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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
대니얼 길버트 지음, 서은국 외 옮김 / 김영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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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갑자기 지독한 비관주의자에서 무모한 낙관주의자로 변신했다.
특정 계기가 있었다기보다는 갑자기 생이 너무 짧다는 생각이 들었고, 비관주의로 허비하기에는
나를 흥분시키는 것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읽어야 될 책이 아직 많이 남았고
주문해야 할 인터넷 쇼핑 품목이 산재하는 한, 나는 사는 것이 좋다.  

행복이라는 것이 결국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향하는 궁극의 것이고, 또 그것이 삶을 빛나게 하는 것임을
부인할 수 있는 치기는 개인차는 있겠지만 이십대에서 종료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비관주의자가 멋있어 보이고,
삶에 대한 통찰이 더 있어 보였던 그 암울한 시기(나는 이 시기를 후회한다)는 생이 유한하다는 것을 자각하는 한
역설적으로 증발해 버린다. 왜냐? 그래야 살 수 있으니까.
나는 행복해지기로 결심한 그 순간부터 아주 사소한 일들에 방방 뛰는 아메바가 되었다. 이 성향은 타고 난 부분도 있다. 
그러니까 나는 스무 살때 비관주의를 가장했던 것이다.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유전자화되어있다는 이론도 있지 않은가. 반면 행복을 느끼는 것도
연습하여 체화할 수 있다는 이론이 있고 그 이론이 너무 좋아서 행복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긍정심리학은 최근들어 각광받고 있는 분야로 마틴셀리그만이 창시자이다.(그의 '긍정심리학'은 아주 재미있다)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는 하버드대 심리학과 교수인 대니얼 길버트의 저서이다.
제목인 <Stumbling on Happiness>가 인상적인데 이 책은 주로 행복이 미래를 지향하면서 상상하는 감정인 점에 주목,
그것에 얽힌 아주 고약한 함정을 분석하고 있다.
따라서 행복해지기 위한 방법론적인 얘기라기보다는 인간이 끊임없이 왜곡하여 기억하는 과거와, 굴절된 현재의 지각과, 비합리적인 미래에 대한 상상에 대한 훌륭한 통찰을 보여준다. 
요컨대 내가 나에게 속고 있다는 얘기이다.  

과거에 대한 기억, 이 부분이 대부분 변형되고 왜곡된다는 것은 유아 심리학을 통해 알게 되었다.
여동생과 유년기의 기억을 나누다 보면 서로 수정해주고 보완해 주어야 대목이 나오는 경우가 있었다. 적어도 나의 기억이
항상 옳다고 신념처럼 믿어온 부분이 사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상당한
충격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사실이다. 왜냐하면 그 경험들은 저장을 위해 몇 가지 중요한 실마리로 축소 압축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중에 그 경험을 기억하고자 할 때, 뇌는 그 경험을 실제 그대로 복원하지 않고 압축해놓은 정보 덩어리를 재조합한다.
이렇게 되면 과거의 기억을 보존하고 있다고, 때로는 그것을 기억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들어있다고 여겨지는
책들이 갑자기 생경스럽게 느껴진다. 거짓말, 혹은 허풍덩어리일 수도 있다는 얘기이다. 그렇다면 현재는?
우리의 지각도 만만치 않다. 심리학자 조지 밀러는 "뇌의 가장 특출한 지적 성취는 바로 실제 세계이다."라고 했다.
시각의 맹점 지점을 우리는 부지런히 채워넜는다. 그것은 왜곡이다. 눈앞에 놓인 사물들은 우리의 오감을 통해 새로운
실제 세계로 재창조된다. 이것이 현재에 대한 인식을 이루고, 또한 이런 현재에 대한 인식은 과거의 기억을 왜곡하고,
미래에도 이와 유사할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 순환적 오류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상상은 현재의 경계를 쉽게 뛰어넘지 못한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상상을 담당하는 뇌의 영역이 동시에 지각을 담당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중략> 우리가 미래를 상상하면서 경험하는 정서는 사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한 우리의 정서적
경험에 따라 결정된다. 

