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데기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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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의 이야기를 듣다
- 형식실험을 멈추지 않는 사회적 작가

독자는 어떤 방식으로 작가를 사랑하는가? 작가는 오직 작품으로 이야기한다는 순수주의 독자가 있는 반면, 작가에 관한 모든 것을 알고 싶어하는 열정형 독자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작가가 나타내는 궤적에 따라 좌우되는 것만은 틀림없다.
황석영의 경우는 후자에 속하겠지만 대단히 논쟁적이고 문제적인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정치적 견해를 서슴지 않고 밝히며 텍스트 외적인 교유와 활약이 대단하다. 만약 텍스트 안팎에서 일정한 공간이 공존하고 있는 그의 아우라를 보지 못한다면, 또는 그것들이 서로 긴밀히 연관되는 지점을 목격하지 못한다면 황석영을 좋아할 이유가 없다. 내가 그를 만나기까지 가졌던 혐의점은 바로 이것이다.
내가 바리데기를 통해 느꼈던 황석영에 대한 반감은 완숙한 작가가 가지는 일종의 매너리즘과 독자를 가르치듯 하는 교술적 특징이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그가 치열한 실험 중이라는 사실을 알았고, 그의 '외유'가 바로 소설 안으로 통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하고 싶었다.
예스24에서 독자들은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와 차세대 작가로 황석영과 은희경을 선택했는데 이 두 작가를 만나보니 '밥상'을 한상 받은 기분이 들었다.
은희경은 '밥'이고 황석영은 '반찬'이다. 밥은 밥상에서 물리적으로 작은 부분을 차지하지만 반찬들이 모이는 통로이다. 그것이 전라도식 한정식 반찬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반찬'을 먹는다고 하기보다는 '밥'을 먹는다고 한다. 추상어로 말하자면 '내면'에 해당할 것이다. 항상 들여다보고 성찰하고, 같은 듯하지만 매번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는 내면의 세계가 은희경의 '나와바리'쯤 될 것이다.
황석영은 작품의 이상을 확대하고 밖에서 이를 실현시키려는 야심찬 작가이다. 그의 '반찬'이 돋보이는 이유는 그 역시 궁극적으로 '밥'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두 작가의 다름이 나에게 '푸짐한 밥상'을 선사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다. 밥을 꼭꼭 씹어 먹고 반찬을 가리지 않아야 할 것 같다.




<전남 화순의 운주사에서 독자들에게 '장길산'과 얽힌 이야기를 하고 있는 황석영 작가>



다음은 황석영 인터뷰


황석영은 실험중

바리데기를 쓰게 된 배경은?
☞ 손님 발표할 때 베를린 붕괴됐다. 이때 세계는 변한다는 사실 깨달았다.
세계의 변화는 문화의 변화를 통해 드러나므로 문학적 형식 역시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문학적 형식 실험을 하게 되었고 이 작품은 그러한 형식을 담아냈다.
서사를 우리 전통에 동아시아의 그릇에 담고 싶다. 손님 시도하다 형식적 만족이 되지 않았는데, 오래된 정원에서는 종래의 산문형식을 파괴하게 된다. 즉 1인칭과 3인칭으로 넘나드는 두 주인공이 시간이 서로 다른데도 불구하고 대화를 할 수 있다. 이는 시간개념 역시 무시한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손님에서 최초로 보이는 데, 소설을 하나의 굿과 같은 양식에 담았다. 즉 소설가가 마치 영매가 되어 전쟁 당시의 혼을 불러들이고 전달하는 것이다.
형식 변화의 두 번째 양식이 바로 ‘심청’이다. 형식실험 세 번째 작품은 바리데기인데, 굿에 나오는 바리공주/칠공주/말명(맡이 할머니)의 이야기이다. 공주가 7째로 태어나 버림을 받기도 하고, 부모가 병들어 죽어 사천수 끝에 가서 생명수를 따와서 부모를 살리는 뼈대로 이루어졌다. 이와 같은 이야기틀은 시베리아 만주 등지에서 1,500년도 넘게 내려온 전형적인 이야기틀이라 할 수 있다.

