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 사계절 1318 문고 36
라헐 판 코에이 지음, 박종대 옮김 / 사계절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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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하게 돌출된 곱사등, 짧고 가느다란 막대기 같은 다리, 진흙 덩어리를 뭉쳐놓은 것처럼 작고 뭉툭한 발, 심하게 뒤틀린 발가락, 손아래 누이보다도 작은 몸집. 이런 몸으로는 걷는 것 조차 힘이 들어 휘청거린다. 그래서 손을 땅에 짚고 네 발 달린 짐승처럼 재빨리 땅을 기어간다. 주변 사람들에게서 ‘병신’ 취급을 받으며 스스로도 자신을 흉측하다고 생각하는 아이. 그 아이가 바로 이 책의 주인공인 열 살짜리 소년 바르톨로메 카라스코이다. 주변 사람들의 낯설고 차가우며 매섭기까지 한 눈빛에 너무도 익숙할 아이. 그런데 소설 속 세계에서도 이미 충분히 타인의 눈빛으로부터 상처받았을 그 아이에게 소설 밖 세계에 사는 내가 보내는 눈빛 또한 평범하고 곱지 못함을 깨닫고 깜짝 놀랐다. 아마도 내 의식 속의 기형에 대한 낯섦과 무의식적 공포. 이런 미안함과 불편함을 품으며 17세기 스페인의 한 거리에서 살아가고 있는 바르톨로메와의 낯선 마주침을 조심스레 이어가본다.

바르톨로메는 아버지, 어머니, 4명의 남매와 함께 한 시골 마을에서 살았다. 그런데 아버지가 수도 마드리드에서 공주의 마부로 일하게 되었고 따라서 가족이 마드리드로의 이사를 준비하게 된다. 하지만 ‘가족’은 ‘온 가족’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병신’ 바르톨로메를 떼어놓고 이사 가기를 바랐고 이를 알게 된 바르톨로메는 애처롭게 흐느끼며 자신도 데려갈 것을 간청한다. 결국 아버지는 승낙하였으나 단 조건이 붙었다, 이사를 가면 사람들 눈에 절대 띄지 않게 골방에만 있어야 한다는. 상처가 아무리 쓰라렸어도 아이는 가족의 일원일 수 있음이 기뻤다. 이사 간 새집, 누가 보기라도 할까봐 창문 근처에 가는 것조차 금지당한 바르톨로메는 감옥과도 같은 골방에 갇혀 홀로 나직이 흐느낀다. 가족 내에서까지 받아야 하는 소외는 한없이 서러웠으리라.

그러던 어느 날 그런 그 아이에게 얇은 희망이 비췬다. 바르톨로메와 같은 기형 난쟁이임에도 당당한 위풍으로 왕실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을 보고 온 형이 흥분하며 그 말을 전한다. 그동안은 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난쟁이도 업신여김을 받지 않으면서 능력을 펼칠 길이 있는 것이었다. 이내 아이는 집 근처의 수도원에서 글을 배우게 된다. 아버지 몰래, 형과 누나의 도움을 받아 빨래통에 몸을 숨겨 이동하면서. 바르톨로메는 넋을 잃을 정도로 글자 공부에 심취한다. 늘어가는 글자 실력과 함께 아이의 희망과 자존감도 자라났다. 그러나 희망이 한창 부풀던 그 때, 그만 큰 사고가 발생한다. 빨래통에 바르톨로메를 숨기고 성당으로 향하던 누나가 그만 빨래통을 놓쳐버렸고 언덕을 따라 쉼 없이 구른 아이는 공주의 마차 앞에서 널브러진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공주의 눈에 띈 아이는 그 길로 바로 공주의 장난감, 인간개로서 궁궐로 끌려간다. 기형을 가져 차별받고 업신여김 받던 ‘사람’에서 이제는 아예 공주의 개가 됨으로써 아이는 사람조차 아니게 된다. 공주에게 바르톨로메는 사람이 아닌 정말 개인 것이다. 아이는 개 의상을 입고 얼굴에 물감을 칠하고 ‘멍멍’ 짖으며 핥고 재롱을 부린다. 기형을 가진 존재에 대한 차별과 업신여김은 극에 달한다. 인간의 상실, 상실된 인간성.

