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게 말걸기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199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독자란 이상한 동물이다. 생각없이 읽으려고 골랐다가도 정작 소설이 그렇게 읽히면  어느 순간 골을 낸다. 맛없는 과자인 줄 알면서도 입에 넣고서는 여지없이 실망해 부아를 터트린다고나 할까. 그럼 왜 알면서도 맛없는 과자를 입에 넣었을까? 그건 아마 즐거운 일탈을 위해서가 아니라 편재하는 지겨운 현실을 다시 보려는 목적으로 소설을 골랐기 때문일 터이다. 각 단편의 완성도라거나 문학적 성취도와는 무관하게 , 그것이 투영하는 현실의 얼굴을 잘 드러내는 소설집, <타인에게 말걸기>는 그런 책이다.

이 소설집에 들어앉은 단편들 속 인물들은 모두 연애와 결혼, 사랑과 타인에 대해 성찰하는 중이다. 결혼은 왜 하나, 누구와 하나. 왜 연애는 망가지고 결혼은 깨어지나. 사랑은 무엇이고 타인은 누구인가. 단편들 속의 인물들은 이런 질문들을 묻는다. 작정을 하고 이런 물음을 탐구하고 있다기보다, 그런 물음에서 싫어도 헤어나지 못하는 상황 속에 있다. 그들은 불행하고, 그 불행의 핵심에는 더이상 작동하지 않는 타인과의 관계, 보다 더 정확히 말해, 파국을 맞은 사랑이 있다.

어떻게 보면 얼마든지 극적일 수도 있는 소재인데도 은희경의 단편들은 하나같이 숭늉처럼 밍밍한 맛을 낸다. 사랑의 파국, 그 진행과 경과를 묘사하는 이야기들 속에서 은희경의 인물들은 행동하지 않는다. 그들은 사고하지도 않는다. 그들이 끊임없이 하고 있는 것은 오직 느끼는 것이다. 마치 인간존재의 모든 기능이 단순히 감수성 하나로 환원된 것처럼! 그러나 행동과 사고과 연결되지 않은 채 고립된 감수성이란 얼마나 허약한 것인가.

그 허약한 감수성이 낳는 행동들은 그래서 독자를 실망시킨다. "세번째 남자를 만날 것이다", 라는 의미가 불분명한 예감("그녀의 세번째 남자"), "그럼 잘 가"라고 차일 거라는 불안 때문에 미리 관계를 파기하기("특별하고도 위대한 연인"), "언니와 나는 다르다"라는 너무 지당해서 오히려 힘이 빠져버리고 마는 깨달음("연미와 유미"), 사랑하는 남자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방기하는 것("짐작과는 다른 일들"), 문제를 알아채고도 '그냥' 사는 것("빈처"), 이혼한 남편의 새 아내를 만나느니 직장을 그만두는 것("열쇠"), 말 거는 타인 앞에서 방관자의 위치를 지키는 것("타인에게 말 걸기"), 욕망 앞에서 모호해지는 것("먼지 속의 나비").

심상(尋常)해서는 안 되는 좌절과 고통과 상처와 대처가 참으로 심상하다.

은희경의 인물들은 무기력하고, 자신이 야기한 고통과 좌절에는 사뭇 민감한 촉수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문제의 근원으로부터는 끊임없이 고개를 돌리거나 생각하지 않음으로써 적당히 타협한다. 그 타협의 결과는 안으로 검게 썩은 구멍이 난 감자처럼 구제불능의 상태에서 그대로 열중쉬어 상태로 서 버리는 것이다. 세상은 냉장고처럼 썩은 감자를 잘 보관해준다. 이 책 속의 단편들이 보여주는 현실과 그 속의 인간들의 모습은 그렇다. 그 앞에서, 이 책을 다 읽은 독자는 대체 무어라고 말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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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져 2006-02-20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처음 출간됐을때, 쇼킹하다고 생각했었어요.
아직 미혼이었고 사랑도 잘... 못해봤고, 험난한 인생 역정도 없던 시절.
나보다 한참 더 쿨하고 멋스런 인물들...
그로부터 몇 해가 지나고 나서 다시 읽었어요.
사랑, 이별, 숨쉬기, 기다리기 등등... 여러가지 체험을 하고 난 후였죠.
예쁜 엽서에 조금 못된 글씨로 쓴 인물들이랄까.
생명력이 짧은 인물들. 지금은 은희경의 소설을 잘 안읽게 되네요.
한때 매일 신문과 매스컴을 떠들썩하게 하더니... 휴휴...

