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4
제인 오스틴 지음, 원영선.전신화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남자와 여자가 만났다.
남자는 재산이 없었고 여자는 상류층이었다.
여자는 죽은 어머니를 대신하여 따르는 노부인에게
설득당하여 그 남자와 헤어진다. 

그 남자는 역시나 성공하여 돌아온다.
여자는 더이상 젊지 않다.
여자는 담담하려 한다.
남자도 무심하려 한다.
남자는 다른 여자와 사랑에 짐짓 빠진 척 한다.
여자는 가문의 후계자와 로맨스에 빠질 뻔하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둘은 다시 맺어져
결혼한다. 

이 어쩌면 구태의연하고 평범하기 그지 없는
로맨스가 제인 오스틴 그녀의 목소리를 빌어 펼쳐지는 순간부터
우리는 마법을 경험한다. 제인 그녀가 과장, 허풍이 심하고 나비 날개 같은
찬연한 문체로 무장한 것도 아니다. 단조롭고 담담하고 때로는 심드렁하게 남녀 주인공의 궤적을 그려간다. 
열정과 에로티시즘이 빠져 나간 그 빡빡한 관계망에 내면의 달뜬 이끌림, 망설임, 기다림을 살살 뿌려 넣고
그녀는 유유히 사라진다. 그러면 우리들은 결국 제인 오스틴식의 로맨스의 노예가 되고 마는 것이다.
연애를 변주하는 방식은 아무리 멋을 부려도 결국 건드려야 할 어떤 핵 주변을 맴도는 것 이상이 될 수 없는 것같다.
끌림. 끌려가는 그 자발적 무기력과 끌고가는 그 수수께끼 같은 힘들이 만나고 때로는 어긋나고 합치되는 경로를
자박자박 밟아 나가는 문장들은 우리의 잊혀진 그 수많은 로맨스의 기억과 소망, 상상의 섬세한 결을 타고 들어온다.
그러면 금새 뜨거워지는 것이다.  

물론 혹자들은 그녀의 소설 속에서 간과된 시대 의식, 정치적 배경, 캐릭터들의 단조로운 반복 등을 단점으로
지적하기도 한다. 그녀는 평생 독신으로 산 자신의 삶 바깥을 넘어서는 것들을 욕망하지 않았고, 그녀의 타협은
소설 속에서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는 편이다. 그녀는 자신이 아는 것만을 썼다고 서머싯 몸은 얘기한다.
다이나믹한 서사의 역동도 격변기의 시대상도 열기있는 토론도 빠져나간 그녀의 소설이 가지는 미덕은
서머싯 몸이 이미 더없이 적절하게 상찬했다. 그의 상찬을 빌려오고 싶다. 

오스틴이 가지고 있는 장점 중에서 하마터면 빠뜨릴 뻔했던 게 하나 있다. 그것은 그녀의 소설이 아주 재미있게 읽힌다는 점이다. 그녀보다 더 위대하거나 더 유명한 작가의 작품보다 그녀의 것이 더 재미있게 읽힌다. <중략> 어떤 작품에서도 뭐 그리 대단한 사건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쪽을 다 읽고 나면 다음 쪽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하여 독자들은 열심히 책장을 넘긴다. 하지만 다음 쪽에서도 그리 대단한 사건은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독자들에겐 또 다음 쪽이 간절해진다. 이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소설가는 소설가로서 가장 귀중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서머싯 몸 <불멸의 작가, 위대한 상상력> 중


댓글(21)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0-12-23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저 지금 너무 놀랐어요. 문동 문학전집에 오스틴의 이 작품이 있었다니.
요즘 하도 각 출판사마다 문학전집들을 쏟아내서 좋긴 하다만,, 읽을 시간도 많이 부족하네요^^;;

blanca 2010-12-24 22:36   좋아요 0 | URL
cyrus님, 저도 최근에 발견하고 덥석 샀답니다. 정말 고전출판 붐이지요. 수요자 입장에서 좋긴 한데 자꾸 읽고 싶은 책들이 줄을 서서 큰일입니다.^^;;

꿈꾸는섬 2010-12-24 0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메리 크리스마스~~~
블랑카님의 세계문학전집 읽기는 꾸준하군요. 부러워요.
저도 내년엔 좀 더 건실한 독서계획을 세워야겠어요.^^

blanca 2010-12-24 22:37   좋아요 0 | URL
꿈꾸는섬님도 지금 행복한 크리스마스이브 보내시고 계시죠? 너무 추워서 잠깐 나갔다가 동태되어 돌아왔네요. 차도 어찌나 밀리는지. 산타크리스마스 역할을 하려면 애가 잠을 자줘야 하는데 같이 잠들게 생겼어요--;; 꿈꾸는섬님도 메리 크리스마스!

마녀고양이 2010-12-24 0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비커밍 제인 이라는 영화 보셨어요?
거기 나오는 제인이 제인 오스틴이잖아요. 결국 원하는 남자와 결혼 못 하고, 평생 독신으로 사는.
그래서일까요, 그녀의 작품은 모두 감미로운 사랑이야기이죠.
저는 그녀의 작품에서 달콤함과 동시에 그녀의 결핍에 대한 씁쓸함을 읽어요.
그래서...... 맘이 아파져버려요.

내가 좋아하는 블랑카님, 메리 클스마스, 쪼옥!

BRINY 2010-12-24 10:41   좋아요 0 | URL
'비커밍 제인' 보고 찡했어요. 특히 그 마지막 장면!

blanca 2010-12-24 22:39   좋아요 0 | URL
마녀고앙이님! 저 못봤어요.. 그런 영화들 너무 좋아하는데. 제인 오스틴 얘기이군요. 평생 독신으로 살아 그런 로맨스에 환상을 깨지 않고 계속 이야기를 만들 수 있었나봐요^^ 마녀고양이님도 행복하고 근사하고 다복한 크리스마스 전야가 되기를!