그러나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이 완전히 짓뭉개져 버린 바르톨로메에게 다시금 희망이 찾아온다. 그가 개 분장을 위해 찾아가는 화실, 그 곳의 사람들은 아이에게 말한다, “물론이야, 너는 개가 아니야”. 바르톨로메를 온전한 한 인간으로 바라보고 따뜻이 말을 건네며 차분히 귀 기울여주는 화실 사람들. 그들은 아이의 기형을 무작정 기피하기 보다는 장애를 지녔다 할지라도, 아니 장애의 유무를 떠나 바르톨로메가 한 인간으로서의 재능과 능력을 충분히 발현할 수 있음을 가르쳐 준다. 아이의 그림에 대한 재능의 씨앗을 본 화실 사람들은 아이를 격려해주고, 이끌어준다. 결국 그들은 인간개와 진짜 개를 뒤바꾸는 마술을 통해 공주의 눈을 속여 바르톨로메를 인간개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해주었고 아이를 화실 식구로 맞이한다. 개에서 인간으로 즉, 기형이란 이유 하나로 무작정 차별받고 무시당하던 존재에서, 기형이 있더라도 가치 있고 소중한 존재로의 극적인 전환. 이는 책 속에서 그림 <시녀들>에 그려졌던 인간개 바르톨로메를 진짜 개로 고쳐 그리는 기막힌 상징으로 멋지게 표현되고 있다.

가정에서 공주의 방으로, 공주의 방에서 화실로 옮겨져 가는 바르톨로메의 삶의 여정을 함께 하면서 그 각 과정에서의 아이의 표정이 얼마나 달랐을지 너무도 확연히 그려진다. 각 과정의 가장 본질적인 차이는 아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받아들이고 있냐는 시각의 차다. 한 사람에 대한 무시가 그의 존재를 서러운 시궁창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고, 한 사람에 대한 온전한 존중이 그의 존재가 한없이 고양되도록 도울 수도 있다. 바르톨로메와의 마주침을 이어가며 기형, 더 넓게는 사회 비주류에 대한 나의 근거 없이 비뚤어진 시각을 새롭게 되돌아보게 되었다. 아이, 잠시나마 비뚤게 거부감을 갖고 바라본 점을 깊은 마음으로 사과하며, 현실의 수많은 바르톨로메들을 온전한 존중의 시각으로 대할 것임을 조심스레 약속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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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9-25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이네요~~~ ^^
이 책은 내가 읽은 사계절출판사의 1318문고 중에 최고였어요. 2006년 어머니독서회 토론도서로 추천했었죠. 우리 아이들도 굉장히 감동 먹은 작품으로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다시 찬찬히 뜯어보게 되었지요.

Arm 2008-09-26 00:51   좋아요 0 | URL
작가의 상상력의 과정을 따라가는 것도 즐거웠어요~ 그 그림을 보고 결국 이런 소설을 탄생시키다니요! 아, 전문가 순오기님께 '최고'수준이었다면 제가 잘 골라서 봤나봐요~~~^^
 
내 친구가 마녀래요 - 2단계 문지아이들 6
E.L. 코닉스버그 지음, 윤미숙 그림, 장미란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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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습적인 잣대, 사회의 일반적 규범이 우리 사고에 미치는 영향력은 굉장히 크다. 우리의 일상들은 그저 그것들의 힘에 의해 이끌려 나아가기 쉽다. 이는 어른들이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착한 아이는 이래야 한다, 모범생은 저래야 한다, 이런 행동이 옳고 저런 행동이 그르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제공하는 ‘모범답안’은 이미 굳건하다. 우리는 그 답안을 그저 따를 뿐이다, 답안의 근원에는 그저 무관심한 채. 물론 규범과 관습의 긍정적 기능을 결코 무시하면 안되겠지만 그 역기능은 한층 더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규범과 관습의 일방적인 강요는 누군가에게는 충분히 깊은 상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어른들은 스스로에게 다시금 물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 아이들에게 모범답안, 중심만을 강요하느라 정작 우리 아이들을 더욱더 비모범으로, 주변으로 몰아세워가진 않았는지. 작은 상처를 혹 불어주고 아물게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상처 부위를 후벼댄 것은 아닌지. 그러하기에 착한 인물이 주인공이 되는 전형에서 벗어난, 어떻게 하면 중심이 아닌 주변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해 조곤조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이 책 ‘내 친구가 마녀래요’가 반갑다. 각기 갓 전학을 왔고, 교내에서 유일한 흑인인 이 책의 두 주인공은 외로움을 한줌씩 머금고 있다. 교내 연극에서 맡게 된 배역이 각기 공주의 개와 청소부였다는 내용은 이 두 주인공이 중심이 아닌 주변에 서있는 아이들임을 명백히 보여준다. 오히려 그러하기에 이 소설은 한층 더 현실적으로 그리고 따스하게 다가오는 게 아닐까.