검둥개 2006-02-20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 저도 96년에 이 책을 읽었다면 아마 그렇게 생각했을 것 같아요. 이 이야기들 속 주인공들의 세련된 척, 쿨한 척, 멋진 척에 기가 죽으면서 한편으론 세상에 이런 인물들이 어디에 다 몰려 사나, 그렇게 생각했을 것 같아요. ^^ 새의 선물을 읽었을 땐 정말 멋진 작가라고 생각했었는데 안타깝기도 하고 소설집 속의 상황인 현실이 답답하기도 하고 그렇네요. 요즘에도 은희경씨는 인기작가일까 궁금한 마음이 들었답니다.

로드무비 2006-02-20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데뷔작 새의 선물을 정말 재밌게 읽었어요.
그 뒤 점점 시큰둥해지더군요.
마이너리티가 어쩌고 하는 책이 마지막이었나?
이 작가도 왠지 얄미워요.^^

로드무비 2006-02-20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수성 하나로!
이 구절 멋집니다!^^

검둥개 2006-02-21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감사합니다, 로드무비님! ^^ 저도 가끔 은희경의 단편을 읽었는데 뭐 그저 그렇더군요. ^ .^ 책으로 나온 걸 읽은 건 새의 선물 이후 이것이 처음이었답니다. 음 이 작가도 얄미우시단 말이죠 ㅎㅎ

blowup 2006-02-22 0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은희경의 인물들은 무기력하고, 자신이 야기한 고통과 좌절에는 사뭇 민감한 촉수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문제의 근원으로부터는 끊임없이 고개를 돌리거나 생각하지 않음으로써 적당히 타협한다.
; 너무 미워하지 마세요. 제가 그래요.

검둥개 2006-02-22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디 그게 namu님 뿐이겠어요. 우리 대부분이 다 그렇잖아요.
그래도 그런 인물을 소설에서 보면 꼭 부아가 나더군요. ^^
 

원당 가는 길 (허수경)


757 좌석버스, 세간의 바퀴가 나를 그곳까지 데려다주었다 딴은 그렇게 말할 수도 있지만 결국 내가 내 발로 그곳까지 갔을 뿐

라면 반 개의 저녁이면 나는 얼큰하게 먹어치운 저녁 기운에 이런 노랠 했었다네 We shall overcome
버리고 떠나온 한 비럭질의 생애가 밀물지듯 서늘해지는 세월의 저녁 We shall overcome 우리 이기리라 넘어가리라 건설하리라 또 다른 생애에의 희망 이 무감동의 희망

그러나 세간의 바퀴여
잠깐, 나는 단 한번도 내 뒷모습을 용서하지 않았으나 내 그림자는 발목을 잡고 한번도 나를 놓아두지 않았도다 그리고
길 아닌 길 건설의 무감동이 나를 무너지게 했던 그 길에, 가끔 깃을 털고 때까치가 날고 나, 미류나무에 기대어 마을을 내려다보면 하나, 둘, 불켜진 창마다 가슴은 언제나 설레어 이런 날 종일 누군가를 기다렸으나

온전한 벗도 온전한 연인도 다 제 갈 길을 갈 뿐
나, 내 마음의 古老를 좇아 서둘러 떠났을 때 보았다
무수한 생이 끝나고 또 시작하는 옛사랑 자취 끊긴 길
그 길이 모오든 시작을 주관하고 마침내 마감마저 사해주는 것을

눈에서 지워진 그 길 원당 가는 길이었던
내 삶의 무너지는, 자취 없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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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져 2006-02-17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757 좌석버스 타고 원당 가는 일이 종종 있었어요.
한때 원당에서 1년 동안 기거했던 나날, 명동에서 757을 타면 서오릉을 거쳐 지나갔죠. 신도시 일산과 퇴락의 기운이 서린 구파발 사이의 원당, 그곳에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언니가 살고 있어요 ㅎㅎㅎ
검둥개님, 오랜만이에요.

