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랄海 사막으로 변하나
2005년 09월 29일 | 글 | 주성하 동아일보 기자 ㆍzsh75@donga.com |
 

한때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내륙바다였던 중앙아시아의 아랄 해(海). 급속한 사막화로 이대로 방치할 경우 15년 뒤면 지구상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한 아랄 해를 일부라도 보존하기 위해 카자흐스탄이 나섰다. 그러나 보존 작업은 자국에 속한 아랄 해의 북부에 한정될 뿐 아니라 이런 노력이 오히려 아랄 해 남쪽 부분의 사막화를 촉진할 전망이어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일부라도 살리자=산유국인 카자흐스탄은 최근 고유가에 힘입어 벌어들인 막대한 재정을 아랄 해 복원에 투자하고 있다. 모두 2억500만 달러가 자국 영토 내에 있는 ‘소아랄’에 투여되고 있는 것.

소아랄은 세 부분으로 나뉜 아랄 해의 북부지역. 카자흐스탄은 2010년까지 소아랄 해수 면적을 1960년대의 3분의 2 수준으로 만들 계획이다. 이에 따라 소아랄을 에워싸는 거대한 댐이 확장되고 이곳으로 흘러드는 시르다리야 강의 누수를 막기 위한 제방공사도 진행되고 있다.

문제는 댐이 조성되면 아랄 해 남쪽으로 흘러가는 물줄기가 막혀 버린다는 점. 아랄 해의 남쪽 절반을 가지고 있는 우즈베키스탄은 재정이 여의치 않아 속수무책으로 사막화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아랄 해 남쪽은 죽음을 눈앞에 둔 불치병 환자와 같다”고 진단하고 있다.



▽40여년 만에 4분의 1로 준 아랄 해=20세기 중반만 해도 아랄 해는 남한의 4분의 3에 맞먹는 약 7만 km²의 면적을 자랑했다.

그러나 1960년경부터 소련 정부는 중앙아시아에 대규모 목화 재배지를 조성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를 위해 아랄 해의 주요 수원(水源)인 시르다리야 강과 아무다리야 강의 물길을 돌려버렸다.

이때부터 아랄 해는 흘러드는 강물의 양이 대폭 줄어들었고, 오늘날에는 1960년대에 비해 면적은 4분의 1로, 수량은 10분의 1로 줄어들었다. 바닷물의 3분의 1 정도였던 염도도 지금은 바닷물의 2배에 이르고 있어 철갑상어 잉어와 같은 어류가 급격히 줄고 있다.

또 수십 년간 농약과 비료로 오염된 호수 바닥의 소금먼지가 수백 km를 날아다녀 인근 국가 주민들의 건강을 해치고 토지를 황폐하게 만들고 있다. 이에 따라 아랄 해 인근 카자흐스탄의 도시 아랄스크는 각종 빈혈과 암, 결핵 등 질환이 만연해 주민의 건강이 세계적으로 가장 나쁜 도시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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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대 死因 1위 ‘자살’ - 2004년 사망원인 통계
2005년 09월 29일 | 글 | 홍수용 기자 ㆍlegman@donga.com |
 

《한국의 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사망자 4명 중 1명은 암으로 숨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통계청이 28일 밝힌 ‘2004년 사망 원인 통계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사망자 수는 24만5800명이었다. 하루 평균 672명, 시간당 28명이 숨진 셈이다. 자살한 사람은 인구 10만 명에 25명이었다.》

지난해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 수는 1994년에 비해 15명 많아져 최근 10년간 사망 원인 중 암(21명 증가)에 이어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다.

2003년 기준 OECD 국가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 수는 △한국 23.3명 △헝가리 22.6명 △일본 18.7명(2002년) △핀란드 18.4명 △체코 14.2명 △미국 10명(2001년) △룩셈부르크 10.3명 등이었다.

통계청 인구 동향과 김동회(金東會) 과장은 “경제난, 이성문제, 부부갈등 등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많았다”고 말했다.

10만 명당 자살자 수는 남자가 34.5명으로 여자(15.8명)의 2.2배였다.

전체 자살자 1만2000명 가운데 40대 자살자 비율이 21%로 가장 높았다. 이어 60대(16.3%), 30대(15.9%), 50대(15.8%), 70대(12.5%), 20대(9.4%)의 차례였다.

