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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여인의 키스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7
마누엘 푸익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0년 6월
평점 :
어떤 책은 놀라움을 준다. 이 단순한 문장이 사실은 가장 솔직하고 빈번하게 나오기 힘듦을 인정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경이로웠다. 이런 것이 소설이다,라고 어설프게 엮은 기존의 빈곤한 인식의 틀을
달려들어 해체해 버린 작품이다.
일관된 화자 대신 두 사람의 대화로 전개된다. 작가가 친절하고 성가시게 개입하는 대신 오직 두 사람의 말,
그것도 영화 얘기를 기반으로 한 상호텍스트의 변주가 주다. 아, 맞다. 작가는 각주로 개입한다. 감방 안에서 만난
동성애자와 정치범의 대화에서 기습적으로 삽입되는 동성애에 대한 철학적, 심리학적, 사회적 고찰은
그 진지함이 외려 엉뚱한 배경음악 같은 것으로 변환된다. 똥을 싸네, 마네 하는 본능적 대화 밑에서
프로이트의 <다형적 도착증> 같은 것이 진지함을 가장하고 사뭇 언급되는 것은
사실 교묘하게 작가가 화자로서 개입하는 장치로 판명된다.
그는 짐짓 동성애자에 대한 다양한 시각, 심리학적 생물학적 고찰을 학문적 권위에 기대어 전달해 주는 역할로 만족하는 듯하지만 작가가 등장인물들의 대화와 필연적인 연계가 없어 보이는 각주를 부지런히 덧붙이는 행위는 그 자체로 무언가를
은근하게 조롱하고 빈정거리는 듯한 속내를 흘리는 것 같다. 성적 소수자를 이해해 주려는 듯한 각종 학문적 접근이
그들을 하나의 온전한 인간으로 대우하는 것이 아니라 차가운 메스로 난도질해 그럴듯하게 도식화한 것에 대한
희화화다. 그러니 각주는 그 내용을 담은 틀이상으로 이해되어야 마땅하다.
<거미여인의 키스>라는 제목은 미성년자 보호법 위반으로 구속된 동성애자 몰리나가 게릴라 활동을 하다 구속된 발렌틴에게
자신이 본 영화 여섯 편을 마치 거미줄을 뜨듯 자신의 삶과 생각, 느낌 등에 엮어 교묘하게 변형, 재창조하여 들려주며
발렌틴에게 접근해 가는 과정의 상징을 지니고 있다. 캣피플, 독일나치선전영화, 좀비 영화 등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문자 텍스트와 영화의 이미지가 혼재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결국 작가가 얘기하고 싶었던
사회의 거대 헤게모니의 담론에 좌지우지되는 인간의 본질을 규정짓는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마침내 경직된 틀을 해체해 버린다. 성적 기호, 정치적 가치관, 이런 껍질을 벗겨 버리고 나온 속살에 가닿는 작가의
시선은 결국 존재 그 자체를 향한 긍정으로 귀결된다. 이토록 단순하고 이토록 명료한 진실에서 항상 멀어져만 가는
그 비극적 관성을 직시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순간 존재가 꽉 차는 환각을 느끼게 된다. 한계를 아는 것은 그래서 마력을 지닌다. 그 한계를 밀고 나가야 할 것 같은 부책감과,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담지하기 때문이다.
시나리오 작가로 출발한 작가의 전력을 바탕으로 한 역동적이고 허를 찌르는 전개가 독자를 단숨에 흡입해 버린다. 재미도 있고 깊이도 있는 소설은 기대나 선전만큼 흔하지 않다. 적당한 중량감을 유지하며 책장 넘어가는 속도까지 배려한 듯한 능력은 칭송받아 마땅하다. 헐리우드에서 브로드웨이에서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 연극이 성공을 거둔 저력은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렇고 그런 도식에 의해 잘 짜여진 예의바른 소설에 식상했다면 당장 마누엘 푸익을 접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스피아민트껌을 씹은 기분에 소설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라고 자신있게 외칠 수 있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