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권에 갇힌 언론자유
[인터뷰] 시사저널 단식 농성장에서 만난 이숙이 기자
                                                                                                   오승주(dajak97) 기자

 




▲ 2007년 6월 20일, 심상기 회장 자택 앞 시사저널 단식 농성장
ⓒ 오승주



기자가 시사저널 기자들의 단식농성장에 간 날은 다행히 구름이 햇볕을 가리고 있었다. 오늘(20일)로 단식 3일째가 되었지만, 둘째 날 33도가 넘는 불볕더위로 단식 기자들이 몹시 괴로웠다는 전언을 들은 후라 그 점이 몹시 걱정이 되었다.

김은남 기자(시사저널 노조 사무국장)는 "단식을 견디는 것보다 더 괴로운 것은 땡볕을 견디는 일이다"라고 말했다고 했다. 기자가 인사하자 김은남 기자는 드링크를 건네며 "이것은 접대용으로 놔둔 것이다"라고 농을 건네기도 했다.

한 기자의 묘사와 같이 정희상 기자(시사저널 노조위원장)의 얼굴은 새카맣고 김은남 기자는 도인처럼 얼굴이 맑아지면서 미색이 돌았다. 단식 첫 날 사측 직원들의 행패가 있었던 분위기는 한층 가라앉아 있었다.

시사저널 투쟁 과정에서 기자들은 안팎의 일로 지쳐 있었다. 1년간 수입이 끊긴 것은 물론 기자 가족들의 우환이 유난히도 많았다. 그래서인지 기자들의 표정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이숙이 기자도 가족 중에 편찮은 분이 있어 참여가 힘들었을 텐데 모습이 보였다. 이숙이 기자는 자신들의 싸움을 '상식의 싸움'이라고 규정했고, 작금의 '언론자유 담론'은 분열돼 있다고 비판했다. 즉 현재의 언론이 '정치권력'으로부터는 자유를 획득했지만, '경제권력'으로부터는 아직도 자유롭지 못하다고 토로했다.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바로 시사저널 사태라고 말했다.

다음은 이숙이 기자 인터뷰 전문.

경영진과 기자들의 언론관 차이가 현재의 사태를 불러

- 오랜만에 얼굴을 본다. 요즘 힘든 일이 많을 텐데 참 어려운 걸음을 하셨다(가족 중 편찮은 분이 있어 이숙이 기자는 투쟁의 참여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 시간이 내가 참여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소중하게 쓰고 싶다.”

- 기자들의 표정에 피로가 역력하다.
"아무래도 투쟁이 장기전으로 가다 보니 그런 것 같다. 처음에는 웰빙 투쟁으로 즐겁게 싸우자, 자해(?)는 하지 말자고 했는데, 이렇게 됐다.(웃음)"

- 이번 사태가 여기까지 오게 된 결정적인 원인이 있다면?
"언론관의 차이가 아닌가 한다. 시사저널 기자들은 취재에 성역이 없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치권력, 자본 권력, 종교 권력, 이익 집단을 가리지 않고 감시의 시선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경영진은 이와는 다른 입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기사도 '팔 수 있는 상품'이라야 한다는 것이다."

- 편집권 갈등은 어느 언론사나 있는 것 아닌가. 기자는 삼성을 까고(비판적으로 취재한다는 속어), 광고부장은 삼성의 광고를 따오는 것이 언론계의 일상적인 풍경이라면, 일정한 긴장 관계는 자연스러운 거 아닌가?
"그 '관계'가 상식적이지 않다는 것이 문제이다. 타 언론사에도 편집권 갈등은 있지만 대체로 회사 안에서 합리적으로 해결하고 있다. 하지만 금창태 사장은 우리 기자들에게 '복종'을 주문하고 있다. 기자들은 사주에게 복종의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계가 언론계의 일상적인 풍경이라고 하기에는 어렵지 않을까?"

