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장선에서 이문열에 대한 비판도 문학을 통해서만 가능하리라고 생각한다. 상여를 메고 이문열의 책들을 장사지내는 것보다 이문열의 작품 한 줄이 더 긴 밈을 유지할 것이므로. 이문열보다 더 긴 밈을 유지하여 우위에 있기 위해서는, 자신의 작품 세계에 이문열은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할 만큼 소소해야 하며, 궁극적 철학을 온몸으로 문학화시켜야 한다.



요꼬 가와시마 왓킨스의 <대나무 숲 저멀리서> “막는 것만 최선 아니다”
보스톤코리아 | 2007·01·29 21:46 | HIT : 6
진태원 (본지 칼럼니스트)

아침에 회사에 출근해서, 이메일을 보니, 보스톤 코리아 편집장께서, 본스톤 전망대에 지금 한창 논란이 되고있는 요꼬 카와시마 (Yoko Kawashima Watkins)씨의 책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글을 써보라는 제의를 받았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저도 관심을 가지고 있던차라, 자신의 입장을 정리해 보고자 했습니다.
우리 마을에서 30분쯤 떨어진 도버라는 동네에 있는 학교에서 영어 교재로 사용되고있는 이 책이 이곳 지역사회와 한인사회의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고 아마 한국에서도 이미 사건이 알려져 예민한 반응이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관심이 많은 분들은 대충 내용을 알고 계시겠지만, 모르는 분들을 위해 간략하게 설명합니다.
11살의 일본 소녀가 세계2차 대전에 패하고 일본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서, 한가족이 자신의 나라 일본으로 돌아가는 역경을 어린 소녀의 눈으로 보고 체험한것을 소개한 책을 써서, 1986년 베스트 셀러가 되었고, 그 후에, 작가 가와시마씨는 미국 중학교들을 직접 방문하며, 그녀의 경험을 학생들에게 소개 해왔습니다.
확인할 바가 없지만, 이 책의 내용은 사실이랍니다.
작가는 전쟁의 참혹함을 사실적으로 표현해서, 자기에게 있었던 비극이 다시는 없도록하고 싶어서 책을 썼다고 하며, 이 책은 오래 전부터 여러개의 학교에서 교재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분개하는 것은, 미국의 어린이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정작 일본 침략의 피해자인 한국 사람들이 오히려 이책에서는 나쁜 가해자로 나오고, 그로 인해서 일방적으로 한국 사람이 못되고 나쁜 사람들이라고 믿게 된다는 것입니다.
일본이 한국 침략을 통해 수많은 한국 사람들의 삶을 처참하게 짓밟은 사건의 책임자인 점을 감안 할때, 미국의 감수성이 예민한 6학년학생들이 이책을 읽고, 일본이 피해자고, 한국인이 가해자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는 점을 우리는 우려 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책을 직접 읽어 보지 않고서, 의견을 올리는데 무리가 있기에, 점심 시간에 책방으로 달려 갔습니다. 안내하는 사람에게 So far from the bamboo groove 책이 어디있냐고 몰었더니, 청소년 추천 도서 칸에 있다고 알려줘 한권을 구입해 읽어 봤습니다.
어떤 내용이 실려 있기에 그렇게도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계시나 해서, 문제가 될 부분이 무었일까 궁금해 하며 한장 한장 읽어 내려갔습니다.
나이든 어른의 입장이어서 일까요? 예민한 문제가 될만한 내용을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함경북도에서 서울까지 피난오면서, 간간히 북한 공산당원들의 악의적인 위협을 받았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면서, 몇몇 술취한 사람의 횡포를 기록한 것 뿐입니다.
이 책을 읽으신분은 11장에 나오는 김씨가족을 기역하실것입니다. 패망해 일본으로 죽을 고비를 여러번 격으면서 북한에서 서울로 도망가는 히테요 (Hideyo, 작가의 오빠)에 보여준 생명을 무릎쓴 희생정신과 놀라운 사랑은 오히려 제가 한국 사람임이 자랑스럽습니다. 저는 11장이 너무도 감사 합니다. 11 장이 없었다면 저의 반응도 다른 한인 분들과 다를 바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며 오래간만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세상에는 대한민국을 잘못 이해 할 수 있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하나 하나 찾아서, 세계인들에게 그것은 잘못 된 것이고 왜곡된 것이라 지적하기에는 역부 족입니다.
우리가 해야하는 일은, 일본의 침략과 지배에서, 희망과 사랑으로 절망하지 않고 살아 남은 우리의 이야기들을 많이 발굴해서, 영어본으로 출간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미국 어린이들이 가와시마 요코씨의 책만 읽는 것이 아니고, 일본의 침략의 만행과 그들의 과거의 잘못을 전세계에 알리는 다른 책들도 함께 교재로 사용하도록 하는것입니다.
그 목적이 지금 일본사람들을 원망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그런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토록 방지하는데 있어야 겠습니다.
어제 뉴스에, 고국에서는 가와시마 요코씨의 책이 출판 정지가 됐다고 합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한 가까운 친구의 말이 생각 납니다.

