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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빠르고 부지런함이 항상 최선은 아니다. 황우석(黃禹錫) 서울대 교수 파문이나 잘못된 다이어트의 부작용이 커지는 것도 ‘빨리빨리’ 가치관에서 빚어진 부작용이라고 볼 수 있다. 최근 일부 의·과학 분야에서 기존의 가치관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당장의 인기보다는 기본에서 출발하는 ‘느린 과학’과 느긋하게 살을 빼는 ‘게으른 다이어트’가 바로 그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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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린 생물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험한 곳을 마다하지 않는다. 미국 위스콘신 강 주변 숲 속에서 미생물을 발견한 후 자신의 위치를 위성항법장치(GPS)로 확인하고 있는 이화여대 환경학과 강호정 교수(왼쪽)와 실험 샘플을 찾아 바다로 들어간 생명과학과 원용진 교수. | ‘크고 느린 생물학.’
이화여대 이공계에서 ‘낯선’ 움직임이 일고 있다.
요즘 생물학 하면 유전자나 줄기세포를 연구하는 첨단 생명공학기술(BT)이 떠오른다.
이에 비해 고유생물 분포나 생태를 연구하는 ‘전통 생물학’은 어쩐지 구닥다리 같은 이미지로 다가온다. 실제로 대학 생물학과에서 분류학이나 생태학 연구실은 점차 사라져가는 추세다.
이화여대가 여기에 반기를 들었다. 2000년대 들어 ‘전통 생물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을 적극 영입하기 시작했다.
자연대 생명과학과와 공대 환경학과에서 활동 중인 이들 ‘전통 생물학자’는 자신들의 학문을 ‘크고 느린 생물학’이라고 부른다.
환경학과 이상돈(李商惇) 교수는 천연기념물인 부엉이 보존 방법을 연구 중이다. 최근까지 부엉이가 뭘 먹고 사는지조차 몰랐던 게 현실이었다.
생명과학과 원용진(元庸鎭) 교수는 ‘민물고기 족보 찾기’에 나섰다. 한국, 중국, 일본에 공통으로 살고 있는 민물고기의 유전자를 비교하면 조상을 알 수 있다.
이런 프로젝트를 완성하려면 짧게는 한 달, 길게는 1년에 한 번씩은 현장을 찾아가야 한다. ‘사이언스’나 ‘네이처’ 같은 저명한 국제학술지에 논문 한 편 내려면 최소한 10년의 연구가 필요하다.
현장을 뛰어다닌다고 해서 시대에 뒤떨어진 연구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 교수는 “두루미의 이동 경로를 알기 위해 과거에는 일일이 발가락에 표지를 달았지만 지금은 인공위성과 위성항법장치(GPS)를 동원해 쉽게 경로를 추적한다”고 말했다.
전통 생물학의 연구 성과는 미래에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 줄 수도 있다.
환경학과 강호정(姜鎬玎) 교수는 1년간 강원 점봉산 토양에 사는 미생물을 채집했다. 토종 미생물이 지구온난화를 일으키는 메탄을 얼마나 흡수하는지 연구하기 위해서다.
강 교수는 “온실가스 배출을 규제하는 교토의정서에 대비해 세계 각국이 자국의 배출량을 조사하고 있다”며 “미생물을 활용하면 공기중 온실가스의 양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토종 미생물이 돈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생명과학과 송준임(宋浚任) 교수가 연구하는 산호는 어장을 보호하는 데 유용하다. | |