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뭐래도 한국에서 가장 까다롭게 평가되고 가혹하게 징벌되는 대상은 ‘국민‘을 고용주 삼아 이제 막 ‘취업‘한 어린-여자-아이돌이다.이들은 항상 예쁘고 날씽해야 하는 동시에 아무거나 주는 대로 잘 먹어야 하며 식단 관리나 운동 등 ‘자기 관리‘에 철저해야 하되 수술이나 시술 사실을 들키면 조롱받는다. 사진 한 장 속 표정이나 말 한마디에도 ‘태도 논란‘이나 각종 추측에 휩싸여 공격당하는 일은 부지기수, ‘인성‘이라는 모호한 잣대는 수시로 걸그룹을 향한다. 많은 사람에게 예쁨받는 동시에 아무에게나 손아랫사람으로 취급되는 ‘국민 여동행‘은 ‘만인의 연인‘만큼의 존중도 받지 못한다. 비밀 연애를 하면 파파라치 사진을 찍혀 폭로당하고, 공개 연애를 하면 신중하지 못하다고 훈계당한다. 아파서 병원에 가면(심지어 가지 않아도!) 임신설과 낙태설에 시달리는데, 참다못해 SNS에 직접 해명이라도 하면 과도하게 감정적으로 구는 게 아니냐는 언론의 회초리질까지 당한다.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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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대표적인 비폭력은 채식이다. 요가에 있어 아사나, 즉 동작은 가장 말단에 있는 방법이니 거기 집착할 것이 아니라 아힘사의 실천에 주력해야 한다는 것이 그 지도자의 주장이다. 그날 저녁 김현지는 일주일에 한 번은 비건으로 생활하겠다고 SNS에 썼다. 어려운 동작을 달성해야 한다는 욕망을 내려놓고 일단 다른 존재에 대한 존중과 최소한의 폭력만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니 요가는 각종 유무형의 폭력에 노출되어 있어 감정 조절이 어려운 직장인에게 반드시 필요한 정신적인 활동이라고 김현지는 생각한다. 생산력 증대 차원에서 회사가 직원에게 제공하는 복지여야 한다는 생각도 한다.

(운동에서 수련으로- 요가열정가 김현지 篇)- P39

조은영의 표현을 옮기자면 "내가 변수이고 아이가 상수"라서 하다못해 먹고 자고 화장실 가는 시간부터 제약이 따르고, 퇴근하면 영화나 TV를 보고 싶어도 당장 아이를 둘러싼 급한 일부터 해결해야 한다. (...) 부모라면 아이를 사회에 잘 적응하는 올바른 인간으로 ㅁ나들어야 할 의무가 있는데, 자신이 뭔가를 해줌으로써 혹은 안 해줌으로써 아이의 삶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이 때때로 두렵다.

(아이가 잘 때 나는 뛴다 - 달리기열정가 조은영 篇)
- P214

오래 걸어본 적이 있지만 그때는 잡생각이 많았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그런 시간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생긴 뒤로는 잡념도 사치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뛰기 시작하니 머릿속이 텅 빈다. 최근 몇년간 누려본 적 없는 시간이고, 이제야 "아무 생각을 안 할 수 있는 몇십 분"의 가치를 이해하게 되었다.

(아이가 잘 때 나는 뛴다 - 달리기열정가 조은영 篇)
- P218

그러던 어느날 진영은 트위터를 통해 급진적 발레 폐기론을 접한다. 진영이 요약해준 해당 글의 주장은 대략 이렇다.
"더는 방직 공장에서 미성년자가 베틀을 돌리지 않는 거서럼 발레도 사라져야 마땅한 구시대적 유물이다. 발레는 어린 여자아이들 굶기고 학대하면서 외모에 대한 기형적인 관념을 심어준다. 특히 러시아와 한국 너무 심하다. 애들 다 죽어나간다. 그러니 옛날에 이런 것이 있었다는 기록과 자료만 남겨놓고 없애야 한다."

