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엘리어트
멜빈 버지스 지음, 정해영 옮김 / 프로메테우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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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공이 자로에게 공자의 인물됨을 물었는데, 자로가 대답하지 못했다. 공자가 말했다. “너는 어찌 ‘그의 인물됨이 이치를 깨닫지 못하면 분발하느라 먹는 것도 잊고, 이치를 깨달으면 즐거움에 빠져 근심과 늙음이 닥쳐오는 줄도 모른다’라고 말하지 않았니?

- 『논어』, 「술이」 편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오프닝 장면은 너무나도 강렬해서 부연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즐거움에 빠져 근심과 늙음이 닥쳐오는 줄도 모른다'는 황홀경의 경지를 전할 수 있다. <빌리 엘리어트>는 특이하게도 뮤지컬이 원작이며, 소설은 뮤지컬과 영화를 원작으로 한다. 신나는 음악에 맞춰 침대 위에서 감전된 것처럼 춤을 추는 장면은 소설보다 먼저인 것이다. 황홀경을 느끼는 인생의 순간이 얼마나 될까? 그 기분을 잊을 수 없어서 언저리를 불나방처럼 배회하다가 결국 불타버리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진정 황홀경의 순간은 시련, 그것도 극한에 가까워질수록 더욱 맹렬히 불탄다.


재키 아저씨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지켜보고 있었다. 빌리는 발을 구르고, 도약하고, 회전하면서, 온몸을 불사르며 춤추었다. 확실히는 몰라도 그 춤은 대충 5분 가량 계속 되었고, 그동안 아저씨는 동상처럼 꼼짝않고 서 있었다. 아마 아저씨도 이전에 그런 걸 본 적이 없었던 게 분명하다. 나랑 같았던 것이다. 나는 마구 소리치고 싶었다. 이봐요. 아저씨! 아저씨 아들을 보세요! 정말 놀랍지 않으세요?

『빌리 엘리어트』


<빌리 엘리어트>를 보면 '분노는 나의 힘'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철의 여인 대처 수상의 학살적인 노동자 탄압으로 인해 탄광 노동조합이 궤멸된 1984년 영국 뉴캐슬 지역이 작품의 배경이기에, 작품의 모든 곳에 '분노'가 다양한 에너지로 변주되고 있다. 아버지 재키 엘리어트는 '전향'하지 않은 탄광 노동자였기에 임금도 정부 지원도 받을 수 없었다. 큰아들 토니 엘리어트는 강경파 노동조합원이었기에 경찰의 표적이 되어 더 큰 탄압을 받았다. 엄마가 있을 때에는 집안이 그럭저럭 굴러갔는데,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자 집안의 구심점은 완전히 사라진 상태다. 매일 강한 놈들에게 당해 왔던 재키는 둘째인 빌리는 강해졌으면 하는 마음에 권투를 시켰는데, 빌리는 발레에 빠져서 속을 썩힌다. 권투를 배웠으면 하는 아버지의 '강함'과 발레로 맞서는 빌리의 '강함'에 관해서도 토론이 가능하지만, 이번 글의 주제는 '감전'이기 때문에 감전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을 짚는 것이다.


공자는 왜 남쪽의 초나라에까지 굴러 가게 되었던 걸까? 세상을 바꿔보고 싶어서 국정농단을 일삼는 '삼환'이라 불리는 세 대부를 실각시키기 위해서 작전을 세웠지만 깨끗이 실패하면서 망명생활을 하게 된 이후에 가는 곳마다 냉대와 문전박대를 당하며 공자의 여행은 유쾌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남쪽의 오나라에서는 차원이 다른 규모의 전쟁 혁신으로 춘추시대의 낭만적인 전쟁이 아니라 대량학살이 일상화된 비현실적인 삶이 고통스러웠다. 공자가 초나라에 간 것은 섭공이라는 실권자의 요청도 있었지만 약소국인 자신의 나라를 살릴 길을 찾아보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빌리 엘리어트』를 처음 읽을 때는 노동조합 이야기와 1984년 영국의 상황, 노동자를 악마화하여 마녀사냥을 벌이는 정치 상황과 발레를 어떻게 연결했을까 의아할 수 있다. 특히 청소년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노동자 파업과 발레의 연관성을 쉽게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감전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분노라는 것은 무엇인가? 몸짓이라는 건 무엇인가? 이와 같은 질문들을 던져 본다면 감정과 정의와 설천과 정신은 하나로 이어져 있음을 알 수 있고, 그것은 삶의 형태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는 걸 알 수 있다. 빌리와 함께 '감전'될 수 있다면, 공자와 함께 모든 근심을 잊을 수 있다면, 나의 삶에 불꽃이 일어나 죽을 때까지 꺼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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