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차이를 주장할 때는 신중하게 하라는 것이다' 

 

 

 

차이는 불편해.
그렇다고 부정하면
모두에게 찾아오는 것은 불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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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애 "30대 안에 꼭 결혼할래요"
[스타뉴스 2005-07-22 07:59]    

[레인보우 인터뷰]노래방서 조용필, 자우림 노래 부르고 등산이 취미

[머니투데이 스타뉴스 김수진 기자] 사랑스럽다. 싱그럽다. 아름답다. 아니 천사 같다. 이 모든 화려한 수식어를 붙여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그녀가 사람들의 이런 기대감을 무참하기 깨버렸다. 이영애(34). 그녀가 변했다. 잔혹하기까지 하다. 오는 29일 개봉하는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서 그녀는 선악의 경계를 넘나든다. 친절한 금자씨. 악녀인가, 천사인가.

21일 오후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의 한 객실에서 그녀를 만났다. '명품' 배우는 역시 다르다. 그녀는 수많은 자신의 출연작을 연도까지 정확하게 기억하며 당시를 떠올렸다. '차분한 영애씨'는 또박 또박 정확한 발음으로 금자에 대해 이야기했다.

빨강..복수-"나나 잘하세요"

핏빛이 감돈다. '산소 같은 여자' 이영애가 아닌 '금자'다. 영화속 그녀는 13년간 감옥에서 복수를 꿈꾼는 '금자'를 연기했다. 완벽한 금자다. 서늘한 눈빛. 참을 수 없는 복수 끝에 눈물을 흘리며 미소를 지어 보이는 그녀의 모습은 영락없는 복수의 화신이다.

살면서 남에게 복수할 일을 겪어본 적이 없다는 이영애의 이야기처럼, 그녀의 천사같은 외모는 영화를 더욱 빛나게 한다. 이영애이기 때문에 '금자의 탄생'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영화 속 금자가 툭하고 내뱉은 대사. "너나 잘하세요."

"제가 생각하는 복수는 스스로가 행복하고 잘 사는 거라고 생각해요. 진정한 복수는 '너나 잘하세요'가 아니라 '나나 잘하세요'가 아닐까요?(호호)"

재미있는 사실 하나. '친절한 금자씨'와 '대장금'은 '복수'라는 공통적 소재를 지니고 있다. '대장금'에서는 억울하게 모함을 받은 장금이의 어머니 같은 스승인 한상궁의 '복수'를 한다는 점. 다만, 완벽하고 아름다운 장금이를 그리고 싶었던 연출자의 의도로 눈을 치켜뜨고, 소리를 지를 수 없는 제약이 있었다는 게 그녀의 설명이다. 이영애가 밝힌 재미있는 사실 하나 더. "'대장금'의 '금'과 '친절한 금자씨'의 '금'자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는 점이지요."

주황..선과 악-"금자는 친절한가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답 없음이다.

"금자는 친절하다. 아니다, 라고 딱 규정지을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친절하면서도 아닌 것 같고, 그러면서 또 친절한 것 같기도 하고..영화가 꼭 육하원칙에 따라서 문제를 제시하고 결론을 지어주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이 영화를 보면 금자가 친절한지 아닌지 해답이 나올 것 같아요. 그녀의 친절함과 불친절함은 관객의 판단이겠죠. 관객마다 보는 관점이 달랐으면 하는 바람도 있어요. 복수를 위해서 '천사'의 모습을 하는 것인지. 그것이 진정한 금자의 모습인지..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듯이 다양한 시선에서 바라봐 주셨으면 해요."

노랑..그리움-"나도 10대 시절이 있다"

이영애는 영화에서 10대부터 30대까지의 모습을 연기했다. 10대 날라리 여고생의 모습에서 수감 이후 복수를 실행하는 30대의 모습. 교복을 입은 영화속 그녀는 전혀 어색하지 않다. 심지어 박찬욱 감독이 뒷모습만 나오면 이영애인지 모를 수 있으니, 살짝 옆모습을 보이라는 특별 주문까지 있었을 정도다.

"날라리 여고생이라는 설정은 제가 제안을 했는데, 감독님도 그렇게 생각을 하고 계셨던 것 같더라구요. 감독님이 '금자라는 캐릭터는 사실 평벙하게 가는 것보다도 소녀스러운 나약함과 연약함을 동시에 지닌 외로운 여자'라고 말씀하셨거든요. 여고생의 모습을 촬영할 때 교복을 입고 거울 앞에 선 내 모습이 재미있었어요. 사실 엄두도 못내던 캐릭터었죠.(호호호)"

초록...변신-"'이영애' 이미지를 벗고 싶었어요"

90년대 말 이영애가 등장한 모 화장품 카피는 '산소 같은 여자'다. '산소같은 여자'는 그녀가 연기자의 길을 걸어온 지 1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에도 그녀의 이름 앞에 등장한다. 순백의 청초한 외모뿐 아니라 지난해 '대장금'에서의 선한 이미지가 각인돼서다.

