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chika > [목소리를 높여] 낭독합니다

미스라임의 동굴에서.
"그 여자가 그런 일을 하기는 하지. 하지만 그 일을 어떻게 한다던? 바로 그 여자가 모든 걸 깡그리 잊어버리는 그 망할놈의 마약을 그림자들에게 먹이지. 그리고는 모든 걸 잊어버리게 돼. 자신이 갇혀 있다는 사실, 원래는 이 동굴에 속한 그림자가 아니었다는 사실, 미스라임 바깥에 원래 자신이 살았던 다른 세계가 있다는 사실마저도 잊어버리지. 그리고 이전과 이후, 모든 질문과 동경마저도 잊어버리게 돼. 그래, 모두들 조용히 주어진 생활에 만족하며 잘 살고 있지.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다른 곳에 대한 기억도, 그곳을 다른 곳과 비교할 기회도 없기 때문이야. 그들에게는 순간만이 있을 뿐이야. 진자 노예만도 못한 노예, 진짜 죄수만도 못한 죄수가 바로 그들이야. 자신의 처지에 만족하는 노예, 갇혀 있다는 사실에 괴로워하지 않는 죄수....."(207)
"들었어? 너희들이 이곳에서 나가고 싶어한다잖아! 그런데 너희들은 저 밖에 뭐가 있는지 알기나 하고 그렇게 까부는 거니? 저 세상은 너희들이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야. 봐! 너희들은 이 정도 빛에도 질겁을 하잖아. 밖에 나가면 너희들은 완전히 분해되고 말아. 너희들은 어디가 위고 어디가 아래인지 구분도 할 수 없는 몸뚱이를 가졌어. 그리고 너희들은 그 몸뚱이를 어디에 둬야 할지도 알 수 없게 돼. 커다란 '공간'이 너희를 삼켜 버리고 말거야. 숨도 너희들 스스로 힘으로 쉬어야 해. 너희들에게 심장을 뛰게 할 힘이나 있는 줄 알아? 그리고 너희들 스스로 내려야 하는 순간순간의 결정은 또 어떻고? 한번 하면 절대로 돌이킬 수 없는 영원한 족쇄가 되어 너희들을 따라 다니게 될 거야....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저 세상은 너희가 살만한 곳이 못 돼. 그래서 너희들은 너희 능력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저 세상과 빛을 피해 이리로 도망쳐 와서는, 우리에게 보호를 요청했던 거야. 우리는 단 한 순간도 너희를 이곳에 붙잡아 둔 적이 없어. 아니, 반대로 우리가 너희들의 의지에 복종해 왔어. .........."(222)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모두들 밝은 빛을 피해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그들이 들고 있던 각목과 쇠몽둥이가 이브리에게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모두 고개를 돌린 채, 빛이 들어오는 구멍 안으로 이브리를 밀어 넣었다. 모두 침묵하는 가운데 벌어진 일이었다. 이브리는 저항하지 않았다. 그의 몸이 구멍을 넘는 순간, 그의 입에선 귀를 찢을 듯 날카로운 외침이 터져 나왔다. 벽의 구멍이 천천히 그의 등 뒤에서 메워지는 동안, 이 외침은 메아리가 되어 미로 세계의 모든 통로와 동굴 곳곳에 울려 퍼졌다. 모든 그림자가 그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그것이 황홀해서 내지른 기쁨의 탄성이었는지, 아니면 결졍적이고도 최종적인 절망감 때문에 내뱉은 슬픔의 탄식이었는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