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짜이마우가 진지하게 결론을 내렸다
"장즈첸이 우릴 위해 죽었으니 우린 더 악착같이 살아남아야 해. 살아남을 수만 있으면 무슨 짓을 하든 상관없어! 우린 죽을 수 없어. 죽어선 안 돼! 누구든 죽는다면 장 선생에게 죄를 짓는 거야!"
살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것도 핑계가 되었다. 록남초이는 씁쓸했지만 삶을 향한 그들의 강력한 의지에 감동했다. 사실 돌이켜 보면 그 자신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허스 진에서 광저우로, 다시 홍콩으로 오기까지, 뭐든 다 했다. 굶어 죽지 않을수만 있다면, 나아갈 길이 있기만 하면 그게 뭐든 상관 없었다. 그 어떤 것이든 핑계 삼아 자신을 설득했고 그 어떤 핑계든 기꺼이 믿을 수 있었다. 그렇게 악착같이 버티는 것이 오직 살기 위함이란 걸, 죽고 싶지 않고 죽을 용기가 없다는 걸 인정하지 않았을 뿐이다. 산다는 것, 이 얼마나 비굴하고도 장엄한 일인가.

- P384

전쟁이 끝난 뒤 둘이 함께 레스토랑을 열자고 했을 때 모리스는 이렇게 말했다. "사랑하는 사람은 쓸모가 있어야 해. 쓸모 있는 사람만이 사랑할 자격이 있지. 아니면 짐이 되거든." 그때 록남초이는 모리스이 그 말이 사랑하다면 상대를 위해 헌신해야 한다는 뜻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제 보니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상대를 위해 헌신했다면 그 대가를 받아야 한다. 상대에게 받았으면 반드시 되갚아야 한다는 뜻이 더 들어있었다. 알고보니 사랑이란 정확한 차용 관계였다. 사랑이란 은행에서 돈을 빌리거나 전당포에 물건을 잡히는 것과 같다. 유일한 차이점은 차용증이 있느냐 없느냐일 뿐. 마침내 빚을 갚아야 할 때가 온 것이다.

- P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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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춰 간다고 생각하면 안 돼?" (...)
"나는 우리가 부모를 선택하는 게, 꼭 결혼 같아."
결혼? 나는 아키를 의아하게 보았다.
"결혼이라는 게 그런 거 아냐? 남남이던 두 사람이 계약을 맺고 한집에서 사는 거 서로 맞춰가느라 처음에는 싸우기도 할 테지만,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겠지. 아니면 헤어지면 되고. 부모 자식 관계도 그런 거 아닌가."

(부모 면접을 시작하겠습니다 中)

- P32

"나, 만약 좋은 부모님을 만나게 되면 정말 잘해 드릴 거야. 어버이날도 챙겨 드리고, 두 분의 결혼기념일이나 생일에도 꼭 선물이랑 꽃을 드리고 싶어."
"......"
"형, 나는 사랑도 만들어 간다고 생각해"

(부모 면접을 시작하겠습니다 中)

-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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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떠보면 그녀는 입술을 꽉 물고 자기 앞에 놓인 어둠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 속에선 휴대전화 반사광이 안개처럼 어룽거렸다. 숨을 쉴 때마낟 그녀의 목 밑이 구멍처럼 패였다가 불고지곤 했다. 그때마다 낮고 긴 숨소리가 입김처럼 밀려와 내 귀에 닿았다. 누군가 그 숨소리에 이름을 붙이라고 한다면 나는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두려움‘이라고 부르겠다. 그녀는 나와 함께 있었으나 완벽하게 혼자였다.

- P326

‘진이에게‘로 시작된 편지는 어머니다운 당부를 담고 있었다. 자신이 떠난 후에도 너는 살아야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니 짧게 작별하자고 했다. 3일장을 치르지 말고 곧장 화장해서 바다로 보내달라고 했다. 당신을 위해 울지 말라고 했다. 연민하지도 말라고 했다. 그것은 죽을힘을 다해 살았던 당신 삶에 대한 모독이라고 했다. 대신 당신을 기억해달라고 했다. 내 딸이어서 미안했고, 내 딸인 게 고마웠다고 했다.