"'이영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을 탈피하고 싶었어요. 최근에 KBS 2TV '윤도현의 러브레터'에 출연했었는데, '하루에 밥은 몇끼나 먹어요' 하는 질문도 있더라구요. '대장금' 때문에 홍콩을 방문했었는데, 배우 이영애가 아닌 '장금이' 이영애를 좋아하셔서 굉장히 부담되더라구요. 사실 이 영화를 보면 충격으로 받아 들이실 해외 팬도 있을 것 같아요."


그녀의 우려(?)대로 그녀의 변신은 성공적이다. 이영애의 연기는 스크린을 장악하며 관객을 압도시킨다.

파랑..시련-"나도 있었다"

우뚝 선 그녀가 있기까지 그녀에게도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이영애는 93년 드라마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화려했다. 'CF속 사랑스런 요정'이 걸어다니며 말도 하는 모습에 시청자들의 관심이 집중됐던 게 사실. 하지만 그녀는 95년 주말드라마 '사랑과 결혼'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연기생활을 했다고 설명했다.

"사실 아쉬운 작품들이 많아요. 여러가지 우여곡절을 겪으며 중간에 조기조영된 드라마들도 있죠. MBC '동기간'을 비롯해 '그들의 포옹' 등이 있죠. 요즘 생각해보니 과거에도 참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했던 것 같아요. '그들의 포옹'에서는 고아출신 전과자를 연기했었고요, '내가 사는 이유'에서는 술집작부로 출연했었어요. 이전 모습을 기억하는 분들이 별로 없으시더라구요."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그녀에게 참 잘 어울리는 말이다.

남색..평범-'평범한 영애씨'

다를 게 없다. 평범 그 자체다. 아니 더 심심하다.

"쉴 때 친구들 만나서 수다도 떨고, 어찌보면 다른 분들보다 제가 더 단조로울 수 있어요. 쉴 때는 집에서 DVD로 영화를 본다든가, 아니면 등산을 좋아하니까 집 근처 산에서 엄마 아빠랑 등산도 해요. 이영애는 특별할 것이다, 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이 있는데, 실제는 그렇지 않아요. TV 드라마도 많이 보고 해야하는데 스케줄에 쫓기다보니 볼 틈이 별로 나지 않더라구요."

그녀도 노래방에서는 마이크를 잡고 조용필의 '꿈' '바람의 노래', 롤러코스터, 자우림의 노래를 열창하는 영락없는 '평범한 영애씨'다.

보라..미래-"30대 안에는 꼭 가야지요"

30대의 톱스타가 피해갈 수 없는 질문. 바로 '결혼'에 대한 문제다. 당황한 기색 없이 돌아오는 그녀의 대답.."30대에는 꼭 할 거에요".

아직 구체적으로 누군가와 교제를 한다거나 하는 청사진은 없지만 그녀의 바람은 30대를 넘지기 않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녀의 주변에서 압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부모님이 심하게 재촉하시지는 않지만, 그래도 말씀은 하시죠.(호호)"

이같은 그녀의 '여유'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일에 대한 열정이 아닐까. 출연한 영화나 드라마에서 어김없이 '이영애 신드롬'을 불러일으키는 '프로' 이영애이니까. <사진=구혜정기자 photonine@> skyaromy@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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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애야 올해 꼭 하자~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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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5-07-22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 저두 이영애라면 연상도 고려해볼 수 있어요...
 

떨어지면 죽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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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5-07-21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성인용이에요? 저 사람들 다 벗고 있는건가.. 아니면 너무 위험해서?

릴케 현상 2005-07-22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인용 정글짐이라는 말이겠죠^^

라주미힌 2005-07-22 0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옷벗고 목숨걸고 노는 것일 수도 ^_^
정글짐이 아니라 공사판같기도 하고... 전 잘 모르겠습니당. 흐

날개 2005-07-22 0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그래픽 아니예요? 진짤까요? +.+
 
