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영어 사교육 - 영어 사교육 불안에 지친 부모들을 위한 필독서
어도선 외 지음 / 시사IN북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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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교육의 욕망이 활활 불타오르는 이곳. 채워지지 않은 욕망은 세대에 세대를 타고 전해지나 보다. 우리 어머니를 보면 딱 그렇다. 자식 하나 '성공'시켜보겠다며 본인 인생을 갉아 자식 교육에 올인했다. 허나 결국 '엘리트'가 되지 못한 자식. 그에 대한 한이려나. 어머니의 욕망은 이제 가능성 없어진 아들을 떠나 새로운 가능성인 손자를 향한다.

아직 돌도 안 지난 손자를 향한 어머니의 말. 

"영어 유치원 어떠니? 비싸도 영어 유치원 보내야지! 영어 유치원 보내는 철수네를 봐봐. 달라 달라~ 역시 영어는 어릴 때 배워야 돼."

자식사랑이라며 뼈 빠져라 (시험) 공부 뒷바라질하던 모습이 반복된다. 그냥 웃으며 답한다. 

"영어가 뭐 중요한가요. 영어야 나중에 필요를 느낄 때 배우면 되는 거지." 

어머니는 답답한 듯 되묻는다. 

"그렇게 니 마음대로 가르쳤다가 애가 뒤처지면 어떡할 거니!"

하긴, 그렇기도 하다. 아이가 우리집 울타리 안에 있을 때야 영어, 몰라도 상관없다. 허나 아이가 자라 초등학교에 간다 생각하면 스멀스멀 걱정되기도 한다. 다수가 영어를 우월한 자본으로 삼는 곳에서 영어를 못하는 소수는 열등감을 느낄 수밖에 없지 않을까. 나야 우리 아이가 영어를 공부할 시간에 한글과 더 친해지거나 그냥 뒹굴뒹굴 즐겁게 놀길 바라지만, 내심 불안함도 생긴다.

영어는 일찍 시작하면 시작할수록 좋다. 그래야 우리말 배우듯 자연스럽게 영어를 습득할 테니까. 어머니의 조급함도 나의 불안함도 이 '사실'에서 비롯된다. 유창한 영어발음을 위해 혀 수술까지 시킨다는 것은 일부의 괴상한 얘기일지 모르나, 뱃속 아기에게도 영어동요를 틀어주고 자녀에게 영어동화책을 읽어주고 유치원에 영어원어민이 상주하길 선호하고 여건만 되면 영어유치원에 보내고 싶은 건 절대다수 부모들의 마음인 것 같다. 

난 겉으론 '영어에 뭘 그리 호들갑을…'이라 말하지만 아이가 영어를 습득할 이 결정적 시기를 놓치게 하는 건 아닐까 걱정되기도 하다. 가만있자, 그런데, 이게 무슨 말인가! 

"조기 영어교육은 과학적 근거가 없고, 영어 몰입 교육은 우리 한국적 상황에서 적용할 방식이 아니다."

"영어교육만큼 우리 사회에 미신과 허위 그리고 잘못된 정보가 판치는 분야도 드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이라는 것이 때로는 허구인 경우가 많습니다."(이병민 서울대학교 영어교육과 교수)

"조기 영어교육의 효과에 대한 오해와 환상"이라니! 조기 영어교육의 효과를 정설로만 믿고 있었는데! 책 <굿바이 영어 사교육>이 내겐, 충격으로 다가왔다. 

물론 조기 영어교육을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지만 이런 주장은 "수많은 연구들을 잘못 해석한 결과"라 말하고 있다. 소위 영어는 일찍 배울수록 좋다는 우리의 생각은 영어습득에 결정적 시기가 있다는 믿음인데, 그 "결정적 시기 가설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이루어진 많은 연구들은 거의 대부분 미국에 이민 간 이민자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일상생활에서 영어가 거의 사용되지 않는 우리나라와 같은 환경에서 이루어진 연구는 없"다고 한다. 

"영어 학습과 관련한 결정적 시기 가설을 다룬 연구들은 어떤 시기에 배웠을 때 원어민이 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질문과 관련이 깊습니다. 따라서 이런 종류의 연구는 대부분 미국과 같은 영어권에서나 가능한 실험이며, 우리나라와 같은 조건에서 조기에 영어를 배운다고 해서 원어민과 같은 능력을 보여줄 사람은 찾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런 종류의 실험이나 연구를 하지 않는 것이죠. 물을 가치가 없는 질문이라는 생각입니다." (이병민 교수) 

실은 조기 영어교육의 효과를 뒷받침할 제대로 된 연구도 과학적 근거도 없었다니, 정말 우리가 믿고 있던 상식이 허구였던 걸까.

조기 영어교육의 효과에 관한 근거는 아직 없다는 데에서 나아가 이 책에서는 조기 영어교육의 효과 없음을 말한다. "현실은 어린아이들이 아무리 일찍 영어를 배우고 영어에 노출된다고 해도, 영어를 자신의 언어로 만들기 어려운 조건"이란 것이다.
   
