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실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3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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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것. 제가 지금까지 아비규환으로 살아온 소위 '인간'의 세계에서 단 한 가지 진리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갈 뿐입니다. 저는 올해로 스물일곱이 되었습니다. 백발이 눈에 띄게 늘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흔 살 이상으로 봅니다.(p.134)  
   

주인공 요조를 통해 세상에 뱉어낸 유일한 완결된 말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다자이 오사무는 서른 아홉의 나이로 생애 다섯번째 시도한 자살에서 성공한다. 그에게 자살은 하나의 처세라고 번역자는 얘기한다. 맞다. 그는 거대하고 추상적인 이유 때문에 습관처럼 자신의 숨통을 끊어 놓으려는 것이 아니었다. 번번이 아주 실제적이고도 자잘한 생의 고충들을 다룰 줄 모르는 미숙함이 그를 습관처럼 자살시도미수의 진창으로 끌고 갔다. 

인간을 극도로 두려워하면서도 인간을 단념할 수 없어 끊임없이 자신을 과장하고 익살을 부리며 미숙하게 살아가는 부잣집 도련님의 얘기. 나쓰메 소세키의 '그후'에서의 주인공의 가정환경과 연약한 성품과 일란성 쌍생아처럼 닮아 있다. 그러나 두 작품의 분위기는 대척점에 놓을 수 있을만치 사뭇 다르다. '인간실격'의 분위기는 음산하고 무언가 기괴한 구석이 있다. '그후' 전체를 관통하는 몽환적이고 유미주의적 분위기가 걸어 들어갈 틈이 없다. 나쓰메의 제자였고 상류층 출신이라는 동류의식은 다자이 오사무에게서 찾아 볼 수 없다. 인간세계의 냉혹함과 그 기만이 횡행하는 곳에서 어기적거리며 헤매는 요조의 시선은 한없이 음울하고 기묘하다. 이 기묘함이 군데군데 정말 독자를 웃기는 아주 예리한 유머로 작용할 때는 웃으면서도 그 껄쩍지근함을 떨칠 수가 없음에 답답하다.  

세상을 향해 독설을, 그 부적응에 대한 절망을 뱉어내며 자조하는 요조는 결국 다자이 오사무다. 그는 결국 세상에의 적응을 포기하고 그 자신이 스스로 세상을 버리고 생을 종결하는 그 자유의지 만을 손에 넣어 이 작품의 속편을 스스로의 삶으로 답한다. 요조의 세 장의 사진을 통해 문을 여는 그 참신한 시도부터 결국 이 것이 요조의 기록을 제3자가 정리한 것으로 매듭짓는 그 완결감까지 아주 잘짜인 직조물에 걸린 그 수많은 허무와 음울함, 외로움, 부정들의 찌꺼기들의 미세함까지 탄복할 만하다. 하지만 이상한 것은, 그의 다른 작품을 찾아 읽게 되지는 않게 될 것 같다는 것이다. 문장 하나하나에 밀어넣은 그 비애와 절망이 불편한 까닭이다. 그리고 마치 모든 작품의 후속편은 그의 죽음으로 얘기되고 있을 것 같다는 기괴한 착각 때문이다. 모두가 칭송하는 행운아라는 외적 조건에도 불구하고 스스로가 만든 불행의 등에를 짋어지고 세상을 향해 뿜어내는 자신의 숨결을 그러모아 흩어 놓고 만 그의 생에 대한 완전한 이해가 없는한, 그의 작품은 나를 계속 불편하게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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