 전출처 : 릴케 현상 > 최저임금투쟁이 나아가야 할 바는 '연대와 확장'이다

최저임금투쟁이 나아가야 할 바는 '연대와 확장'이다
- 국가의 신자유주의적 노동시장 관리와 최저임금제도




9.2%의 인상률, 시급 3,100원, 이것을 월급으로 환산하면 70만 600원. 이 금액이 올해 9월부터 내년 12월까지 적용되는 법정 최저임금이다. 법정 최저임금은 말 그대로 노동자가 일한 대가로 받는 임금의 최하한선이다. 이는 노동자가 생계를 이어가고 인간답게 살아가는 데 절대 침해당해서는 안 되는 최소임을 의미한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이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과정에 대한 노동계와 사·정의 입장 차이는 좁혀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최저임금의 기준과 최저임금에 관한 사회적 적정선을 정하자는 노동계 입장보다는, 경제지표에 따라 결정하자는 사·정의 입장이 주로 관철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것이 올해 최임위의 최저임금 인상률 결정이 노동위원들의 사퇴, 사·정 위원들의 일방적 처리로 귀결된 표면적 이유이다. 올해 노동계에서 요구한 최저임금의 수준은 상용직 노동자 정액급여의 50%인 815,100원이었는데, 사·정이 내세우는 '유사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생산성에 대한 고려'에 밀려 무산된 것이다. 이에 민주노총과 여성연맹은 '최임위 결정 무효화, 최임위 해체'를 주장하며 즉각적으로 투쟁에 돌입한 상태이다. 최저임금투쟁의 집중시기였던 6월 한 달이 훌쩍 지났지만, 최저임금투쟁의 제 2막이 오른 것이다.

최저임금에 대한 노동자들의 관심이 크게 늘고 있고, 최저임금투쟁 역시 해를 거듭할 수록 그 규모가 확대되고 있는 중이다. '최저임금 현실화'의 문제가 이처럼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는 것은 그만큼 한국 노동자들의 빈곤이 심각한 수준이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상시적이고 구조적인 빈곤은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위기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최저임금 현실화'라는 문제가 '최저임금제도의 개선'이라는 문제로 곧바로 치환될 수는 없다. 신자유주의의 대리자를 자처하는 정부가 내놓는 정책들은 대부분 위기를 관리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으며, 이는 대부분 문제의 본질을 가리거나 왜곡하는 효과를 낳고 있다. 최저임금제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최저임금제도의 사회적 기능이 온전히 노동자들의 기본적 권리의 보장이라는 측면에만 놓여있는 것은 아니다. 정부의 정책적 의지가 어떻게 관철되는지에 따라, 그리고 다른 정책들과 함께 어떠한 일관된 흐름으로 배치되고 있는지에 따라, 최저임금 제도는 전혀 다른 사회적 기능을 수행한다. 그러므로 최저임금투쟁에 대한 의의와 한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일보 전진하는 최저임금투쟁을 만들기 위해서는 현재 노무현 정부가 취하고 있는 정책들의 일관된 흐름을 살펴볼 필요가 있고, 신자유주의 하 진행되는 다양한 제도 개혁의 본질을 규명하려는 노력이 동반되어야 한다. 신자유주의 정치세력들의 한국사회 재편 속에서 '최저임금제도'와 '최저임금투쟁'이 가지는 의미를 여러 가지 측면에서 살피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신자유주의 하 최저임금제도의 한계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는 착취관계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재생산하기 위한 조건들, 즉 자본축적의 지속을 결정적으로 보장하는 조건들을 확보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따라서 어떤 제도가 노동자들에게 얼마만큼의 급여와 혜택을 제공하는가를 넘어서 그 제도가 착취구조의 변화 속에서 어떠한 역할을 담당하는지를 파악하는 것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흐름 속에 포섭되는 과정에서 현 정부가 담당할 수밖에 없고 실제로 담당하고 있는 역할이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이라면, 그 재편의 맥락에서 국가의 정책 및 정책수단, 제도 등이 판단되어야 한다. 1986년 말에 제정되어 지금까지 이어오면서, '노동자가 인간답게 살 권리'의 마지막 보루로서 인식되고 그러한 의미에서 노동자들의 대응이 있어왔던 '최저임금제도'에 대한 판단도 마찬가지이다.