(퇴근 발레를 중단했다 - 발레열정가 진영 篇)
- P229

처음에는 발레가 다 여자 것인 줄 알았다. 대부분의 발레 공연은 발레리나가 주인공이다. 발레리노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눈에 잘 안 들어왔다. 진영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자면 발레리노는 "쫄쫄이 입고 나와서 리프트만 한다"고 생각했다. 순진했던 시절에는 무대가 그렇게 보였다. 국립발레단의 강수진과 유니버설발레단의 문훈숙을 보면서 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페미니즘에 눈을 뜨고 무대 뒤까지 들여다봤더니 발레는 은행 같았다. 창구는 여성이 지키지만 결국 남성의 자본으로 운영되는 방식이다. 발레단을 남자가 소유하는 경우가 많다. 세계쩍으로 유명한 안무가도 대부분 남자다. 즉 발레와 관련된 의사 결정권은 대부분 남자의 것이다.

(퇴근 발레를 중단했다 - 발레열정가 진영 篇)
- P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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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두 눈 꾹 감고 잊는다 해도 인간은 죽는다. 그렇게 죽을 운명이지만 수의를 준비해 둔 할머니를 요양원에 보내면 죽음을 감출 수 있을 것만 같다. 요양원에 갈 날짜를 받아놓은 할머니만 사망 진단을 받은 것러첨 죽음을 앞당긴 기분에 사로잡힌다. 죽음이 찾아오기 전에 할머니는 사회적으로 죽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평생 같이 살던 자식들과 떨어져서 처음 보는 낯선 사람들에게 맡겨지는 순간, 할머니의 일상은 정상에서 비정상적인 삶으로 전환하게 된다.
- P14

인간이 동물과 달리 수치심을 느낄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은 죽음의 그림자를 미리 쫓아 버리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죽음을 삶의 대척점으로 놓으면서 삶을 가장 강렬한 것으로 바꿔 놓는 것에 있다. 생명을 보존하고 본능적인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에만 삶의 목적을 둘 것인지, 죽음을 의식하고 죽음의 한계상황을 뛰어넘는 내적 삶에 몰두하여 실존적인 자기 의식을 충실화할 것인지는 인간이 선택해야 할 존재양식이다.
- P18

우리는 모두 죽는다. 모두가 죽는다는 사실 때문에 가장 보편적인 사건이지만 개인에게는 절대적이고 유일한 사건이다. 유일한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죽음은 직접 경험해서 느낄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다. 그러나 자신이 언젠가는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 P18

죽음은 생명의 종말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같다. 그러나 불행으로 죽음을 의식하여 허무주의적으로 받아들일 것인지, 아니면 삶의 조건으로 받아들이면서 실존적 삶의 차원으로 죽음을 경험할 것인지에 따라 삶과 죽음의 의미는 달라진다. 죽음은 단지 "실존의 자기의식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한계상황으로서의 죽음 앞에 자신의 의식이 충실화되는 것"이라는 야스퍼스(Karl Jaspers)의 말처럼, 죽음의 인식 방식에 따라 삶이 질적으로 바뀔 수 있다.
- P19

이처럼 나는 나 홀로가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만 나 자신을 정의할 수 있는 존재이다. 그리고 이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죽는다는 사실은 개별적인 폐쇄성에도 불구하고 공통된 하나의 운명이다. 나 자신만이 아니라 자신의 바깥에 대한 인식을 스스로에게 권하면서, 죽음에 처한 타인을 향해 ‘우리‘의 가능성으로 나눔을 형성하는 것이다. 그렇게 먼저 오는 타인의 죽음과의 관계에서, 그 죽음에 정서적으로 개입하면서 나는 비로소 세계를 이해할 수 있고, 그 세계 속의 나, 나의 죽음을 넘어서게 된다, 두렵지 않게.
- P21

죽음에 대한 고뇌에 찬 인식은 가장 오래된 무덤들에 나타났다. 전기 구석기 시대의 인간에게 죽음은 이미 너무도 무거운 의미의 것이었고, 따라서 오늘날처럼 가족의 시체에 무덤을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전기 구석기 시대에 나타난 죽음의 인식에 이어 후기 구석기 시대에 나타난 에로티즘의 인식은 죽음과 희열이라는 상반된 명제를 깊은 연관성 속에 올려놓는다. 죽음과 희열의 결합은 삶을 위한 타협이었다.
삶은 죽음에 위협받으면서, 그리고 비교되면서 초라해지는 것이 아니라 가치를 드톻였다. 육체의 부패와 죽음의 내새는 삶에 대한 몸서리치는 열정의 대가여야만 했다. 죽음이 반드시 뒤따라야 그 삶은 아름다웠다.
- P53