언어를 자연스레 습득하기 위해선 "일상에서 엄청난 양의 언어 환경에 노출되어야"하고 "주변 사람들과 구체적 현실에서 무의식적으로 수많은 의미 있는 상황에 접해야" 가능한데 우리나라와 같은 조건에서는 그렇게까지 영어를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영어 환경에 대해 조금만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아이들은 '영어 울타리' 안에서 시간을 보내지만 우리 아이들은 '한국어 울타리' 안에서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비유하자면 애써서 영어라는 씨를 뿌리지만 이 씨가 뿌리를 내리고 꽃을 맺기엔 환경이 너무 척박해 결실이 없는 것입니다." (김승현 영어사교육포럼 부대표)

아무리 영어유치원에 보내고 영어캠프에 보내도 결국엔 '영어 울타리' 안이 아닌 '한국어 울타리'안이다. 아무리 해도 영어란 언어에 노출되는 양과 질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주변에서 어린 시절에 우리나라에서 영어를 배워서 성인이 될 때까지 우리나라에 살면서 원어민처럼 되었다는 사례가 있으면 한번 찾아보"려 해도 없다. 많은 부모들이 조기 영어교육에 발을 동동 구르지만 "한마디로 별 효과도 없이 부모와 자녀 모두 지치기만 할뿐"이라는 것이다. 

"반복해서 강조하지만 언어를 사용하는 환경이 다르면 당연히 목표 언어를 학습하기 위한 전략과 방법도 달라져야 합니다. 미국이나 필리핀, 인도처럼 영어를 일상적으로 접할 기회가 많은 나라에서는 영어를 배우는 '시작 시기'가 중요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와 같은 환경에서는 일찍 시작하는 것보다 오히려 충분히 모국어가 발달되고, 이해력과 인지 수준, 영어 학습에 대한 동기가 어느 정도 갖춰졌을 때 시작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시작 시기'는 중요한 변수가 아닌 것이죠." 

"겨우 짝짜꿍이나 할 때부터 영어를 몇 년씩 접했다고 해도 그 기간 동안 얻을 수 있는 영어 실력을 초등 1~2학년 정도에는 6개월 정도면 충분히 습득할 수 있습니다. 초등 1~2학년에 6개월 정도 걸린다면, 3~4학년 때에는 2~3개월이면 될 테고요. 이는 상식이 있는 어른이라면 조금만 생각해봐도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김승현 부대표) 

물론 "조기에 영어 교육을 시키는 것은 영어를 배울 수 있는 시간을 조금 늘려주는 효과"는 있겠지만 단지 그뿐. 그래서 "오히려 인지적으로 성숙한 시기에 집중적으로 영어를 배우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게 이 책의 주장이다. 


아, 책을 읽다보니 큰 위안이 된다. 단순하게는 아이를 영어유치원에 보낼 이유가 없어졌다. 우리아이를 영어유치원에 못 보내 혹은 그에 상응하는 조기 영어교육을 못시켜서 괜스레 미안해하고 마음 걸릴 일이 없어졌다. 

조기 영어교육에 얽힌 불안은 무지에서 비롯됐었고 이제 이 책을 통해 불안을 넘어서고 있는 듯하다. 손자를 영어유치원에 보낼 꿈을 꾸고 계신 우리 어머니에게도 이 책의 내용들을 차분차분 설명드리려 한다. 어머니도 나도 자녀교육에 대한 욕망을 지혜로운 방향으로 돌리는 길을 조금은 더 알게 되리라.

이 책은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개최한 '행복한 영어학교' 강좌를 모아둔 책이다. 따라서 위에 적은 내용 외에도 영어 사교육에 대한 풍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조기에 영어를 배우면 발음은 원어민처럼 되는지, 뇌과학적으로 조기 영어교육은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좀 더 현명한 영어공부법은 어떤 것일지, 영어책을 어떻게 읽히고 영어도서관은 어떻게 활용할지 등등. 

영어 사교육에 불안하고 지친 부모라면 이 책을 만나보길 강력히 권하고 싶다. 판단은 각기 다르겠지만, 내게 그랬듯 자녀를 키우는 여정에 위안과 용기를 얻는 앎의 만남이 되길 소망한다.



('오마이뉴스'에 송고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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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을 위한 네 글자
이인 지음 / 단한권의책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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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쭙잖은 위로,계발서와는 다르다. 진솔하다.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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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 살며, 생각하며, 배우며
이인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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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하면서도 편안한 글, 한국의 알랭드 보통.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의 메시지를 쉽게 풀어쓴듯 한, 진짜 사랑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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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트윌리엄의 이발사
웬델 베리 지음, 신현승 옮김 / 산해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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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에 가장 아름다운 마지막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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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왼쪽에서 가장 아래쪽까지 - B급 좌파 김규항이 말하는 진보와 영성
김규항.지승호 지음 / 알마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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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성찰의 용기를 얻다!! 진보와 영성의 조화, 그것이 나의 행복이자 세상의 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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