2010-12-24 1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4 22: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4 11: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4 22: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섬사이 2010-12-24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어수선한 연말에 저를 낚는 책들이 여기저기서 막 쏟아져 나오는 것 같아요.^^
메리 크리스마스, 블랑카님.

blanca 2010-12-24 22:45   좋아요 0 | URL
섬사이님도 메리크리스마스!! 연말이라 저도 마음이 북적북적거려요. 저도 책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답니다.^^ 요새는 두 권씩 쌓아 놓고 읽고 있는데 너무 소설 위주로 읽은 것 같아 다른 분야도 읽어야 하지 않을까 강박관념을 느낀답니다. 섬사이님 행복한 연말 되세요....

노이에자이트 2010-12-24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역시 몸의 글을 인용하시는군요.그 책에서 몸이 소개한 <데이비드 커퍼필드>나 <백경>의 서평도 기다리겠습니다.<톰 존스>도 몇 년 전 다시 번역되었으니 10권 모두를 읽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blanca 2010-12-24 22:48   좋아요 0 | URL
노자님 ㅋㅋㅋ 몸은 지겹게도 우려 먹고 있답니다. 참 신기하게도 천천히 다 읽어가게 되네요. 읽고 나서 몸의 서평을 읽으면 더 와닿더라구요. 책 내용을 모르고 읽었을 때와 또다르게 다가와요. 노자님도 메리크리마스!

2010-12-25 0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5 17: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5 11: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5 17: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10-12-25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맨틱한 제인이나 이런 리뷰를 쓰시는 블랑카님 모두 좋아합니다.
연말이네요, 어느덧. 블랑카님의 글을 읽을 수 있었던 한 해라 더욱 좋았어요.
좋은 시간 보내세요.^^

blanca 2010-12-25 21:05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감사합니다. 올해 프레이야 언니를 알게 된 건 제게도 큰 행운이랍니다. 어떻게 살고 싶다,는 방향을 보여주셨어요. 오늘 행복하게 보내셨죠?
 
나귀 가죽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이철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상을 향해 내뻗었던 촉수들을 하나씩 거두어 나의 내면으로 던져 놓는 그 시간, 잠들기 직전 나의 소원들을 정렬해 보곤 한다. 아주 어릴 적부터 하루가 그럭저럭 괜찮으면 괜찮은 대로 더 욕심이 나서, 하루를 망쳐 버린 날이면 그 상처를 다독거리기 위해서 그 소원들이 다 실현된 내일의 공상 속에 잠들곤 했다.  

이제 삶이 더 이상 내일의 가능성에 무게중심을 두지 않게 되면서 나의 소원은 줄고 작아지고 스러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삶을 살아내기 위해서 견디기 위해서라도 나는 또 무언가를 욕망하고 그 실현을 꿈꾸는 그 허망한 과정에서 발을 빼지 못하고 있다. 산다는 것은 결국 죽어간다는 것이고 무언가를 원한다는 것은 결국 그것에 대한 무기력하고 허약한 반역을 꾀하는 것임을 때로 머리로 자각하면서도 나의 호흡은 그런 명징한 가끔의 깨달음을 지워 버린다.  

프로이트가 죽기 전 '나는 그리움을 품은 채로 무로 가는 길을 준비한다',며 마지막으로 읽은 책이 바로 이 <나귀 가죽>이었다. 죽음을 의미의 부재를 받아들이는 일로 해석했던 그가 욕망과 생을 맞바꾸며 마침내 파멸하고 마는 청년의 얘기로 삶의 문을 닫고 걸어 나간 것은 의미심장하다. 마치 프로이트 자신의 삶에 대한 해석과 해명을 이 소설을 읽는 것으로 대신한 것만 같다. 삶은 욕망과 등가물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우리는 무언가를 원하고 추구하다 때로는 좌절하고 가끔은 이루어졌다고 착각하며 생을 소모한다. 고통을 피하고 쾌락을 추구하는 생의 본질적 경향성도 결국 욕망과 다름아니다. 무언가를 추구한다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그 주체를 갉아 먹는다. 발자크가 바람과 행함이 존재의 원천을 고갈시킨다고 얘기한 것은 인간 존재의 근원적 모순성에 대한 슬픈 지적이다. 

프랑스의 19세기의 시대상을 방대한 소설 모음으로 재현하려 했던 그의 원대한 구상 안 철학의 범주 안에 들어가는 이 작품은 현실과 그 현실의 원리, 법칙에 대한 철학적 해석의 중간 지점에 있는 작품이다. 프랑스 파리의 몰락한 귀족의 자제인 라파엘은 죽음을 결심하고 있던 와중에 우연히 들어가게 된 골동품점에서 만나게 된 골동품상 주인에게서 소원을 이루어 주는 나귀가죽을 얻게 된다. 이 가죽은 소망의 강도와 횟수에 비례하여 그 둘레가 줄어들게 되어 있는데 남은 가죽의 크기는 바로 남은 목숨을 표상한다. 소망이 이루어지면 질수록 삶은 점점 종말을 향해 치닫게 되는 것이다. 라파엘은 그토록 바라던 엄청난 재력과 권력을 지니게 되었을 때 정작 아무것도 원하지 않게 되게 된다. 무언가를 욕망하고 이루게 되는 것이 가져오는 상실이 그 욕망을 가능케 하는 주체와 원인 자체를 말살하는 것이라는 잔인한 깨달음은 나귀가죽으로 상징화되어 단순하고 거칠게 우리를 위협한다. 욕망 그 자체가 악과 연결되는 지점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것이 삶임을 우리는 어쩌면 선험적으로 알고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강하게 욕망하고 그것을 이루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그 설명할 수 없는 꺼림칙함과 두려움이 그 방증이다. 그리고 거기에 인간 존재의 비극이 있다. 어느 지점이든 우리가 소원해서 간 그곳은 목적지로 두고 바라봤을 때의 그곳이 이미 아닌 것이다. 우리는 또다시 초조해지고 그 목적지가 단지 지루한 길의 하나의 경유지에 불과했음을 스스로에게 가르쳐 주고 만다. 다음에는 또 눈을 돌리게 된다. 새로운 욕망은 도처에 널려 있다. 그 욕망을 거치지 않고 길을 걸어가는 것은 흡사 하나의 묘기가 되어 버리고 만다. 이백 년이 지난 오늘, 라파엘과 나는 다른 점보다 닮아 있는 대목이 더 많다.  