연세대 의대 정신과 이홍식(李弘植) 교수는 “일본이 과거 경기불황 때 40, 50대 중장년층의 자살이 많았던 것처럼 한국도 경제적 스트레스로 인한 40대 자살률이 높아지고 있다”면서 “사회 차원에서 자살을 예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암으로 인한 사망자는 6만5000명. 인구 10만 명당 암 사망자는 133.5명으로 1994년(112.7명)에 비해 20.8명 늘었다.

최근 사망자가 가장 많이 늘어난 암은 폐암이다. 인구 10만 명당 사망자 수가 1994년 18.8명에서 2004년 27.5명으로 8.7명 증가했다. 같은 기간 대장암은 6.6명, 전립샘암은 2.9명, 췌장암은 1.9명 늘었다.

반면 지난해 위암으로 숨진 사람은 인구 10만 명당 23.2명으로 1994년(28.8명)에 비해 5.6명 줄었다.

국립암센터 암관리사업연구단 신해림(辛海林) 단장은 “서구식 식습관과 환경오염으로 암에 걸리는 사람이 많아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는 최근 10년간 18.1명이 줄었다.

성별 사망 원인 순위를 보면 남자는 여자에 비해 자살(인구 10만 명당 34.5명), 간 질환(31.0명), 교통사고(25.2명)로 사망하는 비율이 높았다. 반면 여자는 남자에 비해 당뇨병(24.5명)과 고혈압성 질환(13.9명)으로 사망하는 비율이 높았다.

연령대별로는 20대 미만에선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이 가장 많았다. 20, 30대는 자살, 40대 이상은 암이 사망 원인 1위였다.

 

 

 

자살을 권하는 사회,
그래서 사회적 타살이라 부르는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오늘.

대략 4천만 중 만명 자살이라... 헐헐헐.
이라크 침략 전쟁에서 죽은 미군보다 많네요.
전쟁보다 참혹한 한국.. 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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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chika > [목소리를 높여] 낭독합니다

 

 

 

 미스라임의 동굴에서.

 

"그 여자가 그런 일을 하기는 하지. 하지만 그 일을 어떻게 한다던? 바로 그 여자가 모든 걸 깡그리 잊어버리는 그 망할놈의 마약을 그림자들에게 먹이지. 그리고는 모든 걸 잊어버리게 돼. 자신이 갇혀 있다는 사실, 원래는 이 동굴에 속한 그림자가 아니었다는 사실, 미스라임 바깥에 원래 자신이 살았던 다른 세계가 있다는 사실마저도 잊어버리지. 그리고 이전과 이후, 모든 질문과 동경마저도 잊어버리게 돼. 그래, 모두들 조용히 주어진 생활에 만족하며 잘 살고 있지.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다른 곳에 대한 기억도, 그곳을 다른 곳과 비교할 기회도 없기 때문이야. 그들에게는 순간만이 있을 뿐이야. 진자 노예만도 못한 노예, 진짜 죄수만도 못한 죄수가 바로 그들이야. 자신의 처지에 만족하는 노예, 갇혀 있다는 사실에 괴로워하지 않는 죄수....."(207)