우리의 감정이 몹시 상하면, 심리적 면역체계는 사실을 조작하고 비난의 대상을 바꾸는 방법 등을 동원해 우리로 하여금
긍정적인 관점을 유지하도록 해준다고 한다. 
이 논리는 아주 재미있는 것이 상대가 아주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면 방어체계가 작동하여 용서해 줄 수 있지만,
자잘한 짜증거리를 안겨다 주면 오히려 용서가 안되는 경우를 설명해 줄 수 있다
는 데에 있다. 심리적 면역체계가
작동하지 않을 정도의 경미한 부정적 상황이 오히려 더 짜증이 나는 것은 나만 유독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심리적 한계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내일 남편이 양말을 뒤집어 빨래바구니에 슛팅을 시켜도 방방 뛰지 않을 수도
있다는 희망적인 얘기이다. 알면 극복할 수 있는 부분도 있으니 말이다. 이는 또 미래에 아주 힘든 역경을 경험하게 되더라도
현재 내가 상상하는 것만큼 큰 고통을 당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된다.
나의 계획이나 목표가 좌절되면 나는 무너질 것이라고 지레 겁을 먹고 있는 우리들에게 그럼에도 충분히 자잘한 만족들을
얻으며 생을 꾸려 나갈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와 다름아니다. 그리고 불쾌한 것을 경험할 때 재빨리 합리화하기 위해 설명하는 그 행위가 바로 '글쓰기'임을 지적한 것은 아주 도발적이다. 역설적인 것은 이 설명하는 행위는 유쾌한 사건의 영향력도
감소시킨단다. 시인 존 키츠는 위대한 작가들이란 "불확실성, 미스터리, 그리고 의심 앞에서 굳이 사실과 이유를 찾아나서지
않는 여유로운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절반의 내용에는 만족할 수 없는 사람들"
이라고 적고 있다.
 

결론은 사실 약간 힘이 빠진다. 그렇다면 이런 왜곡된 미래에 대한 상상하기를 당장 멈추고 우리가 달려가야 할 곳은
잘난척하는 나이든 이모일 수도 있고 참견쟁이 친구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행복해지기 위해서 저자가 이렇게 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의 우리 감정을 예측하기 위해 과거에 우리가 경험했던 감정을 회상하거나 혹은 미래를 상상하는 일을 그만두고
다른 사람의 경험을 우리의 경험인 것처럼 사용하는 것이다.


우리가 '내일' 어떻게 느낄지 가장 정확하게 예측하기 위하여 다른 사람이 '오늘'을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들여다 보라는
권유는 오지랖 넓은 한국사회에서 자신의 느낌을 정확하게 표현하기 보다는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으로
남에게 충고하거나 조언하기를 즐기는(나를 포함) 사람들에게서 더 굴절된 정보를 얻기 쉽다고 생각한다.
"I"메시지에 익숙하고, 대체로 자신과 상황을 설명하기를 즐기는 서구 사회에 맞는 방법이 아닌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일군의 심리학자들의 번역이 유려하고, 작가의 재치와 상황에 맞는 유머가 버무려진 뇌생리학적 설명의
진귀함만으로 충분히 읽어 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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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밤을 함께 주신 신의 아이러니
호세 카를로스 카네이로 지음, 김현균 옮김 / 다락방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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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테오르도 아도르노가 아주 명쾌하게 두 가지 유형의 독자가 있다는 것을 기억한다. 작품을 향유하는 대신 해석하기 위해 자기 것으로 삼고자 하는 독자와 독서의 즐거움에 몸을 맡기는 독자.-106쪽

열광은 생존을 위해 조작되었다.-134쪽

"이름 뒤에는 이름 붙여지지 않은 것이 있다."는 말로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신비화하고 상징화하면서 독자의 공모를 요구한다. 해답을 제시하기보다는 물음을 던지고자 한 보르헤스는 새로운 서사문학의 근본적 성격을 완벽하게 이해한 철학자의 색깔을 지닌 작가다.-159쪽

삶의 아름다움은 그것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쓰기 위해 그리고 쓰여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 숭고한 문학의 위대한 작업이 없다면 존재는 부조리와 공허 그리고 아마도 무의 고집스러운 작업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2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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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과 함께 읽는 백석 담쟁이 교실 13
백석 지음, 우대식 해설 / 실천문학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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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늬 산 깊은 금덤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어린 딸아이를 따리며(때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 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꿩도 설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백석의 <여승> 