검둥개 2006-02-18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 잘 지내셨지요? 저는 원당이 어느 곳인지 몰랐어요. 사랑하는 사람이 살고 있는 장소로 데려다주는 버스가 있다는 건 참 행복한 일인 것 같아요.
 
이소룡 세대에 바친다
유하 지음 / 문학동네 / 199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유하는 과거를 추억하는 데 부끄러움이 없는 시인이다. "세상의 모든 아침은 다시 오지 않는다. 생을 탕진했으므로, 나는 지나간 아침들에 대해 집착한다."(p.278) 이렇게 센치한 문장을 태연자약하게 발설하는 시인. "강호에 출도한다는 사실이, 둥지에서 처음 날으려는 어린 새처럼 두렵다. 그러나 힘차게 날아보리라. 매일 매일 작품으로 성숙해지리라." 그의 등단소감은 이러했다고 한다. 치기와 엄숙함의 이 발랄한 조화라니. 여기다가 그는 종종 지면에서 그의 모교 근처 유흥지에서 술마시던 기억을 회상한다. 그 유흥지가 중고등학교 시절 내가 놀러다니던 동네와 겹친다는 이유까지 해서 나는 그의 팬이다. 물론 심정적으로 그렇다는 이야기다. 출판된 지(1995) 십 년이 넘은 이 책을 이제서야 읽고 있으니까.

1995년이면 문화이론이 한창 유행하던 때였는데, 그 때는 물론 술독을 푸느라고 이런 책을 읽고 있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어쨌거나 이 책에서 유하는 대중문화에 대해 나름대로 상당히 분석적인 면모를 보여주는데, 아마 이 책을 진작에 읽었더라면 예전에 별 관심 없이 후닥닥 읽어치우고 말았던 그의 다른 시들에도 좀더 관심을 두고 보지 않았을까 싶다.

이 책은 3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소재는 대략, 영화, 대중문화, 시 순이다. 그는 물론 영화평론가가 아니라 시인이므로, 영화와 영화관에 매혹되었던 그의 어린시절에 대한 추억 이야기가 그가 본 영화평보다 재미있게 읽힌다. 무협영화를 즐겨본(/보는) 사람들에게는 무협영화광인 유하의 "무협영화는 왜 보는가"가 상당히 인상적으로 읽힐 것이다. 이를테면 이런 구절을 보라: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무협영화는 일상에 놓여진 무의미성의 터널이 무협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그 어떠한 시련보다도 훨씬 통과하기 어렵다는 것을 잘 깨닫게 해준다. 다르게 말하면, 무협영화가 펼쳐보이는 모험과 축제는 ... 현실에 대한 심한 무기력증을 선사한다. 왜냐하면 무협영화 속의 주인공이 겪는 험난한 시련과 그것을 뚫고 나가는 지혜와 용기 때위들은 '일상의 진실'과 현실감각이 완벽하게 거세된 자리에서 생성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p.81) 이 에세이를 통해서 나는 평론가 김현이 "무협소설은 왜 읽히는가"라는 글을 썼다는 사실도 덤으로 알게 되었다. 

