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아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3
기 드 모파상 지음, 송덕호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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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과 야망이 빈약한 배경과 만났을 때 인간은 때로 극단적으로 잔인해질 수 있다.
재능과 야망에 성적매력까지 가진 남자가 출세를 위하여 상류층 부인들의 속되고 무른 감정을 희롱하고 이용하는 이야기.
게다가 해피엔딩이기까지 하다. 

모파상의 목소리는 건조하고 갈라져 있다. 유려한 묘사도 섬세한 감정의 속살의 드러냄도 없는
그저 툭툭 거친 붓으로 캔버스에 보이는 대로 단조롭게 그려갈 뿐이다. 
솔직히 이 점이 나의 취향에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그의 인물들은 지나치게 전형적이다.
처음부터 나쁜 놈은 끝까지 나쁜 놈이다. 그리고 그 나쁜 놈을 훑고 가는 수많은 단상도 다 같은 색깔로 도열하고 있다.
인간의 그 연약한 가변성과 복합적인 감정의 다채로운 층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
주인공 조르주 뒤루아가 뛰어드는 언론계의 추악함도 그 부정성이 지나치게 비대하게 부푼 느낌이다. 
 

인간이 이용가치로만 저울질당하고 애정도 하나의 약점으로서만 작용하는 그 세계가 거북해서인지
아니면 그런 현실을 눈감아버리고 싶어만지는 나의 미성숙함때문인지 재미있고 술술 읽혔던 소설의
해피엔딩이 자못 거슬린다. 인간의 비열함과 비루함이 심판받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해피엔딩으로
읽히는 기괴함이 있다. 권선징악적인 그 위선적이고 단순유치한 도식에도 손을 들어줄 수 없지만
결국 인간과 삶을 긍정할 수 없는 그 결말에도 찝찝한 뒷맛이 과히 좋지 않다. 

모파상의 견고한 현실은 긍정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을 정도로 빡빡했다.
대작가이지만 당시의 자연주의적 사조는 사실주의적 배경에 과장된 인간형이 얽혀 있는 형국으로 보인다.  

그래서 <벨아미>를 닫고 나오는 길은 조금 씁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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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2-03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벨아미는 못 읽은 책이라 모르겠고,
적과 흑, 위대한 개츠비~ 도 같은 부류의 책이 아닐런지...

blanca 2010-02-03 15:31   좋아요 0 | URL
다 비슷 비슷한 부류 같아요. 개츠비만 사랑을 위해 출세를 이용했고. 저는 자꾸 청춘의 덫의 이종원 생각이 나서 ㅋㅋㅋ

노이에자이트 2010-02-05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파상의 소설은 인간을 너무 적나라하고 비관적으로 그려서 싫다는 사람이 많아요.이문열 씨도 <비계 덩어리>에 대한 감상을 그렇게 쓴 적이 있지요.그런데 저는 모파상,특히 비계덩어리는 몇 년에 한 번씩 꼭 반복해 읽어요.굳이 표현을 찾자면 섬뜩한 유머라고나 할까요.블랙 코미디라는 단어로 부족하니까요.

blanca 2010-02-06 15:03   좋아요 0 | URL
아....제가 놀란 건 결말부분이었어요. 벨아미를 냉소하는 건지 옹호하는 건지 모호하게 그의 마음 속을 지나가는 생각들을 마치 당연한 상념들인마냥 나열해 놓고 끝내버려서. 참 재미있게 읽기는 했지만 보통 이런 인물들에 대한 냉소가 없어 좀 거북했나 봐요. 비계 덩어리 읽어봐야겠어요.
 
위건 부두로 가는 길 - 조지 오웰 르포르타주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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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애플의 아이폰과 카메룬 감독의 아바타를 접해보지 못한 데서 느끼는 소외감과 자괴감은 
무라카미 하루키의『1Q84』와 조지오웰의 『1984』를 읽지 않은 데서 온 것만큼은 아니었다. 