소설은 마녀처럼 행동하는 제니퍼와 그의 친구가 되어 마녀 수업을 받기로 한 엘리자베스가 함께 엮어 가는 일들을 보여주며 그 과정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의 우정을 그려낸다. 엘리자베스와 제니퍼는 본격적인 마녀 수업을 시작하며 둘만의 비밀스런 세계를 만들어 간다. 도서관을 들락거리며 마녀에 관련된 책들도 읽고, 날계란과 생양파 따위의 음식을 먹고 비밀스런 쪽지를 주고받으며 둘만의 마녀 생활을 한껏 즐겨간다. 특히 하늘을 나는 연고 만들기를 준비하는 몇 달 동안은 점차 준비가 갖춰가는 만큼 둘의 소통도 늘어간다. 하지만 마녀라는 비현실적 요소를 매개로 한 관계, 스승 대 견습생이란 수직적 관계는 이 둘의 관계의 불완전함, 불안정함을 드러낸다. 이러한 불완전과 불안정의 절정 그리고 그것의 파열은 역설적으로 둘만의 비밀이 가장 깊어진, 하늘을 나는 연고를 만드는 그 날 그 순간에 일어난다. 연고의 재료인 두꺼비를 둘러싼 갈등. 결국 몇 달을 바래오던 둘만의 꿈은 깨어졌고, 울며불며 헤어진 둘은 각자의 상처에 쓰라려할 뿐 벌어진 서로의 거리를 좁히지 못한다. 하지만 분열과 파열은 그저 깨어지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깨어짐과 동시에 새로운 태어남. 분열이자 성숙. 한바탕 울먹인 이 둘은 그 울먹임의 시간을 발판으로 삼아 한층 더 싱긋한 소통으로 나아간다. 둘은 더 이상 비현실인 마녀란 매개를 필요로 하지 않으며 스승과 견습생이란 수직적 관계를 벗어나 동등한 친구 대 친구로 다시 맺어진다. 울며 이내 웃으며 한 계단을 오른 것이다.

모든 어른이 예뻐할 모범생도 아니고 중심에 서있지도 않은 아이들. 허나 교과서적으로 ‘훌륭하진’ 않되 그들 스스로의 마음에 진솔하도록 걸어나간 그들의 작고 소중한 성장기. 아이를 위함이란 거짓 핑계로 아이들을 일정한 틀로 찍어내려는 어른의 욕심. 부디 엘리자베스와 제니퍼, 이 둘의 성장기가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의 진솔한 목소리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게 하는 작은 깨달음이 되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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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9-25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못 봤어요. 코닉스 버그는 '클로디아의 비밀'과 '퀴즈왕들의 비밀'로 압도 당한 작가였어요.^^

Arm 2008-09-26 00:54   좋아요 0 | URL
아, 작가 이름만 보시고도 작품이 술술 나오네요- 찾아볼게요! 아동, 청소년 문학에도 관심이 가는 요즘이랍니다. ^^
 
늑대가 들려주는 아기돼지 삼형제 이야기 - 3~8세 세계의 걸작 그림책 지크 29
존 셰스카 글, 레인 스미스 그림, 황의방 옮김 / 보림 / 199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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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거꾸로 바라보기.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사고하기. 반대편에 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기.

