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란 무엇인가 1 - 소설가들의 소설가를 인터뷰하다 파리 리뷰 인터뷰 1
파리 리뷰 지음, 권승혁.김진아 옮김 / 다른 / 201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움베르트 에코, 오르한 파묵, 무라카미 하루키, 폴 오스터, 이언 매큐언, 필립 로스, 밀란 쿤데라, 레이먼드 카버,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어니스트 헤밍웨이, 윌리엄 포크너, E.M 포스터.

 

움베르트 에코와 오르한 파묵, 폴 오스터의 작품은 읽어보지 못했다. 하루키는 소설을 제외한 에세이, 이언 매큐언은 <속죄>, 밀란 쿤데라는 <농담>, 필립 로스는 <에브리맨>, 카버는 <대성당>, 마르케스는 <백년 동안의 고독>, 헤밍웨이는 제대로 다 읽은 것인지 기억 안 나는 대부분의 작품들, 윌리엄 포크너는 <내가 누워 죽어 있을 때>, 포스터는 <전망 좋은 방>의 앞부분 정도.

 

그러나 '완강한 무관심'이라는 전부를 다 아우르려는 만용을 경계하는 신선한 개념과 글쓰기를 기본적으로 '사랑의 행위'라고 보는 에코의 "저는 모든 것을 후회해요"라는 고백은 그의 작품을 읽지 않고도 충분히 감동받을 수 있는 이야기다. 작품을 다 쓰고도 다시 타자기로 처음부터 이야기를 다시 손끝으로 체감하는 폴 오스터가 메이저리그 야구 선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그 다음에 작가가 되기를 원했다는 이야기는 "인생은 너무도 짧고 너무도 연약하고 너무도 알 수 없다."는 덧붙임으로 더없이 투명해진다. 그래, 분명 내가 느끼는 것들, 하지만 이야기하여질 수 없고 언어로 담아낼 수 없었던 것들을 명징하게 눈 앞으로 불러오는 그의 재능은 그의 책을 읽지 않고도 충분히 느껴졌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이 '파리 리뷰 인터뷰'의 강력한 매력이다.

 

모든 작가는 믿을 만한 독자가 있어야 합니다. <중략> 그렇지만 독자는 솔직해야만 합니다. 이것이 독자가 갖추어야 할 근본적인 자격입니다. 절대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며, 거짓으로 위로해서도 안 되며, 칭찬받을 만한 작품이 아닌 경우에는 절대로 칭찬을 해서도 안 됩니다.

-P.181 

폴 오스터의 이야기다. 이것이 그 인터뷰 자체의 질과 관련된 것이 아닐 수도 있지만 모든 작가와의 인터뷰가 고른 흥미와 감동과 몰입을 자아낸 것은 아니다. 대단히 기대했던 필립 로스는 아직 <에브리맨>을 쓰기 전이라 그런지 도통 읽어보지 못한 작품과 캐릭터들에 집중한 이야기가 나로서는 노년의 대작가가 늙음과 죽음을 그렇게도 생생하고 포괄적으로 그려 낸 연유를 알아내지 못해 아쉬웠고 밀란 쿤데라의 작품의 기법은 평범한 독자들이 이해하기에는 지나치게 전문적이고 어렵게 느껴져 알아듣는 데에 애를 먹었다. 그러나 왜 카버가 단편작가가 되었는지 그리고 그의 삶 앞에서 그가 느꼈던 무기력함과 고단함이 어떤 것이었는지, 그럼에도 그가 사치라고 생각했던 예술을 하면서 얼마나 행복했는 지를 가감없이 이야기하는 대목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아름답고 슬픈 단편 같았다. 나는 정말 레이먼드 카버가 이런지 몰랐다. 정말 몰랐다.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살아남고, 공과금을 내고, 식구들을 먹이고, 동시에 자신을 작가로 생각하고 글쓰기를 배우는 일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여러 해 동안 쓰레기 같은 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고, 글을 쓰려고 애쓰면서 제가 빨리 끝낼 수 있는 걸 써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답니다.  한 권에 2~3년이 걸리는 소설을 쓸 방법이 없었어요. <중략> 그래서 단편이나 시를 썼지요. 삶이 제가 원하는 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지요. 언제나 엄청나게 많은 좌절감에 직면해야 했어요. <중략> 우리는 여전히 가난했고, 언제나 한 발만 내딛으면 파산이 기다리고 있었어요.-p.323 

