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종의 백색신화/ 진중권


나치는 유태인만 미워하는 게 아니다. 유태인과 원수처럼 싸우는 아랍인도 미워했다. 함족의 눈에는 유태인이나 아랍인이나 어차피 셈족. 이들에 대한 인종주의적 증오를 `안티세미티즘'이라 부른다. 백인 보수층에는 안티세미티즘 성향이 잠재되어 있으나, 오늘날 공개적으로 이런 인종주의를 설파하는 자들은 단 하나, 네오 나치뿐이다. 그런데 노골적으로 이 백색신화를 선동하는 분이 우리 나라에도 있다. 조선일보의 이규태씨다. 몇 주전 그는 자기 칼럼에서 들어주기 민망한 해괴한 인종주의 망언을 했다. 좀 늦었지만 인류평화를 위해 지적해 두고 넘어가야겠다.

이규태씨에 따르면, “혹서와 혹한”이 교차하는 “고원지방”에서 사는 아랍 사람들은 “극단을 오가는 기후 틀에 마음도 틀이 박혀 매사에 극단적”이며, “복수에 민감하고 호전적”이다. 그래서 “인샬라-곧 알라신이 원하신다면-쌍둥이 빌딩이 폭파되건 펜타곤이 폭삭하건 국제 경제가 뒤죽박죽이 되건 미사일이 날아오건 아랑곳없다.” 그리고 지금 “색출되고 있는 암살 테러범들”은 “예외 없이 아랍인들”이며 이들은 모두 “자살 충돌 직전에 예외 없이 `인샬라!'를 크게 외쳤을 것”이라 한다.

이것은 유치한 환경결정론으로, 고리타분한 19세기의 편견이다. 인종주의는 다양한 개인들을 하나의 집단에 귀속시킨 후, 그 집단의 특성을 논하곤 한다. 물론 그 특성을 기술하는 술어들은 부정적인 것 일색이다. 가령 “복수에 민감하고 호전적…”. 이규태씨는 혹시 아랍 사람들 만나본 적이나 있는지. 적어도 내가 만나 본 아랍인들 중에 “복수에 민감하고 호전적”인 사람은 없었다. 그들에게 들은 아랍어는 “인살랴”가 아니라 “살라말레쿰”이었다. 그런데 “너희에게 평화를”이라고 인사하는 사람들이 “복수에 민감하고 호전적”이라고?

정작 “복수에 민감”한 게 누구인가? “보복”을 하자고 난리를 치는 그 사람들이 아닌가. “호전적”인 것은 누구던가? `암살, 테러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 `60개국에서 더러운 전쟁을 벌이겠다', `필요하면 핵을 쓸 수도 있다'고 막말을 하던 사람들이 아닌가. 인류가 겪은 수많은 전쟁 중 가장 규모가 큰 것을 “세계전쟁”이라 부른다. 그런데 두 번의 세계 전쟁을 일으킨 호전적인 인종은 누구더라? 지난 세기에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전쟁을 한 나라는 어디? 또 멀쩡히 잘 사는 아랍인에게 `십자군 전쟁'을 걸었던 문화는 어디더라?

소위 “지하드”는 몇몇 광신도들이나 하는 짓. 우리는 그 성전을 “테러”라 부른다. 하지만 또 다른 성전은? 부시는 이번 아프간침공을 “십자군”이라는 이름의 “성전”으로 축성하려다 빈축을 샀다. 지하드와 십자군 전쟁. 하나는 일부 광신도 집단이 벌이는 성전, 다른 하나는 국가에서 수행하는 성전이다. 이 시간에도 아프간에서는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하고 있다. 미국의 폭탄에 맞아 죽을 이유가 하나도 없는 무고한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이런 살육은 `테러'라 부르면 안 된다. 왜?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것도 국가가 축성하면 신성해지기 때문이다.

