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생각을 글로 옮겼지만, 이제는 글을 행동으로 옮겨야 할 때다. 마지막 단계는 애정부에서 일어날 모종의 사건일 것이다. 그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어차피 결말은 언제나 시작에 포함되어 있게 마련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두려운 일이었다. 좀더 정확하게 말해서 그것은 죽음의 전조를 맛보는 것인 동시에, 생을 더 짧게 단축시키는 것이다 다름없었다. 그는 오브라이언에게 말하고 있는 동안에도 섬뜩한 전율이 온몸을 뒤흔드는 것을 느꼈다. 왠지 습기 찬 무덤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무덤이 거기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항상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심한 공포는 느끼지 않았다. - P226

지금까지는 중간계급이 상층계급을 전복하고 스스로 상층계급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이제 상층계급은 의도적인 전략을 통해서 그들의 지위를 영원히 유지할 수 있다.- P284

빨랫줄로 뻗치는 굵은 팔뚝, 힘센 암말의 그것처럼 풍만한 엉덩이, 무ㅝ라고 표현할 수 없는 독특한 몸짓 등을 바라보면서 윈스턴은 아낙네가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임신 때문에 엄청나게 불어났던 몸집이 일로 인해 뻣뻣해지고 거칠어져서 마침내 시든 홍당무처럼 쭈글쭈글해진 쉰 살쯤 된 아낙네가 아름답게 보이리라고는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어쨌거나 아낙네는 아름다웠다. 그런 아낙네라고 해서 아름답지 말라는 법은 없을 것이다. 화강암 덩어리처럼 딱딱하여 맵시라곤 손톱만큼도 없는 몸매와 거칠어진 붉은 피부를 지닌 그녀의 육체를 처녀의 그것과 비교하는 것은 장미 열매와 장미꽃을 비교하는 것과 같으리라. 하지만 왜 열매가 꽃보다 못하단 말인가?- P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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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유전자가 DNA이며, 아주 확고한 물리적 실체를 의미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유전자를 향한 여정은 근래에 이르러 유전자라는 물리적 실체의 존재를 의심하게 만드는데 까지 나아갔다.

(감수의 글 中)
- P5

슈뢰딩거씨, 우리 생물학자들이 가끔 실수하는 것은 생명체, 세포, 염색체를 너무 특별한 지위에 올려놓는다는 거예요. 분명히 같은 우주에 있는 평범한 물질인데도 말이오.

(5장. 유전자는 마딸이 그래야만 한다 中)
- 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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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는 자신의 관용으로 나를 억압하고 있어!」
이 문구가 그녀의 마음에 쏙 들었다. 그래서 자신과 랴보프스키와의 로맨스를 알고 있는 화가들을 만날 때마다, 그녀는 남편 이야기를 하면서 손으로 힘찬 제스처를 지어 보이는 것이었다.
「그 남자는 자신의 관용으로 나를 억압하고 있어!」

(‘베짱이‘ 중. 6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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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아직도 글을 쓰고 떠벌이는 동안 우리는 야전 병원과 죽어가는 동료들을 보았다. 이들이 국가에 대한 충성이 최고라고 지껄이는 동안 우리는 이미 죽음에 대한 공포가 훨씬 더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반역자가 되거나, 탈영병이 되거나, 겁쟁이가 된 것도 아니었다. 어른들은 걸핏하면 이런 표현들을 쓰곤 했다. 우리들은 이들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고향을 사랑했다. 그리고 우리는 공격이 시작되면 용감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다른 사람이 되었고, 대번에 눈을 뜨게 되었다. 어른의 세계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을 보게 된 것이다. 우린 어느새 끔찍할 정도로 고독해졌다. 그리고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고독과 싸워나가야 했다.
- P18

"그렇데 프란츠야, 이제 잠 좀 잘 거니?"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다. 눈물이 뺨 위로 흘러내린다. 그 눈물을 닦아 주고 싶지만 내 손수건이 너무 지저분하다.
이러는 사이에 한 시간이 흘러간다. 나는 긴장한 채 앉아서 그가 혹시 또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그의 얼굴 표정을 유심히 살핀다. 그가 입을 열고 소리라도 치면 좋으련만! 하지만 그는 머리를 옆으로 돌리고 울기만 할 뿐이다. 그는 자기 어머니, 자기 형제들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어쩌면 이미 그럴 능력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는 지금 열아홉 살 된 자신의 조그만 생명과 홀로 대면하면서, 그 생명이 자신을 떠나려 하기 때문에 울고 있는 것이다.
- P32

뭐니 뭐니 해도 군인에게 땅만큼 고마운 존재는 없다. 군인이 오랫동안 땅에 납작 엎드려 있을 때, 포화로 인한 죽음의 공포 속에서 얼굴과 수족을 땅에 깊이 파묻을 때 땅은 군인의 유일한 친구이자 형제이며 어머니가 된다. 군인은 묵묵 말없이 자신을 보호해 주는 땅에 대고 자신의 두려움과 절규를 하소연한다. 그러면 땅은 그 소리를 들어주면서, 다시 새로 10초동안 그에게 생명을 주어 전진하게 한다. 그러고는 다시 그를 붙잡은데, 때로는 영원히 그러고 붙잡고 있기도 한다.
- P50

소년 병사는 수송 과정을 도저히 견뎌 내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기껏해야 2,3일밖에 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면서 겪은 온갖 고통은 그가 죽을 때까지의 이 기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아직은 몸이 마비 상태라 그는 아무런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한 시간만 있으면 그는 참을 수 없는 고통에 고래고래 단말마의 비명을 지를 것이다. 앞으로 비록 며칠간 살아 있다 하더라도 그는 미칠 것 같은 고통에 시달릴 것이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 고통스럽게 하루 이틀 더 산다고 해서 누구에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 P63

우리가 공포에 등을 돌리면 전선의 공포는 가라앉는다. 우리는 심하고 노골적인 농담을 하면서 공포에 대처한다. 누가 죽으면 우리는 그가 엉덩이를 오므렸다고 말한다. 우리는 만사를 이런 식으로 말한다. 그래야 우리는 미치지 않고 버틸 수 있다. 그렇게 하는 한 우리는 저항하는 것이다.
- P115

하나의 명령으로 이 조용한 사람들이 우리의 적이 되었다. 하나의 명령으로 이들이 우리의 친구로 변할 수도 있으리라. 우리가 모르는 몇몇 사람들이 어디간의 탁자에서 어떤 서류에 서명했다. 그리하여 몇 년 동안 우리의 최고의 목적은 평상시 같으면 세상의 멸시를 받고, 최고형을 받을 일을 하는 것이다. 누가 이곳에 와서 어린이 같은 얼굴과 사도 같은 수염을 지닌 이 조용한 사람들을 직접 본다면 누가 이들을 우리의 적이라고 생각하겠는가! 그들이 우리에게 적인 것 이상으로 하사관이 신병에게, 고등학교 선생이 학생에게 더욱 고약한 적이다. 그런데도 만일 이들이 풀려난다면 우리는 다시 이들을, 이들은 우리를 쏠 것이다.
- 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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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는 다작이면서도 태작이 드문 작가로 알려져 있다. 이 작가는 과연 어디까지 진화할 것인가. 일본 전국 서점원들의 코멘트는 그에 대한 애적이 담겨 있는 만큼 핵심을 꿰뚫고 있다. ‘물리적인 법칙을 사용하면 가까운 미래는 예측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어떤 법칙을 사용해도 예측 불가능하다. 예측 불가능한 것이야말로 미스터리의 묘미다.‘

(옮긴이의 말 中)
- P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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