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집이 책 때문에 옆구리가 터지게 생겼다. 마녀고양이님 공주님께서 고이 보고 넘겨주신 영어책전집을 구실삼아
책장을 들여놨다. 삼 단의 아담한 책장에 그 책들을 잘 꽂아 놓고 아이의 다른 전집류도 좀 꽂아 놓고 슬그머니
내 책을 한 짐 떠메고 책장 앞에 앉아 꽂기 시작하자 마침 놀러온 여동생이 양심도 없다!고 저지한다.--;;
아이의 책장에 내 책을 슬그머니 꽂아 놓는 모습이 좀 염치없어 보였던지. 

그래서 다시 다 빼고 육아서만 다 모아 다시 꽂아 두었다. 결국 내 책이지만
이 책장은 암암리에 아이의 것으로 인식된 모양이니 교육에 관련된 것만이라도 일단 모아 정리해 주고,
동생의 귀가와 더불어 다시 여행서도 좀 꽂아 두었다.  

엄마의 서재, 엄마만의 책장, 이런 게 참 생소한 모습처럼 여겨지는 것 같다.
남편을 위해 서재를 꾸며 주는 여자들은 보았어도 자신만의 서재를 가지겠다고 다짐하는 나의 모습은
조금 생경스럽고 뜨악한 것으로 받아들여 지는 것 같다. 주제넘은 욕망일지라도 나는 그 꿈을 가지고 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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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를 다녀오고 아름다운 풍광을 똑딱이로 담으며 계속 한숨이 나왔다.
미적 감각이 전무한 나일지라도 내가 가지고 싶은 순간들,
느낌들이 솔솔 빠져나가는 맨들맨들한 이미지들이 나의 기술 부족이 아니라 카메라의 탓이라고 자꾸 여기게 된다. 

김영하가 상찬해 마지 않았던 그 롤라이35 같은 손 안에 쏙 들어오는
그러나 중량감 있는 필름카메라를 가지고 싶다.
그런 카메라만 있으면 이미지가 난무하는, 그래서 그것들을 소중히 존중하지 않게 되는 이런 나의 사진들이 아니라,
현상해 보고서야 비로소 알게 되는 그 도도하고 독특하고 묘한 느낌들을 가질 수도 있게 될 것 같다. 

물질에의 욕망은 언제나 사실 심리적 결핍을 구체적으로 물화시키는 것이상이 될 수 없다는 얘기를 떠올려 보며
나는 정작 롤라이 같은 카메라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런 카메라를 들고 세계를 돌아다니며
글을 쓰는 그의 삶을 동경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런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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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7-07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전 저만의 서재와 저만의 책장을 가지고 있어요.
생경스럽고 뜨악한 것을 넘어서 아주 이기적으로 보인대도...난 그냥 이렇게 살래요.

blanca 2010-07-08 14:16   좋아요 0 | URL
마기님, 부러운 것 투성이에요^^ 맘껏 부러워하고 꿈꿀래용!

비로그인 2010-07-07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만의 서재. 그것이 왜 생소한 것이 될까요.. ^^

"자기만의 방" 그것은 어떤이를 불문하고 꼭 필요한 것은 아닐지요.

방의 크기와는 상관없이, blanca 님의 눈길이 차곡차곡 쌓이는 그런 방에서 스며나올 그 글자들을 기대해 봅니다..

blanca 2010-07-08 14:18   좋아요 0 | URL
바람결님, 버지니아 울프가 그랬나요? 여자에게는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고. 미혼때는 이해못했는데 왜 그런 얘기가 필요했는 지를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나서 깨달았어요. 나는 아닐거야,라고 했던 게 고대로 예외없이 다 겪게 되네요.

아주 이쁘고 아담한 서재와 그 서재를 가질 만한 능력을 키우겠습니다.^^

마녀고양이 2010-07-07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서재 전체가 제 방입니다.
저희 신랑과 딸아이는 제 책을 빌려보고요. 제가 골라주곤 합니다. ㅋㅋ

블랑카님,, 아이의 책장 하나 마련하셨군요.. ^^

blanca 2010-07-08 14:20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 덕분이에요. 지금 책장이 비어서 좀 이쁘게 채워서 실사컷을 올려보도록 할게요. 책을 빌려주신다고요 ㅋㅋ 제 남편은 하도 책을 접고 배를 쫙 펴고 늘여놓고 심지어 책 위에 아이스크림 막대기도 올려 놓고--;; 그래서 요주의 대상으로 제 책 접근 근지랍니다. ㅋㅋ