이러한 태도는 첫째, 다양한 입장에 서서 생각해봄으로써 세상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주고 둘째, 폭 넓은 사고를 바탕으로 관행적 사고를 넘어 창의성을 발휘하게 해주며 끝으로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마음을 키워줌으로써 소모적 갈등을 이겨내고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인성을 길러준다.

책 ‘늑대가 들려주는 아기돼지 삼형제 이야기’는 앞서 언급한 태도들이 확연히 반영된 책으로서 책을 보는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이는 단순히 저자가 의도를 갖고 교훈을 전달하려는 것이 아니라 관념을 탈피한 낯선 입장을 보여줌으로써 아이에게 그저 생각의 계기를 던져줄 뿐, 낯섦을 받아들이고 헤쳐 가는 것은 결국 아이의 몫이 된다. 그러하기에 이 책의 교육적 의의는 한층 높아진다고 평할 수 있다.

이 책의 특징들을 각 대목별로 나누어 살펴보면 먼저 그림동화의 핵심인 그림, 무난한 그림의 구성과 그림체 중에서 유독 눈에 띄는 것은 아기돼지의 묘사다. 돼지가 귀엽고 연약하고 동정심을 불러오게 그려지지 않고 강인하고 어두우며 무서운 얼굴로 그려진다. 그런 무서운 아기돼지 앞에 선 늑대가 오히려 조금은 주눅 들어 보인다. 이 렇듯 강하게 제시된 낯선 돼지의 그림은 다르게 바라보기란 이 책의 의도를 십분 실현시켜 준다.

그리고 아기돼지를 잡아먹은 늑대가 건네는 말은 인상적이다. 늑대는 자기가 아기돼지를 먹는 것은 독자(책을 보는 아이)들이 치즈버거를 먹는 것과 똑같다고 말한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인 치즈버거를 앞세운 늑대의 이 말은 생존, 먹이사슬 등 생명에 대한 포괄적인 성찰의 단초가 되어줄 것이다.

또한 늑대는 셋째 아기돼지의 집 앞에서 경찰과 기자들로부터 오해를 받아 결국 탐욕의 살인자로 몰리고 감옥에 갇힌다. 이 대목을 통해 인권을 무시하는, 경찰로 묘사된 공권력의 횡포와 왜곡된 언론권력의 힘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란 생각을 이끌어내기가 아이들에겐 어렵겠지만 다른 사람들의 진심이 결여된 태도가 한 사람의 진심을 얼마나 짓밟을 수 있는가란 배움을 얻을 수는 있을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감옥 속의 늑대가 독자(아이)들에게 직접 질문을 건넨다. 할머니 생일을 축하할 케잌을 만들기 위해 아기돼지들에게 빌리려 했던 설탕. 늑대는 독자(아이)를 바라보며 그럼 너는 내게 설탕을 한 컵만 줄 수 있겠냐고 묻는다. 물음표로 끝맺은 이야기. 아이들은 늑대의 물음에 대답하기 위해 자연스레 스스로 생각하며 자신의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까.

아이들이 재밌게 읽고 볼 수 있으면서도 아이들의 내면에 작은 돌을 던져 어떠한 강압 없이 아주 자연스럽게 생각의 파장을 일으키기에 이 책 ‘늑대가 들려주는 아기돼지 삼형제 이야기’가 유독 특별하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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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9-25 2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님도 그림동화를 읽기 시작했나요?ㅎㅎㅎ
이 책 아이들이 굉장히 좋아해요~~ 마지막 설탕을 줄 수 있겠니? 란 질문에는 준다 못준다 말이 나뉘지요.^^ 대선을 앞두고 MB가 생각나서 리뷰를 올렸죠.^^

Arm 2008-09-26 00:56   좋아요 0 | URL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무언가 의미를 만들고 싶어.. 독서지도사 온라인강의를 들어보고 있어요.ㅎㅎ 덕분에 완전 무심했던 아동,청소년 문학에 살짝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앞으로 순오기님의 리뷰를 열심히 읽어볼 일이 늘어날 듯요♪
 
괜찮다, 다 괜찮다 - 공지영이 당신에게 보내는 위로와 응원
공지영.지승호 지음 / 알마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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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한국 출판계에서 처음으로 작품 세 권을 동시에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린, 2008년 한국 출판계에서 처음으로 소설과 산문 두 분야에서 모두 판매 1위를 기록한, 지금까지 총 18권의 책으로 통권 70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독자 대중의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가 공지영.