라파엘이 쇠잔해진 몸을 이끌고 간 요양지에서 뭇사람들이 그를 벌레 피하듯 피하고 따돌리는 장면은 현재진행형이다. 사회는 황금과 멸시를 먹고 산다는 발자크의 말은 소름끼치도록 잘 구현되어 있다. 이 세상에 불행 말고 완전한 것은 없다,는 그의 문장은 이 소설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사랑하는 여인의 품에서 고통스럽게 죽게 되는 라파엘의 최후는 마지막 구원의 가능성마저 무자비하게 차단하고 대단원의 막을 내려 버린다. 그의 냉소, 그의 잔인할만치 예리한 삶에 대한 통찰, 마치 독자와 일대일로 대면이라도 하고 있는 듯이 사람의 보편적 갈등, 고뇌의 근저를 저며내는 그의 언사들은 때로 섬뜩하다. 

   
 

 그리고 너, 제복만 입지 않았을 뿐 시종들 중 상 시종인 너, 뻔뻔한 식객이여, 네 성질은 집에다 두고 다녀라. 너를 맞아준 주인이 음식을 소화시키는 속도에 맞추어 너도 소화시켜라. 그의 눈물에 눈물을 흘려라. 그의 웃음에 웃음을 터뜨려라. 그의 빈정거림도 듣기 좋은 것처럼 받아들여라. 그를 헐뜯고 싶으면 그의 실각을 기다려라. 세상은 이런 식으로 불행한 자에게 은전을 베푼다. 그를 죽이거나 내쫓는 식으로, 아니면 그를 타락시키거나 거세시키는 식으로.

 
   

 

욕망을 부추기고 독려하는 사회, 소원을 말해보라고, 나는 너의 소원을 이루어 주는 여신이 되겠다고 꼬드기는 곳, 그곳에서 우리는 오늘도 나의 욕망을 결국은 이루기 위한 것이라고 스스로를 달래며 자존심들을 뚝뚝 부러뜨리고 울며 걷는다. 그건 하나의 착각이고 그건 하나의 거짓이고 사기라는 것을 결국은 알게 될 것을 예감하면서도. 라파엘의 '나귀가죽'을 저마다 손 안에 꽈악 움켜쥐고서.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이에자이트 2010-10-10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국 읽으셨군요.욕망을 완전히 채워주는 성취가 과연 있을까요...이 글을 읽고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blanca 2010-10-11 22:04   좋아요 0 | URL
노자님, 결국 읽었어요. 발자크 이름만 들어도 지루한 소설들일거라고 생각했는데 우선 너무 재미있어서. 골짜기의 백합도 읽을까 하고 있답니다. 정말 몸이 천재라고 했던 이유가 십분 수긍가는 작가입니다.

반딧불이 2010-10-10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의 계속되는 발자크 읽기 덕분에 제가 읽는 발자크 평전이 더 풍요로워지네요.

blanca 2010-10-11 22:04   좋아요 0 | URL
반딧불이님, 한 작가에 빠지면 전작주의를 시도해 보고 싶긴 한데 좀 엄두가 안 나기도 하고 그러네요. 소세키 읽어나가시는 모습 보고 대단하다,고 생각했었어요.

2010-10-10 19: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11 22: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억의집 2010-10-11 1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자크에 대해 관심이 없었는데 급 관심과 호감. 사람의 욕심은 소원이 이루어지더라도 채워지지 않을 것 같아요. 근데 저도 나귀가죽 가지고 싶어지네요. 사고 싶은 라이더가죽자켓보다~~~

blanca 2010-10-11 22:08   좋아요 0 | URL
라이더 자켓 ㅋㅋㅋ 정말 통하네요. 기억의집님 소원 있으세요? 정말 큰 소원. 사실 저도 정말 말도 안되는 소원이 하나 있는데 그게 이루어지면 생명줄이 준다면 사양하려구요^^;;

꿈꾸는섬 2010-10-12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요즘 어째 힘든 책은 읽기가 싫어요. 쉽게 읽히는 책만 읽고 싶어하고 있어요.

blanca 2010-10-12 21:34   좋아요 0 | URL
꿈꾸는섬님 사실 저도 그래요. 요새는 삼백 페이지 이상 되는지 꼬옥 확인한답니다.^^
 
고리오 영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박영근 옮김 / 민음사 / 199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는 내가 주저 없이 천재라고 부르고 싶은 유일한 작가다, 라고 칭찬에 인색한 서머싯 몸은 발자크를 두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발자크의 소설을 한 권도 읽은 적이 없는 사람이 발자크를 가장 잘 대표해 주고 있고, 작가가 꼭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잘 집약한 소설을 한 권 추천해달라고 부탁해온다면, 주저 없이 <고리오 영감>을 읽어 보라고 조언하겠다고 덧붙인다. 