조지 오웰을 모르고 이 책을 시작한 것은 일종의 모험이자 치기였다. 각오도 단단히 했다. 
비판적 개인의 대명사라는 그의 대표작과 그것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를 외면하고 바로  그의 정치적 견해로
뛰어드는 것은 그가 언급했던 나폴리아이스크림(3색 아이스크림)의 가운데 층을 떠내려는 것과 유사한 시도였다.
 

그런데 그 무모하고도 용감한 시도는 그의 익살과 재치, 그리고 인간에 대한 통찰력 있는 애정을 바탕으로 한
친절함덕분으로 가두리라도 훑고 내려올 수 있었다. 아주 재미있고  친절하고 쉽게 독자들을 끌어오려고
애쓴 작품이자 번역이다. 1부의 탄광노동자의 르포르타주와 2부의 사회주의에 이르게 된 자전적 내용,
정치적 견해 등도 전혀 딱딱하지 않고 흥미롭다. 실제 항상 모든 일을 직접 체험해 보고 사변적이고 추상적인 이해를
지양했던 그의 태도가 문체에도 그대로 드러난 것 같다. 현학적인 어휘와 만연체로 동사를 행한 주인을 찾기 위해 목을 빼고
주어를 찾아 헤매어야 하고 그럴듯한 논리와 문학적 깊이는 지루함을 덧대어야 한다는 듯이 얘기하는 글들과는 애초 다르니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조지 아저씨는 이런 사람이다. 

아직도 나는 다른 사람이 입 댄 컵이나 병에 든 무얼 마시는 것 싫다(다른 사람이란 남자를 말하는 것이고, 여자가 입 댄 건
상관없다
).-p.177 

1부의 탄광 지대 노동자들의 실상을 다룬 르포는 우리가 호흡하느라 들이키는 산소 만큼 산업사회에 필수적이지만
그래서 더 자주 망각하는 하류 노동자들의 고된 노역을 직접 따라가며 보여준다. 특히 막장에 가기 위하여 몸을 반으로 접고
1.5킬로미터를 가야하는 그 댓가없고 드러나지 않는 긴 여행에 대한 묘사와 땅속 삼백미터 밑 숨막히는 더위 속에서 탄진을
들이키며 무릎으로 기어가며 일하는 그들의 모습에 대한 얘기는 편하게 앉아 그 얘기를 듣는 것이 마치 죄악처럼
느껴져 무언가 참회를 해야 할 것만 같은 안달에 사로잡히게 했다. 

우리 모두가 지금 누리고 있는 비교적 고상한 생활도 '실로' 땅속에서 미천한 고역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빚지고 얻은 것이다.
-p.49 

2부는 오웰이 소위 상류 중산층 하급에서 어떻게 사회주의자가 되어 노동자들의 편에 서게 되었는지의 궤적을
보여주고 이어 파시즘의 위협을 받고 있는 사회주의의 효과적이고 본질적인 전파의 방법에 대한 나름의 모색과
대안이 펼쳐진다. 특히 그가 이튼 스쿨 같은 영국의 사립학교가 속물근성을 세련되고 미묘하게 길러내는 곳이라고
지적한 대목이 인상깊다. 머리에는 기득권에 대한 비판과 온갖 혁명의 명분들을 채워넣지만 정작 갈라지고 유쾌한
향을 기대할 수 없는 노동자의 손을 잡을 수 없는 그 속물근성과 부조리에 대하여 고백하는 장면은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중산층의 속물근성을 끄집어 내어 펼쳐 놓은 것 같아 뜨끔하다. 

그가 얘기하는 사회주의는 대단한 대의나 그럴듯한 명분의 허식을 벗어버리고 드러나는 정의와 자유의 속살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도식과 고루한 관용어들과 경직된 이념의 틀 바깥에 내쳐진
노동자 계급들을 포용하고 소극적인 지식인들을 끌어오기 위해서 직접 그들 속에 몸을 던진 그의 체험적 이념의 실현에
대한 기대는 허식이 아니고 기만이 아니고 속물적이지 않아 설득당하게 되고 설득당하고 싶어진다. 

