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 융, 기억 꿈 사상 - 카를 융 자서전
칼 구스타프 융 지음, 조성기 옮김 / 김영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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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가면 타협과 체념과 친해진다. 가장 비극적인 타협은 무의미와 하는 악수다. 내가 유한한 존재이고 나의 삶이 역사책의 주석 한 줄에도 끼이지 못하고 그대로 마침표를 찍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 높은 시나리오를 담담하게 읽어 낼 수도 있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 악의 현존도 수긍하고 감내해야 한다.  

감히 삶의 의미, 본질 따위를 논할 수 있는 오만은 예술작품과 종교들이 떠맡았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이 전부인 마냥 오도방정을 떠는 드라마에 중독되고 삶의 의미를 진지하게 자문하는 문학을 여전히 포기하지 않는다. 착각일지라도 나의 삶은 의미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단지 그냥 어쩌다 뻗어나온 잔챙이 정도로 나와 나의 삶이 폄하되는 것을 맨정신으로 견딜 자신은 잘 서지 않는다. 그래서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무언가 눈에 보이는 것들에 마냥 취해 있어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것들은 우리보다 질기다. 우리보다 세다. 우리가 죽고도 남는 것들은 쉼보르스크의 말처럼 박물관에 갈 것이다.  

독특한 자서전이었다. 태어나 살고 만나고 사랑하고 이별하고 집착하는 것 같은 외연적인 풍경은 희미한 자서전. 오히려 내면적인 의식의 흐름과 인식의 성숙에 초점이 맞추어져 독자를 아리송하고 난감하게 하는 약간은 불친절한 자서전이었다. 자신의 생애가 외적인 경험면에서 빈약하다,는 프롤로그에서의 그의 엄중한 경고를 명심하고 시작해야 한다. 그는 생전에 자신의 자서전이 출간되지 않는 조건으로 제자이자 비서에게 이 자서전의 내용을 구술하게 된다. 여든이 넘어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게 된 융은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 실현의 역사다.'라고 말한다.  

무의식의 자기 실현의 역사는 사실 좀 난감했다. 끊임없이 언급되는 꿈의 얘기, 연금술에 대한 천착, 신비주의적인 태도가 낯선 이물감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 이물감은 어느덧 하나의 감동과 경탄의 감정 속에 녹아 버렸다. 어쩌면 불편한 낯섦이 나의 무의식의 원형으로 조금이나마 다가가기 위해 뚫어야 했던 투박한 막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융 자신도 대부분의 사람과 자신과의 차이점을 '칸막이벽'들이 투명하여 그 뒤의 것을 인지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시공간을 초월해 더욱더 큰 본질적인 것, 의미로운 것들과의 연결 속에서 자기를 응시하는 자아의 모습이 결국 융이 얘기하고자 하는 궁극의 의미일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과거의 기억들을 조각조각 이미지로 떠올리며 마치 꿈같다,고 느끼고 지금 집착하고 경험하는 것들이 순간 순간 무의미하다고 되새김질할 때 단편적이나마 체험할 수 있는 실재이다. 그러니까 나는 안다. 지금의 것들이 언젠가는 다 무너지고 스러지고 마침내 '내'가 '나'라고 느끼는 이 절대적일 것만 같은 존재의 주체감마저 흩어지고 말 것이라는 것을. 이 허무의 지점에서 그 두껍고 무거운 철책을 더 밀고 나가 마침내 수많은 우리의 조상들, 역사들, 신화들의 거대한 원형의 흐름 속에 그 허무를 싣고 장려한 존재의 의미를 일깨운 것이 그의 위업이다. 결국 융이 얘기하고 싶었던 것은 우리는, 나는, 태어나 마땅했고 숨쉬고 꿈꾸고 사랑하며 어떤 더 큰 뿌리와 의미로 내달아 가도록 되어있는 숙명적 존재라는 것이다. 그가 얘기하는 숙명은 비극적이고 허무한 의미의 것이 아니라 존재의 의미론적 진동과 닿아 있는 그것이다. 그의 유신론이 교화적인 것이 아닌 지점과도 겹친다.  

