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가는 시내버스
안건모 지음 / 보리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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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부터 버스는 둔탁한 엔진소음을 남기며 달린다. 노동절에도 달리고, 학교가 방학해도 달리고, 추석에도 달리고, 연말에도 달리고, 새해가 밝아도 달리고, 월드컵이 열려도 달린다. 그리고 밤 늦게까지 달리고 또 달린다. 영원히 멈출 것 같지 않은 시간 속에 사는 사람들… 그렇게 버스 운전기사는 다른 차원의 공간과 시간 속에서 살아간다. 쳇바퀴처럼 둥근 세계, 숨이 목까지 차오르는 마라토너의 심장처럼 터질듯한 삶의 조건이 그들만의 것처럼 거리를 누빈다.
끊임없는 박동으로 생명을 유지시키는 장치, 우리 사회의 순환계를 담당하여 노동자들을 산업 현장 곳곳으로 나르는 네 개의 발. 깊게 박인 굳은살은 정직하게 읊조린다.
‘이건 아니잖아, 이건 아니잖아’

하지만, 아닌게 아닌 세상이다. 서비스는 남고 인간은 사라진다. 기능을 담당하는 인격은 수치화되고, 자본적 대상화로 물질과 동화된다. 고장 나면 갈아치우고, 신제품과 골동품의 교체는 신속하게 이루어진다. 살아 남으려는 노력들이 산발적으로 일어나지만 무력화되기 십상이다. 세상의 온갖 비난과 멸시를 한 몸에 받으면서…

“노동자들은 쪽수야” 208p

사회적 연대는 약자들의 최후의 수단이며 최고의 도구이다. 변화가 살길이라면 변형의 힘을 키워야 한다. 서로의 고통에 공감하고, 공동의 이익을 위해 움직여야 한다. 이 책은 소통의 첫걸음이다. 같은 노동자이면서도 노동자들에게 배제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시민을 볼모’로 파업이나 일삼는 무리들로 매도된 현장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글 쓰는 버스기사 안건모씨는 노동자가 글을 써야 세상이 바뀐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적극적으로 드러내야 보다 나은 노동환경과 삶의 질적 향상을 끌어 올릴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삶은 ‘까칠함’ 그 자체이다. 기업의 광폭한 이익에 반대하고, 노동자의 정당한 권익을 주장하니 눈 밖에 날 수 밖에 없다. ‘둥글게 둥굴게’라는 노래에 맞춰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솔직함’이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체납 임금’과 ‘부당한 해고’와 ‘열악한 근로조건’에 거침없는 불만과 권리를 주장하는 그에게는 용기 이상의 것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조건에 대한 진지한 통찰. 그리고 가난과 노동, 이웃과 자신, 사회와 계층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현상 속에서 스스로의 역량에 전력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만이 인간 사회를 진화하게끔 하는 것이다.

“혹시 알아? 내 아들, 내 조카가 나처럼 시내버스를 운전할지. 내 아들, 내 조카가 시내버스에 들어와 일할 때 “야, 그래도 아버지 때문에 시내버스 일하기 좋아졌어”하게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307p

천장 손잡이 하나에 의지하기 힘들어서 의자 손잡이까지 잡아도 서있기 힘든 버스의 주행을 다시 느껴본다. 난폭함, 불친절… 그들의 본성이 그런 것이 아니라, 그래야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에 놓여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는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버스를 탈 때마다 새로운 느낌이 엄습한다.
그들을 이해하는 순간 우리는 연대한다. 그리고 변화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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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07-02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쓴 안건모입니다. 리뷰를 쓴 분들에게 뒤늦게 인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제 책을 좋게 평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버스를 운전하겠다는 아들은 지금 군대를 갔다 와서 대학에 복학했지요. 만화를 배우는 모양인데 나중에는 어떨지 모르지요. ㅎㅎ
저는 지금은 월간 <작은책>이라는 진보 월간지를 발행하고 있습니다. 노동운동에서 언론 운동, 문화운동으로 바꾼 셈이지요. 노동자들 소식을 전하는 책입니다. 사이트에도 들어 오셔서 어떤 책인지 구경하시고 작은책도 널리 퍼뜨려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한달에 한번 글쓰기 모임도 하고 강연도 있고 <역사와산> 이라는 모임에서 다달이 산도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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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323-53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