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빌리고 싶은 책이 두 권 있었는데,
그것도 오늘 빌리고 싶은 거에요.
책을 확인하고, 이용시간을 보니 7시까지라는군요.
퇴근 10분 전에 도망쳐서,
부랴부랴 전화를 했지요.
10분 정도 늦을 텐데 기다려줄 수 있냐고,
염치가 없어도 한참 없을 줄 알았는데,
상냥하게 책 보관해 놓고 기다린다고 하네요.
엄청 뛰어서 7시 5분에 도착했습니다.
직원이 책을 보관하면서 대출을 해주는데,
감동 먹었시요.
근데 직원 말로는,
도서관 야간 서비스 하니까,
담부터는 땀 흘리면서 뛰어오지 말고,
전화해서 나 몇 년생 누구인데,
이 책을 빌리고 싶소,
라고 말하면,
직원이 책을 빌려서 10시까지 대기한데요.
일부러 대기하는 게 아니라,
야간서비스라 당직 비슷하게 선다고 하네요.
암튼 직장인이 동네도서관에서 책을 맘껏 빌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보다 더 친절한 도서관 직원을 만나서
나는 미남 시인 백석의 '故鄕'(고향)이라는 시를 떠올리게 됩니다.
그곳에는 이것도 있었고, 저것도 있었다...
고향(故鄕)
백 석
나는 북관(北關)에 혼자 앓아 누워서
어느 아침 의원(醫員)을 뵈이었다.
의원은 여래(如來) 같은 상을 하고 관공(關公)의 수염을 드리워서
먼 옛적 어느 나라 신선 같은데
새끼손톱 길게 돋은 손을 내어
묵묵하니 한참 맥을 짚더니
문득 물어 고향이 어데냐 한다.
평안도(平安道) 정주(定州)라는 곳이라 한즉
그러면 아무개씨(氏) 고향이란다.
그러면 아무개씨(氏)ㄹ 아느냐 한즉
의원은 빙긋이 웃음을 띠고
막역지간(莫逆之間)이라며 수염을 쓸는다.
나는 아버지로 섬기는 이라 한즉
의원은 또다시 넌즈시 웃고
말없이 팔을 잡아 맥을 보는데
손길은 따스하고 부드러워
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
({삼천리 문학} 2호, 193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