- 신자유주의 하 국가의 노동시장 관리

신자유주의 국가의 두드러지는 노동시장 정책은 광범위한 산업예비군 조성 및 유지와 이들에 대한 지속적인 노동시장 유인이다. 이때 산업예비군의 확대는 장기화된 실업과 청년실업의 증가로 인해 자연스레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국가가 여성-이주-장애-고령 인구의 노동시장 편입을 촉진시킴으로서 인위적으로 그 규모를 확대시키기도 한다. 국가가 이러한 전략을 채택하는 이유는 경쟁적 노동시장을 통해 저임금과 인력 운용의 유연성을 확보해줌으로써 기업의 노동력 구매에 긍정적 효과를 주기 위해서이다. 아울러 이는 경제의 금융화가 가속화되면서, 단기주의가 확산되고 고용 없는 성장이 반복되는 추세에 조응하는 노동시장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노동시장 정책은 '실업률의 안정에도 불구하고 급격히 늘고 있는 체감실업률'이라는 모순된 상황 전개를 통해 그 실상이 적나라하게 확인된다. 체감실업률의 급격한 증대는 비정규직 증가로 인한 노동시장 왜곡(경쟁적 노동시장에서 취업과 실업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단기 실업자의 수 증가)과 노동시장의 양극화(중간소득 일자리 감소와 최상 및 최하위 일자리 증가)를 동시에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가 주목할 수밖에 없는 것은 어떻게 하면 산업예비군 속해 있는 사람들을 큰 저항 없이 저임금 불안정노동으로 유인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그리고 그것은 노동시장 내 수요와 공급을 조정하는 수준에서 해결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국가는 사회정책 전반에 대한 '개혁'을 통해 이를 해결하려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노동시장과 복지의 연계'가 등장한다. '신자유주의 시대, 케인즈주의적 복지국가의 해체'는 단순히 복지의 축소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복지의 양적 축소의 문제는 각 국가의 역사적 경험과 세계 자본주의 체계에서의 위계화된 위상에 따라 상이한 양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핵심적인 문제는 복지 및 사회정책이 케인즈주의와 결합된 보편적인 권리의 방어라는 측면에서 경제구조조정을 위한 유인 및 관리의 측면으로 이전하는 경향이다. 과거 보편주의적 복지정책은 사회적 위험(실업 등)에 빠진 시민들로 하여금 생활상의 심각한 어려움 없이 노동시장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롭게 이탈하도록 허용하는 것이었다면, 신자유주의 복지정책의 핵심은 사회 전반(복지의 영역조차도)을 시장과 밀착시키면서 이들을 재상품화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영국의 노동당의 경우 복지개혁을 통해 임금비용이 가능한 한 저렴한 상태에서 산업예비군과 노동시장이 큰 마찰 없이 밀접한 관계를 맺도록 추동하고 있는데, 구체적으로는 '저임금 고용에 대한 보조금의 개발과 보호장치 마련'이라는 측면으로 드러난다. 이러한 측면은 노동가족세금공제(Working Family Tax Credit), 국가육아전략(National Childcare Strategy), 국가최저임금(National Minimum Wage) 등의 정책을 모두 포함한다. 그리고 부가적으로 구직 노력을 하지 않는 실업자에게 복지급여 상의 불이익을 주는 정책을 강화하는데, 이는 복지의 수급이 최악의 일자리를 선택하는 것보다 열등한 선택이 되도록 하기 위한 '형벌로서의 복지'를 실현한 것이다. 요컨대 영국은 노동으로의 인센티브 강화와 사회복지에서의 압력이라는, '당근과 채찍'으로 사회정책을 재조정함으로써 경제 구조조정에 적합한 노동시장 환경을 노동자들의 저항을 우회하면서 조성해낸 셈이다.

- 한국사회에서 저임금 불안정노동의 확산

IMF 이후 제기되는 사회적 문제는 경제적 불평등에 따른 빈곤의 확산이고, 이는 외환위기를 계기로 가속화된 저임금 불안정노동의 확산에서 기인한다. 그리고 이러한 빈곤의 심화는 경기순환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사회재편에 따른 구조적 문제라는 점에서 심각하다. 노동의 불안정화는 필연적으로 임금을 결정할 수 있는 힘을 '시장', 즉 자본에게 부여하여 경쟁적 노동시장을 필연적으로 창출하는데, 그 과정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무방비 상태로 저임금노동에 노출되어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에 따르면,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하는 노동자들은 125만 명에 이르고 있고, 그 중 비정규직은 118만 명(94.2%)으로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이 조사에 따르면, 그 중 기혼여자가 65만 명(51.8%)으로 가장 많고, 그 외 기혼남자 25만 명(19.8%), 미혼여자 19만 명(14.8%), 미혼남자 17만 명(13.5%)순으로 나타난다. 이는 가구의 생계를 담당하는 기혼자가 전체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연령계층별로는 55세 이상 37만 명(29.6%), 25세 미만 26만 명(20.5%)으로 고령층과 저연령층이 절반을 차지했지만 25세 이상 55세 미만 계층도 62만 명(49.9%)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통계결과는 저임금 노동이 가계의 생계를 담당하는 기혼자와 노동력 활용이 가장 활발한 연령층에도 넓게 퍼져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를 통해 과거 전통적인 빈민층이 근로능력이 취약한 장애, 아동, 노인층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데 비해, 현재는 광범위한 불안정 노동층의 증가가 빈곤의 주된 원인임을 확인할 수 있다. 불안정노동과 빈곤의 고착화는 한국사회의 위기를 대변하는데, 그러므로 노무현 정부에게는 이에 대한 관리가 사활적인 문제일 수밖에 없다. 여기서 '관리'라 함은 (임금상승 압력을 상쇄시킬 수 있는) '경쟁적 노동시장'을 유지하면서, 이로 인한 노동자들의 불만과 저항을 효과적으로 무마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노무현 정부의 정책이 반영된 '최저임금제도'는 노동자의 인간다운 생계를 보장한다는 취지와 다른 위기관리 정책으로서의 드러날 가능성이 농후해진다.

