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치의 눈]중남미 좌파정권 부상과 신자유주의 저지는 시민사회 힘

 

전 세계에 걸쳐 신자유주의 바람이 불고 있다. 거기에 대응하는 형편과 사정은 각국마다 다르다. 그런데 최근 중남미에서는 신자유주의를 비판하고 대안을 모색하려는 좌파 정권들이 급부상하고 있다. 그 이유를 1980년대 초부터 도입된 신 자유주의 정책의 실패로 해석하는 것은 동어반복이다. 좀 더 넓게 시야를 가져갈 필요가 있다.
 
빈부격차의 심화, 양극화는 오래 전부터 남미를 괴롭혀온 고질병이다. 이를 고치기 위해 중남미 각국 정부는 1970년대까지 수입대체와 국내산업 보호 정책을 써왔다. 그리고 그 성과도 상당히 있었다. 그러나 바라던 지속적인 경제발전과 경쟁력 강화는 쉽게 오지 않았다. 1980년대부터 미국의 영향력과 외채문제를 지렛대로 한 IMF 등의 개입으로 신자유주의 정책이 약 25년간 도입되었다. 그 결과는 양극화의 심화로 나타나고 있다.
 
중남미 경제 저성장의 근본 원인은?
 
중남미의 근원적인 문제는 스페인이 통치하던 식민지 시대부터 내려오는 경제, 정치, 사회 모든 부문의 과두 독점체제가 전혀 흔들리지 않는 데 있다. 그리고 이의 수술을 위한 교육, 사회 개혁정책은 검토되지도 않는다. 예를 들어, 부유층의 사립학교와 가난한 아이들이 다니는 공립학교의 엄청난 격차 그리고 졸업후의 관료 충원 방식의 개혁 등 사회 계층의 합리적 이동을 위한 정책은 손도 대지 않는다.
 
멕시코의 신 자유주의 실험 이전과 이후의 경제 성적표를 한번 보자
 
예전에 정부에 의한 적극적인 시장개입과 수입대체 전략 이행시기인 1934년부터 1982년까지의 연평균 경제 성장률은 6.1%였다. 그러던 것이 신자유주의가 도입된 1983년부터 2004년까지의 그것은 연평균 2.3%로 떨어졌다. 94년 NAFTA가 도입된 이후의 성장률은 거의 1%대로 알려졌다.
 
제조업 연평균 성장률은 6.7%였다가 신자유주의가 도입된 시기의 그것은 2.7%로 떨어졌다.최근의 제조업 성장률은 2001년 -3.8%, 2002년 -0.6%, 2003년은 -1.2%였다. 2004년의 제조업 연평균 성장률은 2000년의 그것보다 2.1% 낮다. 2005년과 2006년에 조금 호전되었다고 하더라도 2001년부터 2006년까지의 제조업 연평균 성장률은 겨우 1% 남짓이다.
 
제조업 부문 고용은 2001년 -3.8%, 2002년 -5.5%, 2003년 -3.4%, 2004년 -2.6%씩 고용이 줄었다. 2004년의 제조업 부문 고용은 2000년의 그것보다. 17.6%가 줄었다.
 
멕시코 경제학자 살바도르 칼리파에 의하면, 일인당 국민소득으로 표시되는 경제성장률이?1950년에서 2000년까지 아시아의 그것은 미국을 기준으로 16%에서 57%로 성장했는데 비해 중남미는 28%에서 22%로 줄어 들었다. 이 같은 중남미 경제 저성장 아니 마이너스 성장의 비밀은 종속이론이 이야기한 외부 요인 이외에 국내적으로 지나치게 낮은 노동 생산성이 오랫동안 유지되어 왔다는 데 있다. 1950년에서 1998년까지의 노동생산성의 변화 추이를 보면 미국을 기준으로 하여 유럽은 39%에서 79%로 성장했고 아시아는 15%에서 54%로 성장했는데 중남미는 33%에서 32%로 줄어 들었다.
 