보르헤스는 소설을 쓸 필요가 없었다. 그의 가장 대중적인 몇몇 시들은 위대한 이야기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지니고 있었다. 다시 말해, 언어, 이야깃거리, 탁월한 인물들, 죽음, 욕망, 부조리, 사랑, 증오, 사랑 그리고 삶과 같은 인간조건의 중요한 주제들을 모두 담아내고 있다. -호세 카를로스 카네이로 '책과 밤을 함께 주신 아이러니' 중

우연히 마주친 비구니는 초면이 아니었다. 금덤판(금광)을 돌아다니며 옥수수를 팔던 여인이 투정부리는 딸아이를 때리며 서글프게 울던 모습을 기억했던 시인 앞에 여인은 금을 찾아 집을 나간 지아비의 무소식과 어쩌면 배를 주리다 죽어갔을 딸아이의 슬픈 기억을 안고 삭발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수많은 이야기가 지나간다. 일제 강점기의 슬픈 역사와 처절한 민생고를 아무리 중언부언 설명한들 그것이 감정으로 풀어질리 있으랴. 다만 머리로만 이해하고 감응하는 척 할 뿐이다. 여기에 이 시인이 등장한다. 그것이 어떻게나 아픈 것인지, 어떻게나 처연한 것인지, 시인은 우리들 앞에 쓰윽 내민다. 그리고 우리는 운다.
가장이 집을 나가고 부양해야 할 어린 딸까지 옆구리에 끼고 옥수수를 팔아 먹고 산다는게 얼마나 신산하고 처절한 삶인가. 그리고 그 삶의 끝에서 여인은 그렇게나 살아내려 했던 세상을 등지고 결국 비구니가 되고 마는 결말을 시인에게 보여준다. 이 짧은 시 안에 여염집 여인네의 신산한 일생과 그것을 어쩌지 못하고 우두커니 목도해야만 하는 시인 자신의 무능력함에 대한 자책과 슬픔이 들어와 있다. 소설은 타자의 삶을 상상할 수 있게 하고 시는 타자의 삶을 살 수 있게 한다. 몇 번이고 똑같은 시를 읽어도 때마다 그 감응이 다른 것은 인생이기 때문이다. 내가 순간이나마 다름 사람의 삶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여기 삼사십 원의 양복을 입고 사람들이 활보하는 일상이 있을 때 혼자 이백 원이 넘는 연둣빛 더블버튼 양복을 입고
숱 많은 머리를 50년이나 뒤의 후손들이 하듯 하늘로 안테나처럼 다 곧추세워(그는 천상을 지향했으니) 세종로를 활보한
사람이 있다. 교사 부임지에서 골목 골목을 나귀를 타고 다니겠다고 학생들한테까지 나귀를 구할 수 없느냐고 졸라댄
시인이 있다.

부모의 강권에 의하여 결혼을 세 번이나 해야 했고 그 와중에 만난 함흥 권번 소속의 기생 김지아와 염문을 뿌린 그는 일제
강점기 윤동주나 이육사처럼 항일의지를 내뿜는 저돌적인 참여시를 발표한 적도 없고, 그렇다고 낭만주의에 두 발을 다 담근
적도 없는 그래서 중간자처럼 떠돌았던 슬픈 시인이다. 출생지가 평북 정주인 터라 결국은 이리저리 떠돌다 귀향한 것이
월북시인으로 불리워져 제대로 된 평가마저 받을 수 없었던 그는 북한에서도 정권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하여 생산현장으로 추방되어 초라한 최후를 맞는다. 

그의 시는 평안북도의 토속어 때문에 쉽게 빨아들이기는 어렵다. 생경한 어휘들을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되뇌어야 비로소 그렇구나, 라는 지점에 도달할 수 있는 터라 친절한 시는 아니다. 이 책은 그러한 그의 시를 고향,유년, 장터,
장소애 등의 키워드로 분류하여 깔끔하게 모아놓고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이 교단에서 백묵으로 시어들을 적어내려가며
풀어주듯(그게 과연 좋은 방식인지 회의할 사람도 많지만) 얘기해 준다. 백석 시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초장부터 겁먹고
나가떨어지지 않게 아주 요령있게 잡아당겨준다.
덧붙여 그의 생애와 시가 씌어진 정황들을 맞춤하듯 자상하게 얘기해 주니 해석의 틀을 고정화하는 데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도 그 친절에 쉽게 굴복하게 된다.^^  이 굴복이 상쾌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시대나 장소의 이질화가 철책처럼 버티고 있는 시들 옆에는 이런 친절한 파수꾼이 있어야 된다고 합리화하는 것도
괜찮을 듯. 

