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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가 마녀래요 - 2단계 ㅣ 문지아이들 6
E.L. 코닉스버그 지음, 윤미숙 그림, 장미란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0년 3월
평점 :
관습적인 잣대, 사회의 일반적 규범이 우리 사고에 미치는 영향력은 굉장히 크다. 우리의 일상들은 그저 그것들의 힘에 의해 이끌려 나아가기 쉽다. 이는 어른들이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착한 아이는 이래야 한다, 모범생은 저래야 한다, 이런 행동이 옳고 저런 행동이 그르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제공하는 ‘모범답안’은 이미 굳건하다. 우리는 그 답안을 그저 따를 뿐이다, 답안의 근원에는 그저 무관심한 채. 물론 규범과 관습의 긍정적 기능을 결코 무시하면 안되겠지만 그 역기능은 한층 더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규범과 관습의 일방적인 강요는 누군가에게는 충분히 깊은 상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어른들은 스스로에게 다시금 물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 아이들에게 모범답안, 중심만을 강요하느라 정작 우리 아이들을 더욱더 비모범으로, 주변으로 몰아세워가진 않았는지. 작은 상처를 혹 불어주고 아물게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상처 부위를 후벼댄 것은 아닌지. 그러하기에 착한 인물이 주인공이 되는 전형에서 벗어난, 어떻게 하면 중심이 아닌 주변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해 조곤조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이 책 ‘내 친구가 마녀래요’가 반갑다. 각기 갓 전학을 왔고, 교내에서 유일한 흑인인 이 책의 두 주인공은 외로움을 한줌씩 머금고 있다. 교내 연극에서 맡게 된 배역이 각기 공주의 개와 청소부였다는 내용은 이 두 주인공이 중심이 아닌 주변에 서있는 아이들임을 명백히 보여준다. 오히려 그러하기에 이 소설은 한층 더 현실적으로 그리고 따스하게 다가오는 게 아닐까.
소설은 마녀처럼 행동하는 제니퍼와 그의 친구가 되어 마녀 수업을 받기로 한 엘리자베스가 함께 엮어 가는 일들을 보여주며 그 과정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의 우정을 그려낸다. 엘리자베스와 제니퍼는 본격적인 마녀 수업을 시작하며 둘만의 비밀스런 세계를 만들어 간다. 도서관을 들락거리며 마녀에 관련된 책들도 읽고, 날계란과 생양파 따위의 음식을 먹고 비밀스런 쪽지를 주고받으며 둘만의 마녀 생활을 한껏 즐겨간다. 특히 하늘을 나는 연고 만들기를 준비하는 몇 달 동안은 점차 준비가 갖춰가는 만큼 둘의 소통도 늘어간다. 하지만 마녀라는 비현실적 요소를 매개로 한 관계, 스승 대 견습생이란 수직적 관계는 이 둘의 관계의 불완전함, 불안정함을 드러낸다. 이러한 불완전과 불안정의 절정 그리고 그것의 파열은 역설적으로 둘만의 비밀이 가장 깊어진, 하늘을 나는 연고를 만드는 그 날 그 순간에 일어난다. 연고의 재료인 두꺼비를 둘러싼 갈등. 결국 몇 달을 바래오던 둘만의 꿈은 깨어졌고, 울며불며 헤어진 둘은 각자의 상처에 쓰라려할 뿐 벌어진 서로의 거리를 좁히지 못한다. 하지만 분열과 파열은 그저 깨어지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깨어짐과 동시에 새로운 태어남. 분열이자 성숙. 한바탕 울먹인 이 둘은 그 울먹임의 시간을 발판으로 삼아 한층 더 싱긋한 소통으로 나아간다. 둘은 더 이상 비현실인 마녀란 매개를 필요로 하지 않으며 스승과 견습생이란 수직적 관계를 벗어나 동등한 친구 대 친구로 다시 맺어진다. 울며 이내 웃으며 한 계단을 오른 것이다.
모든 어른이 예뻐할 모범생도 아니고 중심에 서있지도 않은 아이들. 허나 교과서적으로 ‘훌륭하진’ 않되 그들 스스로의 마음에 진솔하도록 걸어나간 그들의 작고 소중한 성장기. 아이를 위함이란 거짓 핑계로 아이들을 일정한 틀로 찍어내려는 어른의 욕심. 부디 엘리자베스와 제니퍼, 이 둘의 성장기가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의 진솔한 목소리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게 하는 작은 깨달음이 되어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