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나가 있다가 집에 돌아와 냉장고를 열어보니 있는 것이라곤 커피 뿐이다. 날씨는 귀 떨어지게 추운데 결심을 굳게 하고, 커다란 배낭을 메고나가 수퍼에서 장을 봐 오니까 아니 글쎄 아파트 입구의 금속 문이 얼어붙어 열쇠가 들어가질 않는게 아닌가. 그 무거운 걸 이고 지고 도로 두 블럭 떨어진 공중전화 있는 데로 볼때기 에이는 얼음바람을 맞으며 가려니까, 욕이 저절루 나왔다. 특히 내 코 앞에서 문을 잠그고 총총히 사라진 여인네, 다음에 만나기만 해봐라! (사실은 얼굴 못 봐서 가망 없음. --.--;;)

쓰러져서 십분쯤 있다가 배고파서 얼른 저녁을 했다.
오늘 같은 날은 천금을 준대도 복잡한 요리를 못 하리. (정말로 준다면 사실은 하리라...)

밥이 끓는 동안, 칙칙폭폭...

두부 두 모를 썬 다음에 대파 하나를 썰어넣고 간장+굴소스+식초+물+깨소금+고추가루 섞은 걸 쏟아붓고 12분 끓여서 막 지어진 밥이랑 먹었다. 자취생 식단 같아 보이지만, 막 지어진 기름기 좔좔 흐르는 흰 밥하고 먹으면 임금의 식탁이 부럽지 않다.

인생 최고의 호사 중의 하나는 매 끼에 '막' 지어진 밥을 먹는 게 아닐까? 아무리 좋은 쌀로 지은 밥이라도 묵은 밥맛은 막 지은 새 밥맛에 비할 바가 아니라서. 그래도 밥을 할 때면 늘 약간씩 더 해서 찬밥을 냉장고에 들이밀게 된다. 금고에 금괴는 채우지 못할 망정 배가 등가죽에 붙어 들어오는 날 뎁혀 먹을 찬밥은 있어야겠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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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6-01-16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 자취생 식단이라뇨, 우리집에서 구경하기 힘든 호사식단으로 아뢰요. *^^*

2006-01-16 10: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플레져 2006-01-16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긴 봄날 같아요. 한 겨울에 갑자기 뽀나스처럼 봄이 와서 어리둥절해요.
어제 두부조림 해먹었는데, 프라이팬에 두부가 눌러붙었어요.
두부가 촉촉해 보입니다 ^^

merryticket 2006-01-16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맛있어 보여요...
천금"이라 하심은 천만불인가요??
아님 천만 유로??

paviana 2006-01-16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스렌즈 바닥 깨끗한 거에 감탄하고 갑니다.
아 ! 난 왜 저런 것만 보일까

검둥개 2006-01-16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 정말요? 진짜요? ^ .^
전 저거랑 밥이랑 정말 딱 그릇 두 개 놓구 먹는답니다.

속삭님 밥 드세요 밥! ^^

플레져님 여긴 날씨 좋다가 오늘 얼어붙었어요.
얼마나 춥던지 집에 못 들어가고 공중전화 앞에 서 있는데 울고 싶더라구요. ^^*
전 두부를 그냥 양념에 한 데 넣구 끓여서 그래요 헤헤.

올리브님 증말이요? 배고프면 다 맛있어요. ㅎㅎ ;)
천만불이 뭡니까, 실은 만불만 준다고 해두 바로 일하러나갈껄요.
(이렇게 말하니 쫌 비참해질라고 해요. 흑. :)

파비아나님, 왼쪽 중앙에 낀 라면 부스러기와 얼룩이 보이지 않으십니까?
실은 시어머니가 오시기 전에 부랴부랴 가스렌지 닦았어요. ㅎㅎ ^^

진주 2006-01-16 14: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미..저도.. 까스렌지와 냄비가 무쟈게 반딱인다고 감탄하는 중이었어욤^^

산사춘 2006-01-17 0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멋지세요. 덕분에 위장에 불땡겨져서 저도 간만에 아침을 지어먹어야 겠어요. 후식으로 와플이 짱인디... 음홧

검둥개 2006-01-17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주님 ㅋㅋㅋ 조명발두 좀 있는 거 같어요. 실은 가스렌지 위에 전자렌지고 그 밑에 있는 알전구를 켜놓구 찍었거든요. 헤헤. ^^

산사춘님 아침 맛있게 드셨나요?
저 두부+대파 조림은 시간도 많이 안 걸려서 저의 비장의 요리목록에 들어가는 음식입니다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