회복된 알코올 의존자라 자신을 명명하는 레이먼드 카버는 열여덟에 결혼해 열아홉에 아빠가 되었다. 그 부부에게 청춘이라고 할 게 없었다,는 이야기는 이제는 전설로 남은 위대한 단편 작가의 실제 삶은 얼마나 처절했는 지를 짐작하게 해준다. 그러니 그는 삶을 제대로 알았다. 겉만 핥고 남는 시간에 여유롭게 써대는 그런 긴 이야기 대신 당장 돈을 벌어야 한다,는 압박감에도 이상과 꿈에 좌절당하는 현실의 속살을 절절하게 알기에 '진짜 이야기'를 쓸 수 있었던 것같다. 레이먼드 카버의 그의 표현을 빌자면 "아무리 희미할지라도 계속해서 불타오르는 불꽃을 쏘아 올리는 어떤 것"은 소설의 일반적인 정의가 아니라 반드시 카버의 것, 그의 작품에 적용되는 찬사일 것이다.

 

<백년 동안의 고독>의 마르케스는 기대 이상으로 대단히 유쾌한 사람이었다. 마흔 살이 될 때까지 다섯 권의 책을 내고도 단 한 권의 인세도 받지 못했다는 이 작가는 노벨상은 자신에게 재앙이 될 것이라고 단었했는데 노벨상을 결국 받고야 말았다는 점에서 심심한 위로를 표해야 할 것 같다. 계속해서 작가에게 명성이 가져오는 해악과 불편함에 대하여 역설하는 마르케스는 그것이 나쁜  고독을 만들기 때문에 권력자의 고독과 닮아 있다고 덧붙인다. 게다가 소설을 읽는 대신, 여성 잡지와 가십을 읽느라 바쁘다는 너스레와 정말로 유일하게 평생 동안 후회하는 일이 딸이 없다는 점이라는 고백은 이 작가와 이야기를 하다 보면 하루가 아쉬울 정도로 유쾌할 것 같은 기대를 가지게 한다. 아주 귀엽고 유쾌한 사람인 것 같다.

 

노벨상을 받기 전의 마르케스와 아직 <에브리맨>을 쓰기 전의 필립 로스는, 그리고 세상의 온갖 찬사를 받기 전의 레이먼드 카버는 마치 결말을 다 알고 있는데 입에 침을 축이며 그것을 머금고 있는 알고 있는 자의 여유를 두둑하게 하는 묘한 이끌림이다. 한편 그러기 전의 그들이 그런 후의 그들과 동일하게 이해되어야 하는 지에 대한 의문과 아쉬움은 그 자체로 하나의 여백이다.

 

솔직한 독자가 되어야 한다는 폴 오스터의 말을 유념하고. 그럼에도 이 책은 칭찬받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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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4-02-06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르케스가 귀엽고 유쾌한 사람이었군요^^
오늘 아침 출근길에 들은 라디오 방송에서 초등 두 아이의 엄마이며 학원 강사인 직장맘의 육아 애환을 듣는데 눈물 나더라구요. 레이먼드 카버........에구 딱해라.

blanca 2014-02-06 22:11   좋아요 0 | URL
너무 솔직하게 자신의 불행한 상황을 고백하는 모습이 사실 공식적인 인터뷰 자리에서 쉽지 않잖아요. 게다가 작가가. 읽다가 가슴이 참 아프더라고요. 저는 막연히 알코올 중독자로만 알고 있었는데 왜 술에 빠지게 되었는 지 현실적인 고통, 좌절로 막다른 골목에 빠진 결과였다는 것을 (물론 그게 잘못된 거라는 것을 알긴 하지만) 듣고 나니 그런 상황에서 빚어낸 그의 작품들이 더 빛나게 느껴졌어요.