다름 사람들이 모두 모르는 것을 홀로 안다고, 생각했던 그는 실로 고독했다. 수많은 적들과 싸워야 했고 그럼에도 그들을 설득시킬 수 없음에 때로 두려워하고 절망하기도 했다. 그의 절망은 아집이나 오만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노자가 "모든 사람이 명석한데 나만이 흐리멍덩하구나''라고 했던 고백은 그의 노년에서도 유효했다. 그는 판단할 수 없다고 했다. 인생이라는 현상과 인간이라는 현상이 너무나 큰 것이 때문에.  

인생과 인간을 무한히 크고 의미있는 것으로 세우는 일이 이 시대에는 이단으로 취급받는다. 현세의 욕구충족과 악의 현신에 걸치적거리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생명을 수단화하고 기계적인 것으로 치환하여 욕망에 비끄러 매는 것은 사실 삶과 존재의 의미를 흐리멍덩한 것으로 지워 버려야 가능한 일들이다. 생떼같은 젊은이들이 산재로 스러진 얼룩은 이미 우리가 터치하는 액정스크린에서 지워진 지 오래다. 그것은 우리의 무의미와 다름 아니다. 그것조차 인식하지 못하게 하려는 매트릭스 안에 우리는 오늘도 갇혀 그 안을 자유의지로 활보하고 있다,고 착각하며 견딘다. 

그의 자서전은 의외의 마침표를 가지고 온다. 뭉클했다. 위대한 노심리학자, 의사는 어리광처럼 덧붙인다.  

내게는 "그런데 사랑이 없으면"이라고 한 바울의 조건문이 모든 인식 중에서 최초의 인식이며 신성 그 자체의 진수인 것처럼 여겨진다. <중략>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그리고 "모든 것을 견딘다"(<고린도전서> 13:7). 이 구절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다. 우리는 여기에 아무것도 덧붙일 것이 없다.

 

결국 사랑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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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19 17: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19 19: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19 2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20 21: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0-10-19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도 이 책 읽으셨네요.
이 책 너무 어렵지 않아요? 나는 정리를 해내기 힘들었어요.
지금 블랑카님의 리뷰를 보며, 아 그렇구나, 이런 생각을 합니다.

정말 독특한 자서전이라는 점에 동감해요~

blanca 2010-10-19 19:07   좋아요 0 | URL
마고님 따라 읽은 거예요. 마고님 리뷰 읽고...저도 생각보다 너무 안 읽혀서 왜 별점이 그렇게 높나 했어요^^;; 정말 독특했어요. 너무. 후반부로 가니 왜 사람들이 그렇게 이 책을 좋아했나, 수긍이 가더라구요...그런 의미에서 마고님 고마워요...

마녀고양이 2010-10-19 19:17   좋아요 0 | URL
근데 말이죠.........
나 블랑카님이 추천한 <사도세자의 고백> 읽는 중인데,
이 슬픔을 어쩌면 좋을거냐 말이죠! 자자, 책임져요!

blanca 2010-10-19 19:37   좋아요 0 | URL
지금 여기서 놀아요. 공주님께서 늦은 낮잠 중이라 오늘 밤 어떻게 될지--;; <사도세자의 고백> 마지막에 영조가 정조한테 왕위이양할 때 완전 대박눈물나요. 저 콧물,눈물 다 뺐잖아요. 오늘밤 읽으시면 너무 슬프실텐데요.. 낮에 읽으세요^^

프레이야 2010-10-19 1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또 장바구니행이에요.^^
일목요연하면서도 정곡이 읽히는 리뷰, 감동적으로 가슴 울리는 한 점, 고마워요.^^
무의미와의 악수를 오늘도 하나 더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존재의 의미론적 진동과 닿아있는 숙명, 그런 값진 생과 인간으로서 나는 소중하고,
그 소중함이란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겠지요.
나만 가치있고 명석하다고 생각하는 현대판 나르시스들에 비해 노자나 융의 말은 의미가 아주 큽니다.

blanca 2010-10-19 19:39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저를 너무 띄워 주십니다.^^;; 꼬옥 소장하고 천천히 읽어 볼만한 책인 것 같아요. 사실 초반부에 좀 지루해서 덮어버리고 싶은 욕구도 좀 있었지만 역시 많은 리뷰어들의 극찬이 맞더라구요. 프레이야님, 언제나 저의 서재를 방문하셔서 소중한 댓글 달아주시니 고마워요. 저 그 이쁜 사진 보고 말았잖아요^^;;

2010-10-19 22: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20 21: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0-10-19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칼 융의 이런 면이 있었군요.