- 그 '관계'에 대해서 묻고 싶다. 사장이 비상식적인 행동, 즉 뒷구멍으로 기사를 삭제하도록 용인한 것은 편집 실무진과 경영진의 관계설정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처음 금창태 사장이 부임했을 때부터 그에 대한 불신과 우려가 있었다. 당시 심상기 회장이 발행인을 겸하고 있었는데, 건강상의 문제로 금 사장에게 발행인의 권한을 부여한 점이 특히 우려스러운 부분이었다. 이를 의식해 심상기 회장은 기자들에게 금 사장은 오로지 경영에만 관여한다는 약속을 해주었다. 하지만 금 사장은 기사 작업에 대해서 하나 둘 간섭하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여러 번 갈등도 있었다. 한 번은 기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기사에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물론 '관계 설정'도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무엇보다 수시로 바뀌는 경영진의 입장이 사태의 주 요인이 아닌가 생각한다."

- 그러면 '회사 안에서의 합리적 해결'이 성사되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였다는 말인가?
"'편집권'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경영진에게도 기자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경영진이 경영상의 어려움을 기자들에게 설득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만약에 금 사장이 편집국장을 설득해서 기사를 보완하거나 수정하도록 설득했다면 분명 기자들도 받아들였을 것이다. 문제의 기사에 대해서도 기자들은 '빼는 것 자체'가 문제될 것은 없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금 사장이 기사를 보지도 않고 '빼자'는 결론을 미리 정리했다는 데 있다. 이미 결론이 정해져 있는데, 대화나 타협의 여지가 있을 수 있겠는가?"


시사저널 기자들은 경영진보다 국민의 눈을 두려워하는 사람들

- '기자로 산다는 것'이라는 책에 보면 편집 실무자와 경영진 사이의 갈등과 보도의 어려움 등이 진솔하게 서술돼 있다. 이숙이 기자가 보기에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의 보도 환경이 어떻게 변화했다고 생각하는가?
"두 가지 환경을 얘기할 수 있다. 누구나 체감하듯이 갈수록 자본의 힘이 강력해지면서 기자들이 경영진의 눈치를 보면서 기사를 쓴다는 점이다. 그리고 독자들의 수준이 높아졌다는 것도 환경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현재 기자들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높지 않다. 그것은 기자들 스스로 만든 결과이기도 하다. 때로는 경영진과 국민의 입장이 부딪히는 경우도 허다하다. 시사저널 기자들은 경영진보다는 국민의 시선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다. 국민의 높아진 눈높이와 도덕적 잣대에 맞추기 위해 '위험한 기사'도 마다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는 그 때문에 이와 같이 상처를 받게 되지 않았나 생각하면 몹시 씁쓸하다."

- 타 신문사 기자들이 사사저널 기자들을 만나면 무슨 얘기를 하나?
"다른 기자들이 우리를 보면 미안해 한다. 이 문제가 시사저널만의 문제가 아닌데, 시사저널 기자들이 고생을 다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 자신들이 이에 대해서 뭔가 행동을 하지 못한다는 자책에 괴로워하는 기자들도 여럿 봤다."

- 예전에 한 일간지에서 기획특집으로 다룬 내용 중 이런 글이 있다. 미국의 예산정책연구센터(CBPP)는 대기업의 경영과 재정을 가혹하게 감시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운영비의 거의 100%를 피감 기업인 '포드, 록펠러, HP'의 기부금으로 충당한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정부 낭비에 반대하는 시민들’(CAGW)은 보잉사로부터 기부를 받은 뒤에도 국방부의 보잉 급유기 도입 문제를 물고 늘어졌는데, 이는 “재단들이 공익 목적으로 기부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절 조건을 붙이지 않는다”는 것이 상식으로 통하기 때문이라고 했다.(경향신문, 2005년 6월 2일자 보도) 한국에서는 이러한 언론 환경이 언제쯤 가능할까?
"건강한 비판은 모두를 위한 것이다. 침을 맞으면 아프지만 병이 치유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매체가 건강한 비판기능을 잃으면 암담해진다. 기업도 역시 유연성을 갖춰야 한다. 씹어도 광고 주고, 책도 사주고 하는 환경이 필요하다. 삼성이나 한화의 경우를 보자. 8000억원의 사회기부금과 재단을 만들고 '삼지모'(삼성을 지켜보는 모임)을 만들었지만 시사저널 사태를 만나 기업 이미지와 브랜드에 커다란 침해를 받았다. 한화 역시 최근까지 CI 작업(기업의 이미지를 통합하는 작업)에 수십억원의 투자가 진행되었는데, 김승연 회장의 폭행사건 한 건으로 물거품이 되었다. 말씀하신 것과 같은 언론의 환경은 기업과 국민, 언론 모두에게 윈-윈 하는 방향이다. 기업들이 좀더 장기적인 안목으로 언론을 바라보았으면 한다.“