고전은 꼬장꼬장한 할아버지가 버석버석 말라버린 이야기를 지리하게 끊임없이 쭈욱쭉 늘여 내는 것에 불과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여지없이 깨어 줄 작품을 들라면 주저없이 이 작품을 내밀고 싶다. 이백여 년의 시간차를 두고 파리의 저급한 하숙집을 배경으로 그려낸 인간 군상의 이야기는 시대차라는 한계는 저만치 떠밀어 버릴 정도로 지금 여기에서의 현실과 교차하고 약동한다. 발자크가 19세기의 프랑스 사회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재현해 내기 위하여 137편의 소설을 계획했고 그 안에 이 소설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경이롭다. 우리는 이 소설 첫 문장 '보케르 부인은 콩플랑 거리에서 태어난 늙은 여자다.'와 만나는 순간부터 19세기 프랑스 파리의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대양으로 빨려들어가게 된다.   

여기에 한 아버지가 있다. 그는 세속적인 기준에서 볼 때 뻑적지근하게 시집 잘 간 두 딸을 두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딸들의 하녀에게 그들의 스케줄을 염탐해 내어 샹젤리제의 통로에서 몰래 사랑하는 딸들을 훔쳐 볼수밖에 없다. 딸들은 돈이 필요할 때만 그를 찾아와 사랑하는 아버지!를 연호한다. 그러면 그는 자신이 아끼는 은식기를 우그러뜨려 팔아서라도 딸들이 정부를 두고 사치스럽게 몸치장을 하느라 진 빚을 대신 갚아주는 것이다. 정작 이 퇴락한 전직 제면업자는 사람들에게 업신여김을 받으며 초라하고 추운 하숙집에 덜덜 떨며 몸을 누인다. 그에게 딸들은 하느님의 마음을 이해하게 한, 천상의 천사보다 더 우위에 있는, 피에서 피어난 꽃들이다. 자신을 챙기지 않는 무모한 내리사랑은 어처구니없는 보복을 당한다. 내 몸 속의 심장을 꺼내어 손 위에 들고 있는 것만치 우리를 속수무책으로 만들어버리는 자녀들에게 퍼붓는 눈먼 사랑이 어떤 식으로 폄하되고 비하될 수 있느지를 목도하는 과정은 더없이 괴롭고 불편하다. 발자크의 저력은 여기에 있다. 아무도 선뜻 꺼내어 들지 못하는, 그러나 인간의 삶의 본질적 측면에 수그리고 있는 그것들에 대한 응시는 위선과 가식의 더께를 가차없이 벗겨버린다.

여기에 한 청년이 있다. 그는 가난한 법학도다. 화려한 성공에 대한 동경, 갈망, 그리고 별볼일없는 출신에 대한 열등감, 그것을 딛고 올라서고자 하는 적당히 비열하고 저열하고 미끈미끈한 탐욕, 그리고 약간의 배경 같은 양심. 작가의 말처럼 그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려면 손을 더럽혀야 한다는 그 참혹하고 절망적인 기본 명제를 너무나 손쉽고 어설프게 이해하고 받아들여 버린다. 게다가 그는 청춘이다. 발자크는 청춘에 대한 여러가지 그 설익은 자만과 어설픈 상상력을 위트있고 예리하게 지적하여 독자를 웃게 한다. 청춘은 욕망 앞에 쉽게 옷을 벗어버리고 낭만적 열정이 때로는 전부를 덮어버릴 수도 있는 위험하고도 치기어린 지점이다. 그 지점에서 우리는 분별없는 욕망과 가장 순결한 자비로움과 타인에 대한 이해가 뒤섞이는 모순의 최극치를 경험한다. 가장 유치하고 비열하면서도 자비로울 수 있는 시간들.  라스티냐크에게서 그 시간들을 복기한다. 

   
 

젊은 사람들은 밤샘 공부를 하겠다고 약속한 열흘 밤 가운데에서 일곱 밤을 자버리는 법니다. 밤을 새우려면 스무 살은 넘어야 한다.  
-p.51

 
   

 

   
 

따라서 만일 청년들이 세상을 알고 몸을 사렸다면 사회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p.76 

 
   

고리오 영감은 마침내 딸들에게 버림받고 장례비용도 없이 처절하고 비참하게 죽어간다. 그의 곁을 지키는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출세를 위하여 능수능란하게 타락해가는 법을 배워가는 청년 라스티냐크이다. 결국 이 둘은 인간의 내면 안의 두 가지 본성이자 본질이며 인생의 시기들의 은유이다. 우리는 결국 모든 것을 놓고 죽는다. 그럼에도 삶은 모든 어리석은 욕망을 기반으로 지탱하는 허약하고 어리석은 청춘과 같다. 생 그 자체가 어쩌면 욕망 그 자체 같다. 무언가를 무모하고 어리석게 열망하지 않으면 존재의 그 허약한 한계와 허구성 앞에서 우리는 주저앉고 더이상 전진할 수 없을런지도 모른다. 이 숙명에 대하여 발자크는 얘기하고 있다. 고리오 영감의 무덤에서 라스티냐크는 회한과 자신의 눈먼 욕망을 참회하는 눈물을 흘리는 게 아니다. 청춘의 마지막 눈물을 묻어 버리고 파리와의 대결을 선포하며 씩씩하게 걸어나간다.  

발자크는 그래서 위대하다. 인간의 왜소함을 이다지도 이렇게나 적나라하게 묘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거의 유일한 작가로서.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반딧불이 2010-09-30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의 리뷰가 게으른 제 손을 책꽂이에서 고리오 영감을 찾게 합니다. 고맙습니다.

blanca 2010-10-01 13:35   좋아요 0 | URL
반딧불이님, 저의 독서는 대중없습니다. 반딧불이님의 그 체계적이고 진중한 독서에 비할 수가 없지요.

