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를 별로 읽은 적은 없지만, 그의 직업이 나에게는 동경의 대상이다. '고전문헌학자' 니체와 같은 고전문헌학자가 우리나라에서는 나올 수 없는 것일까. 대학을 졸업한지 벌써 수년이 되었지만, 내가 갖고 싶은 전공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 동안 세파에 휩싸여 꿈이고 뭐고 다 날아가버리기 전에 방향을 찾아야 하는데...

인문학도 마찬가지이지만 그 중에서도 한문에 업을 둔다는 것은 무모한 도전이다. 고전번역원이 생긴다고 하지만 우리 사회가 고전문헌에 대한 가치를 발견하려면 왕의 남자와 같은 작품이 1,000개 이상 나오거나 동북공정 같은 사건이 100년은 지속되어야 한다. 최소한 우리 사회에서 고전은 숨겨진 책이다. '고전'이라는 말 자체도 지금은 양면성을 띠고 있지만, 긍적적인 의미는 퇴색되고 말 것 같다. 고전, 아니 고난의 길로 가는 버스가 내 앞에 섰을 때 나는 난세에 살고 있었고 거의 동물적인 감각으로 버스를 떠나보냈다.

얼마 전 교수신문에서 고전번역원 법안과 관련해 특집기사를 실었는데, 옛 추억에 잠시 젖었다.
한자도 병기해야 하는데, 거시기해서 그냥 놔둔다. 


"40년 넘도록 중장기 계획 없어"
[특집:한국의 고전번역]1. 구조적 문제점과 해결방안
2007년 02월 05일 (월) 13:53:38 신승운 성균관대 교수  editor@kyosu.net

아직 번역이 안 된 우리나라 古典籍은 대략 6천5백여 책이다. 최근의 정책연구 결과에 따르면, 현재와 같은 속도라면 이들 서적이 번역되려면 약 1백 여년 이상의 기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그것도 장담할 수 없다. 고전 번역에 뜻을 둔 인재들이 드문 데다, 지금까지 번역을 담당해왔던 소수의 漢學元老들이 점차 고령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따라 특히 고전번역원을 설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한국 고전번역이 지닌 구조적 문제점과 고전번역원 설립 추진 현황에 대해 살펴봤다. <편집자>

모든 飜譯은 疏通을 위한 것이다. 漢字와 漢文은 지난 2000년간 우리나라에서 소통의 기본 도구였다. 하지만 근대화는 한문을 급격하게 퇴장시켰다. 결국 한문은 死語가 되었으며, 더 이상은 소통할 수 없는 言語가 되었다. 이를 한글로 바꾸어 주는 ‘번역’은 바로 과거와 현재를 소통할 수 있도록 對話의 場을 마련하는 일이다.

