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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수수께끼 - 마빈 해리스 문화 인류학 3부작
마빈 해리스 지음, 박종렬 옮김 / 한길사 / 200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1974년에 출판된 마빈 해리스의 <소, 돼지, 전쟁과 마녀: 문화의 수수께끼>는 너무 유명해서 오히려 더 안 읽게 되는 책들 중의 하나이다. 읽지 않아도 여기저기서 얻어들은 풍월 덕에 마치 책의 내용을 다 알아버리기라도 한 듯한 착각에 빠지는 것이다. 하지만 <문화의 수수께끼>는 단순히 왜 인도인은 소고기를 먹지 않고, 반면 이슬람교인들과 유대인들은 돼지고기를 금기시하는가만을 설명하는 책이 아니다. 각 장에 등장하는 소재들은 얼핏 보기엔 아무렇게나 선택된 수수께끼들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설명의 복잡성 정도에 따라 세심하게 배열되었다.
해리스는 힌두인들의 암소 숭앙이나 이슬람교인/유대인들의 돼지고기 금식, 뉴기니 매링족의 돼지 숭앙을 그들의 거주환경이 인간에게 부과하는 제약과 그 제약 속에서 거주환경의 자연적 수용능력을 파괴함 없이 생활하기 위해 고안된 문화적 장치라고 설명한다. 사상자를 내며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듯 보이는 전쟁이라든가 여성 수가 남성 수에 비해 절대적으로 부족한 사회에서 산모들이 오히려 여아만을 선택해 방치하거나 살해하는 현상을 고찰하면서, 해리스는 전쟁이 원시적 공격성의 산물이 아니라 사실은 정교한 인구조절 장치이며, 여아살해와 여성학대는 전체 집단이 일정한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도록 남성들의 공격성을 북돋고 섹스를 그 보상으로 제공하는 사회제도라는 것을 보여준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해리스의 주장대로 전쟁이나 사회적 남성우월주의가 생존에 있어서의 혹은 어떤 다른 경제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고안된 문화적 장치라면, 그러한 목적을 다른 방식으로 충족시킴으로써 전쟁이나 남성우월주의/여아살해와 같은 관습을 제거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책의 나머지 반을 차지하는 포트라치 관습과, 유령 화물, 구세주, 중세의 마녀 사냥에 대한 해리스의 논변은 이러한 문화적 현상 배후의 진정한 역학관계를 밝히면서 놀라움을 선사한다. 포트라치 관습이 부의 재분배를 위한 것이라는 것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지만, 거주 환경에 따라 부의 재분배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짐을 보이는 해리스의 설명은 매우 정교하다. 일견 지극히 비이성적으로 보이는 유령 화물에 대한 믿음이 사실은 제국주의 서양 열강의 지배 하에서 뉴기니의 고산지대 원주민들이 착취된 노동의 댓가에 대한 일종의 주장으로 기능하는 동시에 식민지배에 대한 저항운동의 발판이 되었다는 부분은 독자의 감탄을 사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역시 이 책에서 가장 탁월하게 보여지는 것은 뉴기니의 원시부족들의 관습과 서양 중세의 마녀사냥을, 기독교 성립 초기의 정치적 상황과 그 속에서 예수의 죽음이 정치적으로 변용되어 수용되고 전파되는 방식을, 그리고 나아가 저술 당시의 반문화운동의 정치적 의미와 한계를 연결시키는 해리스의 통찰력이다. 삼십년 전에 쓰여졌음에도 여전히 신선하고 인상적인, 읽어갈수록 독자의 흥미를 배가시키는, 가히 그 명성에 걸맞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