그의 시 대부분이 유년에 대한 회고를 다루고 있는데, 특히나 그 회고에는 토템의 신앙, 각종 풍속 등이 어우러져 판타지적인 몽환을 떨쳐 한때 문단계를 점령했던, 그리고 일부는 아직도 이어져 오고 있는 환타지 장르의 예시를 보는 것 같다
아주 경이로웠다. 군불 지피며 할머니 무릎팍에 머리칼 비비며 자꾸 내려오는 눈꺼풀에 각종 귀신의 산발한 모습을 매달고
깜짝 깜짝 놀라는 그 맛이 있다. 왜 있잖은가. 무서워 죽겠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나의 안온한 상황이 뿌듯할 만큼
기뻐서 자꾸 더 그 이야기를 졸라대는 그것.  

수많은 서사가 눈 앞에서 지나가고 그 꼬리는 우수에 젖은 미남자가 앞머리를 쓰윽 치켜 올리면서 잡고 있다.
추운 바람이 부는 스산한 겨울밤, 꼭 이 책이 아니더라도 백석의 시집을 권한다.
그가 해내려가는 수많은 그 이야기들이 지나가는 자리 자리마다 왠지 모를 뭉클함이 문득 문득 치밀어 오를 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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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분한 낙화... 
검은 플러스펜이 이 지점에서 무언가를 썼는지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중2였는지 중3 때였는 지조차 가물가물하다.
중학생이었고 이 시를 배우던 날 바깥은 화창했기 때문에 우리는 야외수업을 연호했고 사투리가 심하고 화끈한 국어샘은
우리를 데리고 벤치로 갔다. 나는 필기에 목숨거는 필기만 범생인 바야바 머리의 여중생이었고 이 시구에 검은 플러스펜으로
무언가를 메모하며 순간 행복하다, 고 생각했다. 나에게 시는 그렇게 가슴을 치고 걸어들어왔다. 

중3때 윤동주를 알게 되었고 순전히 서시를 읊조리듯이 우수에 젖은 얼굴이 마음에 들어 좋아하기 시작했다.
범우 사르비아 문고였나? 그의 시집을 사기 위해 사당동에서 상도동까지의 그 언덕을 혼자서 하염없이 걸었던 기억.
그리고 그 시집을 읽고 또 읽으면서 나는 윤동주의 후배가 되리라고 다짐했었다. 



이 사진은 꽤나 오랫동안 내 다이어리 뒷편에 철해져 있었다. 시인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는 것이라는 얘기도 있지만 여학생의 흠모는 그 태어난 시인의 단명한 삶에서 더 많은 우수를 찾아 환상을 만드는 데 여념이 없었다. 용정에서 연희전문대학생이 가지는 의미는 아주 각별할 수밖에 없었다. 할아버지는 방학 때면 꼭 교모와 교복을 착용하고 마실을 다닐 것을 ㅋㅋ 권유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는 그런 할아버지의 말씀을 들어드리는 듯 문밖까지 교모를 쓰고 나갔다가 마당 안으로 휙 던져 놓고는 나가고는 했다고 한다. 남앞에 나서는 것을 그다지 즐기지 않았나 보다.

그가 일제 치하 생체실험대상이 되어 스물 여뎗 살에 죽고 만 비화는 최근에도 방송이 되었다. 그 안에서도 동생이 "가을이 와서 귀뚜라미가 울어요."라고 편지를 보내자 답장에 "너의 귀뚜라미는 여기에서도 울어주는구나."라고 써 보냈다는 그. 그가 생체실험의 희생자로 죽고 나서도 그의 어머니는 비교적 담담하게 슬픔을 삭히는 모습이었지만 빨래바구니에서 윤동주의 셔츠가 나오자 그것을 들고 뒷산으로 가서 거기를 몇 번이나 굴러 내리면서 오열했다고 한다. 