우습지 않은가? 황인종 칼럼니스트가 함족 대표로 인종주의 망언을 한다. 이규태씨는 도대체 어디서 살다 오셨나? “혹서와 혹한을 완충하는 봄이 없고 가을이 없”는 “고원지방”에서 살다 오셨나? 따뜻한 봄, 서늘한 가을이 있는 아름다운 금수강산에 살면서, 왜 이리 심성이 “극단적”이실까? 함경도 개마고원에서 자라나셨나? 아랍인에 대한 이 인종주의적 혐오감은 미국이라는 암몬신(神)에 대한 얼빠진 애정의 뒷면. 그리고 인종주의 망언은 언론인의 자폭행위. 암몬에 대한 무한한 사랑에서 칼럼이라는 항공기를 몰고 이슬람 사원으로 돌진하시면서, 충돌 직전에 그도 이를 악물고 외쳤을까? “부시께서 원하신다면!”

진중권/<아웃사이더>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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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인의 의식구조 (2001.09.14)

아랍사람들이 사는 고원지방은 맹하 후에 엄동이 끝바꿈하고 또 같은 계절에도 타는 듯한 낮과 얼음 속 같은 밤이 끝바꿈한다. 이 혹서와 혹한을 완충하는 봄이 없고 가을이 없다. 이와 같은 극단을 오가는 기후 틀에 마음도 틀이 박혀 아랍사람들은 매사에 극단적이다. 사람을 극진히 환대하다가도 적대를 하고 관대하다가도 호전적이며 포옹하다가도 칼을 뽑는다. 극에서 극으로 급변할 뿐 중간의 조화나 완충이 없다. 이 같은 아랍 마인드는 말이나 행동뿐 아니라 의식주, 소설, 역사, 제도, 신앙, 철학에서도 찾아볼 수 있으며 이를 체계화한 것이 레온 고시에의 「이슬람 철학 서설」이다. 수십년 전까지 카이로 남방 400㎞ 지점에 있는 엘 파다리라는 농촌에는 주민 90%가 부인과 아이들만으로, 남자라고는 노인만 남고 성인은 한사람도 없었다. 이렇게 사나이가 증발하고 없어진 데는 조손 3대에 걸친 복수전쟁 때문이었다. 각기 다른 혈족 간에 모욕을 주는 사건이 있어 보복으로 살인을 했다. 복수는 같은 혈족이 공동으로 부담하는 의무요, 당대에 복수 못하면 대대로 상속 유지된다. 연쇄살인으로 성인 남자들은 죽어갔고 살아남은 사나이가 있으면 그 아내가 삭발을 하고 비겁함을 고발하는 바람에 복수의 고리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가공할 원념이 이글거리는 아랍 마인드다. 다마스쿠스에서는 북부인이 남부인의 밭에서 오이 하나 훔친 것이 발단이 되어 그 유명한 7년에 걸친 오이 전쟁을 하기도 한 아랍인이다.
같은 아랍인일지라도 이라크 시아파는 북부인이요, 사우디의 수니파는 남부인으로 각기 정통을 긍지로 삼고 적대해왔기로 반목의 골이 깊고 역사도 유구하다. 그만큼 복수에 민감하고 호전적인 아랍인이다.

아랍인들은 어머니 뱃속에서 수태된 지 40일 만에 알라신의 장부에 그의 숙명이 치부되며 그 숙명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확신한다. 그리고 그들은 말끝마다 「인샬라ㅡ」, 곧 알라신이 원하신다면ㅡ 알라신이 정해주신 숙명이라면 쌍둥이 빌딩이 폭파되건 펜타곤이 폭삭하건 국제 경제가 뒤죽박죽이 되건 미사일이 날아오건 아랑곳없다. 색출되고 있는 암살 테러범들이 예외없이 아랍인들이며 이들에게 공통점을 찾는다면 자살 충돌 직전에 예외없이 「인샬라!」를 크게 외쳤을 것이라는 점일 것이다.

출처 : 조선일보 이규태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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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6-04-04 0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진중권이 더 낫네 뭐 ㅡ..ㅡ;

릴케 현상 2006-04-04 0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서 진중권이 잘못한 건 없는듯한데요~

마태우스 2006-04-04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아주 옛날에 읽었던 글인데...진중권 글 보고 얼마나 시원했는지 모릅니다.

로자 2006-04-05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규태의 글을 거의 본 적이 없지만 이 글은 인종주의 입장에서 쓴 글이 분명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