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사회 진출 막혀 있던 시대에 미모로 신분 상승한 왕의 정부들
당시의 스타였지만 나라에 나쁜 일이 생길 때마다 저주의 표적돼

44살이란 짧은 생애 가운데 20년 가까이 루이 15세의 정부로 지냈던 퐁파두르 부인의 친모는 고급 매춘부였다. 억척같았던 어머니는 미래의 ‘왕의 정부’로 만들기 위해, 어린 딸에게 다방면의 ‘고액 과외’를 하는데 그녀를 가르쳤던 선생들의 이름을 모두 열거하면 그 시대의 명사록이 될 수 있을 만큼, 그녀가 받은 교육은 당대 최고 수준이었다.

온 가족이 전력 기울인 ‘가족사업’

중국은 좀더 개방적이지만, 우리나라의 후궁은 원칙적으로 한 번도 결혼을 하지 않은 미혼녀라야 했다. 유럽은 그와 다르다. 간통도 대죄이긴 하지만, 기독사회에서는 미혼 여성의 임신이 더 중한 대죄였다. 남편은 왕과 정부 사이에서 난 아이의 알리바이를 꾸미기 위해 필요했고, 남편은 그 대가로 작위나 금전을 보상받거나 많은 경우는 대사직을 맡아 외국으로 떠났다. 때문에 ‘준비된 정부’였던 그녀 또한 20살이 되자 후견인의 조카와 결혼을 한다. 남은 것은 잘 계산된 왕과의 해후. 그 일은 온 가족이 전력을 기울였던 ‘가족사업’으로, 거기에는 춘향이 변사또에게 받았던 것과 같은 강제가 없었다.


△ (일러스트레이션/ 황은아)

대부분의 역사가들이나 전기작가들은 물론이고 페미니스트마저도 왕의 정부를 매춘부로밖에 설명하지 않는다. 그러나 <권력과 욕망>(랜덤하우스중앙, 2005)을 쓴 마거릿 크로스랜드는 “현대 여성 중에서 과거의 여성들을 평가하면서 그들의 시대적 지위를 고려하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라고 물으면서,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거의 막혀 있던 18세기에 여성이 신분 상승을 이루기 위한 방법은 미모와 사교술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퐁파두르 부인을 여권운동의 선구자로 본 최초의 필자다.

퐁파두르 부인에게 여권의식이 있었는지는 의문이나, 그녀가 남겨놓은 업적만큼은 여느 왕의 정부와 비교되지 않는다. 파리의 명소가 된 몇몇 건물은 그녀가 사재를 털어 지었고, 명품 도자기 세브르를 만든 것도 그녀였다. 무엇보다 새로운 과학과 사상을 환영했던 그녀의 물질적 지원과 보호가 없었다면, 백과사전의 제작은 도중에 중단되거나 훨씬 늦게 간행되었을 것이다. 유럽 왕실을 수놓은 정부들의 역사를 쓰면서, 400쪽이 넘는 분량 가운데 상당량을 퐁파두르 부인에게 할애했던 엘리노어 허먼의 <왕의 정부>(생각의나무, 2004) 역시 유사한 평가를 내렸다.

왕 한 사람에게 모든 책임과 권력이 집중되는 것이 왕정이다. 정부의 침대는 왕이 진 과중한 책임과 전능한 권력 그 어느 사이에 놓여 있을 것이지만, 인간적인 측면에서 보면 왕가의 결혼이란 참 끔찍했다. 왕족의 결혼은 그저 왕자를 생산하기 위한 요식 행위이거나 정략 차원에서 이뤄졌으며, 사랑은 문제되지 않았다. 공주들의 미모는 동화 속 주인공과 매우 달랐으며, 정숙을 미덕으로 여기고 정열을 자제하라는 교육을 받아왔다. 서양에서는 “일반적으로 서자들은 적자들보다 더 똑똑하고 잘생겼다”고 생각한다는데, 이는 “왕과 정부 사이의 성교는 진짜 사랑 행위, 혹은 적어도 진정한 욕망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란다. 우리나라나 중국의 역사를 보면 왕이 적자보다 서자를 편애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는데,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왜 현대인에게 정부가 있는 걸까

왕의 정부는 그 당시의 ‘스타’였지만, 두 저자가 공히 지적하듯이 흉년·전쟁·불황 등의 나쁜 일이 생길 때마다 원성과 저주의 표적이 됐다. 왕에 대한 불만을 입 밖에 내는 것이 반역에 해당하는 시절이기에 백성들은 “정부를 속죄양”(마거릿 크로스랜드)으로 삼거나 “손쉬운 분풀이 대상”(엘리노어 허먼)으로 여겼다. 이런 사정은 동양도 다르지 않다. 안록산의 난으로 도탄에 빠진 군사와 백성들은 당 현종이 재앙의 원인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군주를 징벌할 수 없었기 때문에 현종을 윽박질러 양귀비를 죽이게 했다.

성서에 의하면 왕정이란 악마의 산물이다. 가나안의 도시국가들이 거의 예외 없이 왕정 체제를 가지고 있을 때도, 이스라엘의 신은 왕정을 허락하지 않았다. <왕의 정부>를 읽다 보면, 유럽 왕실이나 귀족사회가 악마까지는 아니더라도 거의 개망나니 집단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왕족들은 애초에 의무감으로 결혼을 했기 때문에 정부가 필요했다지만, 사랑해서 결혼을 한 현대인들에겐 왜 정부가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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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스 2006-02-25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은 변하고, 또 식어버리기 때문인걸 몰라서 물었을지 원.. -_-;;
그런데 이 글은 출처가 어디인지요?

라주미힌 2006-02-25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겨레21입니당... 1주일에 한번은 들르는뎅 읽을만한게 많아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