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돌이가 학교에 갔다.

컴퓨터를 켜고 기웃기웃 하다가 에스프레소를 한 잔 뽑아서 의자에 앉았다. 올해는 겨울이 널널하다 했더니 그런 말 하는 걸 딱 알아챘는지 바로 눈이 내리고 수은주가 뚝 떨어졌다. 눈이 내린 옆집 지붕(=교회)을 바라보면서 커피를 마시고 있으니까 큰 호사를 하는 것 같다. 혼자서 집에 있는 게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성탄선물로 삼돌이에게 받은 스피커로 음악을 듣는다. 일부러 볼륨을 약간 세게 해서 듣는데 질이 좋은 스피커라 음이 뭉개지지 않는다. 평생 이렇게 여유작작 커피나 마시고 음악이나 들으며 이웃집 지붕이나 쳐다보고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싶지만, 그럴 수는 없는 노릇. 이런 순간이 그저 가끔 있는 삶을 사는 것만두 봉 잡았다 생각해야 한다.

시댁에 있는 내내 나는 아프고 피곤하고 (아무래도 시집이니만큼) 불편해서 삼돌이와 티격태격했다. 그러고나서 좀 무안해서 또 얼굴색을 싹 바꾸고, "언제가 내가 제일 좋아", 라구 옆구리를 찌르며 물어봤다. 그랬더니 글쎄 이 넘이 "나는 네가 옆방에 있을 때가 제일 좋아" (--> 즉, 같은 방에 있을 때가 아니라 내가 옆 방에 가 있을 때가 더 좋다는 말이다 흠흠) 라구 그만 충격발언을 하는 게 아닌가. 자기도 모르게 그 말을 해놓고는 그만 실실 쪼개기 시작한다. 자기도 모르게 발설해버린 진실이 면구스러웠던 모양이다!

나도 불쑥 우리 앞에 출몰한 진실이 난감하여 같이 실실 웃었다.
나는 네가 옆방에 있을 때가 제일 좋다니, 사랑하는 타인들의 심정을 이토록 잘 표현하는 말이 따로 있을까!


어제 전경린의 신간, <언젠가 내가 돌아오면>을 읽고 리뷰를 쓸까 하다가 결국 못 썼다.

사랑에 대해 쓰고 또 써대는 작가들이 나는 참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무수한 사랑 이야기를 다 읽고 또 읽어주는 나같은 독자들도 위대하다.

마른 오징어처럼 꾸덕꾸덕해진 사랑 이야기를 그렇게 우리는 두고두고 씹고 또 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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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스 2006-01-16 0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 진실에 실실 같이 웃을 수 있는 사이. 그런 사이가 되기란 또 역시 쉽지 않아요. ^.^ 간만의 시댁 나들이에 힘드셨겠어요. 이제 푹 쉬세요~ 옆방에서 ㅎㅎ

검둥개 2006-01-16 0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런가요? 그런 말을 들으니 그래도 쫌 위안이 됩니다요. ^^;;;
옆방에서 푹 쉬도록 하겠습니다. ㅎㅎ

마냐 2006-01-16 0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호. 검둥개님...저도 연말에 시댁 식구들과 보름여를 보냈죠. 수고하셨슴다..ㅋㅋㅋ 암튼, 옆방에서 푹 쉬도록, 삼돌님이 배려해주셔야 할텐데...^^;;

이리스 2006-01-16 0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추천을 한 줄 알았는데 하지 않았군요. -.-
추천 누르고 갑니다 ~

플레져 2006-01-16 0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옆방에 그대가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흐흐...
삼돌님의 명언이 정말 부부사이를 단적으로 드러내주는군요.
울남편도 제가 방문 닫고 자고 있을 때 행복해하는 것 같아요...흠...

로드무비 2006-01-16 0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돌이님의 명언에 한 표!^^

merryticket 2006-01-16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아침입니다*^^*
옆방이라니, 듣는 사람 무안하게스리...그래두 옆집이 아닌게 다행인가요? ㅎㅎ

검둥개 2006-01-16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감사합니다. 저랑 살더니 그 새 현인이 되었나봐요. ^^* ㅋㅋ

플레져님, 오우 노우, 그대가 있는 것만으로 행복해 ~~ 이런 다정한 뜻이 아니구요,
이 방에 같이 있을 때가 아니고 저 옆방에 가서 따루 있을 때가 제일 좋다, 이런 뜻이라요. ^^;;;

어마, 낡은구두님 감사합니다. ^^* 옆 방에서 행복해하구 있어요.

마냐님, 그 보름이 시댁에서 보내면 한 달 같지 않나요? ^^
이제 푹 쉬세요. 헤헤.

검둥개 2006-01-16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리브님 저 방금 저녁 먹구 왔어요! 앗, 그런데 왜 무안해요?
맞아요. 그래두 옆 집이 아니라 천만다행입니다. ^_____^*
역시 한 수 위셔요!!!

2006-01-16 1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검둥개 2006-01-16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 이런. 그럼 다음을 기약해요 ^^* 밥 꼭 챙겨드시고요.

깍두기 2006-01-16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검둥개님의 글을 오랜만에 보니 너무 좋아요^^

blowup 2006-01-17 0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결혼하지 말고 옆집 남자가 되어 달라고 했어요. 예전에.

검둥개 2006-01-17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깍두기님, 진짜요? 정말요? *^^* 헤헤헤. (좋아서 실실)

나무님 결혼도 하기 전에 어찌 그렇게 잘 아셨단 말입니까?
같은집 남자가 된 지금은 어떤가요? 옆집 남자보다 나은가요? ^^
(써놓고 보니 무슨 소리람 이게? =3=3=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