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에 꽁꽁 묶였다. 삼성역에서 신설동역까지 논스탑으로 오는 2호선은 없는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끝까지 얻지 못한 채 갈 때는 성수역에서, 올 때는 신당역에서 환승하느라 진을 다 뺐다. 홀몸이라면 가뿐했겠지만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안아달라, 무언가를 흘렸는데 찾아봐 달라, 칸쵸가 먹고 싶다는 둥 온갖 요구의 향연인 그녀를 대동했으니 길에서 드러눕고 싶을 정도로 몸이 힘들었다. 신당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정말 이쁜 여자 아이가(난 이제 이십 대 초반은 아이로 보인다) 샤방샤방한 원피스를 날개처럼 흩날리며 걸어온다. 이 아이의 뒤에는 역시나 훤칠한 퀸카 왕자님이 보위해 주고 계신다.
갑자기 스크린도어에 비친 내 모습이 들어와 박혔다. 그 음울하고 지치고 소녀와는 애저녁에 바이바이 해버린. 나에게도 저런 연애가 있었는데, 나도 지하철을 타면 바깥에 둘만이 마주볼 수 있는 동심원을 그려주는 관계가 있었는데. 기억의 왜곡인지도 모르겠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나는 되고 싶지 않았던,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모습과 자꾸 스치게 되는 과정인 것도 같다.
책상에는 세 권이 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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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 앵글로 색슨 계열의 금발 미녀가(게다가 기자이자 작가이며) 이혼하고 이탈리아, 인도, 인도네시아로 훌쩍 떠나 삶과 자아를 진진하게 느끼고 탐구하다 마침내 여생을 함께 누릴 소울 메이트까지 얻은 자랑질에 불과하다,고는 절대로 얘기할 수 없는 사랑스럽고 심오한 책이다. 물론 그녀가 욕심쟁이이긴 하다. 인간의 삶이 가지는 이중적 영광인 세속적 즐거움과 신성한 초월성 모두를 원한다고 당당히 고백하고 있으니까.(다들 마찬가지이긴 하겠지만) 하지만 그녀는 이 욕구를 응시하고 충족시키기 위하여 성실하고 진지하게 노력하는 모습을 재기어린 글발로 칙릿으로 끝나버릴 수도 있었을 몰랑한 얘기를 몇 단계나 업그레이드시킨다. 내면에 대한 탐구의 여정에서 약간 신비주의적인 코드로 접근해 가는 방식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녀가 삶과 존재를 받아들이는 섬세하고 애정어린 모습은 자꾸 멈추어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
"먹보야, 넌 매일 무슨 옷을 입을까 고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슨 생각을 할까 고르는 법을 배워야 해.-p.270
장미꽃잎으로 만든 하트로 신혼부부의 첫날밤을 맞아 주는 고급호텔과 빛나는 에메랄드빛 바다의 이미지로 떠오르는 발리가 가지는 역사적 배경과 토착민들의 정서를 관조하는 대목은 그 이미지를 뒤틀어 속살에 닿게 한다. 관습의 촘촘한 매트릭스 안에 갇힌 사람들, 항상 어디에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좌표를 확인하고 고정시키고 싶어하는 발리인들에 대한 관찰은 그녀가 단순히 팔자좋은 유랑을 다닌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자신을, 자신의 삶을, 타인을, 타인의 삶을 찬찬히 들여다 보고 마침내 다시 내면의 생채기들이 아물어 꾸덕꾸덕해진 부분을 매만지는 그녀는 내가 나를 어떻게 대우하고 삶을 어떻게 받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자세를 잡아주는 멘토 같다. 재미있고 유익한 책이다. 친정 아버지가 그 큰 입에도 불과하고 정말 미인이라고 상찬하는 줄리아 로버츠가 어떻게 표현해낼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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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계간지는 처음인데 하루키의 인터뷰가 150여 페이지(일본 계간지 게재분)나 실려 있다고 해서 궁금했다. 기본적으로 내면을 잘 드러내지 않는 성격인 것 같은데 아무래도 지면의 압박이 있다 보니 거의 대부분의 하루키를 오픈했다고 볼 수 있다. 말도 아주 논리적이고 재미있게 하는 사람인 것 같다. 기본적으로 자신의 작품에 대한 프라이드가 강하고 절제되고 규칙적인 생활을 통해 아껴놓은 것들을 풀어내는 것에 대한 기대감을 지니고 있는 면이 인상깊었다. 지극히 내성적이고 금욕주의적인 생활을 견지하고 있었다. <호밀밭의 파수꾼>의 샐린저, <위대한 개츠비>의 피츠제럴드, 레이먼드 카버 등에 대한 작가론도 무척 재미있다. 영어 번역을 꾸준히 하며 소설의 구조에 대하여 습득하고 감을 유지하는 생활을 하는 것도 더불어 그의 필력과 서사의 힘으로서 작용한 것 같다. 기본적으로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형제들>의 인간관에 동의하고 기초한 인간형들을 창조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선과 악의 준거점이 개별적이며 유동적이라는 시각은 그의 세계관이기도 하다. 고독하고 나약한 인간이 결국 의탁할 곳으로 사랑과 소통을 이야기하는 대목은 김연수와도 만난다. 경로우대를 받아 천엔을 주고 멀티플렉스에서 혼자 영화를 보는 하루키를 상상할 수가 없다. 사실이란다.
오늘 고전 서가를 서성거리다 하루키의 추천을 믿기로 했다. 어느 서점엘 가나 <1Q84>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가 따지기보다, 지금 우리에게 뭔가를 '강요하고 있는 것,' 그것이 선한 것인가 악한 것인가를 각각의 인간이 각각의 경우로 판단하는 수밖에 없죠. 그것은 아주 고독하고 힘든 일입니다.
-p.470
고독하고 힘든 우리에게 하루키는 위로가 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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