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의 난제로 알려진 ‘푸앵카레의 추측’을 푼 공로로 ‘수학계의 노벨상’인 필즈상 수상자로 뽑혔음에도 이를 거부한 러시아 ‘은둔 천재’ 그리고리 페렐만(40) 이야기가 최근 국내 신문들까지 장식했다.

아니나 다를까, 주류 매체들이 이 이야기를 일종의 ‘괴담’으로 처리했다. 황우석처럼 최고 과학자로 행세하여 국회나 들락날락했으면 ‘정상’이었을 터인데, 미국 우수 대학의 교수직을 거부한데다 상까지 사양하고 숲에서 버섯이나 따러 다니고 한 달 5만원짜리 어머니의 연금으로 살다니, ‘비정상’의 은둔 천재란 논리다. 그런데 국제수학연맹의 회장 존 볼이 페렐만의 고향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가서 삼고초려를 했음에도 수상은커녕 국제수학연맹 대회 출석까지 거부한 페렐만의 행동이 정말로 ‘괴이’한가? 나는 반대로 그가 과학의 정도를 걷는 게 아닌가 싶다.

수상 거부 이유를 물은 기자들에게, 페렐만이 학계와의 접촉을 피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수학계 보스 중의 한 사람이 푸앵카레의 추측을 푸는 데서 자기 제자들의 역할을 과장한 데 대한 한심한 심정을 피력하고, “다수의 수학자들이 개인적으로 정직하다고 해도, 정직하지 않은 ‘권력자들의 횡포’를 그냥 수용하는 순응주의자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진흙탕 싸움에 자신까지 휘말릴 것 같아 수상하고 싶지 않다는 듯한 인상을 남겼다. 학계의 한 ‘사단’으로 비롯된 그의 개인적인 상처도 이해할 만하지만, 그의 문제 제기는 보편적인 가치를 지니기도 한다. 학문이 권력화한 세상에서는, 공부 자체가 좋아서 공부를 하는 사람이 과연 어떻게 처신해야 옳을까?

특정 스승도 없고 제자도 거의 없었던 신라시대 원효부터 교수직을 가진 일이 없었던 함석헌까지, 페렐만과 같은 탈속적 처신으로 세상을 놀라게 한 이들은 한국 지성의 자랑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전통적인 학맥 의식에다가 일본형의 근대적 권위주의가 겹쳐져서 그런지 국내 일반 학계의 권위주의는 세계의 ‘평균’보다 훨씬 심할 것이다.

학계 안의 권력 관계의 최대 문제는 무엇인가? ‘보스’의 일개 가설이 곧바로 진리로서 위치를 차지하는 소통 구조의 왜곡은, 특히 객관적인 입증이 불가능에 가까운 인문과학에서는 가장 큰 폐단이 되지 않나 싶다. 예컨대 양반귀족의 특권을 확립시키고 천민들의 신분적 예속을 가일층 강화시킨 조선왕조의 출현을 우리가 ‘역사의 진보’로 안다든지, 국부를 자신의 가산처럼 운영하면서 외세에게 변변한 저항을 하지 못한 고종을 ‘계몽 군주’로 보는 논저를 자주 접하게 되는 것은 학계의 위계질서와 무관하지 않은 일이다. 진리 탐구는 보스가 공인한 ‘진리’만을 대상으로 탐구하는 것으로 둔갑된다.

권력이 진리 행세를 하는 세계에 대해 페렐만이 느낀 혐오는, 면역성이 좋은 신체의 병균에 대한 정상적 반응이다. 문제는, 수요자가 소수 전문가인 수학에서는 두문불출해서 자기 작업에만 매달리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있어도, 시민의 세계관을 형성해야 하는 인문과학에서는 공론의 장을 ‘보스’들에게 넘겨주고 은둔 생활하는 것이 직무 유기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학계가 건강해지려면 ‘보스’들이 지배하는 대학의 바깥에서 연구와 강의 공간들이 많아져야 할 것이고, 학계의 내부 질서에 대해 실명 비판이 가능한 공개적인 토론이 한 번이라도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그런 토론에 참가하는 것 자체가 자신에게 사형 선고를 내리는 격이 된다는 게 지금 학계의 슬픈 현실이다.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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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6-09-12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부 비판이 불가능한 학계의 현실, 당신들도 젊어선 그게 답답했을 텐데, 늙어서는 고압적인 분위기를 앞장 서서 유지하다니, 참 나빠요ㅡ.ㅡ;;;

로쟈 2006-09-12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학계'는 러시아나 중국까지도 다 예외가 없는 것 아닌가요? 노르웨이는 모르겠지만...

라주미힌 2006-09-12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막연하게 동양쪽이 심할 것 같다라는 생각은 드는데, 범위가 더 넓나보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