- P352

그가 한 발짝씩 전진할 때마다 정적의 밀도는 점점 높아졌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처럼 귀가 먹먹해왔다. 시야도 흐릿해졌다. 잠시 후엔 민주의 움직임마저 느껴지지 않았다. 현실이 아득하게 멀어졌다 때 이르게 덮쳐온 감각 박탈 상태에서 나는 떨기 시작했다.
누구에게든 세상에 작별을 고할 때가 찾아온다. 작별하는 태도도 제각각일 것이다. 죽음을 부정하다 죽거나, 죽음을 인식할 새도 없이 죽거나, 죽음에 분노하며 죽거나, 죽음을 의연하게 받아들이며 죽거나, 어머니처럼 홀로 죽음을 맞거나.
아무래도 나는 끝까지 떨다가 죽을 모양이었다.

- P353

그녀는 내게 삶이 죽음의 반대말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삶은 유예된 죽음이라는 진실을 일깨웠다. 내게 허락된 잠깐의 시간이 지나면, 내가 존재하지 않는 영원의 시간이 온다는 걸 가르쳤다. 그때가 오기 전까지, 나는 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삶을 가진 자에게 내려진 운명의 명령이었다.

- P367

<죽음, 지속의 사라짐>에서, 저자인 최은주 박사는 죽음의 의미를 이렇게 정의했다.

모든 위험을 받아들이면서 삶을 총체로서 사랑하는 것이, 인간의 유한성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단지 ‘무‘로 만들지 않는 길이다. 그것이 죽음의 의미인 것이다.

‘우리는 모두 죽는다‘. 언젠가는 반드시,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어떤 순간이 온다. 운명이 명령한 순간이자 사랑하는 이와 살아온 세상, 내 삶의 유일무이한 존재인 나 자신과 작별해야 하는 순간이다. 그때가 오기 전까지, 치열하게 사랑하기를. 온 힘을 다해 살아가기를......

(작가의 말 中)

- P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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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 포옹을 하고 아파트를 나섰다. 우리는 울지 않았다.
밖에 나와서 나무 사이로 4층을 올려다 보았다. 어머니는 언제나 우리가 손을 흔드는 것을 좋아했다. 손을 흔드는 게 중요하다고 여겼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잖니. 최근에 특히 테러리스트들 때문에 참담한 일들이 일어난다는 얘기가 늘 들려. 그러니 서로에게 손을 더 잘 흔들어야 해."
- P17

우리는그를 놓아버렸다.
악마와 단둘이 있도록 내벼려 두었다.

7개월 후 그는 죽었다.

- P107

장례관리사가 월요일 저녁에 들려서 절차에 관한 안내를 해주기로 했다.(...) 좀 편안하게 누울 수 있는 관인지, 또 가능하면 자투리 나무로 만든 소박한 관이기를 바라지만, 그 여부에 관계없이 어떤 관에 눕게 될지 보고싶다.......


우리는 얼마 안 가 결국 "불구덩이"로 끝나게 될 나의 편도 여행길을 차를 몰고 갔다. 나는 그 화장터를 알고 있었다. 개장식동안 한 번 방문한 적이 있었기에 화장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화장 후 근처 식당에서 맥주를 한 잔 마시는 것으로 장례쩔차를 마치겠다고 했따.
그것은 내가 원하는 것이기도 했다.......

(...)

얼마 후 나는 사라질 것이다. 얼마 후 나는 홀로 여행을 떠나야 한다.

- P122

"괜찮아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거. 최근에 많은 사람들이 그랬어요.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아요. 다 잘 될 것예요. 그래, 꼬맹이는 어때요?"
침묵이 흘렀다.
"좋아요. 그건 그렇고, 우리 형 잘 돌봐줄 수 있는 거죠? 그래? 좋아요. 그래. 맞아. 행운아예요. 다음에 볼 때까지 잘 지내세요. 우리 그렇게 말할까요? 그래, 맞아요. 혹시 모르죠. 고마워요. 안녕. 레이논스. 그럼, 안녕."
전화기를 돌려받았다.
까르레인은 울고 있었다. 그녀가 나누었던 전화 통화 중 가장 기이한 통화였다고 말했다. 초현실적이고, 미친 것 같고, 섬뜩하고, 끔찍하고, 그리고 너무너무너무 슬펐던 통화였다고.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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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겐 앚기 일어나지 않은 일을 예상하고 준비할 만한 시간이 주어진 적이 없었다. 오늘 해야 하는 일은 많았고 그걸 다 해내면 어김없이 하루가 끝났다. 그의 하루라는 건 처음부터 그의 능력과 노력, 수고에 맞게 잘려져 있는 것이었다. 무언가 말할 수 있다면 그는 겨우 그 정도의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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