모든 혁명적 소신이 갖는 힘의 일부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거라는 은밀한 확신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p.212 

혁명은, 그 단어가 가지는 도발의 핵심은 우리가 가진 것들을 포기하고 우리 자신의 일부를 허물어뜨리는 자기희생의 다리를
건너지 않고는 도달할 수 없는 지향으로 가는 길이다. 우리의 속물 근성과 우리의 위선을 아프게 긁어내고 우리가
서있기 위한 땅을 고통스럽게 지지해 주고 있을 그 수많은 무리들과 함께 가는 그 길은 최소한의 인간다움에 대한
존중이며 인간 최선의 미덕에 대한 경의의 표현이다. 1930년대 오웰의 통찰은 그래서 현재도 여전히 유효하며
장중한 울림을 가진다. 



다시 돌아와서 무라카미 하루키의『1Q84』와 조지오웰의 『1984』를 함께 읽으려고 한다. 언젠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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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10-02-01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읽었어요. 저는 조지 오웰의 에세이 <코끼리를 쏘다>와 <파리와런던의 밑바닥생활>을 먼저 읽어서 이 책 상당히 궁금했거든요. 이 책에서도 오웰의 내면 깊숙한 곳에 우러나는 진실함을 읽을 수 있을까,하고 말이에요.
저는 역사학자는 아니지만
프랑스 혁명은 그 때 단발적으로 끊어진 것이 아니고
저런 노동자 파업, 여성의 참정권 시위 그리고 68혁명까지 이어온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blanca 2010-02-01 14:53   좋아요 0 | URL
조지 오웰의 다른 에세이들이 있었군요. 저는 부끄럽지만 이 책이 그의 책으로는 처음이라 솔직히 깊이있는 이해는 부족했다고 봅니다.^^;; 기억의 집님 얘기를 가만히 생각해 보니 결국 그런 역사 속의 저항의 힘이 피를 따라 내리 흐르고 있는 것 같아요. 댓글 하나에도 님의 내공이 느껴집니다.

masarururu 2010-02-07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페인 내전(스페인 '내전'이 틀린 용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만)에 직접 참전하고 쓴 르포르타주인 <카탈로니아 찬가>도 아주 재밌습니다. 이걸 보고 나면 조지오웰을 안 좋아할 수가 없지요..

blanca 2010-02-07 12:58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저는 조지오웰의 1984가 읽기 힘들다고 해서 그의 책은 다 지루한 줄 알았더랬어요. 좋은 책 추천 감사합니다.^^ 꼭 읽어보겠습니다.
 
롤리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권택영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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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4 정도 읽게 되면 불편해진다, 에로티시즘의 향연이 너무 노골적으로 펼쳐질까봐 지레 난감해진다.
1/3 정도 읽게 되면 생각보다 음탕하지 않아 지루해진다.(저자 나보코프는 예리하게 독자들이 멈출 것이라 예견한다.)
1/2 정도 읽게 되면 대체 롤리타와 험버트가 어떤 결론을 맺을까,에 대한 궁금증으로 길을 서두르게 된다.
다 읽게 되면. 에로티시즘의 정수에 있는 어떤 아이콘으로 잘못 길을 찾은 롤리타를 데려와 도덕과 관습의 틀마저
부수어 버린 정열이 공글린 사랑 안에 가두어 놓고 싶게 된다. 

의붓 아버지가 열 두 살의 법적인 딸을 끌고 다니며 벌이는 변태스러운 도피 행각으로 <롤리타>를 규정지어 버리면 더 이상 이 책의 가치를 논할 여지가 없다. 흔히 롤리타의 이미지에 덧댄 음란하고 노골적인 장면을 기대했다면 이 책은 더없이 실망스럽고 지루하다. 그 수많은 암시들, 해독하기 힘든 암호들이 어우러져 펼져지는 난해한 기류가 몽환적인 에로티시즘을 만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책은 결코 포르노나 각종 에로영화에 영감을 주는 것 이하로 전락할 만한 졸작은 아니다. 