나쁜 것을 없애려고 너무 노력 하지 말아라. 결코 끝까지 없어지지 않는다. 그대신 좋은 일을 많이 해서, 나쁜 것이 차지할 지리를 자꾸 작게 만들어라. 그러면 나쁜 것이 설 자리가 없어서 나중에 밀려 날지도 모른다
가와시마씨의 책을 미국 학교에서 사용하지 말라고 요구 하는것은 무리라고 봅니다. 대신 "좋은 책"을 추천해주면서 그들이 교재로 채택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해야 하겠습니다.
혹시 이 사건으로 정신적으로 고통 받고있는 한인 2세 들이 있다면 서로 토론하는 시간을 마련하는 것은 어떨까요?



[기고] 평화대신 분노 부른 ‘요코이야기’
경향신문 칼럼, 입력: 2007년 01월 24일 18:25:49
 
1945년 8월15일 직후 당시 조선의 치안은 일본의 경찰 및 군인들이 상당기간 담당했다. 치안 책임은 그해 9월 미군에게 인도되었다.

따라서 일본인에 대한 살인 및 강간 등 치안부재의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만약 그러한 사례가 있었다면 해방 후 60여년이 경과하는 동안 일본 우익들이 그냥 있었을 리 없다.
오히려 한국에서는 음료수를 제공하는 등 일본으로 귀국하는 일본인들을 우호적으로 대해 주었음이 일본인들의 수기 등에 잘 나타나 있다.

소설 ‘요코 이야기’(원제:So far from the Bamboo Story)가 수많은 ‘이야기들’을 생산해 내고 있다. 문제가 있다는 지적일 것이다. ‘요코 이야기’는 일본의 패망, 즉 조선의 광복을 맞아 북한 땅으로부터 본인과 어머니 언니 오빠가 ‘탈출’하여 귀국·정착하기까지의 과정, 그러니까 ‘역경의 역정’을 개인의 기억을 되살리는 방법으로 그려내고 있다.

대부분의 지면을 ‘탈출’하면서 겪었던 어려움과 위기를 헤쳐 나아가는 데에 할애하고 있다. 또 상당량의 부분을 오빠가 ‘김씨 아저씨’와 그의 가족들에게 도움을 받는 장면으로 묘사하고 있기도 있다.

소설은 또 탈출 도중에 당시의 조선인이 몹쓸 짓을 하는 상상하기조차 싫은 장면을 담고 있기도 하다. 그러한 장면의 ‘사실’ 여부는 둘째 치자. 그렇지만 아무리 ‘소설’이라고 하더라도 그러한 설정은 이 책을 읽는 어린이들의 역사관과 가치관의 형성에 상당한 혼란을 초래함은 물론 부정적 영향을 끼칠 위험을 애초부터 내포하고 있어 상당히 부적절하다. 왜냐하면 식민지 지배의 가해자였던 일본인과 피해자였던 조선인이 뒤바뀌어 인식될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작가 요코씨에게 묻겠다.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당신 아버지의 ‘전직’이라든가, 미군기에 의한 공습 장면, 또 추운 곳에서는 자라지 않는다는 대나무 등에 대해서는 굳이 거론하지 않겠다. ‘요코 이야기’가 당신의 말대로 ‘소설’인가, 아니면 역시 그가 말한대로 한두 곳만 빼고 ‘모두 사실’인가. 단순히 ‘소설’이라고 한다면 ‘허구’라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모두 사실’인 경우는 이야기가 180도로 달라지기 때문이다.

당신은 한국의 독자들에게 이 책이 ‘평화에 대한 책’이라 밝히고 있다. 당신은 정말로 한국의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탈출했던 자신의 모습보다 원폭을 당한 본국 히로시마의 희생자들이 더 큰 고통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도 쓰고 있다. 그렇다면 또 묻겠다. ‘평화’를 사랑하는 당신의 말과 가슴 속에 혹 조국 잃은 식민지 조선인이 받았을 고통과 매일같이 성노예 역할을 강요당한 이른바 일본군 ‘위안부’의 그것이 빠져 있지는 않은가를.

‘요코 이야기’는 오류와 부정확한 기술에 근거한 것으로 ‘소설’ 형태를 취하면서도 자전적 실화에 기초한 양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행태는 한국인의 대일 감정과 일본인의 대한 감정을 악화시킬 뿐이다. 이러한 ‘요코 이야기’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이들에게 말한다. 그렇게 될 때는 이 ‘대나무 이야기’의 대나무가 ‘죽창’이 되어 당신의 양심과 한국인의 뜨거운 가슴을 겨누게 될 것이라고.

〈김민규 동북아역사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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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07 13: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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