이같이 노동생산성이 낮은 이유는 각 산업부문별 독점체제가 구축되어 경쟁이 필요 없는 경제 구조 때문이다. 경쟁을 기피하는 문화가 널리 확산되어 있다. 이것이, 민주주의를 외형적으로 유지하면서 실제로는 소수의 과두독점지배가 지속되어온 권위주의 정치문화와 연관이 있음은 물론이다. 예전에 수입대체 정책을 쓸 때도 국내 산업 내에서의 경쟁은 거의 없다시피하고 나중에 신자유주의 개방 이후도 국내 경쟁은 아주 제한적이다. 예를 들어, 멕시코의 거대 전화, 통신회사인 Telmex는 이전에 국영기업일 때도 독점적 위치를 누렸고 나중에 민영화되어서도 계속 독점의 지위는 확고하여 고객 서비스의 개선 등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즉 경쟁력 향상의 효과가 별로 없다. 노동자들도 노조 집단주의를 정치적 통제의 수단으로 삼는 포퓰리즘 때문에 노동생산성이 매우 낮다.
 
50년대에서 70년대 초까지 멕시코 경제의 활력은 대단하여 한때 멕시코 경제의 기적이란 이야기도 있었다. 68년 올림픽을 개최한 것만 보더라도 자신감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수입대체에만 치중했지 동아시아처럼 제조업 활성화를 수출산업화시키는 전략을 펼치지는 못했고 중공업과 하이테크 산업의 증진도 서두르지?않아 시장의 한계 등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그 활력이 점차 줄어들 수 밖에 없었다.
 
그렇더라도 필자가 경제 전문가가 아니라 잘 모르지만 70, 80년대에 들어서면서 신자유주의 전략 말고도 다른 대안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멕시코에서는 70년대에 페소화의 평가 절상정책과 재정적자에 의해 인플레는 높아지고 수입이 엄청나게 늘면서 경상적자가 급증했다. 이런 위기상황에서 급격한 평가절하 이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리하여 경상적자폭이 줄어들면 다시 위의 상황이 재개되고 위기 때는 외채에 지나치게 의존하다가 외채의 정상적 상환이 어려워지는 경제위기를 다시 맞는 악순환을 밟아왔다. 이와 같은 패턴은 대부분의 중남미 국가들에서 비슷한 모습이고 특히 2001년 아르헨티나 위기에서 최악의 상황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달라지는 중남미 시민사회
 
멕시코는 라틴 아메리카 특유의 노동 동기가 크지 않은 저생산성의 문화에 가톨릭의 대중 순응 이미지 조작과 강력한 집단적 노조주의의 통제에 힘입어 사회주의적이면서도 파시즘적인 특이한 형태의 포퓰리즘 정당인 PRI당이 장기집권을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멕시코에서 좌파 헤게모니가 강화되었던 것은 PRI당으로부터 분화한 개혁적 좌파인 PRD당이 멕시코 시티 등의 시장을 여러 번 집권 하면서 개혁세력의 사회서비스 강화 정책을 통해 좌파적 지식인 그룹과 노동자, 서민 등 시민사회의 연대를 통한 헤게모니 진지 강화가 있어왔기 때문이다.
 
1968년의 경제 위기이후 주기적으로 맞아온 위기 사이클이 짧아지면서 1987년에 다시 위기 상황이 노정되자 집권 세력인 PRI당은 90년대 이후 그 출구를 NAFTA에서 찾으려 했다.?그러나 협정을 체결하자마자 일년 뒤 엄청난 경제 위기를 겪게 되었고 그 후 평균 실질 경제 성장률 1%라는 무성장이 계속되자 우파적 지식인 그룹도 위기의식을 갖게 되어 2000년 정권교체에 이르게 된다. 또한 남쪽 치아파스 지역에서의 마르코스의 전혀 새로운 대안 정치가 실시되면서 원주민들과의 연대에 의한 강력한 좌파 헤게모니 진지가 구성되어 왔다.
 
무엇보다. 올해 7월 2일에 있을 멕시코 대통령 선거를 주목해야 한다. 이 선거에서 당선이 예상되는 후보인 전 멕시코 시티 시장 로뻬스 오브라도르가 승리할 경우, 그는 당장 NAFTA 탈퇴 등의 과격한 결정을 내리지는 않겠지만 남미 공동시장과의 협력 및 석유자원과 멕시코 거대기업 TELMEX를 통한 남미 전체와의 협력은 강화될 것이고 이로 인해 미국이 받게 될 타격은 상상보다 매우 클 것이다.
 
