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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과 ‘정치적 편견 없이’ 등을 운운하는 모습이 거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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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광우병을 말하다 - 최신 연구로 확인하는 인간광우병의 실체와 운명
유수민 지음 / 지안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대형마트에서 미국산 소고기가 다시 판매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에 대한 찬반의견이 격렬히 맞부딪치고 있다. 전방위적 탄압으로 촛불도 사그라지고 미국산 소고기에 대한 관심·우려가 줄어들었다고 하지만, 미국산 소고기 파동은 결코 끝나지 않은 것이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파동. 이러한 시기에 출간된 책 ‘과학이 광우병을 말하다’는 현실을 좀 더 냉철하게 읽어내는 데 도움이 되리라 기대되었다.
유수민은 현직 의사로서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에서 ‘피카소’란 필명으로 많은 글들을 연재해오고 있다고 한다. 저자는“광우병에 대한 뜨거운 말들이 신문과 방송, 거리에 넘쳤다. 과연 무엇이 진실일까?”라는 문제의식으로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그가 품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광우병에 대한 최신 연구 성과가 담긴 200여 편 이상의 논문 등을 직접 찾아본 후 이 책을 통해 정리해냈다.
“인간광우병의 진실을 일반인도 이해할 수 있는 보편적인 언어로, 정치적 편견이나 오해 없이 보여주고자 초선을 다했다.” 저자는 이와 같이 선언하며 ‘1부-비극의 기원’에서는 광우병의 과거를 다루고, ‘2부-인간광우병 발병의 전제조건들’에서는 광우병을 일으키는 요인들을 분석하며, ‘3부-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에서는 광우병에 대한 잘못된 지식을 바로 잡으며, 마지막 ‘4부-광우병의 미래’를 통해서는 우리나라에서의 광우병 발생가능성과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먼저 “일반인도 이해할 수 있는 보편적인 언어로”라는 저자의 의도는 성과를 거둔 것 같다. 주로 과학 논문의 내용을 전하는 책이기에 독자로서 굉장히 어렵고 거부감이 들 수도 있었으나 저자는 수많은 그림과 도표를 이용하여 차근차근 설명을 해준다. 과학적 기본지식이 미천한 나도 인내심을 갖고 글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정도 이해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진짜 의도인 ‘진실’에 있다. 많은 최신 연구의 공부를 통해 그가 ‘정치적 편견이나 오해 없이’ 도달한 ‘진실’은 다음과 같다.
“어쨌든 광우병 위험도를 최대로 과장한 상태에서 계산해보겠다 (…) 한국에서 인간광우병 환자 한 명을 보기 위해서는 최소 20년 정도가 필요하다는 결론이다. (…) 더 중요한 본질적인 문제는 한국이나 미국에서 발생하는 변형 프라이온 단백질 스트레인이 영국에서 탄생한, 사람에게 전염 가능한, 소떼에게 쉽게 전염될 수 있는 독성이 강한 스트레인이냐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런 계산은 의미가 없다. 가능성이 0%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인간광우병이 발생할 확률은 0%. 최신 연구성과들을 모아, 정치적 편견이나 오해없이, 과학으로 말했다는 저자의 결론. 그는 이러한 결론을 비유를 통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 말을 좀 더 들어보자.
“악어는 위험하다. 그라나 집에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우리에게 악어가 나타날 가능성은 희박하다. 도심 한가운데 살면서 악어가 나타나 나를 물어죽일 가능성을 항상 걱정한다면 정신건강에 매우 해롭다. 밀림 지역이나 아프리카 여행 중에 걱정해도 충분하다.”
“누군가가 정말로 시침을 떼어다가 눈을 찌를 수도 있고, 벽에 걸린 시계가 그 아래에 있던 사람 머리로 떨어져 뇌진탕을 일으킬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위험 때문에 괘종시계가 사람을 해칠 수 있는 매우 위험한 물건이니 없애자고 한다면 이상한 사람 취급받기 쉽다.”
뭐지? 그럼 촛불을 밝힌 5, 6월에도, 지금 이 순간에도 ‘광우병 괴담’에 불안해하는 사람들은 집 안에 앉아 악어를 두려워하고, 괘종시계를 살인도구로 보는 이상한 사람이라는 말인가? ‘과학’을 모르고 ‘정치적 편견’에 빠진 우매한 인간들?
물론 저자는 다른 이야기하고 있다.
“반대로 무턱대고 아무 근거도 없이 괜찮다고 하는 것도 문제이다. 이 경우 준비되지 않은 위험에 처해 큰 손해를 볼 수 있다. 광우병에 대한 위험이 확률상 100% 안전한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예방이다. 광우병을 예방하기 위해 정해놓은 규칙들이 무너지지 않도록 관심을 갖고 관리 및 감시하는 일이 중요하다.”
하지만 제도의 중요성에 대한 언급은 책 전체를 통해 볼 때 미약할 뿐이다. 위에 인용한 문구 정도로만 언급하고 있을 뿐, 정작 저자는 현재 우리나라의 광우병 예방 대책의 문제점은 인식조차 안하고 있는 것 같다. 게다가 ‘악어’, ‘시계’라는 비유의 힘을 강하게 실어 표현한 위험성 0%의 결론과 미약하게 언급한 위험성에 대한 예방의 말의 느낌 차이는 독자가 받아들이기에는 어마어마한 차이로 다가온다. 그러기에 그가 말하는 ‘예방’에 대한 언급에서는 형식성이 느껴질 뿐 진실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 물론 저자가 밝힌 광우병의 진실이 사실이라면 좋겠다. 반가운 소식 아닌가! 미국산 소고기를 마음껏 사먹어도 최신 과학 성과로 분석해 볼 때 광우병에 걸릴 위험성은 거의 거의 거의 없다니! 그래, 차라리 똑똑하지 못해서 지금껏 광우병 괴담에 시달려온 사람들이 무지를 반성하고 값싸고 맛좋다는 미국산 소고기를 실컷 사먹어 행복할 수 있다면 좋겠다! 허허.
저자가 책을 쓰게 된 진솔한 의도야 어찌됐든, 나에게 이 책은 이렇게 읽혔고, ‘진실’과 ‘정치적 편견 없이’ 등을 운운하는 모습이 도리어 거북했다. 서평단 도서라서 꼼꼼히 열심히 읽었는데, 얻은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