프레이야 2010-09-30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의 가슴 울리는 리뷰 잘 읽고
장바구니로 저 책을 모셔갑니다.^^ 좋은 글, 고마워요.
적요한 시간이에요. 작은딸은 독서기록장 정리하고 있네요.
내일 급히 학교에 제출할 일이 있어서요.ㅎㅎ

blanca 2010-10-01 13:38   좋아요 0 | URL
적요한 시간. 프레이야님 안그래도 독서기록장이 궁금했어요. 읽은 책이랑 목록을 작성하는 것인지. 은근히 번거로울 것 같아요. <고리오 영감>은 책값도 할인율이 높아 착하고 여러모로 프레이야님께 권하고 싶어집니다.^^ 저는 또 감기 폭격 맞아 헤롱거리고 있습니다.--;;

프레이야 2010-10-01 19:50   좋아요 0 | URL
전 느낌 위주로 적게 합니다. 줄거리를 요약할 수 있는 것도 중요하구요.
환절기라 감기 걸리는 분들 많은데 언능 나으시기 바래요. 기온이 꽤 내려갔어요.

2010-10-01 09: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01 13: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10-01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에선 19세기 유럽소설이라면 워낙 러시아 작가들이 대세라서 특히 프랑스 작가들은 많이 안 읽히지요.발자크 작품도 마찬가지인데 그 중에서도 <고리오 영감>이 읽히는 편이라 다행입니다.사실 발자크의 다른 작품에 비해 분량도 적당하지요.<종매 베트>나 <사라진 환상>은 두툼해서 좀 부담스럽습니다.예전에 딸에게 버림받은 아버지라는 소재를 다룬 리어왕과 비교해서 연속 읽어볼 계획을 세웠는데 지금도 그러지 못하고 있습니다.

blanca 2010-10-02 14:39   좋아요 0 | URL
노자님, 혹시 나귀가죽은 읽어 보셨나요? 저는 지금 이것 읽으려고 하는데 <고리오영감>만 제외하면 발자크 작품이 좀 사소한 묘사 줄줄 늘여 지루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고 해서. 두 작품은 접해보지 못했어요. 아, 리어왕 생각은 미처 못했어요. 여기에서 모티브를 얻었을 수도 있겠네요. 고전 분야에 정말 박학 다식한 것 같아요.

노이에자이트 2010-10-02 21:23   좋아요 0 | URL
최근 번역된 건 읽어보지 못했어요.<사라진 환상>은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건 서울대 출판부에서 나온 겁니다.인터넷엔 광고하지 않을 거에요.이게 대표걸작인데 을유문화사에서 60년대에 나온 이후 절판되었지요.프랑스 근대사에 대해 어느 정도 관심이 있다면 발자크의 다른 작품도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겁니다.

양철나무꾼 2010-10-01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천재라고 불리우는 작가들 좋아해요,일단은 개연성이 확보되니까~
그런 의미에서 서머싯 모옴도,발자크도 좋아하지요.

솔직히 전 그냥 그렇게...별다른 감흥 없이 읽었는데,
님의 리뷰를 읽으니 그때의 기억이 새로운 걸요~^^

빨리 감기 폭격을 떨고 일어나시길 바라겠습니다~!!!

blanca 2010-10-02 14:40   좋아요 0 | URL
저도 모옴 좋아해요, 양철나무꾼님. 일단 모옴 책은 재미가 보장되니까요. 감기 폭격. 지금 완전 최루탄 맞은 기분입니다. 좀 그런 얘기지만 콧구멍에 휴지를--;; 비까지 오니 완전 퍼지고 있답니다.

2010-10-01 18: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02 14: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보이지 않는 도시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8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07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예기치 않게 어떤 것을 맞닥뜨리게 될 때가 있다. 무언가 아주 기묘하고 신비로운데 그렇다고 나와 동떨어진 것 같진 않다. 그러니 섣불리 알아가는 것을 포기하지 않게 된다. 

바로 이 책이 그러했다. 굉장히 사변적이고 막연할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이 보이지 않는 상상의 도시들에 대한 얘기는 오히려 굉장히 구체적이고 사람들의 기본 정서에 와 닿아 있다. 마르코 폴로가 자신이 사신으로 방문했던 도시들을 타타르 족의 황제 쿠빌라이 칸에게 묘사하는 것으로 진행되는 이 소설은 그래서 고전이 된 것 같다,고 수긍이 가는 책이다. 

   
 

 책장을 넘기듯 시선이 거리를 훑고 지나갑니다. 도시는 폐하께서 생각해야 할 모든 것을 말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되풀이하게 합니다. 폐하께서는 자신이 타마라를 방문하고 있다고 생각하시지만, 사실은 그저 도시가 자기 자신과 각 부분들을 정의하는 이름을 기록하고 계실 뿐입니다.

 
   

 

'도시와 기호들 1'이라는 표제하의 이 대목은 우리가 사물을 인식할 때 결국 그것을 자신만의 경험과 인식의 기호로 덧씌워 재해석함을 알려준다. 우리는 사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투사하여 읽는다. 특히 여행지에서 그러하다.  

   
 

 여행자의 과거는 그가 지나온 여정에 따라 바뀌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하루가 지날 때마다 하루가 덧붙여지는 가까운 과거가 아니라 아주 먼 과거를 이야기하고 있다. 매번 새로운 도시에 도착할 때마다 여행자는 그가 더 이상 가질 수 없었던 자신의 과거를 다시 발견하게 된다. 더 이상 그 자신이 아닌 혹은 더 이상 소유할 수 없는 것의 이질감이, 낯설고 소유해 보지 못한 장소의 입구에서 여행자를 기다리고 있다.

 
   

 

결국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는 것들까지 결정하고 만다. 우리는 새로운 장소에 발을 딛고 좀전까지의 나를 털어 버리려 하지만 결국 이동은 또다른 나의 삶이었을 수도 있을 것들을 확인하는 것에 그치고 만다. 기시감. 그것은 어떤 막연한 전생의 기억이 아니라 과거의 가능성을 더듬어 보는 경험이기도 하다. 나는 여기에서 그로 살아갈 수도 있었다,는 잃어버린 가능성은 영원히 오늘의 나를 매혹한다. 