"들었어? 너희들이 이곳에서 나가고 싶어한다잖아! 그런데 너희들은 저 밖에 뭐가 있는지 알기나 하고 그렇게 까부는 거니? 저 세상은 너희들이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야. 봐! 너희들은 이 정도 빛에도 질겁을 하잖아. 밖에 나가면 너희들은 완전히 분해되고 말아. 너희들은 어디가 위고 어디가 아래인지 구분도 할 수 없는 몸뚱이를 가졌어. 그리고 너희들은 그 몸뚱이를 어디에 둬야 할지도 알 수 없게 돼. 커다란 '공간'이 너희를 삼켜 버리고 말거야. 숨도 너희들 스스로 힘으로 쉬어야 해. 너희들에게 심장을 뛰게 할 힘이나 있는 줄 알아? 그리고 너희들 스스로 내려야 하는 순간순간의 결정은 또 어떻고? 한번 하면 절대로 돌이킬 수 없는 영원한 족쇄가 되어 너희들을 따라 다니게 될 거야....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저 세상은 너희가 살만한 곳이 못 돼. 그래서 너희들은 너희 능력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저 세상과 빛을 피해 이리로 도망쳐 와서는, 우리에게 보호를 요청했던 거야. 우리는 단 한 순간도 너희를 이곳에 붙잡아 둔 적이 없어. 아니, 반대로 우리가 너희들의 의지에 복종해 왔어. .........."(222)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모두들 밝은 빛을 피해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그들이 들고 있던 각목과 쇠몽둥이가 이브리에게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모두 고개를 돌린 채, 빛이 들어오는 구멍 안으로 이브리를 밀어 넣었다. 모두 침묵하는 가운데 벌어진 일이었다. 이브리는 저항하지 않았다. 그의 몸이 구멍을 넘는 순간, 그의 입에선 귀를 찢을 듯 날카로운 외침이 터져 나왔다. 벽의 구멍이 천천히 그의 등 뒤에서 메워지는 동안, 이 외침은 메아리가 되어 미로 세계의 모든 통로와 동굴 곳곳에 울려 퍼졌다. 모든 그림자가 그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그것이 황홀해서 내지른 기쁨의 탄성이었는지, 아니면 결졍적이고도 최종적인 절망감 때문에 내뱉은 슬픔의 탄식이었는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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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 발신자표시 기본료 편입 추진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휴대전화 발신자 표시서비스를 기본요금에 편입시키는 방안을 추진하기로했습니다.

당정은 오늘 국회에서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협의회를 열어 이같이 의견을 모으고 정보통신부가 휴대전화 지배적 사업자인 SKT와 발신자 표시 서비스 요금을 기본료에 편입하고 요금을 인하하는 방안을 협의하기로 했습니다.

당정은 또 휴대전화 단문메시지 서비스인 SMS 데이터 요금도 중장기적으로 요금 수준의 적정성 등을 검토하기로했습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소속 열린우리당 홍창선 간사는 당정 협의과정에서 여당 의원들이 발신자 번호표시 서비스 요금의 무료화를 강력히 요구했다고 전했습니다.

 

 

 

거럼. 기본 서비스로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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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신 뒤집었다”에 “왜곡보도 인용한 비판”
강준만 교수 비판에 조기숙 수석 ‘발끈’ 응수
▲ 강준만
[관련기사]
이번엔 강준만 교수와 조기숙 청와대 홍보수석이 논쟁으로 맞붙었다.

논쟁의 대상은 ‘민심을 보는 시각’과 ‘지역주의’에 대한 태도였다. 불은 강준만 교수가 먼저 붙였다.

강 교수는 28일치 한국일보 고정칼럼에 “청와대 집단사고에 변심? 학문적 소신 잃지말기를”이라는 제목의 ‘조기숙 청와대 홍보수석께’라는 편지 형식의 글을 통해, 학자로서의 조기숙 교수의 말과 청와대 홍보수석으로서의 조기숙 비서관의 말과 신념이 달라졌다고 질타했다.

강준만 “조기숙, 학문적 소신 뒤집었다”에

조기숙 “왜곡보도 인용한 비판 사과하라” 응수

강 교수는 대학 재직 시절 조기숙 교수가 “민심의 현명함을 높이 평가하고” “지역주의 낙관론”을 펼치다가 청와대 수석비서관이 된 이후에는 ‘청와대의 집단사고’에 빠져 두 가지 문제에 대해 기존의 학문적 소신과 입장을 뒤집고 청와대의 주장을 대변하는 ‘달라진 처신’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 교수의 칼럼이 실린 28일 조기숙 수석비서관도 즉각 응수했다. 조 수석은 28일 청와대 홈페이지와 브리핑을 통해 강 교수의 글에 대해 응답했다.

조 수석은 이 글에서 지역감정 낙관론과 연정론에 대한 강 교수의 지적을 일부 인정했다. 조 수석은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는 지지자들의 심정도 충분히 이해”한다며 “저도 밖에 있었다면 그럴 가능성이 많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강 교수의 비판에 일부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조 수석은 그러나 “선거구제 개혁과 연정론”은 자신이 청와대 수석비서관 이전부터 줄곧 학문적 소신으로 주장해오던 것으로, 강 교수가 말하는 것과 같이 ‘학자로서의 소신을 저버린 달라진 처신’이 아니라고 강하게 반박했다.