현재 집권 친미 정당(PAN당)은 오브라도르의 당선을 막기위해 티비광고 스폿을 통해 오브라도르와 차베스의 이미지를 겹쳐 보이면서 그의 당선이 멕시코에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악의적인 선동과 조작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비판하는 여성 지식인 작가를 인신공격하여 여성표를 잠식할 수 있는 악수까지 두고 있으며, 일부 여론조사회사의 조작의혹까지 사고있다.
 
중남미에서 ‘제국주의의 강아지’라고 비웃음을 사는 멕시코 정권은 이미 NAFTA 협약이 체결된 지가 10년이 지난 뒤 ‘경제 구조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세제, 에너지, 노동 분야의 개혁, 민영화, 유연화 등의 정책 변화를 시도했지만 의회와 시민사회의 반대에 부딪쳐 제대로 손도 못 대고 말았다. 특히 노동분야는 멕시코 정치, 경제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는 노조 집단주의의 전통으로 인해 감히 노동자들의 정리해고를 쉽게 하려는 구조조정이 불가능하다. 하물며 우리나라같이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그들의 노조설립을 방해하고 자의적으로 해고하며 노조에 대해 거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기이한 사례는 중남미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다.
 
중남미 좌파 붐의 배후에는 시민사회의 성장이 있다
 
일부 중남미 지식인들은 현재의 좌파 부상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약 반세기는 갈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중남미 시민사회 자체의 질적, 양적 성장과 노동자 계급과 진보적 지식인 그룹의 연대로 인한 사회, 문화적 차원에서의 좌파 헤게모니의 확장에 주목한다. 중남미 역사상 최초의 볼리비아 원주민 대통령 탄생, 베네수엘라와 멕시코에서의 노동계급 자주 생산방식의 실험, 각 도시마다. 소규모 국제 문화 축제를 통한 중남미 여러 나라의 문화 연대, 진보적 언론인의 국경을 넘는 적극적 취재, 베네수엘라의 도시 한가운데에서 벌이는 유기농 실험 등 생태와 환경의 대안 문화 추구 같은 소프트한 움직임들이 거시적이고 역사적인 남미 통합의 이상을 실현하려는 결단-베네주엘라의 볼리바리안 헌법 제정, 남미 대륙을 관통하는 송유관의 건설, 남미 공동시장의 강화-등으로 연결되고 있다.
 
90년대에 들어서면서 백인 이외의 인종 그룹, 특히 원주민의 자부심의 상승으로 이들 다양한 인종이 병행 발전하게 됨으로써 미국에는 없는 사회, 문화적 역동성을 가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94년부터 시작된 마르코스의 실험도 이런?시각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최근 멕시코에서의 그 성과를 보면, 치아파스의 악테알이란 곳의 커피나무 재배 마을에서 1997년 원주민 마을주민에 대한 암살사건이 일어나고 오히려 그 마을 주민 5명이 붙잡혀간다. 이에 마을 사람들이 그들의 석방을 기도하는 행진을 가지게 된다. 이후 자연스럽게 이 모임이 지속된다. 그들은 원두 커피의 중간상의 착취를 피하기 위해 스스로 2000년에 ‘마야 비닉’이란 유기농법의 원두 커피 생산 조합을 만든다. 이들은 정의의 바탕 위에서 생산과 분배를 나누고 있고 현재 500명 이상의 회원을 가지고 있다. 2001년에 프랑스 정부는 이들에게 인권상을 수여한다.
 
물론 미국이 주도하는 남미의 콜롬비아와 페루에서의 자유무역 협정 추진으로 남미의 새로운 비전을 향한 행진이 일시 멈칫하고 후퇴한 듯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이 역사적 대세가 될 수는 없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예를 들어, 지난 3월 24일로 예정되었던 에콰도르와 미국과의 자유무역 협정 조인은 에콰도르 국민의 40%를 넘는 원주민 사회운동세력의 거대한 시위로 말미암아 물 건너 갔다. 이들 원주민 사회운동세력의 지도자는 미국과의 자유무역 협정이 자유무역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에콰도르에 대한 미국의 일방적 통제를 의미한다고 하였다. 그들은 국민투표의 요구를 넘어 베네주엘라의 경우와 같이 헌법 제정의회의 소집을 요구하고 있다. 그들은 석유의 국유화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이 주장하는 것은 원주민 독점의 사회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의 병행 발전을 주장하고 있다.
 