수많은 관념과 상상들이 도시로 체현된다. 여기가 지겨울 때 체스 판을 이동하듯 끊임없이 옮겨 다녀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는 도시, 관계들을 나타내는 방식을 흰색과 검은색의 실로 엮어 걸어 놓다 너무 많이 걸려 있어 그 사이로 지나다닐 수 없게 될 때 떠날 수 있는 도시, 위선자 역, 식객 역 등 수많은 역할을 바꾸어 가며 대화 속에 살다 퇴장하게 되는 도시, 산 자들의 도시, 죽은 자들의 도시, 태어날 자들의 도시 등 삶과 죽음과 관계와 이동이 혼재되어 있는 그 공간들의 설정은 마치 우리의 내면을 들여다 보고 구체화한 것 같은 느낌이다. 

우리는 언어와 욕망을 손 안에 쥐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기실 언어의 속임수와 욕망의 무분별은 우리를 포박하고 유린하고 있다. 결국 보이지 않는 도시들이란 우리의 과거, 욕망, 기억이 우리가 보고 경험하고 느끼고 듣게 되는 모든 것들을 지배하고 있다는 깨달음의 은유다. 

   
 

 하지만 제 말을 듣는 사람은 자기가 기대했던 말만을 간직할 것입니다.<중략> 이야기를 지배하는 것은 목소리가 아닙니다. 귀입니다.

 
   

 


댓글(22)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녀고양이 2010-09-16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독특하다면서여?
나두 블랑카님처럼 고전 좀 읽어야 할건데... 맨날 머하는건지. ^^

blanca 2010-09-16 22:26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은 또 다른 분야에 빠삭하시잖아요. 저는 요새 민음사 문고 좌르륵 꽂아놓고 혼자 흐뭇해 하며 웃는 재미로 ㅋㅋㅋ

2010-09-16 21: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16 22: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yamoo 2010-09-16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정말 멋진 책이죠~ㅎ 세계 3대 환상문학가로 꼽히는 이탈로 칼비노의 숨은 명작입니다~ 칼비노 책 중에서 저는 이 작품을 제일로 칩니다~ 워낙 독특해서요~ 소설읽기가 시큰둥할 때 지인이 던져준 책이었습니다. 이 책의 리뷰를 블랑카님의 서재에서 다시 볼 수 있다니, 기쁘기 그지 없군요!

리뷰 잘 봤어요~ 저도 이 책의 리뷰를 작성하려고 했는데, 계속 시간에 쫓겨 아직도 못쓰고 있습니다..ㅎ

혹시 이 작품으로 칼비노의 작품에 관심이 생기셨다면, <우주만화>도 강추드립니다

blanca 2010-09-17 19:51   좋아요 0 | URL
세계3대 환상문학가는 누구누구가 있을까요? <우주만화>요? 우아, 이런 소설을 쓴 칼비노가 그런 소설까지. 여기에서도 칼비노의 기가 막힌 상상력은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기는 하지만 더욱 기대되는걸요.

2010-09-19 23: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20 2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0-09-20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씨 때문에 보름달을 보기는 어려울 듯하지만 그래도 즐겁고 여유로운 한가위 보내세요^^

blanca 2010-09-22 14:0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후와님도 즐거운 명절 되세요. 좋은 글 저녁에 찬찬히 읽어 볼게요^^

후애(厚愛) 2010-09-21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놀러왔어요.
즐거운 추석 잘 보내세요.
항상 건강하시구요.^^

blanca 2010-09-22 14:08   좋아요 0 | URL
후애님~ 안그래도 오늘 라디오에서 외국에 사시는 분들이 추석맞아 보낸 사연들으면서 후애님 생각했어요. 후애님도 건강하시고 행복한 날들 되세요.

2010-09-24 21: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24 22: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실 2010-09-25 0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이지 않는 상상의 도시들이라.....궁금해 집니다.
위대한 개츠비 읽고나면 도전해 볼까봐요.
저두 민음사 문고 좌르륵 꽂아두고 싶은 욕심 땡기는 중입니다. 곧 아이들이 읽겠죠.

blanca 2010-09-25 22:31   좋아요 0 | URL
세실님! 위대한 개츠비 읽고 계세요? 어느 출판사로 읽고 계신지 궁금하네요. 분량이 많지 않아 부담없이 읽기 좋아요. 민음사는 결국 한꺼번에 사는 것이 차라리 나았을 수 있을 지경까지 갈 것 같아요^^;;

세실 2010-09-26 06:48   좋아요 0 | URL
당연히 민음사^*^

[그장소] 2015-01-15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간을 보고는 아..지난 시간의 기록이구나..하면서..칼비노...언제 메모했는지..머릿속을 뒤적뒤적..2012년쯤..낭만주의와 판타지의 뿌리 였나..동시에 카뮈 반항하는 인간과 같이 메모한 기억이..나는데..ㅠㅠ 사서 소장하고 싶은 책였다고..기억해요. 아..메모지 찾아내야
겠네ㅛ

blanca 2015-01-16 22:03   좋아요 0 | URL
와, 그장소님, 저도 지금 이 책이 가물가물해요. 벌써 4년도 더 전이에요. 흑, 시간의 흐름이란 게 참 놀랍기도 하고 이런 옛글에 그장소님의 현재 댓글을 보니 표현하기 힘든 뭉클함이 있어요.

[그장소] 2015-01-16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보고 놀란걸요..결국 온.약 봉지를 다 뒤졌는데도..칼비노를 메모해둔것은 못찾고..ㅠㅠ;찾으면..신나게..아는척 하려고 했는데..속상했다는..!^^ 아하핫..요술 키보드예요..분명..글자확인을 해도...번번히 오탈자를 중간에 턱~하니..
심어놔요..꺼진불도 다시봐..그러는 모양..ㅎㅎ

blanca 2015-01-16 22:09   좋아요 0 | URL
와! 신기해요! 실시간 댓글이에요. 그장소님! 찾으셨으면 좋겠어요, 메모.

