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지도책을 집어 들고 경도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펠리시테가 어리등절해하자 그는 멋진 미소를 지으며 유식한 체했다. 마침내 들쭉날쭉한 타원형에 보이지도 안흔ㄴ 검은 점 하나를 연필꽂이로 가리키며 그가 말했다. "여기라네." 그녀는 지도에 몸을 기울였다. 가로세로로 색칠되어 그물망을 이룬 선들은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고 눈만 아프게 했다. 부레가 그녀에게 분명치 않은 게 있으면 물어보라고 하자, 그녀는 빅토르가 머무는 집을 보여 달라고 부탁했다. 무레는 두 팔을 들고 대채기를 하며 엄청나게 웃어 댔다. 이런 순박한 모습에 그는 기분이 좋아졌다. 펠리 시테는 그가 웃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조카의 얼굴까지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던 것이다!
- P32

그 그림을 사서, 그녀는 아르투아 백작의 초상화가 있던 자리에 걸러 두었다. 그럼으로써 그녀는 앵무새와 그림을 한꺼번에 볼 수 있었다. 그녀의 생각 속에서 그것들은 서로 연결되었다. 앵무새는 성령과의 관계를 통해 성스러워졌고, 성령은 그녀가 볼 때 살아 있는 듯 이해하기 쉬워졌다. 당신의 뜻을 알리기 위해 하나님이 비둘기를 선택할 리 없어. 비둘기에게는 목소리가 없거든. 차라리 룰루의 조상 중 하나를 선택했을 거야. 펠리시테는 그림을 바라보며 기도를 했고, 때때로 몸을 약간 돌려 새를 바라보았다.
-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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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업원 모두가 매대 이야기보다 손님 이야기뿐이었다.
- P58

책만큼은 제가 좋아하는 가게에서 사고 싶습니다. 책방이란 ‘장소‘보다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을 사러 가는 것보다 가게 주인을 만나러 간다는 것이 큽니다.
- P62

원래 어느 쪽이 본업이고 어느 쪽이 부업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책방이 부업이라도 아무 문제 없습니다. 좋아하는 것으로 돈을 번다는 건 너무 욕심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책을 아주 좋아하고 평생 책과 함께 살고 싶습니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좋습니다.
- P102

‘꿈 책‘을 희망하는 투숙객은 뇌파를 측정하는 간이형 헤드셋을 장착하고 잠자리에 듭니다. 꿈의 내용이 자동으로 문장으로 만들어져 3~4일 이내에 문장을 교정, 제본해서 투숙객의 집으로 우편으로 보내는 시스템입니다. 수면 중에 꿈을 꾸지 않은 경우와 매우 무서운 꿈을 꿔서 책으로 만들고 싶지 않은 경우에는 요금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 P118

가나가와 현 미우라 시에 있는 미우라 해안에 만월의 밤에만 모습을 드러내는 수수께끼의 책방이 있습니다. 휑뎅그렁한 모래 해변에 우두커니 서 있는 파라솔이 표지 노릇을 하고 있지만, 그것이 책방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책방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밤의 모래 해변에 파라솔 한 개와 접이식 의자, 눈에 띄지 않는 간판이 가게 앞에 있을 뿐입니다. 책 판매는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만게쓰 서점 中)
- P124

책을 선물하는 것은 사실 약간의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책 내용이 선물하는 상대에 맞을지 안 맞을지 알 수 없고, 어쨌든 강요가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 P144

구레 씨가 선택하고 만든 책장을 보고 느낀 것은 지금까지의 북디렉터가 만든 책장과 전혀 다른 풍모를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책장 만들기의 콘셉트가 밖으로 드러나지 않고, 인접한 책들 사이에 만드시 문맥이 연결되어 있지도 않습니다. 이 책장을 보고 저는 이전에 구레 씨와 만났을 때 ‘나의 선택은 멋지지, 어때? 이런 책장은 만들고 싶지 않다‘고 말한 것이 생각났습니다. 확실히 여기에 있는 것은 만드는 쪽의 일방적인 자기만족이 아니라 이 가게의 손님과 정중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손님과 함께 책장을 완성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 P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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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섯, 10대 소녀가 실종되고 그 가족이 며칠 전부터 슬픔과 절망 속에서 몸부림치고 있었다. 신이라는 존재가 진정 선을 위한 존재라면 결코 허용할 리 없는 상황이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고 말았다. 일을 이 지경까지 끌고 온 장본인이 바로 신인데 무슨 이유로 지금 이 상황을 바로잡고 되돌리겠는가? 신이 세상에 존재한다 한들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냥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내버려둘 게 뻔하다. 창조는 파괴를 선행하고 동시에 그 파괴를 뒤따르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 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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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즈는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작달막한 키, 성긴 눈썹, 큼직한 코, 좁쌀만 한 눈, 두꺼운 입술을 하고 있었다. 비록 귀가 호감을 살 만한 당나귀 귀로 잘생겼다고 할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얼굴 측면에 붙어있었다. 그의 이목구비 중 가장 눈부신 기치였지만, 얼굴에 빛을 더해주지는 못했다. 아버지를 닮은 탕메이는 키 1미터 68센티, 긴 목, 가는 허리, 불끈 솟은 가슴과 엉덩이로 날씬하고 섹시했다 할머니를 쏙 빼닮아 버들눈썹 아래 봉황의 눈을 지녔다. 매혹적인 몸매에 마음을 끄는 눈만으로도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놓기에 충분했지만 거기에 기어코 피부마저 희고 깨끗해 오관을 받쳐주었고 오뚝한 콧날은 얼굴의 자존심을 이끌었으며 아래턱의 우아한 곡선은 요염함의 끝판이었다. 정말이지 여자의 풍광이란 풍광은 다 차지하고 있었다.

