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가 돌아왔다 - 2판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섬뜩할 때가 있다. 내 자신이 때로는 타인이.
각자가 모르는 무시무시하고 기괴한 괴물이 서로의 외피를 뚫고 나와
미친듯이 으르렁대는 모습을 환시마냥 볼 때가 있다.
그리고 다시 조용해지는 세상. 우리는 악몽을 경험했다고 생각한다.
평온한 세상은 일상이고 한켠에 포복해 있는 그 승냥이들은 다시 동면에 들어간다. 

김영하는 우리 안의 괴물을 일으켜 깨운다. 은밀한 욕망, 시기, 질투, 분노, 살의.
이러한 무형의 것들이 젤리처럼 엉켜 있는 그곳을 억지로라도 응시하도록 그는 우리를 돌려 세운다. 

그러니 불편하고 언짢다. 두렵고 거북살스럽다. 

그러나 한번 그곳에 발을 들여 놓으면 어쩐지 쉽게 되돌아 나오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엄연한 실재이기 때문이다. 실제하는 실재. 그러나 쉽게 들여다 보지 못하는 그것들을
결국은 보고야 말때는 뒤돌아 보지마! 뒤돌아 보면 석상이 된다고! 하며 경고했음에도 결국은 뒤돌아 보고
그 형벌을 받고야 마는 금기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 일탈욕구를 그가 살살 긁어 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소설들은 온갖 금기와 두려움과 호기심의 범벅이다. 문장의 미려함보다는 서사의 역동성과 급박한 전개가
영상 세대들의 빠른 안구회전을 붙잡아 둘 수 있는 마력이다. 그의 소설이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읽힐 수 있는 지점이다.
 

다들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던 이사를 소재로 포장이사업체 직원들의 거칠고 무례한 언행들을 긴박한 스릴러물을 보는 듯할 정도로 극적 긴박감을 솜씨좋게 부려놓은 <이사>, 삼십 대의 잘나가는 투자전문가들의 먹튀행각을 이순신동상의 폭파 사건과 교차시켜 결국 제꾀에 스스로가 걸려들고 마는 공허한 대목을 형상화한 <보물선>, 수영장에서 우연히 만난 중학교 동창녀, 그녀를 은근히 스토킹하는 수영 강사와 신문지상의 스토킹살해사건을 연결지어 생각해 온갖 망상을 부풀린 약간 맹한 '나'에 대한 이야기인 <너를 사랑하고도>, 변사체가 되어 돌아온 한 여자를 공유했던 세 남자의 저마다의 용의점들과 내면의 상상들을 괴괴하게 그린 <크리스마스 캐럴> 등. 단편 하나하나가 선뜩선뜩하고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라인으로 단숨에 읽혔고 내 안에 잠자고 있던 그 온순하고 음흉한 괴물을 살살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그들은 진숙이 피살되었을 때, 모두 자기 손을 찬찬히 살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혹시라도 내가, 나도 모르는 새에 칼질을 해댄 것은 아니었을까. 지난밤에 나는 정말로 아무 일 없이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 것일까. 사실 그들의 꿈속에서 진숙은 여러 번 살해되었다. 그녀의 피는 끝이 없었다. 속죄는 가능하지 않았다. 짓지 않은 죄를 참회할 수는 없었다.
                                                                                                                              -<크리스마스 캐럴> 중 

현대인들은 이렇게들 살아가고 있다. 자기도 어쩌지 못하는 자기를 억지로 부둥켜 안고 숨기고 싶은 과거들과 영원히 포박해 버리고 싶은 은밀한 욕망들을 억지로 눌러가며 자기 안의 괴물을 근근히 사육해 가며 버티고 있다. 죄는 짓지 않는다. 여간한 경우가 아닌한. 꿈속에서 무의식의 세계에서 저지르는 범죄로 참회까지 하지는 않아도 된다는 미약한 자기 확신으로 버티며. 