형식의 변화라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종래의 서사를 떠올려 보자. 주인공이 친구의 집에 초대되어 찾아간다. 가는 길의 묘사와 정경, 화초 등이 들어온다. 대문으로 들어가면 집안의 인물들이 마중을 나와 있고 인물들에 대한 묘사가 이어진다. 이렇게 한참 설명을 하는 것이다. 현대시대에는 이러한 대서사가 감당하지 못한다.
서사의 디테일을 변화시켜서 ‘시+서사’라는 시적 서사를 이루고 싶다.
뚜르니에, 끌레지오, 마르께스가 만년에 모두 이런 글쓰기를 하고 있더라.
서사의 무게를 압축과 영상으로 장르 내에서 산문형식으로 변화를 시작한다.
마치 미디어가 변화하듯.
영상적인 세계, 앵글은 렌즈 안에 들어오는 것만 보여준다. 프레임 안에 들어온 것은 연출자가 선택했다는 것. 이것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여기서 새로운 이미지가 생기는데 이를 몽타주, 미장센이라고 부르더라.
영화의 그대로는 될 수 없지만 영화적인 서술은 생각해볼 만한 화두이다.

작품 ‘바리데기’가 말하고 있는 세계관은?
☞ 나는 21세기의 주제는 ‘이동과 조화’라고 생각한다.
누구는 ‘탈식민지’라고 하나 나는 ‘신식민지’라고 본다.
때문에 무슬림, 서방세계의 갈등을 동시에 그렸고, 출간 직후 공교롭게도 아프간 납치됐다.
이 작품이 북한, 중국, 영국 등을 넘나들기 때문에 ‘글로벌한 작품’이라고들 많이 말하는데, 글로벌이라는 말은 미국 중심의 사고와 생활이 반영된 말이므로 나는 이 말을 싫어한다. 그 대신 인터내셔널이라는 말을 즐겨 쓴다. I am No global citizen, I am international citizen.
90년대 동구가 멸망하면서 신자유주의가 대두하는데, 이것은 신제국주의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고용유연성이라고 하는 것도 이런 흐름이다.
소련의 서구화 이후에 데처리즘과 레이거노믹스가 대두되는데, 이는 노골적인 자본주의이다. 광주 사태 이전인 70년대에 런던에서 광주와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노동자 시위 과정에서 경찰이 발포를 시작해 50여 명이 숨진 것이다. 이것이 교양 있다는 유럽의 모습이었다. 레이건은 복지를 다 없앴다. 레이건과 데처의 개념을 차용한 것이 바로 신자유주의이다.
한편으로는 세계화, 이념의 밑바탕으로 신자유주의.
아시아 건너오면서 IMF가 터지는데, 이때부터 신자유주의가 재편성된다.
바리데기에는 이런 일련의 화두가 잠재되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캠프 2일째 황석영이 강연을 위해 자리했다. 1일째에 이어 '후배작가' 백가흠 씨가 사회를 맡았다. 황석영은 자신의 글쓰기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가는 물리적 기반 위에 존재한다고 규정했다.>


작가 황석영의 형성과정

민족작가인데 어떻게 세계시민을 논하는지 궁금하다.
☞ 한반도와 나의 문제를 세계 사람들과 공유하겠다는 뜻임. 다만 공유할 것과 공유하지 못할 것이 우리 사회에는 분명히 존재한다. 이는 동시성과 비동시성이 존재하는 것과 같은 말이다.
작가라는 존재는 국경이나 민족이나 국가에 구애받지 않는 존재이다.
내 조국은 한국어이다.
작가의 존재는 모국어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공동체와 만난 삶의 문제를 공유하지만 그 표현 방식은 모국어이므로.




<인생의 변화기>
- 제1변화
베트남 참전 후가 첫 변화이다.
고2때 ‘사상계’ 신인상을 받았으며,
당시 고교생은 현재의 대학생보다 더 성숙했던 것 같다.
책 많이 읽고 친구들과 토론하다가 점차 주변/내면 문제에 침잠하게 되었다.
베트남 전쟁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분단사회, 베트남 의미, 사회적 인식 등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 제2변화
광주 80년 군부 이동 허락, 학살 인용의 진정한 주범이 주한미군 사령부라는 것을 알았고, 이는 또 하나의 나가 존재함을 뜻한다.
제3세계 문학제 관계로 베를린에 처음으로 초청되었을 때 거기에서 수많은 망명자를 만났다. 그들과 교유하면서 북(北)을 발견하고 이념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것이 이 시기의 의미 있는 변화이다.

- 제3변화
베를린 망명 3개월 만에 장벽이 무너졌다. 젊은이들 모두 나와 포옹하고 샴페인 나눠마시며 모든 사람이 웃고 즐기는 현장에서 유일한 아시아인으로 눈물 흘렸다. 모두 개개의 인간이었으며 한 인간으로서의 아름다움을 보았다.
여기서 나는 개인을 발견한다. 
더불어 세계가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는데, 세계가 변화한다면 발상도 역시 변화해야 하지 않을까 하고 반문해 보았다. 여기서부터 산문실험이 시작된다.

