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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재단
시마모토 리오 지음, 김난주 옮김 / 해냄 / 2020년 6월
평점 :
처음에 이 책의 제목을 봤을 때, 조금 의아했다. "재단"이라니, 설마 내가 알고 있는 그 단어인 "재단"을 말하는건가하고 말이다. 책 내용을 읽어보니, 책을 재단한다는 의미였다. 일본에서는 책등을 잘라내고 책장을 스캔해서 보관하는 방법이 비교적 널리 알려져있는 듯 했다. 그런데 책을 무척 좋아하는 나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책을 자르다니, 그것은 책의 생명을 끝내는 일이나 다름없다. 그런 일을 서슴지 않고 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책으로 나오다니, 조금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사실 책 재단이 이 책의 주요 내용은 아니다. 우연한 기회에 책을 재단하게 되면서 주인공이 겪는 일들을 주로 다루고 있다. 주인공은 작가인데, 출판사 직원과 잘못된 관계로 얽히게 되었다. 사실 나의 정서로 보면 어느쪽이 특별히 잘못했다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애매한 상황인데, 일단 상대방 남자의 잘못으로 주변 사람들에게도 인지가 되어 정리가 되었다. 여자 주인공은 남자와의 관계에서 안정감을 느끼지 못하고 계속 방황한다. 이렇게 막 살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다. 물론 내가 상당히 보수적인 성향이라 그렇게 여겨질 수도 있겠다. 아무튼 전체적으로 작품의 호흡이 꽤나 느린 편이라 약간은 답답하다는 느낌도 받았다.
하지만 소설의 중반으로 넘어서면서부터 주인공의 모습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어릴적 가지고 있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이성과의 관계도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나가기 위해 노력한다. 이런 과정이 무리하게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 내면에서 조금씩 일어난 변화가 만들어낸 결과다. 원인은 외부에서 찾을 수도 있지만, 결국 문제를 해결하는 힘은 나의 내면에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내용이다.
1년동안 주인공이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처음에는 조금 답답하다고 여겨졌던 마음이 나중에는 주인공을 응원하게 되는 모습으로 바뀐 내 자신도 신기하다. 무엇보다 여성의 마음을 섬세하게 표현한 작가의 표현력이 상당히 세밀하다. 여느 작가라면 이렇게까지 심리 상태를 세부적으로 표현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성장소설이라고 해서 청소년만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요즘에는 성인이 되어서도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아, 내면의 성장은 끊임없이 이루이진다고 본다. 따라서 이 책의 주인공도 조금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자신의 일을 스스로 해낼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 어릴 때 마무리 짓지 못한 일을 해결함으로써 마음의 짐을 덜어냈다.
뭐든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고 했다. 혹시나 옛날에 받은 상처가 아직 남아있다면 이 책의 주인공처럼 조금만 용기를 내서 해결책을 찾아보려고 노력하는 것은 어떨까 싶다. 사실 생각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그저 필요한 것은 본인의 작은 용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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