2부에서 대중문화에 대해서 그가 이야기하면서 거명하는 연예인은 최진실과 심혜진, 문제삼는 담론은 오렌지족과 압구정동이다. 여기서 십년의 차이가 느껴진다. 오래된 책을 읽는 재미는 아마 이렇게 회고하면서 읽는 데 있는 것일까? 하긴 대중문화에 대한 나의 친밀한 기억도 대략 그 부분에서 끝나기는 한다.  3부에서는 시인 허수경과 진이정, 함민복이 등장한다. 이 중 한 시인이라도 좋아하는 독자라면 유하의 글을 읽으며 실망하지는 않을 것 같다. 

게으른 영혼으로 산문을 쓰는 게 어렵네, 어쩌네 하고 책머리에서 시인은 엄살을 떨지만 이 책은 그의 재기발랄한 문장만으로도 읽을만한 잡문집이다. 게다가  평소에는 노래만 하는 시인의 조근조근한 이야기 소리까지 들을 수 있으니 하루 저녁을 즐거이 벗하기에 좋은 묵은 책이라고나 할까. 유하와 묵은 책이라는 말은 어째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듯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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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17 14: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검둥개 2006-02-18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 그러네요, 사는 게.
건강하겠습니다. 속삭님도요.

로드무비 2006-02-18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젊은 날엔 이상하게 유하가 얄미웠어요.
약아빠진 것 같아서.
좀 늙은 유하를 화면으로 보니 짠하더군요.^^

검둥개 2006-02-18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저도 늘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 넘의 '압구정동'이란 말 때문이었을까요?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사실은 저보다 나이도 한참 많고 덩치도 크다던데! 장정일처럼 왜 유하에겐 나이를 먹지 않을 듯한 이미지가 있을까요? (아무래도 필명 때문인 것 같아요. 하하하) ;)

잉크냄새 2006-02-21 2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의 모든 아침은 다시 오지 않는다. 생을 탕진했으므로, 나는 지나간 아침들에 대해 집착한다." 이 구절 참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느날, 울컥하고 눈물이 날 정도로 가슴에 와 닿을것 같거든요. 잘 지내시죠?^^

검둥개 2006-02-22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명적인 구절이랄까, 그렇죠? ^.^
잉크냄새님 오랜만여요. 잉크냄새님도 잘 지내고 계시죠?
 

알라딘 달력을 보니까 서재에 한참 안 들어왔던 모양이다. 직장인과 학생 노릇을 같이 하려니까 그것도 쉽지 않다. 밤에 듣는 수업은 또 이렇게 졸릴 수가 없다. (의욕아, 다 어디 갔니?) 오직 집에 가는 밤길에만 정신이 바짝 난다. 버스를 타고 다니는데 그 동네가 밤에는 좀 위험하다는 소문이다.

아버지가 많이 편찮으셔서 수술을 두 번이나 하고 병원에 한 달 넘게 계셨다는데 식구들이 이제야 전화를 해서 알려줬다. 아무리 무소식이 희소식이려니 하고 사는 가족이지만, 너무 하다 싶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긴 했는데, 마음이 착잡하기는 마찬가지다. 기쁨은 나누면 두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고 하지만, 그건 다 미사여구고 진실은 오직 나쁜 소식은 알면 알수록 머리만 아프다는 것일까. 앞으로는 일주일에 한 번씩 집에 전화한다, 라고 생각하다가 과연 그렇게 전화하면 식구들이 정말 좋아할까, 싶어서 다시 망설이게 된다.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인생의 진실은 유하의 詩마따나 유행가 가사 사이에 다 포개져 있는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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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6-02-17 0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내세요. 아버님이 빨리 쾌차하시길.

paviana 2006-02-17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자요..유행가 가사가 진리이죠..

마태우스 2006-02-17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알리지 않으신 가족분들의 마음 씀씀이가 아름다워 보이는데요....저도 군대 훈련 받을 때 아버님이 양쪽 눈을 모두 못보게 되었던 적이 있어요. 그때 어머님은, 집에 별일이 없다고 말씀하셨지요.

로드무비 2006-02-17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정말 사는 게 고해여요.
부모님이 늙어가는 모습, 아프지 않으셨으면 좋겠는데.
아버지의 쾌유를 빌어요. 힘내시고요!