<인간과 상징> 에서만 그를 만났었는데.. 말이죠. 올려주신 글을 읽으니, 그의 눈길이 느껴집니다.

blanca 2010-10-20 21:41   좋아요 0 | URL
바람결님, 저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융이 솔직히 비호감이었는데 대략 그의 무게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더라구요. 이렇게 내면에 줄곧 전 생애를 걸고 천착하는 것, 아무나 못하는 거잖아요...<인간과 상징>은 못 읽어봤어요. 정작 그의 저작은 읽어 보지도 못하고 아는 체 한 것 같아서 부끄럽네요..

양철나무꾼 2010-10-20 0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융은 융만으로 읽히지 않고,프로이트와 묶어 세트로 인식 돼요.
그래서 일까요?
그의 외로움이 자가당착이라는 생각이 들고,그가 말하는 사랑이 가식 같아서 말이죠~

그런데,이렇게 따뜻한 시선의 페이퍼라니...저도 겸허해지지 않을 수 없는 걸요~^^

blanca 2010-10-20 21:44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 안그래도 프로이트와 지지고 볶는 얘기도 나오더라구요. 프로이트가 성이론을 마치 신앙적 교리로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다 마침내 그와 결별하고 마는 얘기. 융이 프로이트에 아버지를 투사했다고 고백하더라구요. 솔직히 저도 이 둘은 약간 비호감이었답니다. 그런데 자신의 한계, 무지, 부끄러움을 고백하는 노년이라니...이런 모습은 참 낯설고 대단한 것으로 뵈더라구요. 사실 노년이 되면 누구나 자신의 삶을 미화하고 윤색하고 자신의 이론,주장을 합리화하고 싶어지잖아요. 그걸 뛰어넘은 모습이 감동적으로 느껴졌어요.

2010-10-20 09: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20 21: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21 14: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억의집 2010-10-21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제가 알기론 유럽쪽에선 프로이드나 융의 심리학은 이제 폐기처분이라고 알고 있는데. 프로이드 이론이 융 이론보다 그런 대접을 더 받고 있긴하지만 융 또한 이제는 그렇게 예전처럼 대접 받지 못하다고 알고 있어요. 그래서 어쩌면 저 말, 자신이 이해받지 못하다는 말은 자신의 미래를 정확히 본 듯해요.^^

blanca 2010-10-21 20:43   좋아요 0 | URL
제가 융의 이론서를 제대로 읽어보지 못해서 융의 이론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 없을 것 같아요^^;; 자신의 꿈을 지나치게 예지몽처럼 과장하는 대목은 저도 상당히 거부감이 들더라구요. 그런데 정신과 치료에서 약물치료와 프로이트식 상담은 절충점을 찾아야 하는 대목도 있는 것 같긴 합니다..

기억의집 2010-10-22 09:29   좋아요 0 | URL
물론 저야 심리학에 대해선 개뿔도 몰라서 잘 모르겠지만.
제 친구중에 미국에 있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랑 무지 친했어요. 고등학교 내내 붙어다녔으니깐요.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미국 가서 지금 미국 산지가 20년이 넘고 20년동안 한국에 종종 나오면 꼭 저랑 붙어다니다가 미국 가는 친구인데.

그 친구랑 이번에 어떡하다가 연락이 끊어졌어요. 이제 끝나는구나 싶었는데 그제 연락이 왔더라구요. 그 친구도 저랑 끝나는 줄 알았는데 한국에 있는 자기 남동생한테 부탁하고 어쩌고 해서 제 핸폰으로 연락을 했어요.

2010-10-22 09: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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