험버트는 어린 소녀들에 대한 도색적 성기호를 가지고 있다고 인정하지만, 첫사랑 애너벨에게서 출발한 롤리타에 대한 사랑의 여정이 단지 육체적인 쾌락을 희구하는 욕망으로 점철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떠나버린 롤리타가 더이상 아름다운 님펫이 아닌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한 만삭의 여인이 되어 재회했을 때도 그는 돌아오라고 눈물로 애원한다.  또한 그녀의 행복한 유년을 갈취한 것 같은 죄책감으로 몸을 떤다. 그는 미성숙이 주는 그 완전성에 대한 무한한 기대에 매혹당했지만, 그 매혹이 결국 한 사람의 인생을 존중해 주지 못한 것으로 끝났음에 절망한다. 험버트는 뻔뻔하지 못했다. 그의 자책과 스러져가는 시간에서 침식당하는 롤리타에 대한 여전한 사랑은 우리가 그의 롤리타를 철저히 잘못 이해하고 그 이미지를 차용해 왔음을 깨닫게 한다.

퍼즐 같이 난해한 각종 암시 및 끊잆없는 시점의 이동, 인칭의 파괴 등이 다소 어지럽고 불편했다. 그러나 늙수그레한 중년 남자의 옆구리에 끼인 듯한 미성숙한 소녀의 이미지로만 롤리타를 생각해 왔던 나에게 롤리타는 저자 나보코프의 잃어버린 유년에 대한 비대한 그리움이고 자유롭게 쓸 수 없었던 모국어에 대한 애상어린 비가였다는 발견만으로도 값진 독서였다. 

나의 개인적인 비극은 타인의 관심사가 될 수도, 되어서도 안되겠지만, 그토록 자연스러운 내 말, 자유롭고 풍요하고
끝없이 온순한 러시아어를 버리고 이류의 영어를 해야 하는 내 설움에 있다.-블라디미르 나보코프

p.s. 이 책을 들고 다니면 표지의 그 예쁜 소녀의 두 눈과 제목이 한데 모여 묘한 오해받기 쉽상이다. 다들 한번씩 책 표지와 책 주인을 물끄러미 볼 수도 있다. 그게 롤리타의 현주소다.^^ 제레미 아이언스 주연의 동명의 영화가 재미있고 잘 되었다는 평이다. 비감어린 애상이 잘 재현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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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영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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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재미없더라, 위대한 개츠비."
"나도 들었어, 그 책 재미없다는 사람 많더라." 
................................................................
영어학을 전공했던 친구의 재미없다는 얘기는 그 후로도 <위대한 개츠비>의 명성과 비례하는 부정적 아우라였다.
걸핏하면 쏟아져 나오는 가장 위대한 영어 소설이라느니 미국대학생들의 필독서라느니 하는 찬탄은 역으로
그 책을 더 얄밉게 보이게 했다. 사실 <위대한 개츠비> 재미없다고 학교 게시판에서 한 마디 거들다가 개츠비 추종자로부터
약하게 한 대 얻어 맞은 기억이 한 몫 단단히 했다. 



얄미운 개츠비가 성큼성큼 걸어온 것은 문학동네전집의 책 디자인이 요요하기도 했고, 번역자 김영하에 대한
무언가 있을 것이다,라는 막연한 기대 때문이기도 했다. 재미있는 것은 김영하가 <위대한 개츠비>를 다시 번역할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서점에서 남자 고등학생들이 <위대한 개츠비>가 "졸라 재미없다"고 성토하는 장면을 목도하게
되면서부터였다 한다. 그는 <위대한 개츠비>에 바쳐지는 각종 헌사들 그 자체를 다 받아들일 수는 없다손 치더라도
개츠비가 재미없는 소설이라는 점에는 동감할 수 없었다 한다. 그리고 그가 다시 만난 개츠비에 대한 기억의 고백은
되레 너무 재미있어서 중간에 덮어 놓고 다른 일을 할 수 없을 만큼이었다. 정. 말. 이. 다. 그리고 사실 어쩌면
한 가난한 남자가 부잣집 아가씨에게 차이고 난후 절치부심하여 거부가 되어 나타나 그녀와 재회하고 밀회를
즐기다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는 이 간단한 플롯의 로맨스가 사실 졸라 재미없을 정도로 처질 것은 아니지 싶다.  
충분히 재미있을 개연성을 품고 있는 스토리가 그간 번역의 한계의 틀 안에서 지루하게 처져버린 것이다. 
그 안타까움은 김영하가 다 스러지게 해 주니 고마운 일이다. 자~ 그럼 김영하 오빠의 귀환 신고식의 향연들~ 