아영엄마 2006-02-17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검둥개님.. 저도 그런 일을 겪었었지요. 암진단 받으실 때까지도 저한테 쉬쉬하시고 혼수와서 병원에 입원하신 적이 있을 때도 알리지 않고... 나도 가족인데 하면서도 한달음에 못 내려갔을 저 자신을 생각하니 죄송스럽고 참 마음이 아프더이다.. 아버님께서 쾌유하시길 빌겠습니다. 기운내세요!!

날개 2006-02-17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버님 지금은 괜찮으신 건가요?
이럴땐 멀리 떨어져 있어 많이 속상하시겠어요...

비로그인 2006-02-19 0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외국산지 10년이 다 되가니 이젠 엄마와 전화해도 별 할말이 없습니다. 언제나 다들 별일없고 다들 건강하다고만 하시니, 여기까지 알려질만큼 큰 일은 없으신가보다 하고 좋아해야 할지... 저도 아버님께서 빨리 좋아지시기를 빕니다. 아참 직장도 다니고 공부도 하는건 검둥개님 남편분이신 줄 알았는데 아님 두분 다? 어쨌거나 힘내십시요. 아버님일도 공부도요.
 
시간 여행자의 아내 - 전2권 세트
오드리 니페네거 지음, 변용란 옮김 / 미토스북스 / 2006년 2월
평점 :
절판


조금만 스트레스를 받아도 입고 있던 옷과 신고 있던 양말에 신발, 떼운 이빨의 아말감까지 홀연히 남겨놓고 졸지에 사라져버리는 남자가 있다. 끊임없이 현재에서 미끄러지는 남자. 예측불허의 과거와 미래에 맨몸으로 내동댕이쳐지는 남자. 무사히 현재로 귀환하는 순간이 올 때까지 살아남기 위해서 잠긴 가게 열쇠를 따고 옷을 훔치고 길거리에서 남의 지갑을 털어야 하는 남자. 그래서 매일 아침 뛰고 또 뛰는 남자.

이 남자에게 현재는 비누거품으로 한없이 미끈거리는 빨래판, 삶은 시간의 못된 농담 같다. 시간이 이 사람을 무작위의 좌표로 내키는대로 쓸려보낸다. 마치 아무렇게나 끊임없이 자신을 흘려보내는 사람들에 대한 복수처럼.

껌딱지처럼 현재에 들러붙어 사는 우리에게도 하지만 시간이 잔인스럽기는 매한가지다. 돌아가고 싶은 과거는 굳게 닫혀 있고 피하고 싶은 미래는 오징어 흡판처럼 우리의 목덜미를 움켜쥔다. 이쯤 되면 시간여행자 헨리의 곤란한 삶이 남의 일만도 아니다.

시간여행자 헨리와 우리처럼 평범한 그의 아내 클레어는 이 시간의 압제 하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고전적이게도 그 답은 사랑과 믿음이다. 그리고 시간과 함께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것. 헨리와 다시 한 번 조우할 것을 기다리면서 47년 동안 클레어는 무엇을 했을까? 82살이 된 클레어의 뒷모습이 담긴 마지막 책장을 덮는 독자를 궁금하게 하는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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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스 2006-02-16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님의 리뷰를 읽고 나니 더욱 책에 흥미가.. ^^
추천 누르고 갑니다.

검둥개 2006-02-17 0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낡은구두님 이 책 재미있답니다. 꼭 읽어보세요. ^^ 영화로도 만들어진다고 해요.

비로그인 2006-02-19 0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드디어 나왔군요. 끊임없이 현재에서 미끄러지는 남자라니 멋진 표현입니다 검둥개님.

검둥개 2006-02-20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그런가요. ^^;;;
감사합니다. Manci님.

191970 2006-04-04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 문단의 헨리의 소개. 참 좋네요-

검둥개 2006-04-10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91970님 처음 뵙네요.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