그가 배우 문성근의 아버지 문익환 목사와 절친이었다는 사실도 잘 알려져 있다. 학창시절 그의 사촌 송몽규와 나란히 1,2,3 등을 자치했다고 한다. 윤동주와 송몽규는 일제에 투옥되어 죽고 혼자 남은 문익환 목사는 후에도 이들을 참 많이 그리워하고 슬퍼했다고 무릎팍도사에 문성근이 나와서 얘기했다. 

부끄럽게도 시집 하나를 통독한 것은 그의 것이 전부이자 마지막이다. 그의 시는 나처럼 문외한이 그저 쓰윽 읽기만 해도 가슴 속에 시구 하나 하나가 알알이 들어와 박혀 생채기를 낸다. 그 생채기에는 나의 청소년기의 추억들이 스며 지금도 화석처럼 굳어 있다. 윤동주를 생각하면 그 안에 닥치는 대로 읽고 봤던 나의 어린 시절이 들어와서 맴돈다. 겉보기에는 초라했지만 참 행복했던 시간들이었고 다시 산다고 해도 또 똑같은 시간들을 되살고 싶을 만큼 영롱한 나날들이었다.

다시 시를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연말을 다 흩뜨려 놓은 내 주변의 것들을 그러모을 수 있는 하나의 응축점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 누군가의 시가. 시인이 되려다 소설가가 되었다는 작가들이 의외로 많다. 자신의 한계가 몰아낸 길이기도 하고, 시를 읽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없어져 가는 현 세태와도 무관하지 않다. 시인이 태어나기 힘든 세상이다. 시집을 검색해 보니 리뷰도 적고 출간일들도 다 오래 전이다. 문학의 뒤안길로 나앉은 것 같은 서글픈 모습이다. 김연수가 시가 자신을 치유했다면서 메리 올리버의 '기러기'를 추천했는데 이 시집을 구할 도리가 없다. 외서에도 없다. 비행소녀에게 부탁해야 할지 고민중이다. 영어 실력이 초짜라 구한다고 해도 온전히 그 감동을 누리고 치유의 능력을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오늘도 이리저리 검색하다 반가운 책을 만났다. 내일 아마도 이 책을 주문하게 될 것 같다. 6% 할인을 누리기 위해 참으로 많이도 기다렸던 1일이 아닌가. 책을 살 명분은 모으고 모으면 화수분처럼 계속 피어난다. 돈이 아니라, 사야 할 이유가. 
 암, 나는 선생님과 함께 읽지 않으면 안되는 우둔한 학생이다. 백석은 월북시인이라 재조명 받은지 얼마 안된다. 언젠가는 꼭 읽어야지, 하고 있었는데 이제서야 읽게 되었다. 사생활 얘기도 있다니 금상첨화다. 나 같이 가십을 좋아하는 유형에게 안성맞춤이다. 12월이 오면 나도 시를 읽게 된다. 시인이 될 수는 없으니까 시를 읽는다. 시를 읽으면 어느 순간 내 속의 그 팽팽한 현이 갑자기 파르르 떨리면서 아주 묘한 환각의 느낌이 오른다. 소설이 줄 수 없는 부분이다. 시는 천상과 닿아 있는 것 같다. 시인은 인간이 모국어 속에 몰아 넣고자 하는 그 모든 것을 꾹꾹 담아 읽는 자가 그것을 하나씩 펼치게 한다. 내 손에 들어왔던 것은 작은 조가비였는데 어느 순간 나는 바닷물 속에 몸을 담그고 있다. 그리고 혀에서는 짠내가 느껴진다.  