페크pek0501 2014-02-06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은 벌써 이 책을 읽으셨군요.
신문의 신간 안내 면에서 이 책을 보고 관심 가서 인터넷 검색을 해 봤던 책이에요. ^^

blanca 2014-02-06 22:11   좋아요 0 | URL
저도 관심만 가지다가 읽게 되었는데 아주 너덜너덜해졌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참 좋았어요, 페크님.

mira 2014-02-06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의 고뇌들이 제대로 나와있네요. 읽고 싶어지는군요

blanca 2014-02-06 22:13   좋아요 0 | URL
mira-da님, 사실 작가들의 소설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도 좋지만 저는 이러한 사적인 고백들과 어우러진 인터뷰가 참 흥미롭기도 하고 그 작가의 작품 자체를 이해하는 데에도 더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물론 정말 작품 얘기 위주로만 한 인터뷰도 있어요. 밀란 쿤데라의 경우가 그러했는데 저는 그래서 좀 오히려 섭섭하더라고요.^^;

transient-guest 2014-02-07 0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작가를 좋아하게 되면 솔직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어요. 팬심이랄까, 그저 그 작가의 글은 무조건 읽고만 싶고, 좋아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마르케스의 작품은 두 개를 보았는데 상대적으로 더 유명한 백년 동안의 고독보다는 콜레라 시대의 사랑이 더 잔잔한 맛이 느껴져 좋아합니다.

blanca 2014-02-07 13:14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안 그래도 관심이 있었는데 천천히 읽어봐야겠어요. 솔직히 <백년 동안의 고독>이 저의 취향이 아니었던 터라서요^^;; 상상력이 부족해서 그런지 몰입이 좀 힘들었어요. 레이먼드 카버는 너무 좋아하는 작가인데 역시 인터뷰 내용 듣고 나니 더욱 더. 정말 정직하게 솔직한 사람 같았어요. 사실 소설가가 자신의 삶 그 자체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싶어하지는 않는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반면 그는 솔직 담백하게 자신의 치부를 고백하는 모습이 진정성이 있어 보였어요.

감은빛 2014-02-25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들의 인터뷰네요.
재밌을 것 같아요.
움베르트 에코와 오르한 파묵은 읽어봤고,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은 책장에 방치중이예요.
헤밍웨이는 분명 읽었을 것 같은데, 막상 제대로 기억나는 게 없네요.
나머지 작가들은 확실히 읽은 기억이 없네요.

이 글을 읽으니, 이 책을 시작으로 저 작가들 작품들을 하나씩 찾아 읽고 싶어져요.

blanca 2014-03-01 08:09   좋아요 0 | URL
감은빛님, 재미있어요. 에코와 파묵을 읽어보셨다면 더더욱 그럴 거예요. 저도 <백년 동안의 고독>은 힘겹게 읽었어요^^;;

앤의다락방 2014-12-23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일이면 아마 주문한 책들중에 이 책도 섞여 배달 됩니다~ 읽고 싶은책이었거든요~ 이 리뷰를 보니 더욱 기대되요^^

blanca 2014-12-26 07:34   좋아요 0 | URL
댓글이 너무 늦었지요? 지금쯤 이미 다 읽으셨을까요? 크리스마스는 즐겁게 보내셨겠죠!

에이바 2015-06-10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 보니 `작가란 무엇인가` 1권이 2014년에 나왔었군요. 인터뷰는 더 오래되었지만, 개인적으로 깔끔했다고 느낀 인터뷰는 포크너였고요. 카버와 오스터 인터뷰는 작가의 인성이 보이는 느낌이었어요. 따뜻하고 진솔하고요... 전 파묵 인터뷰가 별로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