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갑자기 노안이 왔다. 그 탓에 한동안 책도 보기 싫고 글도 쓰기 싫어졌다. 뭔가 이런 행위를 할 때마다 너는 이제 늙었다,고 확인사살당하는 심정에 절로 우울해졌다. 노안이 오기 전의 내가 그리웠다. 깨알같은 글씨로 그날그날 있었던 별스럽지 않은 일들을 메모했던 나날들이 낯설었다. 나이든 얼굴도 새치도 노안만큼 나이듦의 현타를 주지는 않는다. 노안이 온 순간 이제 엄마로만 생각했던 어떤 중년의 여인의 모습이 내 것임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자각이 왔다.
미켈란젤로가 72세에 성 베드로 대성당의 수석 건축가로 임명된 사실은 크게 알려져 있지 않다. 사실이다. 그는 만년에 그 걸작의 책임을 떠안았다. 심지어 완공을 보지 못하고 죽을 가능성이 큰 프로젝트였는데도 그는 기꺼이 떠안았다. 성 베드로 대성당의 착공부터 완공까지 미켈란젤로가 전담한 것은 아니다. 착공은 이미 브라만테에 의해 이루어졌으나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한 것을 미켈란젤로가 인수하여 시공상의 결점을 보완하고 윤곽을 확정지어 후대의 잔로렌초 베르니니가 완공하기까지의 중추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한 마디로 누군가에게 노년에 그런 일을 떠맡긴다면 골칫거리로 여기고 거절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자신이 시작도 마무리도 할 수 없는 일, 분명 많은 착오와 허점을 수정, 보완해야 하는 머리 아픈 일을 이제는 모두 퇴직하고 고향에 돌아가 쉴 나이에 타향에서 만년의 17년을 온전히 헌신하여 완수해 낸 것이다.
저자 월리스는 세계적인 미켈란젤로 권위자로 그 자신이 예순이 넘고 나서야 미켈란젤로의 이 만년의 프로젝트를 탐사한 이야기를 집필할 결심을 하게 된다. 미켈란젤로는 위대한 예술 작품들 뿐만 아니라 방대한 기록 자료를 남긴 사람이라 한다. 이 문서 자료들을 통해 구축한 거장의 만년의 서사는 그 자체로 감동적인 이야기로 와닿는다. <미켈란젤로, 생의 마지막 도전>은 미켈란젤로가 성 베드로 대성당의 건축가로 출발하여 완공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의 장대한 여정에 관한 보고다.
미켈란젤로는 모든 것을 명령하고 뒷짐만 지고 있는 유형의 건축가는 분명 아니었지만 노령에 접어들며 어디까지 자신이 관여하고 어디부터 위임해야 하는지를 기민하게 인식한 실행가였다. 그는 그 자신을 중심으로 한 여러 조수들의 군단을 직접 조직했고 그들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우정을 나누었다. 그의 건축 프로젝트의 위대한 점이 여기에 있다. 스승이 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도 그 스승의 정신이 구현되는 데 한 치의 오차도 없도록 후계자들이 움직일 수 있었던 건 그의 설계, 그의 조직이 체계성과 핵심적 가치 덕분일 것이다. 이는 온갖 정보를 한 사람이 독식하고 주변 사람들과 제대로 된 소통이나 아랫사람에 대한 적절한 위임이 이루어지지 않아 끊임없이 초심의 가치와 정신이 무화되는 여러 프로젝트나 심지어 정책들에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다.
그가 주변 사람들과 나누었던 우정들, 아들처럼 사랑하고 아꼈던 하인과의 눈물겨운 작별 에피소드들은 두고두고 여운이 길다. 동시대 사람들보다 거의 배는 살아서 장수했던 거장은 그만큼 수많은 인연들과 예기치 않은 석별의 정을 나누어야 했다. 그는 베드로 대성당 건축을 조물주에게서 주어진 하나의 소명으로 받아들였다. 끊임없이 고향 피렌체로 돌아오라는 주변인들의 요청에도 결국 로마에 남아 여든이 훌쩍 넘어서까지 버틴 것은 그 소명을 완수하는 것이 구원 그 자체로 향한 길이기도 하다는 그 자신의 믿음과도 통하는 일이었다.
나는 이탈리아에 가본 적이 없고 그래서 아쉽게도 "나의 백발과 나의 고령을 내 것으로 받아들인다."고 고백하고 시작했던 이 예술가의 걸작의 스카이라인을 보지 못했다. 기회가 된다면 꼭 한번 성 베드로 대성당의 돔을 보고 싶다. 그 앞에서 고작 그의 나이의 반 정도를 살고 노안으로 투덜거렸던 나의 이 나약함을 반성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