 ‘朝鮮王朝實錄’등 대표적인 한국 古典籍의 번역은 學問的 疏通의 장을 크게 확대하였다. 방대한 내용에 대한 용이한 접근으로 소장학자들은 자신의 연구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자신이 원하는 더 많은 정보를 이전보다 훨씬 쉽고 간편하게 얻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조선시대 연구에 커다란 진척을 가져왔으며, 양적 확대는 물론 질적 제고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學問的 疏通과 함께 文化的 疏通의 場도 확대되었다. 번역된 ‘조선왕조실록’에서 많은 소재들이 발굴되었으며, ‘대장금’이나 ‘왕의 남자’의 경우가 그 예라 하겠다. 인터넷에는 자신의 조상에 대한 각종 기록을 모으고 정리하여 제공하는 홈페이지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들 역시 많은 부분 번역된 자료에 의지하고 있다. 이런 사이트들이 급격하게 증가하는 것을 보면 우리가 가진 우리 文化에 대한 갈증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우리의 역사와 문화의 源泉인 동시에 總體이면서도 漢文이라는 장애에 가로막혀 접근하지 못했던 古典籍을 누구나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게 만든다는 점에서 飜譯은 곧 ‘古典資料 活用의 민주화 운동’이라고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수행되는 漢文古典의 번역은 여타의 일반적인 번역과는 다른 역사적 特殊性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갑오경장이전에는 漢文이 公式的인 文語였다는 점이다. 한글이 창제되기 이전은 물론이고 한글이 창제된 이후에도 국가의 공식적인 기록은 물론이요 개인의 문자생활 역시 대부분이 한문으로 이루어졌다. 전통시대에 생산된 문헌의 95%이상이 한문으로 기록된 것이다. 따라서 번역 대상이 매우 방대하다. 조사 결과 번역되어야 할 古典籍은 세계문화유산인 ‘承政院日記’ 등 번역된 책으로 계산하여 대략 6,500여 책에 달하며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번역할 경우 대략 1백 년 이상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다. 국가가 재정적 지원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둘째는 번역 대상이 규모가 방대한 기록물이라는 점이다. 세계기록문화유산인 ‘조선왕조실록’은 4천 7백만 자에 달하며, ‘承政院日記’도 2억 4천만 자나 된다. 그 규모가 실로 엄청나다. 이런 거질의 번역은 당연히 개인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集團飜譯’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개별적 차원에서 특정문헌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번역하는 것과는 달리 ‘집단번역’은 다수의 역자가 協業하는 형식이므로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 번역 시스템과 그를 수행할 전문 기관이 필요한 이유이다.

셋째는 한문교육의 단절이다. 정부의 한글전용정책 등 여러 가지 사회적 배경이 있었지만 한문에 대한 전문교육이 제도권에 편입된 것은 1973년 성균관대학교에 漢文敎育學科가 설치되면서 부터이다. 따라서 1894년 갑오경장으로 한문이 公式文語로서 자격을 상실한 이후 한문에 대한 교육은 거의 80여년 이상 제도권에서 외면 받았다. 특히 본격적인 번역인력의 양성은 지난 1974년 비제도권인 民族文化推進會에 國譯硏修院이 설립되면서부터이다. 역자의 양성을 비제도권에 맡긴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학문 일반과 원활한 연계에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학계의 연구 성과가 충분히 반영되기 어려운 것이다.

그간 고전의 번역사업은 원로 원학자와 번역분야 참여자들의 피나는 노력으로 양은 물론 질적으로도 괄목할 만한 실적을 거두었다. 국고의 지원 하에 民族文化推進會가 주축이 되고 世宗大王記念事業會 등이 수행한 번역은 지난 40여 년간 모두 500여 억 원 이상이 투입되었으며, 번역한 책 수가 1,600여 책을 넘기고 있다. 특히 ‘朝鮮王朝實錄’의 完譯은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학계는 물론이고 문화계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이러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이들 번역서들은 難解한 文章, 부족한 註釋, 硬直된 逐字譯 내지 과도한 意譯 등에서 오는 疏通의 불완전성에 대하여 적지 않은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古典飜譯은 지난 40여 년간 政府가 민간 번역단체에 補助金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왔다. 따라서 보조금의 성격상 1년 내에 번역에서 출판까지 전 과정을 마쳐야만 했다. 더구나 예산 지원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재정형편에 따라 예산이 책정되었고, 항상 제로베이스에서 검토되면서 언제나 우선순위에서 멀리 있었다. 자연히 예산의 안정적 확보나 체계적인 지원은 기대하기 어려웠고, 국역 단체들은 단기간 실적위주의 사업운영이 불가피하였다. 미래를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장기적인 계획은 수립될 수 없었고, 금년의 사업실적이 차기년도 예산확보의 관건이 되었기에 조속한 완료가 강요되었다. 번역대상을 적은 분량으로 분할하고 외부에 있는 다수의 역자에게 위촉하여 번역기간을 단축함으로써 사업을 기간 내에 완성하는 “위촉제 분할번역의 방식”이 성행하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誤譯과 같은 번역 내용의 不實化는 구조화되었으며 개선될 여지는 없어 보인다. 이런 국고 보조금 지원방식에서 오는 문제점은 크게 다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장기적인 종합 계획 없이 수행되는 고전국역사업
번역 사업에서 가장 큰 문제는 국가적 차원에서의 종합적인 장기계획이 없다는 것이다. 국고의 지원에 의한 번역이 시작 된지 무려 4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체계적으로 짜여진 중장기 종합계획이 없다는 것은 정책의 부재를 말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더구나 번역의 대상이 巨帙이라는 점에서 계획의 부재는 그 심각성을 더한다. 대표적인 번역서인 『朝鮮王朝實錄』에서 각 조대별 서명조차 통일하지 못했으며, 내용에도 문제점이 적지 않다는 것이 학계의 지적이다. 계획의 부재가 번역의 부실로 이어진 대표적인 경우이다. 특히 번역을 담당하고 있는 행정기관이나 번역기관 간의 조정 기능은 어디에도 없다. 국가의 예산으로 동일한 서책을 중복 번역하거나, 동일기관 내에서 번역의 대상이 시대별 내용별로 편중화 현상을 보이는 것은 종합계획의 부재에서 온 결과이다.