개체가 부재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바로 죽음의 실체인 것이다. 그가 사라진 것은 그의 존재성에서는 고통이 따르는 것이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문제가 될 게 없다. 그 한 사람의 죽음은 다른 사람의 삶으로 이어지고 지속된다. 개별의 죽음이 이엉지는 것처럼 개별의 삶도 이어져 세상은 그대로 남고 변하는 게 없다. 삶 속에 내재해 있는 내밀한 죽음의 질서에 의해 죽음은 또 삶의 내밀한 질서가 되는 것이다.
- P63

반감이나 상호 적대감, 반발심에 대한 대체 태도로서 지적이고 상호 무관심하며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냉담한 태도가 나타난다. 대도시에서 적응하려면 이러한 보편적 정서에 적응해야 한다. 비록 군중 속에서 외롭고 쓸쓸하다고 여겨지기도 하지만, 강물에 휩쓸려가듯이 저절로 떠밀려 가는 삶 속에서 더 편리해진 부분도 있고 그만큼 자유로움도 따랐다. 그 자유로움은 어쩌면 외부로부터 결정되고 조립되었으면서도, 인간은 여전히 스스로가 자율적이며 자발적인 의식을 가졌다고 믿고 있다.
- P108

바타유의 말처럼 출생과 사망, 또는 특정 사건들이 다른 존재의 관심을 끌 수는 있지만 그 사건들에 직접 관계하는 것은 나 자신뿐이다. 나는 혼자 태어나고, 혼자 죽어야 한다. 우리라고 묶인 사람들 중에 한 명이 죽는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지 내가 아니다. 이갈라놓음이 하나의 존재와 다른 존재 사이에 뀌어넘을 수 없는 심연이 있다는 사실을 가장 강력하게 보여 준다. 이 깊은 간격은 피할 수 없는 심연을, 허무를, 그리고 고독을 자아낸다.
- P109

길이 언덕 위로 내내 구불구불한가요?
네, 맨 끝까지 그래요.
오늘 여정은 하루 종일 걸리나요?
아침에 떠나 밤까지 가야해요, 친구여.
그런데 밤에 쉴 곳은 있나요?
서서히 저물 때쯤 집이 보일 거예요.
어두워서 보이지 않을 수도 있나요?
그 숙소를 못 찾는 일은 없을 거예요.
밤에 다른 여행자를 만나게 되나요?
먼저 간 사람들을 만날 거예요.
그러면 문을 두드려야 하나요, 보이면 불러야 하나요?
당신을 문 앞에 세워 두진 않을 거예요.
여행에 지치고 약해진 몸이 위안을 찾게 되나요?
애쓴 만큼 대가를 얻을 거예요.
나와 찾아온 이들 모두의 잠자리는 있나요?
그럼요, 찾아오는 모두를 위한 잠자리가 있지요.

(로세티, 「언덕 위로」)
- P136

나의 죽음은 내가 죽는 순간 슬픔도 아니며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가까운 사람의 죽음은 내가 모두 겪어 내야 할 고통과 슬픔을 남겨준다.- P140

인간은 그렇게 유한하며 무의미성 앞에 직면한다. 이러한 자기 생명이 무의미하게 죽는다는 사실 때문에 인간은 죽음을 예방하고 연기하고 대비하는 일에 전념한다. 즉 생명 보존의 세속적인 일에 모든 관심을 쏟는 것이다. 그러나 생명보존과 본능적 용망 충족에만 모든 에너지를 쏟는 것으로는 죽음의 압도적인 불행을 막을 수가 없다. 그것은 죽음을 더 낯선 것으로 만들고 죽음에 당면한 순간에 더 큰 절망과 몰락에서 헤어나올 수 없게 만든다.
- P146

(...)삶이 죽음으로 끝난다는 것을 믿지 못하게 하는 그 무엇의 느낌이란 것이 인간에는 있다. "이게 다일까?"하는 죽음 뒤의 ‘무‘에 대해 부인하고 싶을 정도로 인간은 인간을 제약하는 시간성에 대항하는 영원에 대한 충동과 의지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삶에의 의지이다. 죽는다는 한계상황과 마주했을 때 자신의 자유를 의식하고 삶의 과제에 성실하게 임하는 것이 시간적으로 유한한 존재가 아닌, 불사의 존재로서 자신의 삶을 창조할 수 있다.
- P146