금권(金權)에 갇힌 언론자유

- 당국의 기자실 폐쇄 및 언론정책과 관련하여 언론에서 '언론자유 담론'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오마이뉴스(2007년 6월 1일자 보도, '언론자유' 외치면서 <시사저널> 사태는 외면?)와 프레시안(2007년 6월 15일자 보도, <시사저널>과 기자실, 울림 없는 '언론자유' 외침)이 꼬집었듯이 '언론자유 담론'에서 정작 시사저널 사태는 외면받는 세태는 커다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주요 신문들의 이러한 모습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작금의 언론자유는 분열돼 있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정치권력이 '보도지침'을 하달하면서 언론에게 엄청난 통제를 가했다. 하지만 오늘날 정치권력에 대해 보도하지 못하는 언론은 단 하나도 없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자본권력'에 대해서만은 '예외'로 둔다는 것이 문제이다."

- 결국 같은 언론자유가 아니라는 말인가?
"요즘 신문에서 쏟아내는 '언론자유'는 '정치권력으로부터의 언론자유'이다. 우리 시사저널 기자들이 싸우는 자유는 '자본권력으로부터의 언론자유'이다. 어떤 언론자유가 더 크고 중요한가. 하지만 신문들은 자본권력에 대해서는 아무도 '언론자유'를 주장하지 않는다. 결국 '언론자유'는 '금권'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 요즘 언론(정신)은 없고 언론사만 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기업과 자본의 논리만 언론에 주로 반영되고 있으며 시사저널 사태가 이러한 경향의 단적인 예라고 본다. 그리고 '광고'에 있어서는 진보매체는 이미 실종됐다는 얘기마저 나돌고 있다. 대체로 진보적인 논조를 갖췄다는 한겨레와 경향신문이 광고와 관련해서 구설수에 올랐는데, 이와 같이 언론에 대한 자본의 침식 현상에 대해서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한겨레가 (지난 해 7월 말과) 올해 1월 현대차 금속노조의 의견광고를 거부한 사건과 경향신문 역시 동일한 의견광고를 거부한 사건을 보았을 때 우려를 금할 수 없다(한겨레는 올해 4월에도 FTA 체결위원회의 광고를 싣지 않는다는 기존의 입장을 번복해 광고를 실었다가 구설수에 오른 적이 있다). 더 큰 자본이 그보다 작은 세력을 짓누르는 현상이 진보매체의 광고면 위에서 벌어지고 있다. '한미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의 FTA 반대광고도 정부에 의한 압력이라고 하지만, 기실 더 큰 자본의 횡행이 아니겠나? 이러한 사태는 기업 간의 균형이 깨지면서 이미 예견된 일이다. IMF 이전만 해도 삼성의 위상은 '4대 기업' 혹은 '10대 기업' 안에 있었다. 하지만 사태 이후 삼성은 '위험한 1인자'가 되어 한국사회를 지배하게 되었다. 영향력이 커진 만큼 건강함을 유지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현실이 안타깝다."

오랜 시간 동안 이숙이 기자를 잡아놓지 못했지만, 결국 인터뷰의 결론은 '삼성'을 향하고 있었다. 기자가 인터뷰를 하는 내내, 또는 시사저널 기자들의 언행을 살펴보는 동안 '삼성'에 대한 반감보다는 일반 국민이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삼성에 대한 애정'이 짙게 배어 있었다. 삼성은 어쨌든 대한민국을 대표하고 세계 기업들과 경쟁하는 대한민국 기업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위상을 남용하지만 않는다면 삼성은 진정한 세계 리더 기업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삼성 때문에 거리에 나앉게 됐는데 삼성에 대해 이렇게 깊은 애정을 갖고 있다는 사실, 삼성은 혹 알고 있을까? 
  



                                                                  2007-06-21 10:21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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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01 11: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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