두 논객, 정치논점 넘어 감정적 대립도

강 교수 “나중에 강단 설 모습 생각해 봐라”

조 수석 “부지런한 강교수가 짜깁기로 비판할 줄이야”

▲ 조기숙
두 정치논객이 논쟁을 펼친 지점은 ‘지역주의’와 ‘대중을 보는 시각’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강 교수와 조 수석의 글은 부드러운 말로 상대를 존중하는 듯하면서도 노골적으로 자존심을 건드리는 공방으로 이어졌다. 강 교수는 조 수석에게 보내는 글에서 조 수석이 “행여 청와대의 ‘집단사고’ 분위기에 압도돼 자기희생을 하실 생각은 하지 않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라며 “조 수석님에게 가장 필요한 건 적정 수준의 이기심인 것 같습니다. 나중에 강단에 다시 설 때의 모습을 미리 한 번쯤 생각해 보시고 소통을 중시하는 분이 되어 주시면 좋겠습니다”라고 글을 맺었다.

이에 맞서는 조 수석의 글도 감정적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조 수석은 강교수가 왜곡보도를 인용해 자신을 비판했다고 서운함을 드러냈다. 조 수석은 글에서 “부지런하고 공부 열심히 하기로 소문난 강교수님이 저에 대해 이렇게도 연구 없이 남들이 쓴 글을 짜깁기해서 비판한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로 “강교수님의 무책임한 비판이 얼마나 저에게 큰 상처를 주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라며 자신의 발언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공개사과를 요구했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아래는 한국일보에 실린 강준만 교수의 칼럼과 청와대 홈페이지에 실린 조기숙 수석의 글 전문이다.


[한국일보 강준만칼럼] 조기숙 청와대 홍보수석께

청와대식 집단사고에 변심? 학문적 소신 잃지 말기를

조기숙 대통령 홍보수석 비서관님, 안녕하시지요? 얼마 전 노무현 대통령을 적극 옹호한 일련의 발언 파동으로 속이 많이 상하셨을 것 같습니다. 혹독한 비판이 많이 쏟아졌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조 수석님은 지난 21일 서강대 강연에서 그런 비판에 굴하지 않겠다는 듯 강인한 모습을 또 한번 보여주셨지요.

조 수석님의 확고한 신념과 의지엔 경의를 표합니다. 그러나 논란이 뜨거운 만큼 ‘지식인의 정치참여 윤리’라는 화두는 피해갈 수 없으리라 봅니다. 조 수석님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로 같이 한번 생각해보자는 거죠.

어느 기자는 조 수석님이 교수 시절에 ‘민심의 현명함’을 높이 평가하고 대통령의 새로운 정당 만들기를 ‘잔꾀’로 비난하는 발언을 했던 걸 지적하면서 왜 그렇게 달라졌느냐고 추궁했더군요. 그러나 제가 볼 때에 조 수석님의 가장 놀라운 변화는 지역주의에 대한 태도이지요.

조 수석님은 교수 시절 지역주의에 대해 대단히 낙관적인 견해를 역설하셨습니다. 어느 방송 토론회에선 보건복지부 장관인 김근태 의원이 조 수석님의 그런 낙관론을 위험한 생각이라고 비판한 적도 있었지요. 저 역시 조 수석님의 낙관론을 비판한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조 수석님은 국민의 이성을 의심하는 주장을 하셨습니다만, 최근 대연정 파동의 와중에서 ‘이성 모독’을 느낀 국민들도 많지 않았을까요? 대연정 발상을 모독으로 느꼈다기보다는, 대연정을 내세우면서 지역주의 걱정, 즉 우국충정을 독식하려는 청와대의 태도에서 모독을 느꼈으리라는 거지요. 또 내내 한나라당을 사라져야 할 정당처럼 공격하다가 납득할 만한 과정과 절차를 생략한 채 어느 날 갑자기 뜨겁게 포옹해야 할 정당으로 선언하고,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을 거칠게 공격하는 노무현 정권 핵심부의 독선ㆍ독주ㆍ독단을 곱게 보아주긴 어려웠을 겁니다.

