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인물들은 하나 같이 불완전하다. 실제 우리처럼. 가장 사랑 받았던 캐릭터 올리브 키터리지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녀는 불쑥불쑥 남의 일에 끼어들고 참견한다. 실제 주변에 이런 할머니가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성가셔할 것이다. 그러니 차 안에서 옛 스승을 보게 된 제자는 자신을 들키지 않으려고 목을 움츠릴 수밖에. 그러나 이를 그냥 지나칠 올리브가 아니다. 그녀는 눈을 피하려는 구태여 제자를 불러낸다. 그러나 이러한 그녀의 무람 없음은 결국 타인의 삶에 끼어들고 개입함으로써 어떤 공감과 소통의 영역을 만들어 낸다. 좋다고도 나쁘다고만 할 수도 없는 풍경이다.















그녀의 신간이 나왔다. 올리브 시리즈는 아니고 루시 바턴 시리즈라 할 수 있다. 지독한 가난과 학대를 경험한 그 루시 바턴이다. 그녀가 노인이 되어 하는 이야기들은 전남편 윌리엄을 중심으로 엮여 있지만 결국 그녀 자신의 이야기고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윌리엄은 루시 바턴의 전남편이다. 루시 바턴과는 달리 부잣집 출신이다. 과학자이고 끊임없이 외도를 했다. 심지어 루시 바턴과의 친구와도. 그러나 쿨하게도 루시와 윌리엄은 성인이 된 두 딸의 문제를 함께 상의하고 심지어 떠나간 각자의 배우자 이후의 성가신 일들을 함께 처리한다. 윌리엄의 엄마가 그를 낳기 전에 떠나온 딸, 즉 윌리엄의 이부 누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에도 동행한다. 루시 바턴에게 고급한 취향을 전수하고 때로는 루시 바턴의 출신 배경을 공공연히 언급하기도 했던 윌리엄의 어머니에 얽힌 비화와 소설가로 성공하고 난 후에도 어린 시절의 상처를 여전히 간직한 그녀가 어떻게 이 여정에서 변화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잔잔하면서도 여전히 깊은 울림을 준다. 동서양의 가치관과 문화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우리에게 여전히 호소력을 지닌 것은 그녀가 인간의 보편적 정서에 기댄 어떤 근원적 고독감과 삶에 대한 갈망을 섬세하게 포착해냈기 때문일 것이다. 


이를테면 박물관의 꺼지지 않는 불빛을 보며 그 안에서 밤을 새워 일하는 가상의 직원을 상상하며 스스로의 외로움을 달래는 이야기 같은 것. 실제 박물관에 그런 사람이 없었을지라도 우리는 우리가 상상하는 어떤 이야기의 빛에 기대어 때로는 이 고단한 현실을 버텨나갈 힘을 얻는다는 통찰이 와 닿는다. 또한 어떤 결핍이 그 사람의 내면을 점령할지라도 그 사람이 삶을 살아나가는 데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며 망가뜨리지는 않는다는 인간과 삶에 대한 신뢰 또한 따스하다. 스트라우트는 현실적인 인간 군상을 통해 결국 삶을 긍정하고 싶어하는 작가다. 


그녀의 인물들은 작가와 함께 나이를 먹는다. 올리브도 루시도 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노년기에 접어든 주인공들과 과거의 일들의 회상들을 들으며 그것의 의미를 다시 정립하는 과정의 독서를 하게 된다. 그것은 우리의 미래이기도 하고 과거이기도 하다. 내가 지금 여기에서 겪어나가는 일들이 내 삶에 어떤 의미로 남을지는 그때에 가 봐서야 비로소 알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우리 모두가 얼마나 신비롭고 신기하고 신화적인 존재인지를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강조한다. 지금 가는 시간은 결국 우리 모두 각자의 이야기를 쓰는 하나의 공간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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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0-29 15: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번에 출간된 오! 윌리엄 125페이지 분량인데 루시 바턴의 출신 배경 따졌던 이 집안도 그다지 ㅎㅎ
가장 현실적인 거대한 이민자 출신 구성원으로 이룩한 미국의 보통 사람들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blanca 2021-10-29 19:24   좋아요 1 | URL
분량이 생각보다 짧아 놀랐어요. 그래도 좋아하는 작가 신간이라 참 반가웠고 특유의 어떤 사랑스러움이 묻어나와 저는 개인적으로 좋았는데 혹평도 많더라고요. 작가 나이가 들었구나 싶은 대목은 많더라고요. 자전적인 내용도 많이 들어간 듯한 흔적이 보였고요.

그레이스 2021-10-30 01:46   좋아요 2 | URL
그럼 원서로 도전해 볼까요?^^

blanca 2021-10-30 08:45   좋아요 2 | URL
그레이스님, 분량도 그렇고 이 작가가 단문, 구어체를 많이 쓰는 편이라 가독성이 좋아서 그 어느 작가들보다 원서 추천합니다.

scott 2021-10-30 18:17   좋아요 0 | URL
저도 블랑카님 말씀에 동감 합니다
스트라우트가 단문, 구어체를 많이 쓰는데
특히 루시 버튼은 스트라우트 책 중에 원서 진입 장벽이 낮고
이번에 오! 윌리엄은 솔직히 애거서 크리스티 작품 정도 어휘력이면 충분히 ^^

라로 2021-10-30 10: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루시 바턴은 읽지 못했는데 그럼 루시 바턴의 이야기부터 읽어봐야겠어요. 장담 못하는 미래에..^^;; 일단 보브아르, 긴스버그, 메르켈,, 읽고...끙;;;

blanca 2021-10-30 18:02   좋아요 1 | URL
라로님 읽을 책이 있는 상태가 좋은 것 같아요. 저는 갑자기 읽고 싶은 책도 읽을 책도 없을 때 멘붕 오더라고요.

다락방 2021-11-02 12: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번역되기를 이제나저제나 기다리고 있는데 블랑카님의 이 글 읽으니 원서로 한 번 도전해볼까 봐요. 그러다 안되면 포기하고 번역본 기다리죠, 뭐. 후훗.

땡투 누르고 구매했습니다, 블랑카 님. 부자되세요! ㅋㅋㅋㅋㅋ

blanca 2021-11-02 18:16   좋아요 0 | URL
ㅋㅋ 저는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팬이라 이래도 저래도 좋더라고요. 이미 객관적 판단은 불가한 상태이고요. 좀 뭐랄까 너무 수필 같은 면은 있는데 그래서 더 좋기도 하고 그랬어요. 일단 분량이나 문장이 짧아 원서로 읽는 것도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