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2disc)
임순례 감독, 엄태웅 외 출연 / KD미디어(케이디미디어)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 스포일러 경고 *

   요즘 핸드볼이 뜨겁다! 지난 여름 올림픽 아시아 예선에서의 ‘억울한’ 판정시비 이후 어렵사리 성사된 재경기 결정, 그 재경기에서 남·녀팀 모두 ‘숙적’ 일본을 ‘완파’하고 거두어낸 ‘짜릿한’ 승리. 값진 베이징 올림픽 진출권 획득. 이와 함께 적절한 시기에 등장한 핸드볼 소재의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하 우생순)’은 핸드볼 열기의 불씨이자 기름이 되어 극장가에서 한창 활활 타오르고 있다. 요즘만 같아라, 풍년이다, 우리 핸드볼! 

  개봉 이후 연이어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며 400만 관중을 돌파한 ‘우생순’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명승부 끝에 아쉽게 은메달을 획득했던 여자 핸드볼 국가대표 선수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만들어졌다. 문소리, 김정은 이 두 주연의 캐스팅만으로도 영화에 무게와 기대가 적지 않게 실리기는 하지만 무엇보다도 (비록 많지 않은 사람에게 일지라도) 영화의 무게감과 기대치를 풍족케 하는 건 바로 임순례 감독의 작품이라는 점이다. 영화 ‘세 친구’, ‘와이키키 브라더스’등을 만들어 온 임순례 감독은 줄곧 이 세상의 비주류들에게 카메라 앵글을 맞추고 그들의 고단한 삶 속에서의 얕은 달콤함과 진한 애틋함들을 진솔하게 그려왔다. 그런데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 것일까, 그간 비주류를 줄곧 그려왔던 그녀 역시 냉철한 영화‘시장’에서는 비주류로 머물 수밖에 없었다. (뜨거운 열정과 진심으로 땀 흘리고 있더라도 훨씬 더 소외된 감독분들께는 임순례 감독을 ‘비주류’라 부르는 것이 죄송하다만...) ‘우생순’의 홍보시 영화의 수월한 흥행을 위해 예고편에 감독의 이름을 아예 배제시켰었다는 이야기는 왠지 좀 서글프다. 마치 ‘우생순’이 가난하고 촌스러운 엄마가 부끄러워 학교에 오지 못하게 하려는 철없는 아이같아 보이기도 한다. 우리는 그런 마음을 먹은 아이를 탓해야 할까, 그런 마음을 먹게끔 만든 사회 환경을 탓해야 할까. 

  영화는 올림픽 2연패의 주역이었던 금메달리스트 미숙(문소리)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여자 핸드볼 국가대표팀의 몇 달여간의 올림픽 여정을 그리고 있다. 팀의 갈등과 불화, 형편없는 실력. 그러한 위기를 극복하고 더욱 굳게 똘똘 뭉치게 된 팀. 결국 이루어낸 (아쉬워도) 뛰어난 결실. 영화의 기본 이야기는 이렇듯 여느 명랑 스포츠 만화의 구조와 같이 참 단순하고 그저 평면적으로만 감동적이다. 그래서, 식상하다. 그래서, 올림픽 본선에서의 숨가뿐 경기 장면과 장엄한 배경음악의 조화 속에 가슴이 뭉클하다가도 이내 내가 왜 뭉클해야하나? 의구심이 솟는다. 

  덩달아 혜경(김정은)의 감독대행일 때와 선수일 때의 팀원들을 대하는 태도의 엄청난 차이, 서로 이빨로 물어뜯고 입술로 헐뜯던 팀원들 간의 급속도로 해소된 갈등과 끈끈해진 유대, 대표팀 감독 승필(엄태웅)과 선수들 간의 극심한 반목과 몰이해에서 상호존중과 배려로의 전환, 혜경이 미숙에게 건넨 “넌 핸드볼을 위해 태어난 최고의 선수니까.”란 너무도 명랑 만화틱한 부자연스러운 대사, 혜경과 승필의 억지스런 사랑의 피어남 등 껄끄러운 문제들이 끊임없이 피어오른다. 이렇듯, (철저히 나의 기준, 나의 판단이지만) ‘우생순’은 인기영화는 될지언정 결코 훌륭한 영화는 못된다. 