- 최저임금, 노동자 권리의 확장인가 지배계급의 관리인가 : 노동시장 유인과 임금하향 압박에 기능하는 최저임금제도

최저임금제도가 노무현 정부의 정책에 따라 현재 한국사회에서 담당하고 있는 사회적 역할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이른바 '경쟁적 노동시장'을 유지하기 위해 광범위한 산업예비군이 노동시장으로 진입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도록 유인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협약의 외형 속에서 노동자들의 불만을 관리하고 전사회적으로 임금하향을 압박하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 최저임금제도는 앞서 살펴본 영국의 사례처럼, '노동으로의 인센티브 강화와 사회복지 상의 압력'으로 나타난다. 최저임금제도는 지금 도입 추진중인 EITC(근로소득보전세제)와 함께, 저임금 노동과 불안정노동 일색인 노동시장에 노동자들을 끌어들이는 유인책으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중요한 것은 후자의 문제인데, 그것은 최저임금에 대한 노무현 정권의 태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최저임금 수준의 소폭 인상 정도는 허용하지만, 이를 엄격하게 적용하여 자본으로 하여금 최저선 이상으로 임금을 인상하도록 압력을 넣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현재 최저임금 영향률이 3.2%에 그치고 있고, 일부 공공부문 사업장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최저임금 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 인상이 큰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를 증명한다. 결과적으로 현실의 최저임금제도는 저임금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한 채, '경쟁적 노동시장'에서의 '가혹한' 노동을 은폐하면서, 많은 노동자들의 임금수준을 최저임금 기준으로 묶어 놓는 효과를 낳고 있는 셈이다.

 

최저임금투쟁, 현수준에 머무를 것인가, 아니면 한 발짝 전진할 것인가?

최저임금투쟁은 이제 노동자운동을 포함한 전체 민중운동 내에서 중요한 위상을 가지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여성연맹 소속 노동자들의 눈물겨운 투쟁이 매우 큰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다. 그동안 노동자운동 내에서 미조직 대상이자 소외의 대상이었던 이들이 주체화되는 과정은 분명 노동자운동의 중요한 상징성을 획득하였다. 최저임금투쟁이 침체일로에 있던 노동자운동의 對사회투쟁에 유의미한 활력소로서 기능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에서 드러나듯이 미조직 노동자로서 노동권의 예외자로 존재해왔던 저임금 불안정노동 종사자들이 노동운동의 주체로 나설 수 있는 경로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최저임금투쟁의 중요도는 매우 크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최저임금투쟁이 가지는 가장 큰 의의는 신자유주의의 대리자를 자처하는 현 정부의 기만적인 노동시장 정책과, 허구적 사회협약 및 사회정책 개혁의 본질을 폭로할 수 있는 새로운 운동공간을 제공했다는 점이다. 최저임금제도가 현 정부가 주력하는 '경쟁적 노동시장'을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사회적 보호막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과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허구적 사회협약의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최근 쟁점이 되고 있는 '근로연계복지'에 있어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해볼 때 최저임금투쟁의 사회적 확장은 매우 가능성 있어 보인다.

그러나 현 최저임금투쟁에 대한 비판적 지점들이 존재한다.

첫째, 최저임금투쟁의 실리적 경향이다. 이는 최저임금투쟁이 최저임금위원회를 압박해서 높은 인상률을 쟁취하는 방향으로 경도되는 것을 의미한다. 매년 6월 인상률을 결정하는 최임위가 열리는 시기에만 최저임금투쟁이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최저임금투쟁이 협상일정을 중심으로 배치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둘째, 불안정노동과 이를 양산하는 '경쟁적 노동시장'이 최저임금을 사실상 저임금 노동자들의 최고임금으로 고착화시키고 있는 점에 대한 발본적 문제제기가 여전히 부족하다. 특히 구조적으로 저임금을 강제하는 최저가 낙찰제도나 용역제도 등은 최저임금투쟁의 당면과제이다.

마지막으로, 최저임금투쟁이 확장된 대중투쟁으로 온전히 자리잡지 못하고 있다. 최저임금을 매개로 확장된 투쟁의제들을 발굴하고, 이를 각 지역과 사업장에서 일상적 투쟁으로 배치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최저임금투쟁을 노동자들의 공동임금투쟁으로서 적극적으로 사고하여 지역 연대투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적극 살려야 한다.

실질소득의 감소라는 점에서 뿐 아니라 노동자들의 권리가 축소되는 가운데 단지 임금최저선의 인상이라는 데 국한된다면 최저임금투쟁은 오히려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권리의 확장으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노동시장 통제전략에 조응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농후하다. 노무현 정권의 노동정책의 기조가 '저임금 불안정노동의 확대를 통한 자본의 이윤율 제고'이고, 이를 위한 노동시장 유인책, 광범위한 산업 예비군 조성을 통합적으로 입안하고 보았을 때, 최저임금투쟁은 노동자들의 소극적 방어의 측면에 머무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투쟁의 의제를 확장하고 다른 운동들-빈곤을 철폐하기 위한 운동이나 지역운동-과의 적극적인 연대를 통해 일상적인 지역 공동투쟁을 활성화하는 것은 최저임금투쟁이 현수준에 머무를 것인가, 아니면 한 발짝 전진할 것인가의 문제에서 관건적인 과제일 수밖에 없다.

