거 깨기가 힘들다. 그보다 더 인간적인 문제일 수 있다. 분명히 평균 맞는데, 자신은 평균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자신이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고치기 어렵다.

 

2. 게임을 풀어나갈 때 개입해법(individual play)과 집단해법(team play)이 있다.

예컨대 노벨상을 타고 싶다고 하자. 이것은 개인 해법이기도 하고 집단해법이기도 하다. 노벨상은 기여도에 따라 주는 것이다. 취직은 개인적 해법으로 되는 것이지만, 구조를 바꾸는 사람일 때는 팀플레이로 풀어야 한다. 스타크래프트, 저쪽에서 팀플하면 우리도 길드를 만들어야 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비정규직의 문제의 경우 학교에서 동의서를 발행하거나 구청 지원금을 통해서 시급을 인상할 수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문제가 뭔지 모르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일종의 공포감에 있다. 이제까지는 팀이 하나도 없었다. 50대는 곗돈 문화. 30~40대는 노동조합문화가 있는데, 20대 이후부터는 아무런 조직이 없다.

어차피 몰리고 몰렸다는 것을 알면 단결을 하게 된다. 자기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불난 극장 모델’이라고 부를 만한데, 사람들은 열 사람을 따라가며 군중을 만드는 데 그것이 출구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만약 앞 사람이 출구를 모른다면 나는 꼼짝없이 죽을 수밖에 없다. 95%에게는 해답이 없고, 나머지 5% 역시 해답이 없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구조를 깨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20대 내에서 욕구가 생겨서 힘이 커지는 것이 좋다. 모든 문제를 개인의 해법으로 푼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참에 집단해법을 경험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황규선 선생님 질문(인천 삼산고 국어교사)= 현실이해 명쾌하고 새로운 시각을 얻었다.

짱돌 들고 바리케이트를 쳐라! 는 명쾌하지만 그렇도록 만드는 과정이 중요하지 않은가. 경제학으로 설명이 되나. 막막한 벌판에 선 느낌이다. 학교에서 학생을 어떻게 만나고 20대들을 어떻게 만나야 할까. 성찰이 빠를까? 짱돌이 빠를까? 짱돌드는 계기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혼란스럽다.

 

- 수능을 이기는 조건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학원에서는 100% 이기지 못한다. 문집 만드는 활동을 했거나 하고 있는 학생은 무조건 100점을 받게 돼 있다. 책 잘 읽고 생각 많이 하는 사람이 점수를 잘 받도록 설계됐고 그렇게 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한국사람들이 수능 문제를 다 외워버릴 거라고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논술 역시 마찬가지이다. 논출책 10여권을 다 외울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논술 채점 교수 이야기 들어보니까 학원에서 나온 교재를 보더라. 학원 표 비슷한 거 찾는 것이 채점의 중요한 과정이다. 학원에서는 이것을 깨려고 책을 자꾸 바꾼다. 이렇게 채점자와 학원에서 자꾸 전쟁을 하는데, 참 한심한 전쟁이라는 생각이 든다.

학원 가는 것은 해답이 될 수 없다. 공교육 내에서 책을 읽고 토론하는 것으로 해결이 가능할 수 있다.

전쟁이 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누군가 부처님에게 물은 적이 있다. 부처님이 이렇게 대답했다. “과부, 어린이, 노약자 돌보고 어른들이 대화를 많이 해라”

이 상태로 간다면 1,2년 내에 폭동이 난다. 폭동이 나려면 나는데, 폭동은 히틀러처럼 갈 확률이 높다.

혁명은 그렇지 않지만. 어떻게 하면 폭동으로 가지 않고 합리적으로 갈 수 있을까

책 보고 인문학 성찰이 답이지만 20대 비례대표 국회 건의, 주거권, 노동권 등 100만명 권리청원선언 등을 생각해볼 수 있다. 상황에 따라서 짱돌이든 무엇이든 던져야 하지만, 어떤 것을 던지는 것이 효과가 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예컨대 고3 수능 총파업을 한다고 생각해 보자. 어차피 고3이야 다음 해에 들어가면 되니까. 외국에는 상식적으로 없는데, 우리에게만 이상하게 있는 것들을 거부하면 어떻게 될까? 키는 10대가 쥐고 있다. 문제는 위에서 시킬 수 없고, 똑똑한 10대가 많이 탄생하는 해에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일이 있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필요한가를 생각해야 하겠지만.

 

 

88만원 세대의 질문=88만원 세대 중에서 뭉쳐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고, 나는 좋은 기업에 들어갈 수 있거나 들어갔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 나뉜다. 합법적인 틀 안에서 우리가 집단적으로 저항을 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려고 한다면 어떻게 행동할 수 있을까?

 

- 공유된 경험이라는 것이 있다. 가투에 나가면 열 사람의 바깥쪽에 있고 내가 안쪽에 있는 상황이 행복하다. 속도 역시 맞춰서 가야 한다. 그래야 내가 안 잡힐 수 있다. 돌을 안 던진 친구가 돌을 던진 친구에게 10만원씩 준다. 싸우지 않은 친구들이 싸우는 친구들에게 물적/심적 지원을 해주는 것이다. 잡혀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스크럼은 안 잡혀가려고 하는 것이다. 공유된 경험이 틀을 만든다. 처음부터 탈법을 할 필요는 없다. 모일 수 있는 근거를 만드는 것. 바둑둘 때 집이 있어야 싸울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대마는 있는 데 모두 죽은 대마이다. 많은 집, 조그만 집 이렇게 다양한 방식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사실 20대도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다. 하지만 잘 안 될 거다. 기타를 칠 때도 처음에는 어렵다. 하지만 기타와 자꾸 대화를 하다 보면 나중에는 클라이막스까지 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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