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투병중인 중년의 사나이가 도서관의 논어 읽기 모임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는 아침마다 암세포가 있는 부분을 손으로 다독이면서 인사를 한다고 말했다. 나에게 찾아온 암이라는 불행과 매일 인사를 나누는 것이다. 불행은 안 만나면 좋겠지만 누구도 불행을 완전히 피해갈 수는 없다. 때로는 흥정을 해야 할 일도 있다. 불행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경우 말이다. 그러는 과정에서 우리는 불행을 이해하게 되는데, 그 원인이 나와 연관돼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나와 완전히 상관 없는 불행도 있을 테지만 내가 일으킨 날갯짓이 불행을 부른 경우가 더 많다.
카프카는 왜 어린 소녀를 불행의 전령으로 택했을까? 불행이 사뿐히 걸어 오기 때문일까? 아니면 상대방을 무장해제시키기 위해서였을까? 불행이란 게 앞문을 닫으면 뒷문으로 들어오는 날렵한 존재가 아니겠는가? 『오래 슬퍼하지 마』의 죽음보다는 어리고 가벼워야 한다는 것은 맞는 말 같다. 불행이 떠나고 <나>는 완전히 외톨이가 된 기분으로 방에 들어가 잠을 잤다. 조용히 산책을 하려고 했으나 외출은 하지 않고. 불행이 전혀 방문하지 않는다면, 불행이 나를 완전히 떠나버린다면. 카프카는 불행의 의미에 대해서 나에게 다시 질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