  그렇지만 이러한 나의 평이 결코 ‘우생순’의 모든 것은 아니다. 앞서 밝힌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의미들은 영화 곳곳에서 콕콕 박혀있다. 우리가 너무도 쉽게 생각하듯 화려한 부와 명예 속의 금메달리스트란 착각과는 달리, 미숙은 남편의 빚과 소속 실업팀의 해체로 비루한 현실 속에서 생계를 유지하기위해 핸드볼 유니폼이 아닌 마트아줌마의 앞치마를 두르고 코트가 아닌 마트를 고단하게 뜀박질한다. 그녀가 아테네 올림픽 대표팀에 선뜻 합류하지 못한 결정적인 이유도, 결국 합류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도 어쩔 수 없이 돈 문제때문. 그녀의 지금까지의 ‘평생’을 올곧이 바쳐온 핸드볼, 국가대표란 명예도 불안한 생계유지와 흔들리는 가족의 부양 앞에선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했다. 꿋꿋하고 되도록 담담하게 현실을 헤쳐가려는 그녀의 어깨가 퍽 무거워 보인다. 그녀의 점프슛은 통쾌하기에 앞서 무표정스럽다. 골이 터지는 것이 아니라 애써 억누르며 쌓아둔 다른 무언가가 터질 것만 같다. 사회적 약자를 생산함으로써만 존립 가능한 고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비주류로 밀려난 ‘아류들’의 고단함, 솟아남이 없는 혼신의 발버둥. 돈 신의 악력에 사로잡혀버린 삶. 미숙의 삶은 우리 사회의 현실을 투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 외에도 관중도 응원도 없는 썰렁한 경기장에서 핸드볼큰잔치 우승(그들만의 우승)을 하고 그 순간 바로 소속 실업팀 해체를 겪어야하는 열악한 한국 비주류 스포츠계의 현실, 자율적 자발이 아닌 자발을 빙자한 타율과 규제 속에 기계처럼 운동선수들을 관리하는 태능선수촌의 현실, 경기력 유지를 위해 피임방지약을 과다 복용하여 불임 증상에 이른 사례와 여성 운동선수에 대한 편견 등을 통한 한국 여성 스포츠 문화의 취약함, 국제대회에서의 단기적·고성적만을 중시하는 체육협회의 근시안적이고 저급한 사고 등 ‘우생순’이 날카롭게 던져주는 현실의 모습들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거리와 의미들을 선물한다. 

  자, 여기까지는 철저하게 나의 주관적인 ‘우생순’ 바라보기였고, 끝으로 ‘우생순’에 감동하고 눈물 훔쳤던 수많은 이들에게 말을 한번 건네려고 한다. 여기저기에서 관객평을 훑어보았을 때 관객 모두가 감동한 것은 아니지만 분명 많은 이들이 가슴저려했음은 알 수 있었다.

  당신은 영화의 어느 장면에서 가슴이 뭉클하셨나요? 눈물이 흐르시던가요? 아, 네, 그 장면이라고요? 그렇죠. 저도 그때 마음이 얼마나 찡해지던지요. 다른 많은 분들도 거기서 눈물이 날 정도였다고 이야기하던걸요. 참 마음 아프면서도 찡하고 가슴 얼얼한 영화라고 기억하시겠네요. 그렇죠? 아, 그런데 여기서 커다란 의문 하나! ‘우생순’을 보며 가슴 아파하고 눈물 흘릴 정도의 당신의 그 떨리는 감수성이라면 영화 ‘웰컴 투 동막골’과 ‘화려한 휴가’를 보면서도 분명 가슴이 젖어오셨을텐데요, 제 예상이 맞나요? 아, 역시 그러셨군요. 그렇다면 이렇게 사람냄새나는 당신은 그 저릿함과 젖어듦으로부터 무엇을 길어올리셨나요? 과연 어떠한 의미를 다듬으셨나요?

  ‘웰컴 투 동막골’을 통해 북한을 바라보는 눈을, 통일에 대한 시각을 재정립해보셨나요? ‘화려한 휴가’를 통해 우리 현대사의 아픔에 공감하고 5·18에 얽힌 비극과 희망의 두 갈래가 오늘날 어떻게 이어져오고 있는지 생각해보셨나요? ‘우생순’을 통해 비인기 종목 스포츠 선수들의 고난에 잠시라도 동참하셨다면 올림픽과 같은 빅 스포츠 이벤트 때에만 그 비인기 스포츠에 목 터져라 열광하던 자신의 일면 괴상한 모습을 되돌아 보셨나요?

