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투에 대하여, 조이스 캐롤 오츠 (1986)
권투라고 하면 무엇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가? 폭력, 빈곤, 근육질의 남자들, 땀과 피에 동물처럼 환호하는 관중들? 권투가 내게 가장 먼저 상기시키는 것은 주말마다 식구들의 원성을 무시하고 실황 권투중계에 채널을 고정시키던 아버지의 모습이다. 사각의 링 위에서 상연되는 끔찍스런 폭력, 권투경기는 내 눈에는 오직 그렇게만 보였다. 그것을 경탄하며 바라보는 아버지가 나는 잘 이해되지 않았다. 아버지 역시 바둑이나 산행과는 달리 권투경기 관전의 즐거움을 자식들에게 굳이 설명하려 하지 않으셨다. 참 이상한 일이 아닌가, 나는 늘 생각했다. 일상에서는 주먹 한 번 휘두르기는 고사하고 큰소리도 잘 치지 않으시는 아버지가 저렇게 피비린내나는 스포츠를 좋아하다니!
그래서 헌책방의 1달러 카트에서 이 책을 발견했을 때, 나는 오랫동안 잊혀졌던 유년의 한 수수께끼를 조우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낡은 표지에 박힌 사각형 사진, 온통 검은 바탕에 두 손을 위로 향해 들었지만 머리는 땅으로 숙인 저 손톱만한 고독한 복서의 모습. 그 사진을 봤을 때 머릿 속으로 기찻간처럼 휘리릭 수많은 이미지가 한꺼번에 몰려 지나갔다.
복서가 되는 것이 후진국에서는 (그것을 우리는 개발도상국이라고 불렀지만)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이 정당하게 성공하는 몇 안 되는 방법 중의 하나였던 적이 있었다. 가난한 것이 분하고, 못 배운 것이 억울하고, 불공평한 사회가 때려부수고 싶을 때 링 위에 올라가서 주먹을 휘둘러라. 능력이 따르면 있는 것이라고는 맨몸에 주먹과 층층이 쌓인 울분 뿐인 일개인도 영웅이 될 수 있었다. 상대를 KO시키는 데 필요한 것은 잘 훈련된 육체와 집중력, 매서운 주먹 뿐이다. 그러나 지옥훈련을 견뎌내며 간신히 얻은 승리의 벨트는 오래 한 사람에게 머무르지 않는다. 승리의 순간은 그야말로 순간일 뿐이다. 복서는 누구나 진다. 결국에는 패배한다. 승리란 오직 찰나에 불과할 뿐이다. 검은 사진 속의 흰 점처럼 박힌 복서의 모습이 십자가에 박힌 예수를 연상시키는 것은 그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힘이 남아 있는 한 일어나서 싸우라고 복서는 훈련받는다. 상대가 두 발로 서 있는 한 쓰러질 때까지 주먹으로 치라고 복서는 훈련받는다. 그래서 링 위에서 죽음을 맞이한 복서들은 신화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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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et lays helpless on the ropes after a flurry by Griffith. |
"페렛(Paret)은 어떤가? 그는 두 발로 서서 죽었다. 그가 18번의 강펀치를 받으며 서 있을 때 그 경기를 지켜보고 있던 관중들 모두의 심리 영역에 뭔가가 일어났다. 패렛의 죽음의 일부가 우리에게까지 다가왔다. 죽음이 공중에 떠도는 것을 사람들은 느낄 수 있었다. 패렛은 여전히 로프줄에, 그 덫에 갇혀 서 있었다. 그는 후회가 섞인 반 웃음 같은 것을 지어보였다. 마치 '내가 오늘 이렇게 죽을 줄은 알지 못했는데'라고 말하는 듯이. 그의 머리가 천천히 뒤로 기울어 갔다. 여전히 똑바른 상태로. 죽음이 그의 주변에 숨쉬러 왔다. 그는 의식을 잃어갔다. 그 어느 복서보다도 더 천천히 그는 쓰러졌다. 똑바로 서서 회전하면서 자신의 무덤으로 일초 간격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거대한 선박처럼 그는 바닥으로 쓰러졌다. 페렛이 쓰러졌을 때 그의 상대 그리피스의 주먹 소리는 먼 곳으로부터 들려오는 젖은 통나무를 베는 무거운 도끼소리처럼 사람들의 마음에 울렸다."
--- 노먼 메일러, "Ten Thousand Words a Minute"
사람들은 권투가 원시적이고 폭력적이고 잔인하고 미개한 스포츠라고 생각한다. 그건 승리와 패배가 삶과 죽음에 등치될 수 있는 유일한 스포츠가 권투이기 때문이다. 권투선수는 자신을 공격하는 상대를 끝장내려는 살인충동을 지닌 괴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또한 권투선수는 상대를 무너뜨릴 단 한 번의 주먹을 휘두를 기회를 위해 수십번의 펀치를 감내하고 죽음이 다가오는 순간에도 쓰러진 바닥에서 다시 일어서는 투사일 수도 있다. 그 때 그는 신 앞에 홀로 서서 죽음의 운명에 도전하는 인간의 영웅이다. 그 때 사각의 링은 신전이 된다. 패배가 예정된 순간에도 의식불명으로 쓰러지기 전까지 포기하지 않고 되풀이해 일어서는 복서는 인간에게 가장 기본적 생존본능을 거스른다. 1982년 라이트웨이트급 세계 챔피언에 도전한 김득구는 레이 만시니(Ray Mancini)의 주먹에 뇌출혈로 쓰러지는 그 치명적인 죽음의 순간에도 의지로 자신의 몸을 일으켜세우려 했다. 
Korean lightweight champion Duk Koo Kim lays on the canvas, knocked out by Ray Mancini in the 14th round at Caesars Palace on November 13, 1982. Kim struggled to his feet, but collapsed moments later and died of brain injuries on November 17.
"만약 그들이 내 머리털 한 올 없는 머리를 잘라 연다면,
그들은 커다란 하나의 복싱 글러브를 발견할 것이다.
그것이 나라는 인간의 전부다. 나는 권투를 인생으로 산다."
---마빈 해글러 (Marvin Hagler)
인간은 평생 오만가지 방법으로 자신의 부모를 이해하려 한다. 어떤 경우에, 그건 자신을 이해하는 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