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어느 선까지 포기했을까, 삼성이 가지고 있는 카드는 무엇일까. 우리는 어느 정도까지 목표로 삼을 수 있을까. 삼성이 가혹한 꼬리자르기를 하려 한다면 대처 방안은 무엇인가. 어느 부분까지 전쟁을 해야 하고 어느 부분까지 타협을 해야 하는가. 아마도 삼성은 8,000억원 기부 따위보다는 좀더 창의적인 카드를 내놓을 것이다.
지금까지 나타난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 게임은 삼성에게 매우 유리한 상황이다. 우리는 단지 1골을 넣었을 뿐이다. 우리는 안개와 싸워서는 안 된다. 삼성에 대해서 좀더 세심하게 알게 해준 미디어오늘 이정환 기자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며 기사 전문을 인용한다.
삼성그룹 비자금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법무팀장 출신인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에 따라 삼성이 김 변호사의 차명계좌를 이용, 50억 원의 비자금을 관리해왔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검찰 주요 간부 40여 명에게 명절 '떡값'의 명목으로 연간 10억 원 이상을 돌렸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 변호사는 이런 차명계좌가 1천 개에 이른다고 주장하고 있다. 비자금의 규모가 최소 수천억원 규모일 거라는 이야기다.
만약 삼성이 김 변호사의 동의를 얻지 않고 차명계좌를 만들었다면 명백한 금융실명제법 위반이다. 우리은행 서울 태평로 삼성센터지점과 굿모닝신한증권 도곡지점이 관여돼 있다. 분명한 것은 이런 천문학적인 규모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관리하는 일이 이들 금융기관의 적극적인 도움 또는 방조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삼성은 차명계좌의 존재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았다. 일련의 의혹에 대한 삼성의 공식 입장은 "김 변호사의 차명계좌에 들어있었던 50억 원은 삼성과는 무관한 것"이며 "재무담당 임원의 지인으로부터 자산 운용에 관한 부탁을 받고 김 변호사의 명의를 빌린 것 뿐"이라는 것이다.
우리은행은 왜 불법행위에 동조했을까
그러나 삼성의 주장은 석연찮은 부분이 많다. 첫째, 재무담당 임원의 지인이 왜 하필 김 변호사의 명의를 빌렸을까. 퇴직하고 3년이나 되는 사람의 명의를 말이다. 둘째, 아무리 삼성의 고위 임원이고 큰손이라고 해도 은행에서 특정 개인을 위해 이런 어마어마한 불법을 저지를 수 있었을까. 셋째, 삼성은 차명계좌에 대해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일까. 개인들끼리의 사적 거래일뿐이라면 왜 삼성이 나서서 변명을 늘어놓고 있는 것일까.
이번 사건은 금융기관의 공공성과 독립성에 대해 다시 고민하게 한다. 아울러 대선 이슈로 떠오른 금산분리 원칙에 대해서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지금도 이 정돈데 금산분리가 완화 또는 폐지되고 특정 기업이 금융기관을 소유할 수 있게 되면 이 금융기관이 기업의 사적 이해에 휘둘리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금융기관의 자산이 특정 기업의 지분을 확보하고 영향력을 확대하는데 남용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금산분리란 산업자본의 금융기관 소유를 제한하는 원칙을 말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비금융주력자가 금융기관의 의결권 있는 주식을 4% 초과해서 보유할 수 없도록 제한한 제도다. 대기업 등 산업자본이 자기자본이 아닌 고객예금으로 금융산업을 지배하는 것을 막기 위해 1982년 도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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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요. 지분율은 2006년 9월30일 기준. 시가 총액은 2007년 1월 10일 기준. 신용등급은 가장 낮은 신용등급을 적용. 시가총액에서 우선주는 제외하였음. / 교보증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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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은 그동안 줄기차게 금산분리 완화를 주장해왔다. 삼성경제연구소가 논리를 만들었고 경제지들과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단체들이 이 논리를 확대 재생산해왔다. 삼성금융연구소가 만든 금융지주회사 로드맵이 공개돼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이 로드맵은 삼성이 언론과 정치인은 물론이고 학계와 연구기관, 정부 관료들을 어떻게 포섭하고 활용해 왔는지 보여준다.
삼성이 은행 소유에 목을 매는 이유
이처럼 삼성이 금융기관 소유에 목을 매는 것은 무엇보다도 삼성의 지배구조와 관련이 있다. 올해 3월 개정 금융산업법이 시행되면서 삼성은 삼성카드가 보유하고 있는 삼성에버랜드 지분 25.6% 가운데 20.6%를 5년 안에 매각해야 한다. 또한 삼성생명이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의 지분 7.3% 가운데 2.3%에 대해 2년 뒤부터는 의결권이 제한된다. 삼성의 지배구조에 심각한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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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그룹 순환 출자 구조. 삼성전자의 최대 주주는 삼성생명과 삼성물산이고, 삼성물산의 최대 주주는 삼성SDI와 삼성생명이고, 삼성SDI의 최대 주주는 삼성전자다. 그래서 삼성생명을 지배하면 삼성그룹 전체를 지배할 수 있다. 삼성생명의 최대 주주는 에버랜드다. 그리고 에버랜드의 최대 주주는 이건희 회장의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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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법은 금융회사가 취득한 동일기업집단 내 비금융계열사의 주식 가운데 5% 초과분에 대해 1997년 3월 이전 취득분은 2년 유예 후 의결권을 제한하고 그 이후 취득분은 즉각적인 의결권 제한과 함께 5년 내에 자발적으로 해소해야 한다.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금감위원장이 처분명령을 내릴 수 있다. 삼성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모두 쉽지 않다.