하지만 그들의 추악한 과거의 메타포 같은 진숙이 그들에게 보낸 크리스마스 카드에서 흘러나온 캐롤처럼 산타할아버지는 알고 계신다. 누가 착한 애인지, 나쁜 애인지. 우리는 여기게 이르러서 절망할 수밖에 없다. 욕망하는 나와 그런 나를 지켜보고 심판하는 나.  그 아득한 간극의 중심에서 김영하는 앞으로 더 밀고 나아가야 할 것 같다. 파헤치고 깨닫고 절망하고. 그 다음. 그래서 그가 더 기대되는 이유다.


댓글(19)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순오기 2010-08-09 0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영하는 하나도 안 읽어서 몰라요.ㅜㅜ
지역도서관에 최규석 신간 신청하시고, 이벤트에 댓글 남겨주세요.
도서관에 안 가고 인터넷으로 신청하면 되는 건 알죠?^^

blanca 2010-08-09 21:54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안그래도 저도 참여하려고 했었는데요, 아리랑 정보 도서관에 이미 비치되어 있다는 마노아님의 댓글을 읽고^^;; 저랑 마노아님이랑 근처에 있나 봐요.

순오기 2010-08-15 02:17   좋아요 0 | URL
아~ 마노아님이랑 같은 도서관이군요.^^

비로그인 2010-08-08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침, 점심, 저녁 내게 주어진 삶이 너무 톱니처럼 꽉 맞물려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안그래도 늘 꽁꽁 숨겨 놓아 저기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그림자를 꺼내 얘기할 시간도 너무 없고요. 남에게 떠밀림, 사람이라면 누군가에게 있을 추함, 수면 아래에서 늘 웅크리고 있는 그림자 들에 대한 진지한 고민들이 많아지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네요.

문학의 가지는 기능 가운데에는 그런것을 꺼내 함께 들여다 보게 하는, 그런 것도 있지 않을까요..?

blanca 2010-08-09 22:00   좋아요 0 | URL
바람결님. 나이들수록 더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책을 더 열심히 읽게 되요^^ 나이값이란 억압과도 비례하는 면이 있어서. 갑자기 이런 댓글 달라니 제 나이가 넘 많게 느껴지네요..어제가 스무 살이었던 것 같은데 말이에요 ㅋㅋ

후애(厚愛) 2010-08-08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음에 꼭! 뵈어요~
더위 조심하시고 항상 건강하세요.^^

blanca 2010-08-09 22:00   좋아요 0 | URL
후애님....1년을 기다려야 하나요? 흑흑. 이래저래 시간이 더 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그래도 알라딘 서재에서 항상 함께 해요!

stillyours 2010-08-09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휴가 동안 <검은 꽃>을 읽고,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다시 읽었어요.
그래서인지 블랑카님 리뷰가 확확 더 가깝게 다가오네요.
실제하는 실재.에서 고개를 또 끄덕입니다.

blanca 2010-08-09 22:02   좋아요 0 | URL
moon님 그러셨어요? 우아. 그러셨구나. 신기해요. 저도 지금 한창 김영하를 파고 있는데^^;; 단편집이 더 좋더라구요. 저는 김영하를 <여행자 도쿄>로 첨 만나고 그 담에 아마 <검은 꽃>을 읽었던 것 같은데 그의 장편이 기대를 너무 해서 그런지 조금 못 미친다는 느낌이 들었었거든요.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또 어떤지 넘 궁금해져요.

굿바이 2010-08-09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리저리 피했는데, 골목길에서 만난 느낌이예요. 김영하를 아무래도 집으로 모셔와야 할 것 같아요. 궁금해서 도저히 못참겠어요. 블랑카님 글을 읽고나니, 돌아온다는 오빠를 더는 막을 길이 없네요. ㅠ.ㅠ

blanca 2010-08-09 22:02   좋아요 0 | URL
굿바이님 저도 사람들이 하도 김영하, 김영하해서 과대평가됐다고 속단했었는데 이제 차근차근 알아가니 그럴 만 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오빠부터 맞아들이시는 것이 괜찮을 듯 합니다.^^

아시마 2010-08-09 1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정말 괜찮지요?