원전의 정리 없이 번역에만 치중된 기형적 구조
번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번역 대상인 原典에 대한 整理의 문제이다. 훌륭한 번역이 있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원전의 정리가 선행되어야 한다. 정리되지 않은 원전의 번역은 번역의 안정화를 저해하며 이는 곧 번역의 品質 저하로 직결된다. 일반 고전 중에서 문집의 경우에는『韓國文集叢刊』과 같이 일정한 정리 과정을 거친 텍스트가 있지만, 대부분의 문헌은 그렇지 못하다. 특히『승정원일기』나 『日省錄』과 같은 대형의 國故文獻은 寫本의 형태로 남아 있으며, 이는 번역에 앞서 학술적인 定本化 작업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번역에 대한 예산 지원은 있지만 번역 대상서의 정리를 위한 예산의 지원은 거의 없거나 턱없이 부족하다. 이는 모든 實積이 오직 飜譯중심으로 파악되고 지원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번역만을 중시하는 풍토가 결과적으로 번역의 부실을 낳는 것이다. 자연히 번역대상서의 정리가 전문화되지 못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역자의 과중한 부담으로 번역이 부실화 되는 문제가 초래되었다. 校勘을 비롯하여 註釋, 標點, 索引 등 飜譯에 선행되어야 하는 原典의 정리에 대한 예산 지원도 충분하게 이루어질 때 번역이 정상적인 궤도에 오를 것이다.

위촉제, 부실 번역의 근원
현재 국고로 지원되는 번역의 대부분은 개인 위촉에 의존하고 있다. 대략 연간 200자 원고지로 10만매 정도가 번역되는데 이중 75%인 7만 5천여매가 위촉이다. 그리고 분할되어 위촉된 원고들은 副業的 형태의 번역으로 수행된다. 전문가 집단이 양성될 수 없는 환경인 것이다. 그저 일정한 고료를 받고 부분적인 번역을 하는 다수의 부업적 역자집단 만이 형성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번역의 품질문제를 논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지난 5년간의 번역상황을 조사해 보면 『承政院日記』와 같은 국고문헌에서 분할번역의 정도가 더욱 심화되었다. 또 역자간의 번역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편차도 더욱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고전의 번역이 “위촉제”로 운영되는 한 번역의 질적 제고는 지난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이상에서 볼 수 있듯이 補助金 방식의 지원은 고전번역을 부실하게 만드는 모든 문제점의 근원이다. 해결방안은 장기적인 종합계획 하에 예산의 안정적 지원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즉 국가에서 조속히 정부출연기관으로 ‘韓國古典飜譯院’을 설립 운영하는 것이 고전번역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해결하는 가장 분명한 방안이다.