그간 수많은 연구자들이 지역주의 해소를 위한 방안들을 제시했습니다만, 노 대통령은 내내 그 방안들에 역행하는 일들을 하다가 다 안 되니까 대연정이라는 또 다른 답을 제시했지요. 측근 인사들은 그것 역시 답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지역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거나 약하다고 호통을 치고 있습니다. 공공 이슈에 대한 주장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사람의 피의 온도로 판별하는 게 아니라면, 그런 자세야말로 ‘이성 모독’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조 수석님의 변화를 이해하는 편입니다. 그런 변화는 정ㆍ관계에 진출하는 교수라면 누구든 겪을 수밖에 없는 숙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변화에 대해 겸손할 필요는 있지 않을까요? 바로 이 점에서 조 수석님의 처신이 많은 사람들의 반발을 불러 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저는 저와 생각은 좀 달랐지만 과거 조기숙 교수를 존경했던 사람입니다. 얼마 후 대학에 돌아올 조기숙 교수를 다시 존경하고 싶습니다. 제가 우려하는 건 이미 여러 권의 책을 통해 ‘지역주의 낙관론’을 역설한 지역주의 전문가인 조 수석님이 청와대 경력 때문에 자신의 학문적 소신을 뒤집어야 하는 사태입니다.

조 수석님, 정치는 진리의 영역이 아니지 않습니까. 조 수석님도 지난 대선시 치명적인 판단 착오를 공개 사과한 적도 있지 않습니까. 지금 갖고 계신 소신에 아주 작은 오류의 가능성이라도 열어두시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소통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행여 청와대의 ‘집단사고’ 분위기에 압도돼 자기 희생을 하실 생각은 하지 않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 제가 볼 때 조 수석님에게 가장 필요한 건 적정 수준의 이기심인 것 같습니다. 나중에 강단에 다시 설 때의 모습을 미리 한 번쯤 생각해 보시고 소통을 중시하는 분이 되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청와대 국정브리핑] ‘존경하는 강준만 교수님께’ 조기숙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

강준만 교수님께서 저와 대화에 나섰다는 사실만으로도 저는 기쁘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저는 강교수님이 한국 논평계의 문화를 혁명적으로 바꾸어 놓았다는 점에서 매우 존경합니다. 강교수님이 아니었다면 저도 제가 쓴 글과 말을 모두 기억하고 일관성을 지키지 못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만큼 강교수님의 영향력은 지대합니다.

저는 저의 철학과 학문적 소신을 목숨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학문하는 사람의 생명은 신실성(integrity)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선거예측이 틀리는 순간 논평가를 은퇴한다는 자세로 임해왔습니다. 수많은 논평가들이 엉터리 예측을 해놓고 책임지지 않는 자세가 못마땅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대선 날 후보 단일화에 대한 사과도 그런 자세로 이해해주시면 됩니다. 만일 노무현후보가 선거에서 졌다면 저는 그 때 은퇴를 선언했을 겁니다.

그랬기에 저에 대한 강교수님의 두 가지 문제제기는 모두 맞지 않습니다. 이렇게 설명할 기회를 주셔서 기쁘게 생각합니다. 우선 우리의 지역감정이 약화되고 있으며 따라서 지역주의 선거도 약화되고 있다는 주장은 맞습니다. 지금도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실제로 제 말이 맞지 않습니까?

지역감정은 약화됐으나 지역구도는 여전

그러나 동시에 저는 지역주의 선거가 지역감정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물론 지역감정이 완화되다보면 언젠가는 한 30~40년 후에는 완전히 사라지겠지요. 저는 지역구도는 지역에 기반을 둔 정당과 그것을 강화하는 선거제도 때문에 지속되므로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라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대통령도 한 번도 지역감정을 들먹인 적이 없습니다. 대통령이 문제 삼는 것도 지역구도입니다. 그것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선거제도를 바꾸어주어야 한다고 저는 주장한 바 있습니다.

김근태장관과 TV토론에서 우리의 지역감정이 다른 나라에 비해 심하지도 않고 헌법을 바꿀 정도로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 것 맞습니다. 그 때 김장관은 정부통령제를 통해 지역감정을 극복하자고 주장했습니다. 저는 정부통령제는 지역구도를 영구화할 것이므로 반대했고 지역감정이 헌법을 바꿀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지역감정이 약화됨에도 불구하고 지역구도가 계속되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바로 지역정당이 선거의 구도를 지역구도로 몰고 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998년 <의정연구>에 쓴 “새로운 선거구제도 선택을 위한 시뮬레이션 결과”라는 논문에서 저는 선거구제 개혁을 소선거구와 권역별 비례대표를 1:1로 결합하자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첫째는 현재의 소선거구제가 대표의 문제를 유발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지역구도를 완화하기 위해서입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정책정당을 강화해주기 때문에 자연히 지역정당이 약화된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 논문은 우리 학계에서 처음으로 시뮬레이션에 따른 예상의석수를 검토했고, 전국득표율에 따라 권역별 의석을 배분하는 제안을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논문이 토대가 돼 1999년 시민단체에서는 저의 제안과 유사한 선거제도 개혁안을 채택한 바 있습니다.