- 제4변화
감옥 수감생활 5년만에 뒤늦게 ‘일상’을 발견했다.
나는 모험에는 매우 강한데 막상 손발이 묶이고 갇히면 견디지 못한다.
감옥에서는 괴롭도록 일상의 내공을 쌓았다.
무협지에도 보면 사부들이 처음부터 내공을 가르치지 않는다.
나무하기 설거지 등 사소한 ‘일상’을 가르치는데, 나는 너무나 늦게 ‘일상’에 대해서 학습하게 되었다.
뒤늦게 50줄에 일상을 쌓는 과정에서 미치는 줄 알았다.
출소 후 왕성한 작품활동을 했는데, 이를 지켜보던 문인은 “한국 교도행정의 일대 승리”라고 농을 던지더라.(웃음)
김수영이 낙동강 건너 서울로 돌아갔을 60년대 그에게 남는 것은 일상밖에 없었다. 살아남은 자에게 남겨진 것은 일상일 것이다. 하지만 치열한 일상이었다. 김수영의 1960년대 작품들은 이런 점을 감안하면서 감상해야 할 것이다.
칼을 못 갈게 하니까 칼을 만드는 계획을 세운다.
운동 1시간 동안 쇳조각, 깡통, 연통의 한 부분을 며칠 걸려서 다듬어
조그만 조각을 떼어내 깔창에 숨긴다.
화장실 시멘트 바닥에 두고 칼을 만들었다.
치열한 일상이야말로 나의 문학을 키웠다.

- 제5변화
감옥에서 나왔을 때 비로소 동시적, 전체적 세계를 발견했다.
동아시아와 세계가 화두가 되었다.
그리고 지난 7~8년 동안 형식의 실험을 거치고 있는 과정이 바로 오늘날의 모습이다.


작가의 소설쓰기란?
☞ 소설을 나는 ‘물리적 행위’라고 생각한다.
글은 어떻게 쓰느냐 내게 묻는다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쓴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글의 대부분을 궁둥이가 쓴다. 이것은 무슨 말이냐 하면 글쓰기의 8~90%는 노동이라는 것이다.
개똥폼 잡을 일이 아니다.
출근하듯 나도 소설을 쓰고, 쓰다가 코딱지도 후비고 그런다.
이러한 물질의 표출에서 깊이가 생긴다고 생각한다. (노동하는 동안)
그 순간이 물질적인 것이 정신적인 것으로 변화하는 시점이다.




<황석영 작가는 베르베르 베르나르, 움베르토 코엘료 등의 작가들이 한국에서 열광적으로 인기를 얻는 현상을 거론하며 우리나라도 작가에 대한 가치 평가가 엄정해야 한다는 뜻을 전했다. 강연회가 끝난 후에 팬 사인회를 갖고 있다.>


한국의 문학, 한국의 독자


한국문학의 위기와 근대문학 종언에 대한 입장을 말해달라
☞ 서구에서는 문학이 교양의 척도이며 모든 시험은 독후감이다.
그런데 우리의 풍경은 어떤가.
정치인들이 거짓말을 할 때는 서로 ‘소설 쓰지 마라’라고 한다.
이를 본받아 아이들도 ‘소설 쓰지 마라’고 한다.
소설의 위상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문학은 한 사회의 인간에 대한 가치 아닌가.
일본은 80년대 베트남전 이후 최고의 특수를 누리는데 80년대에 이미 거품 껴서 불경기가 시작된다. 하지만 소비가 워낙 왕성하던 끝물이었기 떄문에 사람들이 이를 인식하지 못했다. 90년대 와중에 거품이 급격히 빠지기 시작한다.
이것이 일본문학에 악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는데, 일본은 이때부터 베스트셀러 줄세우기를 시작한다.
베스트셀러 줄세우기 속에서 소질 있는 세대들은 별똥별처럼 사라졌고, 대중문학과 본격문학의 구분이 완전히 없어졌다.
한국의 경우를 보자.
베르베르는 현지에서는 문학집 목록에 이름 한줄 올릴 수 없는 작가다.
문학동네 사장과 프랑스 작가회의 전시장에 갈 기회가 있었는데, 여기에는 젊은 작가, 프랑스문인협회 전, 현 회장.. 편집자 들이 와 있었다.
당시 한국에서 활약하는 프랑스 작가를 소개해 달라고 질문을 받자 문학동네 사장이 ‘베르베르 베르나르’를 이야기하자 좌중에 이 이름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묻고 물은 끝에 구석에 있던 편집자가 그 사람은 리옹 지방의 젊은 사람으로 가끔 지방 신문에 SF 꽁트를 쓰기도 한다고 말했다.
오직 대한민국만 이 사람의 소설이 엄청나게 많이 팔리는 것이다.
이것은 출판사, 기자가 다 엉망이라는 뜻이다.
일본이 그래서 망했다.
코엘료도 마찬가지다. 교양인들 사이에서 코엘료는 전혀 언급대상이 아니다.
유럽에서는 가치평가가 매우 엄정하다. 대중 소설은 옐로 페이퍼라고 부른다.
우리도 이런 구분은 반드시 필요하다.
일본이 구분을 하지 못해서 무라카미 하루키가 일본 최고의 작가가 된 기현상이 생긴 것이다. 일본 문학의 지성은 이러한 현상에 간판을 모두 내닫을 수밖에 없었다.