부모의 죽음을 통해 자신의 삶에 대한 답이 구해지는 것, 그것이 바로 죽음의 위대한 유산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래에 출현할 아직은 알 수 없는 미지의 것 때문에, ‘지금 넘어질 수도 있다‘는 의식으로 불안에 떨지는 않아도 된다.
- P152

이때 삶이 중요해진다. 이때의 삶은 정신의 삶이다. 헤겔의 말처럼 정신의 삶이야말로 "절대 고통 속에서 자신을 되찾으면서 죽어야 한다는 진실을 정복할 수 있는 것이다." 정신의 삶이란 죽음 앞에서 공포에 사로잡혀 뒷걸음치며 파괴로부터 어떤 상처도 없이 자신을 지키는 삶이 아니라 죽음을 지니고 있는, 그래서 죽음 자체에서 유지되는 삶을 말한다. 이 말은 수동적으로 펼쳐지는 단순한 갊이 아니라 현재를 영원처럼 사는 삶이다. 모든 위험을 받아들이면서 삶을 총체로서 사랑하는 것이 인간의 유한성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단지 ‘무‘로 만들지 않는 길이다. 그것이 죽음의 의미인 것이다.
-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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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는 아이를 가지지 않기로 했다. 나에게 아이는 마치 그랜드 피아노와 같은 것이었다. 평생 들어본 적 없는 아주 고귀한 소리가 날 것이다. 그 소리를 한번 들어보면 특유의 아름다움에 매혹될 것이다. 너무 매혹된 나머지 그 소리를 알기 이전의 내가 가엾다는 착각까지 하게 될지 모른다. 당연히, 그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책임감 있는 어른, 합리적인 인간이라면 그걸 놓을 충분한 공간이 주어져 있는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집 안에 거대한 그랜드 피아노를 들이기 전에 그것을 놓을 각이 나오는지를 먼저 판단해야 할 것이다. 아무리 부족해도 어떻게든 욱여넣고 살면 살아진다는 것도 알고 있다. 물론 살 수는 있을 것이다. 집이 아니라 피아노 보관소 같은 느낌으로 살면 될 것이다.

(‘도움의 손길‘ 中)

-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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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이라고 불린 집에서 그날 밤 내가 찢어발긴 종이 위의 이름을 보았어. 그 이름은 무슨 태엽 달린 오렌지에 대한 이야기였지. 바흐를 들으면서 그 음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더 이해하게 되었고, 그 오랜 독일 거장의 아름다운 갈색 음악을 들으면서 나는 인간들을 더 세게 패주고 갈가리 찢어 마룻바닥에다 내팽개치고 싶다고 생각했지.
- P44

그 일요일 아침 신부는 책을 펼쳐 말쌈을 들어도 눈곱만치도 받아들이지 않는 놈들은 마치 모래 위에 세워진 집 같아서 비가 퍼붓고 하늘을 찢는 천둥이 내리칠 때 그런 집처럼 끝장이라는 이야기를 소리 내어 읽었지. 그러나 나는 멍청한 놈들만이 모래 위에 집을 짓고, 또 그런 놈들은 으레 그런 집을 짓는 게 얼마나 멍청한 일인가를 말해 주지 않는 아주 냉정한 동무들과 고약한 이웃들을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했지.
- P96

착하게 되는 것이 좋지 않을지도 모른다, 6655321번. 착하게 된다는 것은 아주 끔찍한 일일 수도 있어. 말하고 보니 자기모순이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이번 일 때문에 며칠 동안 잠 못 들어 할 거야. 신은 무엇을 원하시는 걸까? 신은 선 그 자체와 선을 선택하는 것 중에서 어떤 것을 원하시는 걸까? 어떤 의미에서는 악을 선택하는 사람이 강요된 선을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보다는 낫지 않을까?
- P114

넌 지금 기도의 힘이 닿지 않을 곳을 향해 다가가는 것이란다. 생각만 해도 아주 끔찍한 일이군.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는, 윤리적인 선택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을 제거당하겠다는 선택을 내릴 때, 넌 진짜로 선을 선택한 것이겠지. 난 그렇게 생각하고 싶구나. 신이 우리 모두를 돌보시겠지, 6655321번, 난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 모든 일이 잘될지도 몰라, 누가 알아? 신은 신비한 방식으로 역사하시니까.
-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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