매달 <월간 인물과사상>의 메인을 가꾸고 있는, 장하준·우석훈·신해철 등 대한민국 파워 인터뷰이들과 인터뷰한 내용을 꾸준히 책으로 엮어온, 10년 동안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혼자서 묵묵히 인터뷰어의 길을 걸어온 어리석은(공지영씨의 표현)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

그러한 그가 그러한 그녀를 만났다. 그러한 그녀가 그러한 그에게 그녀의 이야기들을 솔솔 풀어낸다.


"확실히 공 선생님의 글은 비난받기 쉽게 되어 있다. 저울에 달면 무게가 많이 나가지 않을 것이다. 아예 공 선생님의 글이라곤 쳐다보지 않을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가슴 있는 자의 심장에 공 선생님의 글을 달아보면 심장이 터지고 마는 것을." - 어느 한 독자의 글

맞다. 가슴 있는 자의 심장을 터뜨리는 작가 공지영. 그녀의 글을 읽어봤고,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다소나마 아는 사람이라면 <괜찮다, 다 괜찮다>의 주요내용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금세 감 잡을 것이다. 아니, 그녀를 전혀 몰랐거나 이름만 들어본 사람이라도 그저 책표지를 찬찬히 살펴보는 것만으로 주요내용을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책표지에 펼쳐진 단어들, 위로, 응원, 괜찮다, 다 괜찮다.

<괜찮다, 다 괜찮다>는 총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장의 제목들이 참 재밌다. 마지막 두 장을 제외하고는 ‘즐거운 나의 집’,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등 각 장의 제목들이 공지영이 지금까지 써온 책의 이름들이다. 공지영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겐 잔잔히 독서의 추억을 불러일으키며 흥미와 기대를 더해준다.

각 장들은 제목의 책에 얽힌 이야기와 그 책의 주제를 위주로 인터뷰가 시작된다. 그러나 결코 그 제목의 틀 안에 얽매이는 딱딱함이란 없다. 그와 그녀의 이야기는 한정됨없이 풍부한 삶의 이야기로 나아간다. 소설을 쓸 때의 뒷이야기들, 문학이란, 그녀의 유년 시절, 학창 시절, 그녀의 결혼과 이혼, 그녀의 딸과 두 아들 이야기, 결혼·사형 등의 사회제도, 각종 문화, 종교관 등등. 심지어는 이명박이란 이름도 몇 번이고 언급된다! 그만큼 다양한 이야기들이 맛있게, 푸짐하게 차려져있다.

 

“저자를 만나 한 5시간은 엉덩이도 안 떼고 수다를 떤 기분이다.”

“왠지 읽고 있노라면 공지영과 깊고 깊은 대화를 나눈 듯 하다.”

위는 <괜찮다, 다 괜찮다>를 읽은 독자들의 평이다. 이와 같이 <괜찮다, 다 괜찮다>는 다정다감한 온기가 평안하게 다가온다. 이러한 따뜻하고 평온한 느낌이 이 책의 가장 큰 특징, 장점이 아닌가 싶다. ‘기자가 취재를 위하여 특정한 사람과 가지는 회견’이라는 다소 딱딱뻣뻣하게 들리는, ‘인터뷰’의 사전적 의미를 넘어선 이 책을 ‘인터뷰집’이라기 보다는 ‘대화집’으로 칭하는 것이 더 어울릴 것만 같다. 물론 책의 초점은 당연히 인터뷰이인 공지영에게만 집중되고 공지영의 삶의 이야기는 가득하되 지승호의 삶의 이야기는 들을 수 없기에 엄밀히 따지자면 우리가 생각하는 일상적인 대화와는 다를 수 있다. 허나 그만큼 이 인터뷰가 전해주는 느낌이 자연스럽고 훈훈하다는 말이다.