 

최저임금투쟁이 나아가야 할 바는 '연대와 확장'이다.

기존 우리의 운동은 부문과 영역의 구분을 뛰어넘지 못하는 한계를 보였는데 이는 정권과 자본의 사회재편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는 주된 원인이었다. 지난 수 년 동안 한국사회는 신자유주의가 폭력적으로 관철되고 구조화되는 과정을 경험했고, 정권과 자본이 선동하는 '대세'에 밀려 그 폭력에 무기력했던 노동자운동을 비롯한 전체 민중운동이 있었다. 물론 그 와중에 대중적인 운동의 흐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러한 각 운동들이 영역과 부문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제도 개선'투쟁에 머무르면서 신자유주의 정치세력이 주장하는 '대세'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근로능력이 있는 자에게도 급부를 제공하고 생계급여의 수준을 높이는 등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이전의 생활보호제도에 비해 진보적인 성격을 갖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정을 밟은 나라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공공부조 프로그램의 강화는 노동유연화가 양산하는 실업자 및 저임금 노동자들의 최저한의 생활을 보장하여 사회적 불안을 예방하기 위한 목적을 지니고 있다.

최저임금제도의 활성화 역시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 효과를 가진다고 볼 수도 있으나, 1997년 이후 최저임금위원회 내 공익위원들이 한 해는 노동계 편을 다음 해는 재계 편을 드는 방식으로 최저임금 수준을 관리해오고 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최저임금제도는 여전히 한계적이고 때로는 부정적이다. 최저임금제도가 (1인 최저생계비에 비해 최저임금이 높게 인상되면서) 복지수급 대상자들에 대한 노동시장 유인효과가 점차 강해지고, 정부의 노동시장 부착형 복지를 추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는 점, 실제 강하게 임금을 하향압박하고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한다면 최저임금투쟁을 단면적으로 사고해서는 안 된다.

노무현 정권은 내용에서는 비정규직과 빈곤층을 '적당히' 보호하는 '비정규보호법안'이나 '사회적 일자리 만들기' 등 사회협약을 추진하고 있다. 당장 올해 최저임금 인상 결정과정에서 정부측 공익위원들은 최저임금이 소폭 상승되는 수준에서 합의안을 제출했다. 합의라는 틀을 추구하면서 비정규직이나 실업·최저임금의 문제를 적당한 수준에서 지속적으로 관리하려고 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조그만 성과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않는 투쟁의 원칙이고, 기존 운동의 영역에 갇히지 않는 열린 구조의 대중운동으로의 확장, 연대를 통해 지역과 새롭게 형성되는 운동주체에 기반한 운동공간의 창출이다. 이러한 관점을 견지했을 때, 신자유주의 위기관리정책의 조삼모사(朝三暮四)식 기만성을 경계하면서, 대중운동의 확장과 발전을 가져오는 새로운 전형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 속에서 최저임금투쟁의 발전방향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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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경비구역 JSA>와 <올드보이>의 흥행에 더해 지난해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수상으로 박찬욱(42) 감독은 명실공히 한국 영화의 간판 감독이 됐다. 그 스스로 ‘복수 3부작’의 완결편이라고 말하는 <친절한 금자씨>의 개봉(29일)을 앞두고 영화평론가인 김소영(43)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가 박 감독을 인터뷰했다.(둘은 서강대 영화 동아리 선후배 사이이기도 하다.) 분노, 죄의식 등 박 감독의 영화에 반복돼 등장하는 모티브의 개인적인 연원을 묻는 질문에서 박 감독의 대답은 비껴가는 듯 했지만 <친절한 금자씨>의 음악 사용과 동화적 표현에 대해서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김소영=박찬욱 감독은 지금 한국 영화계의 가장 ‘핫’한 위치에 있는 감독 중 한명이다. 이런 위치가 영화를 만들 때나 관객을 의식할 때 어떤 영향을 끼치지 않는가.

박찬욱=전혀 안 끼친다. 나는 영화 한편 만드는 데 시간도, 돈도 꽤 드는 타입이기 때문에 정말 내면의 절실한 욕구나 동기가 없다면 못 버틸 정도로 지친다. 흥행하고 싶다는 생각은 데뷔 전부터 지금까지 늘 생각해온 것이라 내면화돼서 특별히 더 의도할 필요도 없다.