  일본에는 아우슈비츠, 홀로코스트에 관련된 서적들이 참 다양하고 많다고 합니다. 그러한 주제의 책들이 일본인들에게 활발히 읽히고 있다고 하네요. 그런데 그럼에도 그 많은 일본 독자들이 아우슈비츠와 홀로코스트에 대한 주제를 일본이란 자신들의 국가의 역사와 현실에 조금도 연계시켜 생각하지 못함이 너무도 의아스럽고 걱정스럽다고 지적한 재일조선인이 있었습니다. 아우슈비츠, 홀로코스트에 버금갈 역사적 만행을 저리른 과거가 있고, 그 과거를 오히려 은폐하고 미화하려는 현실이 엄연히 존재하는데 그 일본인들에게 책의 내용은 그저 활자로서만 존재했을 뿐, 현실로 길어올려지지 못한 것입니다. 보기에 안타깝죠? 일본인들, 왜 그 사람들은 그런 책을 활발히 읽으면서도 반성하지 못하는 걸까요?

  그런데요 이와 똑같은 안타까움을, 이와 똑같은 질문을 당신에게도 드리고 싶네요. 당신, 왜 그런 영화들을 보며 눈물까지 훔쳐놓고서 왜 자기 머리로 더 생각하고 현실의 체로 영화의 감상을 걸러내지 못하는 건가요? 


  변하지 않았다. 내 눈에는, 무엇도 변해보이지 않는다. 수백만의 사람들이 ‘웰컴 투 동막골’, ‘화려한 휴가’, ‘우생순’을 보며 감동에 젖었어도 무엇도 변하지 않았다. 북한, 통일에 대한 사고의 경직성과 우리 현대사에 대한 심각한 무지, 사회적 약자의 고단한 처지와 비주류 스포츠 종목의 취약한 기반, 국가주의·민족주의에 매여 매번 폭발하는 올림픽의 열광은 그저 그대로이다. 앞서 말한 일본인들에게 그 책이 그저 책이었듯이 우리들에게 그 영화들은 그저 영화였을 뿐. 우리가 느꼈던 가슴 뭉클함은 그저 스크린 속 가상세계, 가상인물들의 고난에서 비롯된 것일 뿐, 우리는 그저 푹신한 극장 의자에 몸을 맡긴 채 팔짱을 끼고 관망한다. 영화를 보며 젖어든 당신의 감성에 나는 ‘위선’이란 판결을 단호히 내려도 될까? 때론 위선이 악보다 악한 것을 수도 있지 않을까? 아, 우리에게 치열히 요구되는 것은 떨리는 감성이란 희망을, 그 ‘위선’을 ‘선’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자신을 되돌아봄의 노력이다. 

  맞다, 요즘 핸드볼은 뜨겁다! 요즘만 같아라, 풍년이다, 우리 핸드볼!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지않아 보릿고개는 어김없이 찾아올 것이며 ‘우리 핸드볼’은 다시금 ‘빵구’날 정도로 주린 배를 움켜잡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의 차가운 무관심 속에서 아사할 것이다. 우리들은 위선자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감독: 임순례,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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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 초회 한정판 (3disc) - 본편+부가영상+OST+엽서 4종
허진호 감독, 황정민 외 출연 / KD미디어(케이디미디어)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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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일러 경고 



오늘 영화 <행복>을 봤다! 아, 개봉 당시 그렇게나, 정말 정말 그렇게나 보고 싶었는데... 기어코야 오늘, 드디어 <행복>이 출시된 것이다! 밤샘 당직 근무의 여파로 침대에서의 잠이 너무도 간절한 절박의 시각이었으나 잠에 대한 욕심이 <행복>에 대한 설렌 기대를 누르지 못함은 당연지사였다. 자자, 숨죽인 가운데 숨가쁘게 플레이버튼이 눌리고, 드디어 시작이다~

