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당 가는 길 (허수경)


757 좌석버스, 세간의 바퀴가 나를 그곳까지 데려다주었다 딴은 그렇게 말할 수도 있지만 결국 내가 내 발로 그곳까지 갔을 뿐

라면 반 개의 저녁이면 나는 얼큰하게 먹어치운 저녁 기운에 이런 노랠 했었다네 We shall overcome
버리고 떠나온 한 비럭질의 생애가 밀물지듯 서늘해지는 세월의 저녁 We shall overcome 우리 이기리라 넘어가리라 건설하리라 또 다른 생애에의 희망 이 무감동의 희망

그러나 세간의 바퀴여
잠깐, 나는 단 한번도 내 뒷모습을 용서하지 않았으나 내 그림자는 발목을 잡고 한번도 나를 놓아두지 않았도다 그리고
길 아닌 길 건설의 무감동이 나를 무너지게 했던 그 길에, 가끔 깃을 털고 때까치가 날고 나, 미류나무에 기대어 마을을 내려다보면 하나, 둘, 불켜진 창마다 가슴은 언제나 설레어 이런 날 종일 누군가를 기다렸으나

온전한 벗도 온전한 연인도 다 제 갈 길을 갈 뿐
나, 내 마음의 古老를 좇아 서둘러 떠났을 때 보았다
무수한 생이 끝나고 또 시작하는 옛사랑 자취 끊긴 길
그 길이 모오든 시작을 주관하고 마침내 마감마저 사해주는 것을

눈에서 지워진 그 길 원당 가는 길이었던
내 삶의 무너지는, 자취 없는 길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플레져 2006-02-17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757 좌석버스 타고 원당 가는 일이 종종 있었어요.
한때 원당에서 1년 동안 기거했던 나날, 명동에서 757을 타면 서오릉을 거쳐 지나갔죠. 신도시 일산과 퇴락의 기운이 서린 구파발 사이의 원당, 그곳에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언니가 살고 있어요 ㅎㅎㅎ
검둥개님, 오랜만이에요.

검둥개 2006-02-18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 잘 지내셨지요? 저는 원당이 어느 곳인지 몰랐어요. 사랑하는 사람이 살고 있는 장소로 데려다주는 버스가 있다는 건 참 행복한 일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