=영화를 만들게 하는 힘을 절실함, 또는 맺힌 것이라고 표현한다면 박 감독 작품에는 이런 맥락에서 꾸준히 표현되는 것들이 있을 거다. 비교하는 게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김기덕 감독 경우 누가 봐도 그의 내면에 맺힌 것에 대해서 떠올릴 수 있는데 박감독에게 이런 것을 한마디로 압축해서 이야기한다면 뭘까?

=음…(한참, 고민). 내 영화에는 어떤 어리석은 짓, 실수를 저지른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 사람들은 거기서 원래의 순결한 상태로 돌아가려한다. <친절한 금자씨>에서 사용된 용어로 하자면 영혼의 구원을 얻으려 하고 그것이 대개는 좌절되지만 어쨌든 노력한다는 그런 이야기들이다. 대답이 된 건가?

=박 감독의 인생에서 유년의 트라우마라거나 또는 첫번째 실수라고 기억하는 것들 중에 현재의 작품세계에 영향을 끼치거나 모티브로 작동하는 것이 있나.

=개인적 체험이라는 게 너무 범위가 좁고 평범하기 때문에 거기서 나올 만한 건 별로 없다. 떠올릴 수 있는 거라야 가톨릭 가정에서의 성장 정도? 그렇지만 한국 가톨릭이라는 게 유럽처럼 죄의식을 강요한다거나 하는 보수적 전통도 강하지 않은데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

=<친절한 금자씨>는 금자씨가 자기가 저지르지 않은 죄까지도 속죄하고 싶어하고 그로 인해 고통받는 것을 강조하면서 매우 섬세한 윤리적 부분을 건드린다.

=금자는 고지식하고 유치한 면이 있지만 뻔뻔한 인물이 아니다. 그래서 각본 초기 단계에서 논란이 많았다. 명색이 복수극이라면 아이가 죽는다거나 15년 동안 감금됐다거나 하는 더 강력한 동기가 부여돼야 하는데 금자에게는 그만큼 강한 동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친절한 금자씨>는 바로 거기서 출발한 이야기다. 꼭 자기가 뒤집어 쓰지 않아도 되는 죄의식을 자청한 사람, 남보다 그런 문제에 민감한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복수 3부작의 완결편이기 때문에 영화를 보면서 전작들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는데 <복수는 나의 것>은 마지막 장면에서 주저함이나 가차없이 탁 베면서 끝이 났고, 그게 평론가들이 그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거기에 비하면 <친절한 금자씨>의 결말은 무자비하지 않다. 그런 부분들이 비평적으로는 좀 의아하다.

=금자는 잘못된 방식으로 속죄를 시도해서 스스로 후회도 하고 죽은 아이의 용서를 얻지도 못했지만 그 노력이 가상하다고 생각했다. 어리석고 실속도 없지만 애쓰는 것에 대해서 예쁘게 봐주고 싶었다. 그렇다고 결말이 결국 평화를 되찾았다거나 행복한 가정을 이뤘다거나 하는 게 아니라 모든 게 불확실한 상태로 남아 있다. 마지막에서 딸과 끌어안는 게 감상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내 생각으로는 안정된 결말은 아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기능하는 소품이 흰 두부와 흰 케익이다. 흰 두부가 우리사회의 전통적 가치체계를 상징한다면 금자가 직접 만들어서 먹는 흰 케익은 서구적인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지금 한국사회는 두 가치체계가 혼합되어 있기는 하지만 속죄나 구원같은 영화의 질문들은 내재된 절실함에서 나왔다기 보다 외부로부터 부가된 것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영화 만드는 입장에서 이게 어디서 왔던 간에 실제로 한국에서 현재 살고 있는 사람에게 중요한 문제라는 거다. 누구든지 살면서 실수하고 그러고 나서 괴로워하고 되돌리고 싶어하고, 그건 현실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전도사같은 인물을 통해서 기독교를 비판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문제제기 자체가 기독교적인 사유의 회로 안에서 이뤄지고 해결과정도 그걸 벗어나지 않는 느낌이다. 물론 박 감독만의 독특한 시각과 정교함으로 한국의 현실을 탁월하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를테면 <복수는 나의 것>에서 아나키즘을 통한 해방적 결론에 비하면 폐쇄회로 안에 갖혀있는 것같다.

=듣고 보니 그런 것도 같다(웃음). 특정 종교에 대해서 이런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을 거라고 예상은 했다. 그러나 중요한 건 그 관념이 어디에서 왔든지 지금 한국에서 매우 현실적인 문제라는 게 내 생각이었다.