(3장 룽산의 날개 中)
- P64

안핑은 신신라이를 잡지는 못했지만, 독수리가 토끼를 낚아채는 것을, 뱀이 두더지를 집어삼키는 것을, 작은 새가 벌레를 포위해서 섬멸하는 것을, 개미가 소나무 껍질을 갉아먹는 것을, 벌이 들꽃의 심방에 침입해 탐욕스럽게 꽃가루를 빨아먹는 것을 목격했다. 만물 사이에도 학살과 능욕이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심지어 어떤 것은 아름다운 명분을 지닌 채 이루어지고 있었다.

(7장 추격 中)
- P159

눈의 도래는 비와 같지 않았다. 비는 간이 작아 인간 세상에 올 때 항상 우레와 번개를 통해 그 길을 열지만, 눈은 호기가 하늘을 찌르고 세상 무서울 게 없어 언제나 혼자 와서는 하룻밤 사이에 대지의 색깔을 바꾸어놓았다. 부드럽고 연한 첫눈에 요염한 상고대가 형성되어 한 번 더 숲의 모든 나무를 꽃나무로 바꾸어 놓았다. 그저 더없이 찬란한 하얀 꽃만 피워냈다.

(17장 토지사 中)
- P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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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은 신기하구나. 이런 사람인가 보다 하고 만나면 늘 다른 사람이야." 엄마는 그렇게 말했다. 나도 남자들은 가장무도 의상을 입으며, 등 어딘가에 지퍼가 있다는 식으로 해석했다. 그러다가 문득 언젠가 나도 어른 남자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퍼 문제를 고민했다.

(선인의 전설 中)
- P44

세상은 원래 널따란 들판이고, 지구는 평평했단다. 이름없는 짐승들이 들판을 어슬렁거리며 큰 놈이 작은 놈들을 잡아 먹었지만 아무도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어. 그러던 중 인간이 나타났다. 처음엔 세상 변두리에 웅크린 채 숨어 있기만 했어. 털북숭이에 멍청하고 나약하기 짝이 없는 존재였거든. 그런데 기다리는 동안 수도 많아지고 사악해지고 잔인해져 세상 변두리를 왜곡하기 시작했지. 변두리는 조금씩 구부러지고 비틀렸어. 남자와 여자와 아이들이 세상에 남기 위해 서로 기어오르고, 기어오르면서 서로의 등가죽을 벗겼지. 그리고 그 바람에 인간은 모두 헐벗고 벌거벗고 춥고 잔인해지고 세상의 변두리에 매달린 거야.

(수콴섬 中)
- P56

로이? 내 말 들리니?
예, 지금 깼어요.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만 마음이 아주 안 좋다. 낮에는 그나마 괜찮은데 밤마다 그러는구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우는 소리를 했다. 미안하다, 로이. 노력은 한다만 버틸 자신이 없어.
로이도 이제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니, 우는 건 정말 싫다.
로이?
예, 듣고 있어요. 죄송해요, 아버지. 기운 내요.

(수콴섬 中)
- P102

짐은 몇 걸은 떨어진 곳에서 44구경 매그넘을 집어 총구를 머리에 댔다. 잠시 후엔 다시 내리며 미친 듯이 웃었다. 맙소사, 자살할 용기도 없다니! 그가 크게 소리쳤다. 자살마저 연기를 하려는 게냐? 앞으로 50년 동안, 매 순간마다 살아 이 상황을 곱씹어야 할 텐데?
그리고 또 울었다. 로이를 위해 울고 자기 연민 때문에 울었다. 스스로를 위해 운다는 사실도 의식할 수 있었다. 그래서 더욱 자신이 경멸스러웠다.

(수콴섬 中)
- P179

넌 아직 살아 있다, 로이. 내내 그 생각을 했지. 지금이야 더는 아무것도 경험하지 못하고, 죽는 순간 생명도 끝이 났지만, 그 대신 나한테 이렇게 끊임없이 문제가 일어나잖니. 그러니까 아직 살아있다고 볼 수 있어. 게다가 아무도 모르잖아? 네 엄마도 모르니까 완전히 죽지 않은 셈이다. 엄마가 소식을 들으면 다시 죽기야 하겠지만, 그 후로도 오랫동안 엄마 때문에 살아 있어야 할 게다.

(수콴섬 中)
- P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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