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농장.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7
조지 오웰 지음, 김기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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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이 나의 집이 될 수 있는 단 한 사람 : 안회



조지 오웰의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은 가난에 대한 이야기다. 아니, 가난이라고 하면 너무 낭만적으로 들릴 수 있으니 '빈곤'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자. 더군다나 '만들어진 빈곤'이라니! 만들어진 빈곤이라고 하는 이유는 절대 빈곤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대규모로 지속적으로 공급되어야만 자본주의 시스템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산업예비군'이라고 말했지만 그건 너무 점잖은 표현이다. '산업극빈층'이라고 해야 옳다.



숙소 가까이에 있는 어떤 술집에는 이런 아가씨도 있었다. 1년 내내 아침 일곱 시부터 자정까지 식사할 때는 제외하고는 앉아보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한번은 내가 춤추러 가자고 그녀에게 청했다. 그랬더니 그녀는 웃으며 자기는 몇 달 동안 길모퉁이도 돌아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녀는 폐병 환자였는데 내가 파리를 떠날 즈음 죽고 말았다.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


만약 그녀가 몇 달 동안 길모퉁이를 하루에도 몇 번씩, 아니 단 한 번씩만 돌아봤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녀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이건 좀 아니지'라고 자책하며 최소한의 여유를 누리고자 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정말 잔인할 정도로 이 사람들이 굶어죽지 않을 정도로만 수입을 유지하게 만드는 것은 자본가들의 엄격한 원칙이었다.



논어에 나오는 인물 중에서 가난에 관해서 '대가'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은 단연 안회다. 안회는 공자보다 먼저 죽었는데, 논어에서는 공자가 꺼이꺼이 하면서 우는 장면이 나온다. 제자들의 만류에 공자는 "이 사람이 아니면 내가 누구한테 이렇게 할 수 있겠느냐"라고 말했다. 안회에 대한 정보가 워낙 적어서 신화적이라는 인상을 풍기는데, 안회에 대한 연구자들의 연구 결과만을 토대로 말해보겠다. 공자의 어머니 이름은 안징재였다. 아버지 추숙흘이 별세했을 때는 공자 나이가 세 살배기에 불과했다. 추숙흘은 건강한 아들을 얻기 위해서 야합에 가까운 결혼, 그러니까 손녀뻘 여자와 결혼을 한 것이기 때문에 아버지 가문의 후원을 받을 수 없었고 외가에 의존했는데 그것이 바로 안씨 가문이다. 공자와 안회는 외가 쪽으로 친척이라고 할 수 있다. 안씨 가문은 전반적으로 가난했다. 공자는 어려서부터 아동노동을 해야 했는데, 그것만 봐도 안씨 가문이 얼마나 가난했는지 알 수 있었다. 안회는 위생 문제로 사망했다고 학자들은 보고 있다. 결국 빈곤이 사람을 죽이는 방식에 안회도 당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내가 안회를 초인적이라고 평가하는 부분은 가난에 대한 인식 때문이다. 보통 사람으로서는 절대로 할 수 없는 경지에 도달했다고 생각한다.



공자가 말했다. "어질다, 안회여! 한 그릇의 밥과 한 표주박의 마실 것으로 누추한 골목에 있는 것이 남들에게는 견딜 수 없는 근심이지만, 안회는 그 즐거움을 고치지 않으니, 어질다, 안회여!

『논어』, 「옹야」 편


가난을 즐거움이라고 표현한 것, 그리고 그 즐거움을 고치지 않는다는 게 구체저으로 어떤 것인지 알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렇게 질문할 수 있다. 가난이 나의 집이 될 수 있는가? 만약 이것을 누군가에게 말한다면 명백한 모욕이 될 것이다. 이 세상 에너지의 원천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있다. 대부분은 가난한 사람들의 것을 뺏어먹으면서 부를 유지하지만 안회는 가난한 사람들을 자신의 집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의 가난을 깊이 이해하고 함께 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들을 가난에서 구하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이 점에 있어서 가난을 낭만화했다는 비판을 피하긴 어려울 것 같다. 다만 가난한 자들의 가난을 이용하지도 않았고, 그들을 더 가난하게 한 것도 아니었고, 가난을 미화한 것도 아니었다. 그들과 함께 가난했다. 이 정도라고 하더라도 나는 안회가 가난의 대가, 빈곤의 대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난한 자들이 부와 권력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동서양 할 것 없이 권력자나 부자라면 다 알고 있었다. 가난한 자들을 자신의 부와 권력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가난한 지들이야말로 세상의 원천이자 세상의 목적이며 그들의 삶과 고통을 이해하는 것을 자신의 앎의 원천으로 삼는 사람들은 안회처럼 "가난은 나의 집이다!"라고 선언하게 될 것이다. 내가 당장 가난하지 않더라도 가난한 자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고통에서 헤어나오게끔 하는 노력은 멈출 수 없다. 