[그장소] 2015-01-16 22: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쵸? 아까워요..제목만 보고는 ㅋ 음..긴가민가..하는건..봤다고 못하겠더라고요..그래서 첨엔 안본걸로 체크했거든요...그러다..후애님과의 대화내용 시간을 보니..현재형이 아닌거라..아!했죠..예전거구나..!^^
번호 상 거의 안보고 지날순이 아니더라는..
 
거미여인의 키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7
마누엘 푸익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떤 책은 놀라움을 준다. 이 단순한 문장이 사실은 가장 솔직하고 빈번하게 나오기 힘듦을 인정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경이로웠다. 이런 것이 소설이다,라고 어설프게 엮은 기존의 빈곤한 인식의 틀을
달려들어 해체해 버린 작품이다. 

일관된 화자 대신 두 사람의 대화로 전개된다. 작가가 친절하고 성가시게 개입하는 대신 오직 두 사람의 말,
그것도 영화 얘기를 기반으로 한 상호텍스트의 변주가 주다. 아, 맞다. 작가는 각주로 개입한다. 감방 안에서 만난
동성애자와 정치범의 대화에서 기습적으로 삽입되는 동성애에 대한 철학적, 심리학적, 사회적 고찰은
그 진지함이 외려 엉뚱한 배경음악 같은 것으로 변환된다. 똥을 싸네, 마네 하는 본능적 대화 밑에서
프로이트의 <다형적 도착증> 같은 것이 진지함을 가장하고 사뭇 언급되는 것은
사실 교묘하게 작가가 화자로서 개입하는 장치로 판명된다. 
그는 짐짓 동성애자에 대한 다양한 시각, 심리학적 생물학적 고찰을 학문적 권위에 기대어 전달해 주는 역할로 만족하는 듯하지만 작가가 등장인물들의 대화와 필연적인 연계가 없어 보이는 각주를 부지런히 덧붙이는 행위는 그 자체로 무언가를
은근하게 조롱하고 빈정거리는 듯한 속내를 흘리는 것 같다. 성적 소수자를 이해해 주려는 듯한 각종 학문적 접근이
그들을 하나의 온전한 인간으로 대우하는 것이 아니라 차가운 메스로 난도질해 그럴듯하게 도식화한 것에 대한
희화화다. 그러니 각주는 그 내용을 담은 틀이상으로 이해되어야 마땅하다.
 

<거미여인의 키스>라는 제목은 미성년자 보호법 위반으로 구속된 동성애자 몰리나가 게릴라 활동을 하다 구속된 발렌틴에게
자신이 본 영화 여섯 편을 마치 거미줄을 뜨듯 자신의 삶과 생각, 느낌 등에 엮어 교묘하게 변형, 재창조하여 들려주며
발렌틴에게 접근해 가는 과정의 상징을 지니고 있다. 캣피플, 독일나치선전영화, 좀비 영화 등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문자 텍스트와 영화의 이미지가 혼재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결국 작가가 얘기하고 싶었던  
사회의 거대 헤게모니의 담론에 좌지우지되는 인간의 본질을 규정짓는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마침내 경직된 틀을 해체해 버린다. 성적 기호, 정치적 가치관,  이런 껍질을 벗겨 버리고 나온 속살에 가닿는 작가의
시선은 결국 존재 그 자체를 향한 긍정으로 귀결된다. 이토록 단순하고 이토록 명료한 진실에서 항상 멀어져만 가는
그 비극적 관성을 직시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순간 존재가 꽉 차는 환각을 느끼게 된다.  한계를 아는 것은 그래서 마력을 지닌다. 그 한계를 밀고 나가야 할 것 같은  부책감과,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담지하기 때문이다.

시나리오 작가로 출발한 작가의 전력을 바탕으로 한 역동적이고 허를 찌르는 전개가 독자를 단숨에 흡입해 버린다. 재미도 있고 깊이도 있는 소설은 기대나 선전만큼 흔하지 않다. 적당한 중량감을 유지하며 책장 넘어가는 속도까지 배려한 듯한 능력은 칭송받아 마땅하다. 헐리우드에서 브로드웨이에서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 연극이 성공을 거둔 저력은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렇고 그런 도식에 의해 잘 짜여진 예의바른 소설에 식상했다면 당장 마누엘 푸익을 접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스피아민트껌을 씹은 기분에 소설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라고 자신있게 외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댓글(18)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10-09-08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피아민트 껌을 씹은 기분'이라니, 너무 멋진 제목이에요!
저는 지금.. 단물 다 빠진 흐물흐물한 껌 씹는 기분이랄까요. [거미 여인의 키스]를 읽어줘야겠군요.

blanca 2010-09-09 12:11   좋아요 0 | URL
만치님...그럼 하루 빨리 이 책을! 저는 나름대로 아주 충격 받았거든요..이 책이 만치님 기분을 마구 띄워 드리기를 기대해 봅니다. 참, 제가 아마존에 주문한 책 11월 달에 온대요. 이럴 수도 있나요?--;;

비로그인 2010-09-08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큼한 제목의 리뷰를 왠지 예전보다 더욱 "주의깊게" 보고 있습니다.
차분한 리뷰 보면서 흠.. blanca님을 알듯 모를듯 아리송송 하네요 ㅋㅋ

blanca 2010-09-09 12:12   좋아요 0 | URL
제가 좀 아리송송한 좀 더 나아가면 깨는 사람입니다. ㅋㅋㅋ 엉뚱하다는 평을 많이 듣고 살았답니다.^^;; 바람결님이 주의깊게에 따옴표를 다니 갑자기 긴장됩니다.^^;;

