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턴 록
그레이엄 그린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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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서 선한 주인공을 매력적으로 그리는 서사는 쉽게 만들 수 있다. 우리는 흔히 자신의 이기적인 본성을 감지하지만 쉽게 감정이입하는 인물은 악인이 아니라 선인이다. 심연에 가라앉아 있는 탐욕, 위선, 이기심, 질투, 증오는 공감이 아니라 투사에 의한 적대로 나타나는 경우가 더 많다. 이를테면 우리가 누군가를 강하게 비판하게 된다면 그는 나의 약점, 내가 싫어하는 나의 어떤 취약점을 공유할 가능성이 큰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야기의 캐릭터 구현은 종종 선악의 대결구도로 그려질 때 무게중심을 슬며시 미덕을 가진 인물에게 옮겨간다. 그만큼 악을 형상화해서 독자의 호응을 얻는 것은 어렵다. 그레이엄 그린은 그런 어려운 일을 해냈다.


<브라이턴 록>의 주인공은 열일곱 살 소년 핑키다. 그는 범죄자다. 살인을 저질렀고 그것을 은폐하기 위해 사건의 중요한 증언을 할지 모를 열여섯 살의 소녀 로즈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다. 그는 자신이 떠나온 빈민가에 강렬한 증오를 느끼고 그것을 공유하는 로즈를 사랑할 수 없음에도 결혼을 강행한다. 작가 그레이엄 그린은 이 소년의 눈으로 바닷가 휴양지의 브라이턴을 바라본다. 그의 시선은 영화촬영의 카메라 뒤에 있는 듯 이야기의 정조, 흐름을 따라 이동한다. 그린의 배경묘사는 그래서 부차적인 게 아니라 때로 핵심이다. 세상을 온통 무정한 악으로 가득찬 곳으로 바라보는 소년의 눈높이에서 호화로운 호텔은 현재는 가지지 못하지만 마침내 정복하고 가지고 싶은 전리품으로, 도망쳐 왔지만 끊임없이 돌아오는 고향은 풀어낼 수 없는 족쇄처럼, 바다의 잔교는 빛과 어둠의 통로이자 경계로 자리한다. 


소녀 로즈는 의도적으로 자신에게 접근한 핑키를 사랑한다. 가난하고 무정한 부모와 부속품처럼 취급되는 스노 식당과 악과 참회와 죽음 속에 부유하는 소년 핑키는 어쩌면 연장선상 같음에도 로즈는 핑키를 만나서 한 경험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는다. 어떤 부정적인 경험도 그것을 통과하면 사람은 변화한다. 그리고 그 변화는 원상복귀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우리 인생을 이전과 이후로 양분한다. 그 이전으로 회귀하는 것을 거부하는 로즈의 모습은 삶에 대한 그린의 가차없는 직시가 투영된 것이다. 그린은 우리의 삶과 인간의 본성을 이상적인 하나의 절대선과 긍정으로 축소하지 않는다. 그것은 때로 지옥 같은 절망의 무도다. 우리는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 '브라이턴 록' 막대사탕의 은유처럼 그것은 "끝까지 깨물어 먹어도 여전히 브라이턴이라는 글자가 보이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도 삶의 본질도 그렇다. 부정적인 것이 나올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알고 경험하는 것에 더 가까이 다가간다. 


반면 탐정의 역할을 하게 되는 아이다라는 여자는 다소 아쉬운 캐릭터다. 초반부에 죽게 되는 헤일과 잠시 스친 인연으로 그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과감하게 파헤치게 되는 역할은 다소 작위적이다. 하지만 그녀가 소녀 로즈를 핑키에게서 빼내오기 위하여 기울이는 노력은 나이 어린 소녀가 나쁜 남자에 빠져 자신의 삶 자체를 방기하는 것을 선배로서 두고보지 않겠다는 연대감에서 비롯된 것에서 설득력을 얻는다. 그리고 그것을 기꺼이 거부하는 로즈가 결국 돌아가게 되는 곳이 어쩌면 더한 지옥일지도 모른다는 암시도 그러하다. 그린은 그 지점을 예리하게 묘파한다. 우리가 흔히 구원이라고 생각하는 행위가 과연 진정한 의미에서의 구원인가? 이 반문은 적시에 필요한 의심이다. 우리는 타인의 삶을 외형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끝내 구원을 얻지 못하는 핑키와 핑키를 사랑했던 시간을 통해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는 로즈와 모든 것을 제자리에 돌려놓았다고 생각하는 아이다의 이야기는 서로 어긋나는 듯하며 만난다. 사는 일은 동화가 아니다. 인간의 내면에는 숱한 악과 선이 혼재되어 있다. 그 누구도 단편적으로 일관되게 딱 떨어지게 모든 것들을 심판할 수 없다. 어쩔 수 없는 환경에서도 그것을 뛰어넘는 사람과 그 환경에 철저하게 매몰되는 인간이 있다. 그 어딘가쯤에 우리 모두는 자리할지도 모른다. 그 깨달음은 무겁고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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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6-26 20: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오~♡ 반갑네요!이 작품 유튭에서 흑백으로도(1947), 2010년작도 토막으로 볼 수 있는데 매력있어요! 상황탓에 좋아하는 척하면서 구토참는게 기억에 남아요. 꼬집는거랑ㅋㅋㅋㅋ잊지못할 캐릭터 핑키!

blanca 2021-06-27 13:03   좋아요 3 | URL
이게 참 딱 영화로 제작하기 좋겠다 싶은 스토리와 배경이더라고요. 카포티의 <차가운 벽>도 생각났어요.

새파랑 2021-07-07 18: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얼마전에 이책 읽었는데 반갑네요. Blanca님 당선 축하 드려요 ~!!👍

blanca 2021-07-08 08:29   좋아요 1 | URL
덕분에 알았네요. 새파랑님,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1-07-07 18: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 🎉🎈🎊

blanca 2021-07-08 08:29   좋아요 1 | URL
아우, 이 이쁜 팡파레~감사해요^^

서니데이 2021-07-07 18: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blanca 2021-07-08 08:29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해요. ^^

초딩 2021-07-07 23: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앙 2관왕 축하드려요~

blanca 2021-07-08 08:30   좋아요 2 | URL
ㅋㅋㅋ 초딩님, 2관왕이라 하니 뭐라도 된 착각 나쁘지 않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