여기저기에서 들어왔던 얘기대로, 영수(황정민)는, 나빴다, 못됐다, 지독히 이기적이었다. 영수는 은희씨를 배신한다. 배.신. 이 두 음절 속에 담긴 그 잔인한 칼날. 배신에는 엄연히 가해자-피해자의 구조가 설정되어지게 마련이다. 가해자와 피해자, 각기 아픔의 색상이 다를지언정, 즉 가해자 또한 마음의 상처를 입을지언정 가해자와 피해자간의 아픔의 깊이 차는 감히 비교할 수가 없다. 칼로 베는 사람의 고뇌와 칼에 베이는 사람의 고통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이미 ‘배신’만으로 피해자 측은 비틀거리게 된다. 그런데, 은희(임수정)씨는 어떠한 사람인가? 폐병과 8년이라는 긴 시간을 싸워오며 늘 죽음을 목전 가까이 생각하고 있는 사람, 누군가의 보살핌이 정서적일뿐만이 아니라 신체적으로도 필히,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사람, 그러한 자신에게 오래도록 안정적인 환경을 보장해주던 ‘희망의 집’을 영수와 함께 꾸려갈 희망을 좇아 박차고 나온 사람, 이렇게 말해버리면 은희씨에게 미안하지만, 약한 사람. 그러하기에, 은희씨가 그러한 사람이기에 영수의 배신은 더욱 아프고 아리게 다가온다. 싸한 아릿함. 은희씨의 비틀거림의 진폭이 걱정되어 내가 먼저 쉬이 좌절해버릴 것만 같다.

또한 아픔의 수용과 치유를 더욱 어렵게 하는 건 배신의 과정에 있다. 영수는 배신의 과정 속에서 비열하고 소심하고 파렴치한 모습을 보인다. 본인의 마음속에선 이미 은희씨에 대한 감정이 정리되었음에도, 아니 적어도 은희씨와의 관계에 대해 결심을 굳혔음에도 불구하고 영수는 은희씨 앞에서 그저 전전긍긍하기만 한다. 그러한 서늘한 고백의 용기를, 과중한 부담을, 목젖의 찢어짐을, 터질 듯 한 눈물을, 그러한 잔인한 책임을 은희씨에게 떠넘기려고만 한다. 그저 슬슬 눈치만 보며, 그저 쌀쌀 눈치만 주며. 결국 헤어지자는 말을 입 밖으로 먼저 꺼낸 사람은 은희씨가 되고 만다. 오, 할렐루야! 이런 기적이! 이로써 가해자와 피해자의 역할이 뒤바뀌었다(물론 얼핏 외관상만으로의 뒤바뀜이지만.)! 영수는 아마도 그런 생각으로 자위했을 것이다. 물론 영수도 마음 아팠겠지, 잠 못 이루고 마음 속으로 눈물을 흘렸겠지. 허나 그는 은희씨의 상처, 아픔, 눈물을 생각하기에 앞서 본인이 상처를 덜 받기만을 일순위로 바란 것이다. 본인이 상처를 덜 받음으로써 은희씨는 상처를 그만큼, 아니 그 이상 더 받을 것임에도... 이렇게 그의 배신은 고차원의 배신으로 승격되고야 만다.

아, 그러나, 그러나 어찌하랴. 과연 어찌할 수 있을까. 낭만적 사랑이란 것의 불완전한 속성을, 인간이란 존재의 불완전한 속성을, 한껏 꿈을 꿀 수는 있으되 늘 꿈과 현실 간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괴리를, 우리의 사랑이 한껏 빛나고 영원하리라 믿는 ‘꿈’과 사랑이 시간을 타고 시들시들 변해만가는 엄연한 ‘현실’의 차이를.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영화 ‘봄날은 간다’ 중)라고 간절히 외칠 수는 있지만, 사랑은 어떻게 변한다. ‘꿈’의 눈으로 영수를 볼 때엔 속 시원하게 비판하고 비난하기는 쉽지만, ‘현실’의 눈으로 영수를 볼 때엔, 과연 어떠할까. 앞서서 난 꿈의 눈을 통해서는 영수를 마구 비난했지만, 현실의 눈을 통해서는 그를 마음 놓고 욕하고 때릴 용기가 차마 솟질 않는다. 현실의 사랑에 있어서는 나 또한 그와 같이 배신하고, 믿음을 짓밟고, 지독히 이기적이고, 충분히 비열해질 수 있음을, 그러한 가능성을 가득품고 있다는 ‘현실’을 감히 부정할 수 없기에. 현실의 사랑에서는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 있으므로. 인정하긴 싫더라도. 남을 향해 손가락질을 할 때에 결국 세 손가락은 나를 가리키고 있듯, 영수를 향한 손가락질은 결국 나 자신, 우리 자신에게 닿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러한 맥락에서 난 은희씨를 떠나간 영수가 영화에서처럼 현실에서 흔들리고 무너져내리기보다는 그의 클럽 사업을 통해 노후 자금 4억7천만 원을 문제없이 모아가고 그의 ‘애인’과 고도 자본주의화, 도시화된 풍족하고 사치스런 일상을 착실히 꾸려가며 가끔씩, 아주 가끔씩만 은희씨를 떠올리고 걱정하며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는 영수의 모습을 그려보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어쩌면 그러한 영수의 모습이 우리의 현실을 더욱 차갑게 꿰뚫을 수 있지 않을는지, 관객의 가슴을 더욱 서늘하게 관통하지 않을는지......