<중국소설의 한계>
☞노신 이후로 중국근대문학을 나는 인정하지 않는다.
중국은 검열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대만에서 나온 ‘오래된 정원’은 중국과 동일한 문자를 사용하지만,
중국에서는 대만 분량의 1/3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삼국유사의 번역은 아예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고구려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토호 현상이 대단하다.
김훈 칼의 노래 역시 고배를 마실 수밖에 없었는데,
중국의 장수를 안 좋게 묘사했다는 게 그들의 논리다.

<우리나라의 독자들>
☞노벨상을 탄 빈터 그라스를 만나러 갔다.
시골 구석에서 아줌마 15명을 세워 놓고
그 노인이 자기의 작품을 낭독하고 있더라.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한국 독자는 살아 있다고 생각한다.
2007년을 나는 한국문학의 중흥기라고 생각한다.
원로에서 신예에 이르기까지 근사한 문학이 계속 나오고 있다.
여러분 자신감을 좀 가지시라.

장길산 이전과 이후의 여성상
☞ 우리 시대의 남성은 죄가 많다. 나는 혜택받은 장남이다.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는 아버지와 겸상을 받았고,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는 독상을 받았다. 지독한 가부장이었다. 우리 시대의 남자들은 다 이랬다. 여성에게 미안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이 질문을 받으면 꽁무늬를 뺀다.
독방에 살명서 이제까지의 잘못들을 생각해 보았다.
‘독방의 수컷’이 생각났다. 어머니를 살해하고, 아내를 죽이고, 딸도 죽이고 수컷 혼자 잘났다고 하는 게 일본근대문학의 모습이다.
남성적 억압과 갈등이 근대를 이뤘다. 문명에 대한 반성..
질서가 만들어낸 억압은 오래 되었다.
서구가 동아시아에 침투하는 것은 여자의 모습을 통해 그려냈다.
발전된 동아시아의 변화과정은 ‘심청’에 담았다.
세계적인 주변인 왕따 백성이 모여 사는 모습은 ‘바리데기’에서 그렸다.


통일에 대한 입장?
☞ 아프리카는 직접,간접적 영양실조로 300만명이 사망했다.
우리나라는 사료로만 20억 달러를 쓴다.
음식물 쓰레기 처리 비용이 15조 넘은 지는 15년이 지났다.
북한 식량지원 5년치에 해당한다.
통일되지 않고 북한이 붕괴한다면 국제법상 누가 북한을 우리 것이라 할 것인가.


장길산 같은 작품 다시 쓸 수 있겠나
☞ 장길산처럼 긴 서사는 프로작가로서 가장 큰 훈련이었다. 도스또옙스끼도 작가수첩에 온통 그림 투성이던데 나도 매 장면마다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3/4가 자료 조사에 바쳐졌다. 이런 짓 다시는 하지 않는다. (웃음)


<황석영 작가는 노벨 문학상의 작가 권터 그라스가 모국에서 독자들에게 받는 냉대를 예로 들며 높은 수준의 많은 독자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자신은 매우 행복한 작가라고 말했다. 강연회가 끝난 독자들과 가진 단체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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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17 1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승주나무 2007-08-17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찬이십니다.. ㅋㅋ

뽀송이 2007-08-21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갑니다.^^

승주나무 2007-08-22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뽀송이 님//네~ 저도 황석영 소설에 관심을 좀더 가져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