지난해 필자는 교육인자원부의 지원으로 한국학술진흥재단의 과제를 받아 ‘韓國古典飜譯院’과 ‘古典飜譯大學院’의 설립을 위한 정책연구의 책임을 맡아 연구 결과 위와 같은 결론에 도달했고, 공청회를 열어 ‘韓國古典飜譯院’의 설립에 대한 대체적인 합의를 도출한 바 있다. 그리고 금년 초에는 유기홍 의원 등 32명의 국회의원에 의해 “한국고번역원설립법안”이 발의된 것으로 듣고 있다. 고전국역은 물론이고 人文學의 발전을 위하여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차제에 반드시 이 법안이 통과되어 안정된 번역시스템이 구축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신승운 / 성균관대·서지학
필자는 성균관대에서 ‘성종조의 문사양성과 문집편간’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민족문화추진회 국역부장, 편찬부장, 국역연수원 교수 등을 역임했다. 번역서로는 군서표기(국역 홍재전서 제18집), 청장관전서(공역) 등 다수다.


재번역은 엄두도 못 내"…번역 경시 풍토도 한 몫
[특집:한국의 고전번역]2.전통 한학자들이 말하는 고전번역의 문제
2007년 02월 05일 (월) 14:06:22 허영수 기자  ysheo@kyosu.net

“서당에서 공부한 전통 한학자들 가운데 번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람은 20~30명도 안 된다.” 민족문화추진회(이하 민추) 관계자는 “서당에서 공부한 한학자들이 모두 번역을 잘 하는 것도 아니고, 활동하지 않는 이들을 빼면 대략 그 정도”라고 말했다. 서당에서 四書三經을 익혀 한문을 모국어처럼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번역에도 능숙한 이들은 불과 20~30명밖에 안 된다는 말이다.

전통 한학자들이 중요한 이유는 현재까지 이들이 주축이 되어 고전을 번역하고 인재를 양성해왔기 때문이다. 지금도 후학들이 옛글 중 글자 한 두자를 해독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을 때면 전통 한학 원로들이 해결해주는 경우가 많았다. 때론 90대 원로가 자문해주기도 한다. 원로들이 살아 있을 때 후학이 양성돼야 하는 것. 전통 한학의 맥을 이은 마지막 세대가 지금 활동하고 있다면, 이때가 마지막 기회라 할 수 있다.

민추에서 번역을 많이 해온 장재한 儒道會 한문연수원장(60)은 “고전번역에 뜻을 둔 인재를 양성하기가 어려운 만큼, 이들의 대우를 적절히 해줄 필요가 있다”라고 언급했다. 지금 대학에서 이뤄지고 있는 한문교육을 통해서는 결코 전문 번역자를 양성하기 힘들다는 얘기였다. 장 원장은 “현대교육을 통해 공부한 이들에게서 한문의 한계를 볼 때가 있다”라면서 “다른 데 한눈 팔지 않고 오로지 한문만 10여년 이상 익혀야 文理를 이해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가령不現光’이라는 한자는 글자 그대로 하면 “그 빛이 드러나지 않는다”라고 해석되지만 정확히는 “드러나지 않는가 그 빛이여”라고 해석해야 한다. 詩經을 암송하지 않는다면 잘못 번역될 수밖에 없는 사례다.

   

장 원장은 얼마 전까지 민추에서 교수로 재직하다가, 현재는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儒道會에서 한문을 가르치는 중이다. 儒道會는 매년 석사과정 이상의 학생을 20여명 선발해 무료로 한문을 가르치는 사단법인으로, 재원은 수료생들의 자발적인 지원금이다.

정태현 민추 자문위원(62)이 고전번역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는 것은 ‘번역의 질’을 따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다산시문집, 성호사설, 승정원일기 등 다수의 번역에 참여한 정 위원은 “무슨 다리 공사하는 것도 아닌데, 돈을 3월에 주면서 금년까지 번역을 마치라는 식이라서, 충분히 검토도 못하게 하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번역이 잘 되었는지, 잘못되었는지는 상관 않고 무조건 기한 내에 번역하라고 하는 정부 지원 정책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번역이 끝나면 별도로 외부에서 엄격히 평가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양만 많이 늘었지 질은 따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 위원은 “번역하고도 제대로 평가를 안 하니 요즘엔 형편 없는 번역도 많이 나온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사서삼경을 국내 최초로 완역해 고전 번역계에서 이름이 높은 성백효 민추 교무처장(57) 또한 ‘재번역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했다. 이미 번역된 저서들도 다시 번역해야 하고, 번역에 대한 2차 평가작업을 거쳐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성 교수는 “언어는 늘 바뀌기 때문에 고전 번역은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일본은 20년 주기로 번역본을 바꾼다”라면서 “우리는 한 번도 번역하지 않은 것들을 다 번역하는 데에도 지금 1백 여년이 넘게 걸릴 상황”이라며 우려를 금치 못했다. 지금대로라면 번역은 점차 부실해지고, 인재 양성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전망이었다.