좀 재수없었다. p.22
웬 촛불? p.24
나야 뭐, 올해 오십이고, 있어봐야 주책이고......p.93
미친 거 아냐? p.146

 

김영하 번역의 미학을 뛰어넘는 피츠제럴드의 저력은 상황과 풍경과 인물에 대한 생동감 있는 묘사다. 그 묘사는
여느 다른 고전의 나른함과는 다른 통통 튀는 아름다움으로 빛난다. 개츠비가 사랑한 데이지의 집에서 커튼이
산들바람에 나부끼는 장면의 묘사는 그 커튼 자락을 독자의 코 앞까지 드리운다. 또 이 소설의 중심이 되는 분위기와
개츠비의 지향의 덧없음을 표상하는 데이지의 묘사는 당장 1920년대 중반 미국 동부의 된장녀를 끌어다 내 앞에
세워놓는 듯한 환각에 빠지게 할 정도다. 데이지는 이런 여자다.
 

"저 분홍색 구름 하날 가졌으면 좋겠어. 거기다가 당신을 집어넣고 밀고 다닐 거야." p.119
이런 뻔하고도 수작 좋은 얘기를 개츠비를 버리고 떠나 부유한 톰 뷰캐넌과 결혼할 때는 언제고 부자가 되어 컴백한
그한테 했던 여자라면 짐작 가능할 것이다. 

오후는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는데 허망한 꿈만이 홀로 남아 싸우고 있었다. 방 건너편의 잃어버린 목소리를 향해,
더이상 만질 수 없는 것을 만지려고 애쓰면서, 암울하지만 절망하지는 않으면서 끝까지 분투하고 있었다.-p.169 

물질만능주의로 흥청대던 전후상황에서 신생 제국 미국의 인격화라고 개츠비를 이해하는 당시 평자들이 많았다지만
우리는 이미 2010년을 살고 있는 한국인으로 개츠비를 다르게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개츠비는 누구나의 마음속에나
살고 있고 죽을 때까지 붙들고 싶은 무모한 순정에 대한, 무모한 열정에 대한, 무모한 도전에 대한 아련한 향수라고.  
그 지향이 덧없음이었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 순정을 가녀린 손끝에 걸치고 있었던 우리 스스로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개츠비의 외로운 죽음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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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마 2010-01-05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쿨럭... 이 뽐뿌질은 정말이지, 너무하십니다아아아아아아!
저 위대한 개츠비 이미 세권이나 가지고 있단 말이지요. 게다가 그 중 한권은 민음판 세계문학 전집의 75번 이구요. 저 또한번 강력 주장하건대, 민음판 세계문학전집 이미 백오십권!!!이 넘게 콜렉션 했단 말이여요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ㅠ.ㅠ
괜히 샀어, 괜히 샀어, 사지 말걸, 문학동네 기다릴 걸, 괜히샀어, 괜히샀어~!!!

자, 이제 제 앞에 요술봉을 삐리링 하고 휘저어 주셔요. 제발!

blanca 2010-01-05 14:23   좋아요 0 | URL
아시마님, 세 권이요?ㅋㅋㅋ 그럼 안사심이 맞을듯. 제가 저지하겠습니다. 아무리 김영하라지만 개츠비 네 권은 좀--;; 이 정도면 되나요? 개츠비 네 권 주르륵 꽂혀 있는 모습은 과히 바람직해보이지는 않을 것 같아요 ㅋㅋㅋ

