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 사계절 1318 문고 36
라헐 판 코에이 지음, 박종대 옮김 / 사계절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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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하게 돌출된 곱사등, 짧고 가느다란 막대기 같은 다리, 진흙 덩어리를 뭉쳐놓은 것처럼 작고 뭉툭한 발, 심하게 뒤틀린 발가락, 손아래 누이보다도 작은 몸집. 이런 몸으로는 걷는 것 조차 힘이 들어 휘청거린다. 그래서 손을 땅에 짚고 네 발 달린 짐승처럼 재빨리 땅을 기어간다. 주변 사람들에게서 ‘병신’ 취급을 받으며 스스로도 자신을 흉측하다고 생각하는 아이. 그 아이가 바로 이 책의 주인공인 열 살짜리 소년 바르톨로메 카라스코이다. 주변 사람들의 낯설고 차가우며 매섭기까지 한 눈빛에 너무도 익숙할 아이. 그런데 소설 속 세계에서도 이미 충분히 타인의 눈빛으로부터 상처받았을 그 아이에게 소설 밖 세계에 사는 내가 보내는 눈빛 또한 평범하고 곱지 못함을 깨닫고 깜짝 놀랐다. 아마도 내 의식 속의 기형에 대한 낯섦과 무의식적 공포. 이런 미안함과 불편함을 품으며 17세기 스페인의 한 거리에서 살아가고 있는 바르톨로메와의 낯선 마주침을 조심스레 이어가본다.

바르톨로메는 아버지, 어머니, 4명의 남매와 함께 한 시골 마을에서 살았다. 그런데 아버지가 수도 마드리드에서 공주의 마부로 일하게 되었고 따라서 가족이 마드리드로의 이사를 준비하게 된다. 하지만 ‘가족’은 ‘온 가족’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병신’ 바르톨로메를 떼어놓고 이사 가기를 바랐고 이를 알게 된 바르톨로메는 애처롭게 흐느끼며 자신도 데려갈 것을 간청한다. 결국 아버지는 승낙하였으나 단 조건이 붙었다, 이사를 가면 사람들 눈에 절대 띄지 않게 골방에만 있어야 한다는. 상처가 아무리 쓰라렸어도 아이는 가족의 일원일 수 있음이 기뻤다. 이사 간 새집, 누가 보기라도 할까봐 창문 근처에 가는 것조차 금지당한 바르톨로메는 감옥과도 같은 골방에 갇혀 홀로 나직이 흐느낀다. 가족 내에서까지 받아야 하는 소외는 한없이 서러웠으리라.

그러던 어느 날 그런 그 아이에게 얇은 희망이 비췬다. 바르톨로메와 같은 기형 난쟁이임에도 당당한 위풍으로 왕실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을 보고 온 형이 흥분하며 그 말을 전한다. 그동안은 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난쟁이도 업신여김을 받지 않으면서 능력을 펼칠 길이 있는 것이었다. 이내 아이는 집 근처의 수도원에서 글을 배우게 된다. 아버지 몰래, 형과 누나의 도움을 받아 빨래통에 몸을 숨겨 이동하면서. 바르톨로메는 넋을 잃을 정도로 글자 공부에 심취한다. 늘어가는 글자 실력과 함께 아이의 희망과 자존감도 자라났다. 그러나 희망이 한창 부풀던 그 때, 그만 큰 사고가 발생한다. 빨래통에 바르톨로메를 숨기고 성당으로 향하던 누나가 그만 빨래통을 놓쳐버렸고 언덕을 따라 쉼 없이 구른 아이는 공주의 마차 앞에서 널브러진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공주의 눈에 띈 아이는 그 길로 바로 공주의 장난감, 인간개로서 궁궐로 끌려간다. 기형을 가져 차별받고 업신여김 받던 ‘사람’에서 이제는 아예 공주의 개가 됨으로써 아이는 사람조차 아니게 된다. 공주에게 바르톨로메는 사람이 아닌 정말 개인 것이다. 아이는 개 의상을 입고 얼굴에 물감을 칠하고 ‘멍멍’ 짖으며 핥고 재롱을 부린다. 기형을 가진 존재에 대한 차별과 업신여김은 극에 달한다. 인간의 상실, 상실된 인간성.

그러나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이 완전히 짓뭉개져 버린 바르톨로메에게 다시금 희망이 찾아온다. 그가 개 분장을 위해 찾아가는 화실, 그 곳의 사람들은 아이에게 말한다, “물론이야, 너는 개가 아니야”. 바르톨로메를 온전한 한 인간으로 바라보고 따뜻이 말을 건네며 차분히 귀 기울여주는 화실 사람들. 그들은 아이의 기형을 무작정 기피하기 보다는 장애를 지녔다 할지라도, 아니 장애의 유무를 떠나 바르톨로메가 한 인간으로서의 재능과 능력을 충분히 발현할 수 있음을 가르쳐 준다. 아이의 그림에 대한 재능의 씨앗을 본 화실 사람들은 아이를 격려해주고, 이끌어준다. 결국 그들은 인간개와 진짜 개를 뒤바꾸는 마술을 통해 공주의 눈을 속여 바르톨로메를 인간개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해주었고 아이를 화실 식구로 맞이한다. 개에서 인간으로 즉, 기형이란 이유 하나로 무작정 차별받고 무시당하던 존재에서, 기형이 있더라도 가치 있고 소중한 존재로의 극적인 전환. 이는 책 속에서 그림 <시녀들>에 그려졌던 인간개 바르톨로메를 진짜 개로 고쳐 그리는 기막힌 상징으로 멋지게 표현되고 있다.

가정에서 공주의 방으로, 공주의 방에서 화실로 옮겨져 가는 바르톨로메의 삶의 여정을 함께 하면서 그 각 과정에서의 아이의 표정이 얼마나 달랐을지 너무도 확연히 그려진다. 각 과정의 가장 본질적인 차이는 아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받아들이고 있냐는 시각의 차다. 한 사람에 대한 무시가 그의 존재를 서러운 시궁창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고, 한 사람에 대한 온전한 존중이 그의 존재가 한없이 고양되도록 도울 수도 있다. 바르톨로메와의 마주침을 이어가며 기형, 더 넓게는 사회 비주류에 대한 나의 근거 없이 비뚤어진 시각을 새롭게 되돌아보게 되었다. 아이, 잠시나마 비뚤게 거부감을 갖고 바라본 점을 깊은 마음으로 사과하며, 현실의 수많은 바르톨로메들을 온전한 존중의 시각으로 대할 것임을 조심스레 약속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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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9-25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이네요~~~ ^^
이 책은 내가 읽은 사계절출판사의 1318문고 중에 최고였어요. 2006년 어머니독서회 토론도서로 추천했었죠. 우리 아이들도 굉장히 감동 먹은 작품으로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다시 찬찬히 뜯어보게 되었지요.

Arm 2008-09-26 00:51   좋아요 0 | URL
작가의 상상력의 과정을 따라가는 것도 즐거웠어요~ 그 그림을 보고 결국 이런 소설을 탄생시키다니요! 아, 전문가 순오기님께 '최고'수준이었다면 제가 잘 골라서 봤나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