그나저나 영수가 떠나간 후 은희씨는 어떻게 살아갔을까, 하루 이틀 한 시간 두 시간을 어떻게 꾸려나갔을까. 영화에서는 그러한 은희씨의 모습을 확인할 수가 없었다. 영수가 은희씨를 떠나간 후 영화는 줄곧 떠난 영수의 삶만을 조명한다. 은희씨의 일상에 대한 궁금증이 너무 커 가슴이 먹먹했었다. 그런데 불현 듯 영화 초반부에 은희씨가 영수에게 건네던 말이 떠올랐다. “우리 같이 살래요? 나중에야 어떻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럼 그때 헤어지죠, 뭐.” 그러한 담담함. 현실에 대한 용기를 수줍게 허나 당차게 담아둔 그런 담담함. 바람 한 줄기에도 쉽게 흩어져버릴 사랑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 자, 그럼에도 그 사랑을 붙잡으려는 자. 조제(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 중)는 알지만 피하지 않았다. 혹시 은희씨도 조체처럼, 알지만 피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영수가 떠난 후의 은희씨에게, 츠네오가 떠난 후 홀로 담담하게 전동 휠체어를 타고 거리를 나아가던 조제의 뒷모습을, 살기위해 홀로 담담하게 반찬을 만들어가던 조제의 뒷모습을 그려보는 건, 그저 나의 낭만적인 기대일까.

지금껏 은희씨에겐 ‘씨’라는 존칭을 붙이고 영수에겐 ‘씨’라는 존칭을 붙이지 않았다. 은희씨에게 보내는 ‘씨’에 존중과 위로를 담고 싶었다, 존중과 위로와 응원을. 은희씨, 부디...... 아, 고백하자면 실은 영수에게도 줄곧 ‘씨’자를 붙여왔다, 그럴지도 모른다, 다만 생략했을 뿐. 다만 영수에게 붙였던 ‘씨’는 은희씨에게 보낸 ‘씨’와 다르다. 영수의 ‘씨’는 못마땅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을 때 내뱉는 말, 씨. 나에게도 내가 ‘씨’자를 붙여준다면, 과연 어떤 ‘씨’를 선택하게 되려나. 나 또한 영수처럼 현실 속에서 현실은 어쩔 수 없다는 말과 함께 나 스스로에게 영수의 ‘씨’자를 붙여가는 삶을 살아가려나, 그런 삶을 만들어가고 있으려나,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은 어떠할까,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당신은 당신에게, 당신의 사랑에, 당신의 삶에 어떠한 ‘씨’를 붙여줄 수 있나요? 묻고싶다, 내 가슴이 먹먹해오는 그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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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7-02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뭉클한 감상 후기에요. 영희씨가 숨이 멎을만큼 달리고 달려 쓰러져 몸부림 치던 장면...그리고 돌아와서 헤어지자고 말하죠. 영수를 보내고 오열하던 장면도~~~ 정말 먹먹하죠. 영희에겐 그겐 사랑이고 행복이었죠. 사랑하는 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것이...

Arm 2008-07-01 23:38   좋아요 0 | URL
아, 말씀하시니 영화 장면들이 뭉글뭉글 가득 떠오릅니다. 아무래도 다시 한번 봐봐야겠어요. 은희씨-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