순오기 2010-01-05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저도 민음사 위대한 개츠비지만, 이런 뽐뿌질은 피해갈 수 없을거 같아요.
다독다필상 적립금 들어오면 님께 땡스투 할랍니다.ㅋㅋ
고딩때 그러니까 30년도 더 전에, 로버트 레드포드가 연기한 개츠비에 껌뻑 넘어갔던 1인~ 내사랑 개츠비!^^

blanca 2010-01-05 16:24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대단하십니다. 연초부터 여기저기서 상금이^^ 로버트 레드포드가 개츠비였어요?
우와~ 지금 막 상상하고 있어요^^
 
인간 실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3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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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것. 제가 지금까지 아비규환으로 살아온 소위 '인간'의 세계에서 단 한 가지 진리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갈 뿐입니다. 저는 올해로 스물일곱이 되었습니다. 백발이 눈에 띄게 늘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흔 살 이상으로 봅니다.(p.134)  
   

주인공 요조를 통해 세상에 뱉어낸 유일한 완결된 말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다자이 오사무는 서른 아홉의 나이로 생애 다섯번째 시도한 자살에서 성공한다. 그에게 자살은 하나의 처세라고 번역자는 얘기한다. 맞다. 그는 거대하고 추상적인 이유 때문에 습관처럼 자신의 숨통을 끊어 놓으려는 것이 아니었다. 번번이 아주 실제적이고도 자잘한 생의 고충들을 다룰 줄 모르는 미숙함이 그를 습관처럼 자살시도미수의 진창으로 끌고 갔다. 

인간을 극도로 두려워하면서도 인간을 단념할 수 없어 끊임없이 자신을 과장하고 익살을 부리며 미숙하게 살아가는 부잣집 도련님의 얘기. 나쓰메 소세키의 '그후'에서의 주인공의 가정환경과 연약한 성품과 일란성 쌍생아처럼 닮아 있다. 그러나 두 작품의 분위기는 대척점에 놓을 수 있을만치 사뭇 다르다. '인간실격'의 분위기는 음산하고 무언가 기괴한 구석이 있다. '그후' 전체를 관통하는 몽환적이고 유미주의적 분위기가 걸어 들어갈 틈이 없다. 나쓰메의 제자였고 상류층 출신이라는 동류의식은 다자이 오사무에게서 찾아 볼 수 없다. 인간세계의 냉혹함과 그 기만이 횡행하는 곳에서 어기적거리며 헤매는 요조의 시선은 한없이 음울하고 기묘하다. 이 기묘함이 군데군데 정말 독자를 웃기는 아주 예리한 유머로 작용할 때는 웃으면서도 그 껄쩍지근함을 떨칠 수가 없음에 답답하다.  

세상을 향해 독설을, 그 부적응에 대한 절망을 뱉어내며 자조하는 요조는 결국 다자이 오사무다. 그는 결국 세상에의 적응을 포기하고 그 자신이 스스로 세상을 버리고 생을 종결하는 그 자유의지 만을 손에 넣어 이 작품의 속편을 스스로의 삶으로 답한다. 요조의 세 장의 사진을 통해 문을 여는 그 참신한 시도부터 결국 이 것이 요조의 기록을 제3자가 정리한 것으로 매듭짓는 그 완결감까지 아주 잘짜인 직조물에 걸린 그 수많은 허무와 음울함, 외로움, 부정들의 찌꺼기들의 미세함까지 탄복할 만하다. 하지만 이상한 것은, 그의 다른 작품을 찾아 읽게 되지는 않게 될 것 같다는 것이다. 문장 하나하나에 밀어넣은 그 비애와 절망이 불편한 까닭이다. 그리고 마치 모든 작품의 후속편은 그의 죽음으로 얘기되고 있을 것 같다는 기괴한 착각 때문이다. 모두가 칭송하는 행운아라는 외적 조건에도 불구하고 스스로가 만든 불행의 등에를 짋어지고 세상을 향해 뿜어내는 자신의 숨결을 그러모아 흩어 놓고 만 그의 생에 대한 완전한 이해가 없는한, 그의 작품은 나를 계속 불편하게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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