먼저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을 어떻게 정리하느냐가 관건이다.
첫째는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을 삼성전자나 다른 계열사들이 사들이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든다는 문제가 있다. 총수일가가 사재를 들여 사들이기에도 엄청난 규모다.
둘째, 삼성에버랜드가 삼성생명 지분을 내다팔고 그 돈으로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을 사들이는 방법도 있다. 이 경우 문제는 삼성생명 상장이 전제돼야 한다는 것이다.
금산분리와 이건희 회장의 딜레마
삼성생명이 상장되면 삼성생명의 최대주주인 에버랜드는 금융지주회사법에 따라 금융지주회사로 분류된다. 이 경우 삼성생명은 비금융계열사인 삼성전자의 지분을 매각해야 한다. 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가 깨진다는 이야기다.
삼성카드의 삼성에버랜드 지분을 사오는 것도 쉽지 않다.
첫째, 에버랜드 대주주들이 에버랜드 주식을 사들일 수 있으면 좋겠지만 역시 문제는 비용이다. 비상장 주식이라 정확한 가치를 산정하기 어렵지만 6천억 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둘째, 삼성에버랜드가 자사주 형태로 매입하는 방법도 있다. 이 경우 자사주는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에 그만큼 의결권이 줄어들게 된다.
셋째, 삼성전자가 사들이는 방법도 있지만 이 경우 순환출자 규제에 걸려들게 된다. 삼성이 출자총액제한제도의 폐지를 요구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삼성은 현재 이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다양한 검토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결국 재원 마련인데 삼성카드의 지분 일부를 매각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삼성카드는 올해 7월 상장해 6개월의 보호예수기간에 묶여 있다.
삼성카드 팔고 삼성전자 산다?
삼성 계열사들이 나눠서 보유하고 있는 삼성카드 지분은 모두 85.2%이다. 이 가운데 35.2%만 팔아도 과반수의 지배권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대략 3조5천억 원 규모로 추정된다. 이 정도면 삼성전자 지분을 사들이기에 충분한 금액이다.
금융지주회사를 만드는 방법도 가능하다.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을 삼성전자 자사주로 매각하고 그 자금으로 CJ의 삼성생명 지분을 사들일 수 있다. 이밖에 삼성화재와 삼성증권 지분도 20%까지 사들여서 삼성생명을 이 금융지주회사로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이 경우 총수 일가는 이 금융지주회사의 지분을 37.6% 가량 확보하게 된다.
이밖에도 삼성전자가 직접 지주회사가 되는 방안, 삼성물산을 삼성전자나 에버랜드의 자회사로 편입하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다.
핵심은 삼성생명과 삼성카드 등 금융계열사와 비금융계열사가 분리돼야 하고 그 과정에서 지배구조의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만약 금산분리가 완화 또는 폐지되고 삼성이 은행을 소유할 수 있게 된다면 그림이 달라질 수 있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주식을 팔지 않아도 될 것이고 삼성카드는 에버랜드 주식을 계속 들고 갈 수 있게 될 것이다.
금산분리 완화가 최고의 해법?
만약 삼성생명과 삼성카드를 상장하고 계열사들이 보유한 지분을 팔아 그 돈으로 이를테면 우리금융지주 등을 인수하는 것도 가능하게 된다. 삼성 계열사들이 우리은행을 공동 소유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금산분리 완화의 가장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사례는 우리은행을 삼성에게 넘겨주는 것이다.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는 금산분리 완화를 대선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다. 윤증현 전 금감위원장도 금산분리 완화를 강력하게 주장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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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증권 사장 출신인 황영기 전 우리금융지주회장과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 황 전 회장은 최근 이 후보 캠프에 합류했고 이 후보는 금산분리 완화를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다. /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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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금융계열사 자산 규모는 은행계인 국민, 신한, 우리, 농협에 이어 국내 5위다. 전체 금융사 자산에서 삼성 금융계열의 비중은 외환위기가 발발한 1997년 말 4.4%에서 지난해 말 8.2%로 두 배로 늘었다. 금산분리 정책이 폐지되고 삼성이 우리금융을 인수하면 단번에 금융그룹 1위 규모로 올라가게 된다. 삼성증권 사장이었고 우리금융지주 회장을 했던 황영기씨가 이명박 캠프로 옮겨간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나라에서 금산분리 원칙은 이미 상당부분 완화돼 있다. 엄밀히 말하면 은산분리,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를 금지하는 원칙만 남아있을 뿐 비은행 금융기관의 경우 산업자본의 소유가 허용돼 있다. 이를테면 삼성생명이나 삼성카드를 삼성 계열사들이 분산소유하고 있다.
삼성의 은행 소유, 이래도 허용할 것인가
삼성은 한발 더 나가 아예 은행을 소유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만약 삼성이 직접 은행을 소유하게 되면 비자금의 관리가 훨씬 쉬워질 것이다. 굳이 김 변호사 등의 차명계좌를 빌리지 않고도 비자금을 관리할 수 있게 될 것이고 필요할 때마다 대출받아 쓰기도 훨씬 쉬워질 것이다. 금산분리가 완화되면 지금의 지배구조에 손을 대지 않거나 오히려 더 강력한 지배구조를 만들 수도 있다. 금산분리를 완화 또는 폐지하자는 주장은 철저히 대기업 총수 일가의 이해와 맞물리는 주장이다.
삼성의 천문학적 비자금이 드러나고 은행이 그 들러리를 섰다는 사실이 확인된 뒤에도 금산분리 완화를 주장할 것인가. 금산분리 완화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언제까지 삼성에게 은행을 안겨줘야 한다고 주장할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