73년에 있었던 칠레 아엔데 전복 쿠데타의 성공과 달리 2002년에 있었던 베네주엘라 차베스의 실각을 노린 쿠데타 시도는 실패했다. 베네주엘라에서는 칠레와 같이 극우 지배계급과 언론매체의 사보타지와 엄청난 규모의 외환도피가 있었고 그에 뒤이어 쿠데타가 시도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차베스 자신의 신중함으로 인해 무산되고 말았다. 그는 섣부른 저항을 시도하지 않았고 항복도 하지 않았다. 다만 체포되어 있다는 것을 은밀히 알렸다. 그래서 국제 언론을 활용하는 쿠바의 기민한 지원과 그로 인한 차베스 충성파 군부 정예부대의 반발과 엄청난 규모의 시민사회의 지지 덕분에 다시 권좌에 복귀할 수 있었다. 약 30년의 세월이 지난 후 남미 시민사회의 저력은 이렇게 성장했던 것이다.
 
우리는 차베스가 군인 출신인 사실에 왠지 민주주의의 지도자로서 어울리지 않는다는 선입견을 가지기 쉽다. 그러나 중남미 역사에서 70년대 이후 미국의 개입이 본격화 하기 이전에 군인들이 진보주의 정치의 견인차 역할을 한 사례는 많다. 현재 차베스 개혁의 성과는 만만치 않다. 무상의료, 무상교육만이 아니라 노동자 세력과 시민사회의 연대를 통한 창의적이고 급진적, 대안적 민주주의의 조직화는 다른 어느 곳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원래 스페인 식민지 시절 에콰도르, 콜롬비아, 베네주엘라, 파나마는 한 나라였다. 파나마를 제외한 세 나라 국기가 비슷한 것도 그 때문이고 볼리바르 장군의 역사적 전통도 함께 공유하고 있다. 최근 페루에서 마치 도둑질하듯이 톨레도 페루정부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였지만 시민사회의 반발로 의회에서 비준될지 의문이다. 그러나 페루는 다시 대통령 후보로 나선 알란 가르시아와 후지모리 부패정권의 포퓰리즘으로 인해 시민사회의 좌파 헤게모니가 약화되어있어 좌파집권을 쉽게 점칠 수 없다.
 
문화적 측면의 저항과 변화 역시 주목하자
 
또한 90년대부터 본격화된 남미 각국들의 도시 중심의 작은 국제 예술문화축제를 주목하고 싶다. 필자가 최근까지 살았던 멕시코의 몬테레이 시만 하더라도 약 1994년부터 [구시가지] 국제 예술 축제가 시작되었고 예전에 제철소였다가 지금은 대중들이 많이 찾는 녹지 공원으로 변한 곳에 전시관, 소형극장 및 시네마테크가 설치 운영되기 시작한다. 이런 사례들은 특히 문화정책적 측면에서 문화의 민주화와 관련해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고 본다.
 
중남미는 문화를 통해 각국 사이에 열정이 서로 소통되기 쉬운 구조가 있다. 바로 스페인어와 가톨릭 문화 때문이다. 마치 물과 기름과 같이 상업적 미국 문화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비록 코카콜라를 물처럼 마시더라도, 대중과 지식인이 공유하는 비상업적인 민속, 민중적 문화전통의 맥락은 면면하다. 이름 모를 음유시인들의 구어적, 집단적, 서사시적 음악의 전통은 중남미에서 아주 강하고 현재에도 큰 힘을 보여주고 있다. 음악만이 아니라 연극 미술 영화 모두에서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한 칠레는 국가 경쟁력 순위 등에서 중남미 최고의 선진국으로 평가 받고 있지만 사회적 양극화가 심해 중남미에서 2위, 세계적으로 9위의 소득 격차가 심한 나라라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 본문은 민주노동당 부설 새세상을 여는 진보정치연구소(http://policy.kdlp.org) '연구소 칼럼'이며 본문의 제목은 원제와 조금 다르게 편집했음을 알려드립니다.

 
2006/04/29 [11:47]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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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6-05-01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중남미의 정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좋은 글이네요.
퍼갈게요. 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