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영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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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재미없더라, 위대한 개츠비."
"나도 들었어, 그 책 재미없다는 사람 많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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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학을 전공했던 친구의 재미없다는 얘기는 그 후로도 <위대한 개츠비>의 명성과 비례하는 부정적 아우라였다.
걸핏하면 쏟아져 나오는 가장 위대한 영어 소설이라느니 미국대학생들의 필독서라느니 하는 찬탄은 역으로
그 책을 더 얄밉게 보이게 했다. 사실 <위대한 개츠비> 재미없다고 학교 게시판에서 한 마디 거들다가 개츠비 추종자로부터
약하게 한 대 얻어 맞은 기억이 한 몫 단단히 했다. 



얄미운 개츠비가 성큼성큼 걸어온 것은 문학동네전집의 책 디자인이 요요하기도 했고, 번역자 김영하에 대한
무언가 있을 것이다,라는 막연한 기대 때문이기도 했다. 재미있는 것은 김영하가 <위대한 개츠비>를 다시 번역할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서점에서 남자 고등학생들이 <위대한 개츠비>가 "졸라 재미없다"고 성토하는 장면을 목도하게
되면서부터였다 한다. 그는 <위대한 개츠비>에 바쳐지는 각종 헌사들 그 자체를 다 받아들일 수는 없다손 치더라도
개츠비가 재미없는 소설이라는 점에는 동감할 수 없었다 한다. 그리고 그가 다시 만난 개츠비에 대한 기억의 고백은
되레 너무 재미있어서 중간에 덮어 놓고 다른 일을 할 수 없을 만큼이었다. 정. 말. 이. 다. 그리고 사실 어쩌면
한 가난한 남자가 부잣집 아가씨에게 차이고 난후 절치부심하여 거부가 되어 나타나 그녀와 재회하고 밀회를
즐기다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는 이 간단한 플롯의 로맨스가 사실 졸라 재미없을 정도로 처질 것은 아니지 싶다.  
충분히 재미있을 개연성을 품고 있는 스토리가 그간 번역의 한계의 틀 안에서 지루하게 처져버린 것이다. 
그 안타까움은 김영하가 다 스러지게 해 주니 고마운 일이다. 자~ 그럼 김영하 오빠의 귀환 신고식의 향연들~ 

좀 재수없었다. p.22
웬 촛불? p.24
나야 뭐, 올해 오십이고, 있어봐야 주책이고......p.93
미친 거 아냐? p.146

 

김영하 번역의 미학을 뛰어넘는 피츠제럴드의 저력은 상황과 풍경과 인물에 대한 생동감 있는 묘사다. 그 묘사는
여느 다른 고전의 나른함과는 다른 통통 튀는 아름다움으로 빛난다. 개츠비가 사랑한 데이지의 집에서 커튼이
산들바람에 나부끼는 장면의 묘사는 그 커튼 자락을 독자의 코 앞까지 드리운다. 또 이 소설의 중심이 되는 분위기와
개츠비의 지향의 덧없음을 표상하는 데이지의 묘사는 당장 1920년대 중반 미국 동부의 된장녀를 끌어다 내 앞에
세워놓는 듯한 환각에 빠지게 할 정도다. 데이지는 이런 여자다.
 

"저 분홍색 구름 하날 가졌으면 좋겠어. 거기다가 당신을 집어넣고 밀고 다닐 거야." p.119
이런 뻔하고도 수작 좋은 얘기를 개츠비를 버리고 떠나 부유한 톰 뷰캐넌과 결혼할 때는 언제고 부자가 되어 컴백한
그한테 했던 여자라면 짐작 가능할 것이다. 

오후는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는데 허망한 꿈만이 홀로 남아 싸우고 있었다. 방 건너편의 잃어버린 목소리를 향해,
더이상 만질 수 없는 것을 만지려고 애쓰면서, 암울하지만 절망하지는 않으면서 끝까지 분투하고 있었다.-p.169 

물질만능주의로 흥청대던 전후상황에서 신생 제국 미국의 인격화라고 개츠비를 이해하는 당시 평자들이 많았다지만
우리는 이미 2010년을 살고 있는 한국인으로 개츠비를 다르게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개츠비는 누구나의 마음속에나
살고 있고 죽을 때까지 붙들고 싶은 무모한 순정에 대한, 무모한 열정에 대한, 무모한 도전에 대한 아련한 향수라고.  
그 지향이 덧없음이었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 순정을 가녀린 손끝에 걸치고 있었던 우리 스스로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개츠비의 외로운 죽음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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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마 2010-01-05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쿨럭... 이 뽐뿌질은 정말이지, 너무하십니다아아아아아아!
저 위대한 개츠비 이미 세권이나 가지고 있단 말이지요. 게다가 그 중 한권은 민음판 세계문학 전집의 75번 이구요. 저 또한번 강력 주장하건대, 민음판 세계문학전집 이미 백오십권!!!이 넘게 콜렉션 했단 말이여요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ㅠ.ㅠ
괜히 샀어, 괜히 샀어, 사지 말걸, 문학동네 기다릴 걸, 괜히샀어, 괜히샀어~!!!

자, 이제 제 앞에 요술봉을 삐리링 하고 휘저어 주셔요. 제발!

blanca 2010-01-05 14:23   좋아요 0 | URL
아시마님, 세 권이요?ㅋㅋㅋ 그럼 안사심이 맞을듯. 제가 저지하겠습니다. 아무리 김영하라지만 개츠비 네 권은 좀--;; 이 정도면 되나요? 개츠비 네 권 주르륵 꽂혀 있는 모습은 과히 바람직해보이지는 않을 것 같아요 ㅋㅋㅋ

순오기 2010-01-05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저도 민음사 위대한 개츠비지만, 이런 뽐뿌질은 피해갈 수 없을거 같아요.
다독다필상 적립금 들어오면 님께 땡스투 할랍니다.ㅋㅋ
고딩때 그러니까 30년도 더 전에, 로버트 레드포드가 연기한 개츠비에 껌뻑 넘어갔던 1인~ 내사랑 개츠비!^^

blanca 2010-01-05 16:24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대단하십니다. 연초부터 여기저기서 상금이^^ 로버트 레드포드가 개츠비였어요?
우와~ 지금 막 상상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