조지 오웰은 똥침을 놓는다, 가난에 대한 고정관념을 향해서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은 조지 오웰의 데뷔작이다. 이 작품은 1931년 4월 조지 오웰이 처음 문학적인 에세이로 게재한 르포르타주 <스파이크>(The Spike ; 부랑자(노숙자)를 위한 임시 무료 수용소를 일컫는 속어)를 발전시켜서 쓴 작품이다.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 27장과 35장에 <스파이크>의 내용이 나온다.




그러니까 조지 오웰은 소설가보다는 르포르타주 작가로서 세상에 첫인사를 한 셈이다.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뿐 아니라 『위건 부두로 가는 길』, 『카탈로니아 찬가』 등이 르포르타주 작품이며 산문집 『나는 왜 쓰는가』에서도 르포르타주 작가로서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다.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은 잭 런던의 『밑바닥 사람들』을 벤치마킹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밑바닥 사람들』이 미국의 밑바닥을 조명한 데 비해,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은 영국과 프랑스의 밑바닥을 조명했다는 점에서 문화적 차이를 살펴볼 수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조지 오웰이 작품속에서 잭 런던과 그의 작품, 미국 빈곤 문화와 영국의 빈곤 문화에 대해서 논평하는 대목이 나온다는 점이다. 이 논평은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의 주제의식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무착 중요한 메시지다.



미국인 부랑인을 다룬 잭 런던의 책에 등장하는 냉소적이고 의도적인 기생주의는 영국인의 성격에서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영국인은 빈곤에 대해 강한 죄의식을 가진 양심적인 민족이다. 보통의 영국인이 일부러 기생충이 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 이러한 국민성이 실직을 했다고 결코 변하는 것도 아니다. 사실인즉 떠돌이란 실직한 영국인에 불과하고, 법률에 의해 방랑 생활을 강요당한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떠돌이 괴물이라는 관념은 사라진다.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


한마디로 조지 오웰은 미국인을 유대인 다음으로 혐오한다. 프랑스 식당에서 미국인 손님을 만나면 등쳐먹으려고 인달이다. 등쳐먹으면서 돈을 버는 것도 있지만 스포츠처럼 즐기는 부분도 있다. 유럽인들이 미국인이게 얼마나 큰 반감을 가지고 있는지 잘 보여주는 사건도 있다. 한 돈 많은 미국인에게 시리얼과 마멀레이드를 제공하고 만찬의 식사값을 받는가 하면, 피츠버그에서 온 손님은 건포도와 스크램블드에, 코코아 저녁식사를 주고 원가절감을 했다. (232쪽)


앞서 인용한 것처럼 영국인에게 빈곤이라는 개념이 아직 형성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차상위계층 같은 고급 개념은 언감생심이고 범죄자로 보는 경우가 있었다. '노오력'을 하지 않아서 빈곤으로 추락했기 때문에 이 사람들은 벌을 받아야 한다는 관념이 팽배했다. '사회적 빈곤'이라는 개념도 형성되기 훨씬 이전이었다. 빈곤이 자본주의의 발달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사실, 빈곤을 산소호흡기로 자본주의가 연명한다는 사실은 그저 본능적으로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그걸 보여주는 단적인 장면은 보호소에서 멀쩡한 음식을 짬시키고 극빈자들에게는 형편없는 음식을 제공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피해자가 하는 말을 통해 알 수 있다.


자신도 다른 떠돌이와 마찬가지로 굶주리고 있지만, 그는 음식을 떠돌이에게 주지 않고 버리는 이유를 곧 간파했다. 그는 아주 엄중하게 나를 훈계했다. "그렇게 해야 마땅하죠." 그가 입을 열었다. "이런 곳을 너무 편하게 만들어놓으면 전국에 있는 인간쓰레기들은 모두 몰려들 겁니다. 그런 쓰레기들을 못 오게 하는 건 형편없는 음식뿐이고요. 여기 이 떠돌이들은 게을러서 일을 안 하는 겁니다. 바로 그게 크게 잘못된 거죠. 그런 자들을 격려할 피룡는 없습니다. 그네들은 쓰레기예요." 나는 그가 그릇된 생각을 하고 있다고 반박하려 했으나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는 되풀이해서 강조했다.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

그러고 보니 정리해고된 실업자가 정리해고를 해야 하는 이유를 역설했던 『빌리 엘리어트』도 영국 소설이다. 조지 오웰은 똥침을 놓는다. 빈곤이 범죄라고 부르는 무지와 몰상식에 대해서, 빈곤한 자들은 노오력을 하지 않아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빈곤한 자들을 구제하고 새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종교단체 사람들을 향해서. 이를 논어적으로 해석하자면 '다원(多媛)'이라고 할 수 있다.