이렇듯 이러한 느낌의 인터뷰가 가능했던 이유는 물론 공지영과 지승호란 사람이 각기 지닌 인간적 품성과 매력에서 비롯될 것이다. 그렇지만 인터뷰라는 건 어디까지나 한 사람과 한 사람의 ‘만남’인 것. 공지영과 지승호, 그녀와 그가 품은 서로에 대한 진솔한 인정과 지지가 결국 이러한 따뜻한 인터뷰를 만들어 내지 않았을까. 물론 지금까지도 일반적으로 진솔하고 씩씩한 그녀, 겸손함이 깃든 깊이로 인터뷰이를 살려주는 그였지만 아무래도 <괜찮다, 다 괜찮다>에서는 그 맛이 한층, 한층 더하다. 그녀와 그의 인정과 지지를 느껴보자.

인터뷰할 때 성질 날 때가 있거든요. 말도 안 되는 질문하고. 우선 제일 중요한 것은 사실 관계인데, 그게 어긋날 때는 짜증나거든요. 그런 것 전혀 없이 너무 성실하게 해줘서 고마웠어요. 누가 그러더라고요. “지승호의 힘은 소같이 묵묵히 들이대는 물량의 힘일거야.” 그래서 “맞다, 정말 성실하게 조사를 해온다. 뒤늦게 꽃을 피워서 그렇지. 그게 정말 그 사람의 힘일 거야”라고 했어요. - 공지영

바쁜 스케줄 탓도 있겠지만, 인터뷰라는 형식에 대해 신뢰감을 갖고 있지 않아 망설이던 공지영 작가는 출판사의 제안에 한 달 정도 고민한 끝에 승낙했다. 거기에는 인터뷰어 지승호에 대한 신뢰감도 약간은 포함되었던 것 같은데, 그 점에 감사한다.
인터뷰를 준비하기 위해 그녀의 책을 읽었던 시간,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같이 이야기 나눴던 시간, 인터뷰를 정리하기 위해 녹취를 푸는 시간, 모두 행복했다. - 지승호

 

나아가 그는 이야기한다. 농담 반 진담 반, 독자들에게 이 책이 <즐거운 나의 집>,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에 이어 ‘위로 3부작’이 되었으면 한다고. 첫 번째가 소설, 두 번째가 편지 형식이었다면 이 책은 공지영이 독자들에게 직접 들려주는. 나는 마지막 책장을 조용히 덮으며 내 책장에 자리잡고 있던 <즐거운 나의 집>과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의 옆 자리에 나란히 이 책 <괜찮다, 다 괜찮다>를 꽂는다. 공지영의 ‘위로 3부작’이 책장에 꽂힌 모습. 고로 나는 즐겁고, 응원 받고, 괜찮다, 다 괜찮다.

그녀의 속삭임이 있기에 미숙하나마 나는 '오늘'을, '나'를 살아간다. 그녀의 삶에 감사드리고 그의 성실함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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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9-07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입해서 지금 책상 위에 있어요~ 밀린 책들이 많아서 '소금꽃나무' 다 읽고 곧 읽어야지요.^^

Arm 2008-09-26 00:47   좋아요 0 | URL
즐겁게 읽으셨나요? ^^ 저 '소금꽃나무'도 다 봤어요! 아.. 어찌 그리 엄숙하고 진중할 수가!

순오기 2008-09-25 20:22   좋아요 0 | URL
아~ 아직도 소금꽃나무에서 헤어나지 못했어요. 너무 버거워서 많이 읽지 못해요. 하루에 한 두 챕터만...그래도 꿈속에서 고문당하고 쫒기고 있다니까요.ㅜㅜ 보다가 꼭 봐야할 책들이 자꾸 들이닥쳐서~~ 10월이 오기 전에 끝내야죠.^^

Arm 2008-09-26 00:49   좋아요 0 | URL
소금꽃나무의 그 느낌... 뭐랄까... 계속 노력은 해보는데 아직 딱 절절한 표현을 못찾고 있어요. 노동자들의 삶, 투쟁을 조금이나마라도 더 가까이에서 느껴볼 수 있었네요. 다시금 감사드려요! ^^
 
괜찮다, 다 괜찮다 - 공지영이 당신에게 보내는 위로와 응원
공지영.지승호 지음 / 알마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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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승호의 다리놓기로 나눈 공지영과의 대화는 우리 마음을 꼬옥 안아준다 토닥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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