시인이 많이 태어났으면 좋겠다. 시를 많이 읽는 분위기가 다시 형성되었으면 좋겠다. 시를 읽으면 겸손해지니까. 덜 슬퍼지니까. 덜 외로워지니까. 삶이 환상일지라도 드문드문 아름다워질 수 있다고 믿게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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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12-01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본 백석시집'과 자야 여사가 쓴 '내사랑 백석'을 갖고 있지만 꼼꼼히 읽지 않아서...
저에게도 시집 읽는 연말, 연초가 됐으면 생각합니다.^^

2009-12-01 09: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blanca 2009-12-01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수정했습니다. 제가 읽고 웃었네요 ㅋㅋㅋ 찾아 주셔서 감사해요. 백석시가 생각보다 잘 안읽힌다고는 하더라구요. 읽을 책이 다 떨어지니 괜한 짓만 자꾸 하구 빨랑 책들이 와서 다시 책을 읽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순오기님, 저 자꾸 아리랑 지르고 싶어서 어떡하죠? 당분간 참아야 되는데-..-

순오기 2009-12-01 19:00   좋아요 0 | URL
조정래선생님 대하소설 3부작은 필히 소장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접니다.^^
아리랑은 그야말로 일제강점기의 상황을 어떤 역사서보다 잘 보여주니까 질러도 후회 안해요!!

302moon 2009-12-08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시집을 연이어 읽기만 하고, 아직 리뷰를 안 썼어요.
주신 댓글 따라 들렀답니다.
고등학교 시절 좋아하는 시인 중 한 분이 백석 시인이었는데,
정본 백석 시집을 가지고 있지만,
여러 가지 나오면 또 솔깃하고 그렇게 되더라고요. (웃음)
반갑습니다. 종종 뵈어요. ^^

blanca 2009-12-08 23:29   좋아요 0 | URL
고등학교 때 백석을 아셨어요? 우와...나이가 어케 되시는지 ㅋㅋㅋ 평안도 사투리가 너무 어렵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탄복하게 되더군요. 정말 시인은 태어나는게 맞는 것 같아요. 리뷰 기다릴께요^^
 


졸지에 다이어리가 두 개 생겨 버렸다. 왼쪽은 스타벅스, 오른쪽은 마법수프. 마법수프 다이어리야 근 오년 간 꾸준히 써오던 터라 출시되자 마자 미리 장만했고, 스타벅스 다이어리는 커피로 인생의 낙을 찾는 아부지가 오늘 냉큼 받아오셨다. 워낙 이런 쪽으로 탐욕스러워서 두 개를 안고 저울질하고 있는 중이다. 다이어리를 두 개 쓸 수는 없는 노릇이라 밀리는 아이는 동생들에게 생색내기로 쓰일 예정이다. 일단 스타벅스 다이어리는 굉장히 실용적이다. 저 끈만 해도 다이어리를 쓰다 항상 쓰던 페이지를 찾아 눕혀야 하는 수고를 줄여 주는 센스다. 물론 접어서 해당 페이지에 걸치는 책갈피 형식이 겉장에 붙어 있는 식으로 많이 활용되고 있는데 생각보다 금새 빠져서 별로라고 생각하던 차에 스타벅스의 시도는 고전적이지만 정답으로 보인다. 게다가 속지도 좍좍 펼쳐지고  아기자기한 맛은 없어도 간지러운 말이지만 쉬크하다. 엣지있다. 브라운의 표지도 심플하니 마치 작은 소설책을 끼고 다니는 기분을 만든다. 

 

속지는 검소하면서도 질리지 않게 절제한 디자인이다. 심심한 한계는 있지만 이 심심함이 결국 무난한 맛으로 곰삭게 될 테니까. 

마법수프 다이어리의 앙증맞음과 그 아기자기한 귀여움이야 캐릭터의 훌륭함과 더불어 두고두고 칭찬해 줄만하다. 그리고 디자인 못지않게 꽤나 실용적인 면도 있다. 180도로 펼쳐지는 다이어리가 생각보다 적다는 것도 이 다이어리를 돋보이게 했던 요소였지만 최근에는 다 그런 추세이고 뒷면의 수납봉투도 더이상 독창적인 요소가 되지는 못할 듯 하다. 속지는 무지무지 상큼하다. 그래서 또 금새 질린다. 상큼하고 톡 쏘는 매력이 결국 빠지게 되는 함정이라고나 할까? (꽤나 거창하군) 그러니까 덤덤함이 오래가는 법이다.

요 아이의 예쁜 눈망울과는 아쉽지만 작별을 고하게 될 것 같다. 다음 주 동생의 내방시 2009년 다이어리를 준비했냐고 넌지시 물어보고 아니라는 말에다 이 다이어리를 꾸욱 붙여 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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