공자가 말했다. 무분별하게 이익을 추구하면 곳곳에서 원망이 들끓는다.

『논어』, 「이인」 편


조지 오웰이 만난 부랑아, 극빈자, 노숙자, 거리의 화가들은 주눅 들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이 가난해진 것이 죄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을 함부로 하는 자들에 대해서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복수한다. 그 복수가 짜릿하다.


오르간이 미리 몇 번 우릉우릉하더니 예배가 시작되었다. 그러자 그 즉시 신호라도 떨어진 것처럼 떠돌이들은 가장 난폭한 형태로 무례한 짓을 하기 시작했다. 교회 안에서 그러한 광경이 벌어지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회랑 곳곳에서 예배석에 비스듬히 기대어 너털웃음을 터뜨리고, 소란스럽게 지껄이고, 앞으로 몸을 내밀어 아래층 교인들에게 빵 부스러기를 던졌다. 나는 내 옆에 앉은 사람이 담배에 불을 붙이는 것을 약간의 완력을 써야 제지해야만 했다. 떠돌이들은 예배를 순전히 희극의 한 장면으로 취급했다. 정말, 몹시도 우스꽝스러운 예배였다. 느닷없이 '할렐루야!' 하고 고함을 지르기도 하고, 즉석기도를 끝도 없이 해댔다. 그래도 떠돌이들의 행동은 도가 지나쳤다. 회중에 늙은이 한 사람이 있었는데-부틀 형제인가 하는 이름이었다-그는 몇 차례 우리를 기도로 인도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런데 이 노인이 일어설 때마다 떠돌이들은 극장 안에서나 하는 발 구르기를 시작했다. 떠돌이들의 말에 따르면 지난번 예배 때는 즉석기도를 25분이나 끌어서 마침내 목사가 그만하라고 중지시켰다는 것이었다. 한번은 부틀 형제가 일어서자 떠돌이 한 사람이 말했다. "절대 7분 이상은 안 돼!" 그 소리가 무척 커서 교회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다 들었다. 얼마 안 가서 우리가 내는 소음이 목사의 설교 소리보다 훨씬 커졌다. 수시로 아래층에서 누군가가 화난 목소리로 "쉿!" 쇨를 내기도 했지만 별 효과는 없었다. 예배를 우롱하기로 한 이상 우리를 저지할 재간은 없었다.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


조지 오웰은 프랑스에서는 보리스라는 러시아 친구와, 그리고 영국에서는 거리의 화가 보조라는 친구 등과 함께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들을 밀착 취재한다. 스스로 따라지 인생이 되어서. 영국에서 빈곤에 대한 혐오가 어느 정도 해소된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빈곤에 대한 혐오가 왕성하기에 빈곤 문화와 빈곤에 대한 이해가 성숙해지기 위해서는 꼭 읽어야 하는 책이다.



개인적으로 조지 오웰이 보수주의자인 점이 밑바닥 사람들의 문제와 사회적 빈곤의 문제를 건드리는 데 더 효과적이었다고 생각한다. 『동물농장』이 출간되자마자 거의 1등으로 한국에 번역된 것은 러시아와 북한 공산당에 대한 반감을 확산시키려는 미국 정보당국의 전략이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조지 오웰의 정치적 스탠스를 잘 알 수 있다. 물론 조지 오웰이 반공 작가라는 것은 아니다. 러시아 공산당에 허위를 직업적으로 비판했을 뿐이다. 러시아 팬클럽이 광범위했던 당시 영국에서 『동물농장』이 1인출판사나 영세출판사를 구해서 겨우 출판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이를 보여준다. 만약 조지 오웰이 지금보다 더 진보적이었다면 가난에 어떤 관념을 형성했을 것이다. 만약 '사회적 빈곤'이라는 것이 지금도 중요한 의제라고 생각한다면 조지 오웰은 역사상 가장 훌륭한 발제자다.






 노동조합의 의뢰를 받아 위건 탄광에서 직접 광부 일을 하면서 쓴 책 <윅건 부두로 가는 길>



▲ 1937년 3월 쿠데타로부터 스페인 민주정권을 지키기 위해서 국제 의용군으로 참전하고 군사 교관을 하는 키다리 아저씨 조지 오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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