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나가 있다가 집에 돌아와 냉장고를 열어보니 있는 것이라곤 커피 뿐이다. 날씨는 귀 떨어지게 추운데 결심을 굳게 하고, 커다란 배낭을 메고나가 수퍼에서 장을 봐 오니까 아니 글쎄 아파트 입구의 금속 문이 얼어붙어 열쇠가 들어가질 않는게 아닌가. 그 무거운 걸 이고 지고 도로 두 블럭 떨어진 공중전화 있는 데로 볼때기 에이는 얼음바람을 맞으며 가려니까, 욕이 저절루 나왔다. 특히 내 코 앞에서 문을 잠그고 총총히 사라진 여인네, 다음에 만나기만 해봐라! (사실은 얼굴 못 봐서 가망 없음. --.--;;)
쓰러져서 십분쯤 있다가 배고파서 얼른 저녁을 했다.
오늘 같은 날은 천금을 준대도 복잡한 요리를 못 하리. (정말로 준다면 사실은 하리라...)
밥이 끓는 동안, 칙칙폭폭...
두부 두 모를 썬 다음에 대파 하나를 썰어넣고 간장+굴소스+식초+물+깨소금+고추가루 섞은 걸 쏟아붓고 12분 끓여서 막 지어진 밥이랑 먹었다. 자취생 식단 같아 보이지만, 막 지어진 기름기 좔좔 흐르는 흰 밥하고 먹으면 임금의 식탁이 부럽지 않다.
인생 최고의 호사 중의 하나는 매 끼에 '막' 지어진 밥을 먹는 게 아닐까? 아무리 좋은 쌀로 지은 밥이라도 묵은 밥맛은 막 지은 새 밥맛에 비할 바가 아니라서. 그래도 밥을 할 때면 늘 약간씩 더 해서 찬밥을 냉장고에 들이밀게 된다. 금고에 금괴는 채우지 못할 망정 배가 등가죽에 붙어 들어오는 날 뎁혀 먹을 찬밥은 있어야겠기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