프레이야 2010-09-09 0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제목이 늘 리뷰 못지않게 흡입력 있다고 생각돼요, 블랑카님.
후레쉬민트 아니고 스피아민트인 거죠? ^^
이 책, 담아만 뒀는데 '소설'을 읽으려는 마음에서라도 해체된 소설을 얼른 읽어줘야겠어요.
늘 좋은 리뷰 감사해요.^^

blanca 2010-09-09 12:13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저는 제목 달기가 너무 어려워서 사실 어제도 이 문제로 페이퍼 작성해 보다 관뒀어요. 학창시절부터 글을 쓰는 것보다 제목을 다는 게 너무 고통스러웠거든요, 이런 저에게 이런 칭찬은 정말 힘이 됩니다.^^

다락방 2010-09-09 0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이 어떤 내용인줄 전혀 알지 못하고 읽었거든요. 그런데 몰리나가 발렌틴에게 영화 얘기를 해줄때, [캣피플] 얘기해주는 부분을 읽으면서 정말 너무 좋아가지고 팔짝팔짝 뛰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저는 [캣피플]을 알고 있거든요. 봤거든요. 아주아주 인상 깊은 영화였거든요. 아직까지도 어떤 장면들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을 정도로 말이지요. 그런데 몰리나가 발렌틴에게 그 영화 얘기를 해주더라구요. 뭔가 짜릿했어요!

blanca 2010-09-09 12:14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안그래도 저는 그 영화를 잘 몰라서 넘 아쉬웠더랬는데 그 영화를 알고 읽으신 다락방님의 감상은 도저히 못따라갈 것 같아요. 알고 읽는 것과 모르고 대충 받아들이는 것은 천양지차일테니까요.

마녀고양이 2010-09-09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 좋은 리뷰예요.
블랑카님은 정말 나를 지름신으로 이끄는 재주 탁월하네요.
저런 소설인줄 몰랐어요.... 진짜 읽고 싶어지네요.

blanca 2010-09-09 12:15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 하루키가 인터뷰에서 언급해서 사실 메모해 두었다 읽게 되었어요. 마녀고양이님도 너무 좋아하실 것 같은데..참, 오늘이 그날이신가요? 광화문연가. 행복한 만남 되시기를. 후기 기다릴게요.^^

양철나무꾼 2010-09-09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송병선 님이 어떻게 번역해 내셨을까 궁금했었는데요~
님의 리뷰를 보니,알 것도 같습니다~^^

blanca 2010-09-09 22:28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은 알고 계셨군요...번역에 에로가 참 많았을 것 같아요. 예전에는 번역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요즘들어 그 어려움과 기여하는 바를 조금은 알 것도 같아요.

... 2010-09-09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가지고 있는데 스파이트민트껌을 꼭 씹어봐야 할 것 같아요^^ 이 소설은 영화도 있고 뮤지컬인가 연극으로도 공연되기도 한다고 하더라구요.

blanca 2010-09-09 22:29   좋아요 0 | URL
브론테님! 리뷰가 완전 극찬 일색이라 사실 더 망설였는데 참 읽다가 이 작자는 ㅋㅋㅋ 천재구나, 싶더라구요.

기억의집 2010-09-09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영화 고등학교때 스크린을 통해서 알게 되었어요. 지금은 라울 줄리아하고 윌리엄 허트 별로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 때만 해도 라울 줄리아는 이 영화로 대박 떳고요. 윌리엄 허트는 그 전에 보디 히트란 영화에 나왔는데, 그 때 그의 연기 정말 맹하니 잘하더라구요. 지금은 거의 기억에 나지 않지만, 이 영화 우리 나라에서 처음엔 상영금지였나 그랬을 거에요. 동성애때문에. 그러고보면 시간이 흐르면서 개방이 많이 되어진 것이 아닌가 싶어요.

근데 덧글 읽다가 봤는데, 아마존에 주문 한 책이 그렇게 늦어요? 대체로 한달 안에는 오던데.

blanca 2010-09-09 22:30   좋아요 0 | URL
기억의집님! 저는 모르는 배우인데 재미나요. 그랬군요! 저도 알다가도 모르겠어요. 주문한지 열흘 되니까 선적했다고 참 11월달에 도착할 수도 있다는 모 이런 --;; 거 참 카버 단편 하나 읽겠다고 욕 보고 있습니다.ㅋㅋㅋ 와도 사실 완전히 이해할지도 의문이지만. 절판된 책이라 도리가 없더라구요. 빌려서 볼 수도 있겠지만 원어로 도전해 보겠다고 결심한 바가 있어서요.

기억의집 2010-09-10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키 인터뷰에 꽂혔구나~~ 저도 하루키 인터뷰 읽고 카버를 읽어볼까,하는 중인데.. 하지만 전 지금 미미의 용서의 서도 중간밖에도 못 읽어서....

저 영화 구할 수 있을까요? 저는 라울 줄리아와 윌리엄 허트만으로도 저 영환 멋진 영화에요. 윌리엄 허트의 동성애자의 연기도 새로웠고요. 하여튼 저 영화 나왔을 때 말도 못 하게 떠들썩 했어요. 그 때만 해도 동성애코드가 일반적이지 않았기때문에. 라울 줄리아는 아담스패밀리도 나왔는데... 그 영화 못 보셨나요?

blanca 2010-09-10 21:59   좋아요 0 | URL
아담스패밀리를 제대로 보지 못했어요. 아아아...조금씩 생각날 것도 같아요. 하루키.는 부러워요. 여러가지로..담 세상에는 그렇게 살아 보고 싶어요. 이 생과는 다른. 기억의집님 제가 담 세상에 태어나면 살고 싶은 인간형들이 있답니다.ㅋㅋㅋ 일단 남자로 태어나기로 했어요. 지금 읽어도 뭐랄까 급진적인 느낌이 남아 있는 거 보면 그땐 완전 센세이션을 일으켰을 것 같아요. 정말 대단한 느낌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