블랑카님의 리뷰를 읽고 예전에 제가 썼던 리뷰를 찾아서 다시 읽어 봤는데요, 이거 같은 책 읽은건가 싶어요. 이런게 리뷰쓰는 재미.
아마, 저는 김영하의 초기 작품부터 순서대로 따라가서, 작가의 성장(글이 나아졌다는 의미가 아니라)쪽으로 초점을 두고 책을 읽었는데, 블랑카님은 아마도, 작품 그 자체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연대기적 글 읽기는 때로 방해물이 되는듯요.

그래도 확실히 이 책을 기점으로 김영하는 많이 바뀌어요. 나중에 소설집 <호출>한번 읽어보세요.

ps. 이 리뷰 읽으면서 새삼, 난 블랑카님 되게 좋드라~ ㅎㅎㅎ

blanca 2010-08-09 22:05   좋아요 0 | URL
아시마님 ㅋㅋㅋ 저는 솔직히 말이에요. 김영하는 과대평가된 작가라고 혼자 평가 내리고(아무도 내 평가를 궁금해하지는 않겠지만) 검은꽃 이후로 안읽으려고 했었거든요. 그런데 정말로 단편을 읽고는 깜짝 놀랐답니다. 아시마님의 말씀이 맞았어요. 아시마님의 연대기적 글읽기는 저의 얕은 독서와는 차원이 다른 것 같아요. 다음에는 <엘리베이터에 끼인 그 남자> 읽으려고 했는데 <호출>로 급선회하겠습니다. 아시마님의 고견을 듣구요.

꿈꾸는섬 2010-08-10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지런한 블랑카님, 김영하 다시 읽기 하고 계시군요.
저도 이번 읽고 있는 책 읽고 김영하 책부터 읽으려구요.^^

blanca 2010-08-10 16:45   좋아요 0 | URL
꿈꾸는섬님, 저는 벌써 작가 만날 맘의 준비 하고 있어요 ㅋㅋㅋ 김칫국부터 마시고 있는 셈이에요. 꿈꾸는 섬님또 함께 준비하시는 건가요?^^

마녀고양이 2010-08-10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하이. 역시나 좋은 리뷰네요.
그런데, 역시나 모르는 책이네요. ㅋㄷㅋㄷ

blanca 2010-08-10 21:46   좋아요 0 | URL
ㅋㅋㅋ 무사귀환 완전 축하해요. 폭우 쏟아져서 걱정했었어요.^^;;

비로그인 2010-08-13 0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다가 등골이 오싹해지는 경험을 안겨주었던 책인데, 읽으셨군요. 저는 김영하의 소설은 어지간해서는 권하기가 힘들 것 같아요. 하지만 읽게 됩니다. 그 무서운 경험을 누군가에게 추천할 수 있는 건가, 싶어서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씀하신 것 처럼 그것을 엄연히 부정할 수 없는 것이기에 읽게 되는 것이지요.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의 전부를 그렇게 쥐락펴락 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살아 있는 모든 일은 결국 서로의 일부를 자기 손 안에 넣거나, 넣을 수 있다고 자만하는 사이 일어나는 사건들이에요. 작가가 되거나 피사체가 되거나, 선택을 할 수 있는 자와 없는 자 사이의 거대한 차이에서 일어나는 일이지요. 광복절 사면도, 당장 당면한 개개인의 소소한 일상도, 따지고 보면 그 차이에서 나온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이렇게 말하면 제가 너무 늙은이 같이 느껴져서, 또 슬퍼집니다.

blanca 2010-08-13 14:55   좋아요 0 | URL
쥬드님, 저는 주홍글씨가 김영하 원작이었다는 사실에 소스라치게 놀랐어요. 누군가는 이 작가가 지나치게 개인적 어두움에 집착한다고 비난하긴 하더라구요. 쥬드님 말씀이 맞아요. 특히나 사람 사이에서 그런 권력욕이 발동하기 시작하면 그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게 되니까요. 저도 요즘 많이 늙고 있어요. 어감이 이상하지만. 진짜 느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