순오기 2010-07-07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이 없잖아요.ㅜㅜ 제목을 보곤 당연히 사진이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자기만의 서재, 비록 주방 한쪽이라도 '나만의 방'을 갖는 당당한 여자가 되자고요.
우린 거실 전체가 내 방이고 내 서재고... 식구들이 같이 뒹굴지만 분명 내 서재라고요.ㅋㅋ

blanca 2010-07-08 14:20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원래 사진 올리다는 게 정신줄을 놓았는지 그냥 써놓고만 말았네요.^^;; 책장을 좀 채워서 사진도 올려볼게요. 순오기님 책장처럼 멋져 보여야 할텐데요^^

gimssim 2010-07-07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마의 서재, 엄마만의 책장...아! 우리의 로망이 아닌가요?
blanca님 너무 상심마요. 세월이 가면 가질 수 있답니다.
한가지 방법은 서재에다 자신의 이름표를 갖다 붙이는 겁니다.
그리구서는 우겨야지요. 내 서재라구요.

blanca 2010-07-08 14:21   좋아요 0 | URL
중전님^^;; 이름표 그거 좋은 아이디어네요. 중전님 생각하면 자꾸 그 툇마루에 단아하게 엎드리신 모습이 어른 거립니다. 예. 믿고 기다려 볼게요. 세월이 가면 좋은 것도 많은 것 같아요.

꿈꾸는섬 2010-07-08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저도 마찬가지에요. 제 책장으로 쓰고 싶었던 것들이 자꾸만 아이들 책에 밀려서 여기저기 구석으로 내몰리고 있어요.ㅠ.ㅠ
그래도 곧 아이들 크면 나아지겠죠. 저흰 책장이 거실에 있어요. 저도 저만의 서재를 갖는게 꿈, 지금 쓰고 있는 방은 서재라기엔 아이들의 장난감과 저의 책과 컴퓨터와 온갖 잡동사니들이 굴러다니고 있어요. 어서 아이들 자라서 장난감도 좀 정리하고 잡다구리한 것들 버리면 제 서재를 만들거에요.^^

blanca 2010-07-08 14:23   좋아요 0 | URL
꿈꾸는섬님, 흑흑 동감합니다. 아이가 좀 커야 할 것 같아요. 버릴 것도 좀 버리고 확 뒤집어 엎어서 깔끔하게 만들고 싶은데 그런 날이 오겠죠?

2010-07-08 18: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09 15: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穀雨(곡우) 2010-07-09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대학졸업하고 취업하면서 책을 좀 등한시하다 결혼과 동시에 과감히 다 정리해 버렸어요. 그리곤 슬금슬금 끌어 모은게 어느새 거실한면을 오롯이 차지하더군요. 급기야는 거금을 들여 책장을 맞추고 밀어 넣어 버렸는데, 안 먹어도 배부른 느낌이 딱 이거구나 싶더라구요. 저두 서재는 언감생심입니다. 가뜩이나 좁아서 그냥 이대로 온 집을 책으로 도배하는 날까지 쭉~~~ 하지만 블랑카님은 꼭 이루시길.....^^ 오랜만에 다녀 갑니다. 행복한 주말 되세요.

blanca 2010-07-09 22:08   좋아요 0 | URL
곡우님, 저는 아마 대학에 들어가면서 한동안 책을 등한시했던 것 같아요. 제가 방황한 시간들이랑 책을 멀리한 시간이 일치하는 걸 최근에야 깨닫게 되었답니다. 그런 식으로 책을 사모으는는 것을 합리화하기로 했어요^^ 저는 오랫만에 육식을 좀 했더니 속이 또 불편하네요^^ 그래도 이 밤 아이도 자고 곡우님의 댓글을 읽으니 참 행복합니다.

穀雨(곡우) 2010-07-09 22:31   좋아요 0 | URL
저희집 아이들은 아직 멀뚱멀뚱 잠들 기색이 없네요. 연년생인데 딸래미가 동생이라서 오빠랑 늘 투닥투닥거리네요. 그래도 보고 있음 절로 웃음이 납니다.
근데, 넘의 살 드시고 불편하면 안 되는데, 따따시한 차라도 한잔 드시고 어여 주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