박소동 민추 국역연수원 교수(59)는 ‘번역에 대한 인식’에서의 문제점을 거론했다. 정부와 학계가 번역이 고도의 지적인 작업이라 보지 않고 단순한 기능으로 보는 것이 문제다. 그에 따르면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이 쓴 고전일 경우에는 그 학문을 이해하고 번역해야 하기 때문에 기능적으로 번역할 수도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박 교수는 “번역하는 것을 논문 쓰는 것 보다 경시하는 풍토도 사라져야 하고, 번역을 한시적인 사업으로 보는 시각도 교정돼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더불어 박 교수는 “언젠가 정부 관료가 승정원 일기를 출판해도 아무도 안 살텐데, 왜 출판하냐고 하더라”라며 “도로나 상하수도, 공원, 학교 등 정부가 사회간접자본에 투자하듯, 학문의 간접자본인 古典이 안정적이고 체계적으로 번역될 수 있도록 정부가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라고 얘기했다. 수익자 부담 원칙을 내세우며 경제적인 시각으로 고전번역을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었다.
허영수 기자 ysheo@kyosu.net




최근에 전국책과 맹자, 장자, 그리고 국어와 논어, 노자를 읽으면 드는 생각은 공맹과 노장이 난세에 적응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점이다. 둘 다 난세에는 맞지 않았다. 난세의 분위기를 느끼고 나서 나의 현실을 보면 마치 부절을 붙여 놓은 것 같아 몸서리가 난다.

얼마 전에 매파가 비둘기파에 비해 구조적으로 우위에 있을 수밖에 없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난세에 맞게 튜닝된 모델은 '자공' 이나 사마천을 들 수 있을까.

국역을 논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이들은 전국시대의 맹자와 장자의 전철을 밟고 있다. 그것은 미래의 가르침이 될 수 있을지언정 현재의 돌파구는 될 수 없다. 다소 불행한 일이지만, 콘텐츠와 철학, 교육과 창작, 그리고 '시장'이 한꺼번에 어우러져야 결실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학문에 대한 배신행위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경향신문을 좋아하고 경향의 기자들을 몇몇 알지만, 경향신문이 자본주의 구조를 헤쳐나가기 버겁다고 느껴지는 것은 그 '도도함' 안에 있다. 중앙일보는 천박지만 비지니스를 알고 있다. 하지만 이 비지니스는 전설의 우임금처럼 도랑을 바다로 내는 것이 아니라, 이웃 마을이나 이웃 나라로 내는 것과 같이 시장 굴욕적이다. 이것을 양 극단의 길로 본다면, 제3의 길을 향해 있지만 그것을 제대로 찾지도 못했으면서 제1, 제2의 길에도 서 있지 못한 나는 이 시대의 사생아이자 반항아이다.

제3의 길은 나의 이상이다. 이를 위해 창작도 학문도 팽개치고 자본에 발을 붙이고 있지만, 언제까지고 반항아가 될 수는 없다. 결혼도 했고 서른이라는 무게도 있다. 상식의 선에서 생각하자면 얼른 제3의 길 포기를 선언하고 제1이나 제2의 길에 발을 붙이고 있어야 정상일 것이다. 제3의 길은 없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언제까지고 제3의 길 언저리에서 서성대고 있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부랑아가 아직도 어슬렁거리고 있다면 다가가서 술이나 한 잔 사주기를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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