2002년 <정당학회보>에 쓴 논문에서는 선거구제 개혁과 연정을 동시에 주장했습니다. DJP연정의 불안정성이 지역정당의 연대에서 비롯되었다고 진단하고 선거구제 개혁을 통해 정책정당을 강화하고 연정정치를 일상화해야 한다는 것이 제 논문의 요지입니다. 이것은 현행헌법에서도 가능하고 개헌이 필요 없다는 것이 그 때의 주장이고 지금도 변함없는 저의 주장입니다.

지역정당, 선거구제가 지역구도 심화 원인

제가 청와대에 온 이후로 대통령이나 청와대가 중대선거구제를 주장한 적이 없습니다. 지역감정을 거론한 적도 없습니다. 제가 청와대에 들어온 이후 생각이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저의 오래된 문제의식이 학자들의 반향을 일으키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노대통령에 의해 현실 정치에서 논의되는 것이 신기할 따름입니다.

또 한 가지 문제는 유권자를 합리적이라고 했다가 왜 지금은 비이성적이라고 하느냐는 비판입니다. 동아일보는 저에게 전향이라는 말까지 쓰며 공격했습니다. 우선 수구언론의 왜곡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강교수님이 이런 식으로 그것을 사실로 인정하는 것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저는 유권자를 비이성적이라고 한 적도 무시한 적도 없습니다. 구구절절이 해명을 담은 저의 이메일을 보고 나서도 그런 식의 왜곡보도를 통해 저를 흠집 내고 싶은 일부 언론의 소망사항일 뿐입니다.

제가 유권자가 합리적이라고 했을 때에는 선거에서 집합적인 유권자의 선택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유권자 한 명 한 명이 모두 합리적이라거나 이성적이라는 주장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것은 중요한 고려 사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감정적이기도 하고 이성적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수의 유권자가 감정적인 이유로 투표를 한다 하더라도 20%만 이성적인 이유로 투표를 하면 전체의 집합적 선거결과는 합리적이라는 것이 민심에 대한 저의 결론입니다.

저는 자칭 민초주의자입니다. 민초들이 이 나라를 이만큼 지켜왔고, 선거 때마다 주어진 상황 하에서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내렸다고 자부합니다. 대통령도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저의 20년간 철학이자 신념이며 경험적 조사를 통해 내린 결론입니다. 그런 저의 생각은 노대통령의 민심에 대한 생각과도 무섭게 일치합니다. “역사 속에서 구현되는 민심을 읽는 것과, 그 시기 국민들의 감정적 이해관계에서 표출되는 민심을 다르게 읽을 줄 알아야 됩니다.” 저는 이것을 민심과 여론으로 구분합니다. 이에 대한 생각은 며칠 후 다른 칼럼으로 나올 것이기에 이만 줄이고자 합니다.

저는 진즉에 상생의 정치를 주장했었습니다. 상생의 정치를 실천하기 위해 취임 때부터 지금까지 박근혜대표나 전여옥 대변인에 대해 주로 덕담을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한나라당이 저 개인에 대해 욕을 퍼부어도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학문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에게 비판을 하시려면 그 몇 배로 공부를 하고 나서 해야 합니다. 자칫 잘못된 비판이 명예를 목숨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을 생매장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부지런하고 공부 열심히 하기로 소문난 강교수님이 저에 대해 이렇게도 연구 없이 남들이 쓴 글을 짜깁기해서 비판한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민심 발언’ 왜곡보도 인용해 비판해서야