=복수 3부작이라는 맥락에서 볼때 1편 <복수는 나의 것>이나 2편 <올드 보이>에서는 계급이 중요한 문제였고 이 영화에는 주인공이 여성이라는 젠더 문제가 결합한다. 구체적으로 착취당한 여자의 되갚음에 대한 이야기인데 두가지 해석이 가능할 것같다. 1,2편에서는 없었던 약간의 위안이나 희망을 주고 캐릭터, 사운드 사용 방식 등을 통해 여성성에 대한 공감이나 친밀함을 보여주는 게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전작들이 끝까지 밀고갔던 것과 달리 여성성에 깊이 들어가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을 수도 있을 것같다.

단편 ‘심판’ 만들며 영화인행 극적으로 바뀌어

=여성 주인공을 앞세우면 결국 이래도 욕먹고 저래도 욕먹을 거라 생각했다(웃음). 내가 여성이 아닌 이상 한계가 있기 때문에 오히려 너무 여성주의적으로 가려는 욕심을 부리지 않으려고 했다. 내가 바랬던 건 능동적, 독립적인 여성이 주인공으로 홀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정도였다.

=금자가 두부를 던지고 꽃잎 모양의 아름다운 케익을 만드는 모습은 박 감독이 웰메이드를 지향하는 태도와 친연성이 있는 것같다.

=웰메이드라는 표현은 좀 거북하다. 내 영화는 툭툭 튀는 구석이 많고 거칠기도 하고 엉뚱하게 진행되기 때문에 내가 알아왔던 웰메이드와는 거리가 멀어도 많이 멀다. 윌리엄 와일러 같은 감독이 정말 흠잡을 데 없고 보편적인 웰메이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인데 내 영화에는 그런 보편성도 없고.

=옳은 지적이다. 박찬욱 감독에게 웰메이드라는 건 프로덕션 세트 디자인 완성도 같은 데 한정해서 생각해야 할 것같다. 오히려 두부와 웰메이드처럼 보이는 케익 사이에서의 주저함에서 박 감독 영화의 힘이 있는 것 같다. <공동경비구역 JSA> 때부터 외부로부터 감독을 보는 인지도가 바뀌었는데 실제로 본인에게도 그 영화 만들면서 또는 만든 뒤에 변화가 생겼나.

=영화 경력에서 가장 큰 전환점은 <공동경비구역 JSA> 직전에 만들었던 단편 <심판> 때였다. 일단은 단편이기 때문에 무보수로 배우를 기용하는 상황이었고 배우들이 기주봉씨같은 연극계 고참이었다. 보수도 없이 형님들 모시고 찍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맘대로 시키기보다는 의견을 듣고 설득하면서 촬영을 했다. 그런 과정에서 배우들과의 의사소통이 뭔지, 이 소통이 영화에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또 배우들이 얼마나 존중받아야 하는 사람들인지도 알게 됐다. 서서히가 아니라 극적으로 바뀌었고 그게 내 인생에서 가장 큰 변화였다.

=박 감독과 자주 만나는 사이는 아니지만 대학 때 함께 동아리에서 영화 공부했던 게 생각난다. 그때 박 감독은 바바리 코트를 자주 입었고 아웃사이더처럼 주변에 개입하지 않고 눈에 띄려고 하지 않지만 눈에 띄는 스타일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당시 같이 영화 공부하던 사람들보다 수줍은 편이었다.

=그래서 이런 일을 할 수 있느냐, 많이 주저했다. 리더십이나 적극성, 저돌성이 요구되고 때로는 일전불사하는 자세로(웃음), 터프한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겁을 많이 먹었다. 막상 들어와 보니까 진짜 그렇더라(웃음). 그래서 적응하기 참 힘들었다. 일하면서 조금씩 내 성격도 변했다. 지금도 터프하지는 않지만 다른 방식으로 주변 사람들을 잘 달래고 설득하고 칭찬해주고 그러면서 끌어간다.

=다음 작품은 뭔가.

=씨제이엔터테인먼트의 에이치디(HD) 프로젝트 중 한 작품인데 지금까지 내 영화 세계와 완전히 다른 영화다. 그동안의 영화가 넓은 의미의 스릴러였다면 이번 작품은 보통 드라마다. 자기가 사이보그라는 망상에 빠져 정신병원에 입원한 사춘기 소녀가 환자들과 의사들을 만나고 사랑에도 빠지면서 자신의 병을 인식하게 된다는 이야기인데 판타지적 요소가 매우 강하다.

=<친절한 금자씨>에도 판타지나 그로테스크한 구전동화적 요소가 곳곳에 드러난다.

=맞다. 한참 공부하던 80년대 초중반을 지배했던 담론이나 당시의 리얼리즘 논의가 나한테는 언제나 좀 답답했다. 그렇지만 지배당했던 의식이기 때문에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친절한 금자씨>처럼 만들 생각을 못했던 건데 차츰 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같다.

정리·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자기들끼리만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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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5-07-20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개봉도 안했는데 자기들끼리 보고 벌써 리뷰를 쓰면 어쩐대요...?

릴케 현상 2005-07-20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들끼리만 보고...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