동아일보는 저에 대한 오보를 내고, 그것도 모자라 왜곡보도로 흠집 내고, 사설로, 외부 필진의 칼럼으로 비판하고 이에 대한 해명 편지를 보냈더니 그것을 읽고 나서도 왜 전향을 했냐며 공개질의까지 했습니다. 제가 답을 하겠다고 했더니 지면을 줄 수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언론중재위에 반론권을 신청해 놓은 상태입니다. 우리가 이런 언론환경에 살고 있다는 것 누구보다도 잘 아시는 강교수님이 확인절차도 없이 이런 식의 공개비판을 하신 것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강교수님의 무책임한 비판이 얼마나 저에게 큰 상처를 주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제 말이 모두 사실인 것이 확인되면 저에 대해 공개사과하실 것을 부탁합니다. 제가 청와대에 들어오게 된 것도 그 동안 제가 쏟아 놓은 말들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서입니다. 좋은 말은 다 하고 행동으로 책임지지 않는다는 비난이 버겁기도 해서입니다. 동아일보는 왜 공정한 논평가가 되겠다는 다짐을 버리고 청와대에 들어갔냐고 사설을 동원해서 공격했더군요. 일부 언론이 대통령을 그렇게 부당하게 비방만 하는데 제가 한가하게 공정한 논평가 역할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 일을 맡은 것은 저에게 너무나 큰 개인적 희생을 강요했습니다. 그러나 강교수님까지 노대통령에게 등을 돌린 마당에 저마저 몰라라 하고 팔짱 끼고 있을 수 없어 고사 끝에 십자가를 지게 된 것입니다.

저는 항상 사직서를 들고 다닙니다. 대통령과 저의 철학이 다르고, 다른 부분에 대해 대통령을 설득하는데 실패하면 언제든지 그만 둘 생각입니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모든 문제의식이 일치하여 그럴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런 저의 자세는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제 생각이 틀릴 수도 있습니다. 저는 저만 맞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는 지지자들의 심정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도 밖에 있었다면 그럴 가능성이 많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워낙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하는 일이라 이해가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일관성이 없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는 오해입니다. 저는 언제든지 이 문제에 대해 공개토론에 나설 의향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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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5-09-29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덕분에 두분의 글을 읽게 되었네요. 글 퍼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 한겨레 말고는 신문을 통 안봐서 말입니다...
제가 강준만 빠라서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일지 모르지만, 이번 논쟁은 강준만이 옳은 것 같네요. 이유인즉슨
-조기숙은 강준만에게 남의 글을 짜깁기해서 비판하지 말라고 했는데요 글쓰기에 있어서 강준만의 삶은 짜깁기의 삶이였습니다. 남들의 주장을 무수히 인용하면서 자신의 논지를 펴나가죠. 그런 사람한테 그러지 말라고 하는 건 좀 이상하구요
-민중을 믿겠다고 했다가 못믿겠다고 한 데 대한 조기숙의 변명은 쉽사리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엊그제 민노당 분들을 만났습니다. 열심히 활동하는 분들은 아니구 당원이면서 그냥 일상생활을 하는 분들인데요, 그분들은 하나같이 연정론을 찬성하더군요. 그 점에 있어서 노무현을 높이 평가합디다. 그분들의 말은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은 원래 비슷한 당이니 합치는 게 낫다는 의미에서였어요. 그러니까 연정론에 대한 반대와 찬성은 그 두 당이 비슷하냐 다르냐에 대한 관점의 차이일 수 있습니다. 다르다고 보는 저로서는 당연히 반대하는 것이구요.
전 대선 때 조기숙이 쓴 글을 읽었습니다. 그때 조기숙은 민노당에게 지지를 호소하면서 한나라당이 집권하는 사태만은 막아보자고 울먹였었지요. 그랬던 조기숙이 한나라당과의 연정을 옹호하는 건 저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라주미힌 2005-09-29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의 논지는 분명하네요. 이랬다 저랬다하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인데.. 잘 읽었습니다. ^^

릴케 현상 2005-09-29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높이 평가합디다"라는 건^^ 진지한 분위기일 거라는 상상이 안 돼는데요~

마태우스 2005-09-29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명한산책님/근데 그게 진지한 분위기였다니깐요. 그래서 제가 따졌죠. 초창기에 제가 노무현을 옹호할 때는 그렇게 비판하더니, 왜 지금같이 어이없을 때는 지지하냐고요...

릴케 현상 2005-09-29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아마도... 친구분들이 마태우스님보다 수준높은 유머를 구사하시는 게죠=3=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